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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물건을 버리는 이유

2024.03.31

by 김나랑

    우리가 물건을 버리는 이유

    한국이든 뉴욕이든 설레지 않아서 버리는 유행은 계속되고 있다. 다들 어떻게 공간을, 아니 삶을 비워내고 있을까?

    맥시멀리스트로 평생을 살아온 나는 얼마 전부터 너무나도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집 안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물건에 염증을 느껴요.” 코네티컷 모리스에서 부동산업과 인터넷 판매업을 하고 있는 랜디 사빈(Randy Sabin)이 전화 통화에서 한 말이다. “매일같이 지겹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잖아요. 먼지도 털어줘야 하고요.” 스토리지 마켓 ‘네이버(Neighbor)’의 조사 결과, 얼마 전 반 가택 연금에 가까운 상황에서 응답자의 78%가 자신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선진국형 공급 과잉 세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우리 자식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 친구가 자기 아들에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긴 집에서 원하는 물건을 가져가라고 했더니, 앤티크 시계나 에미상 트로피를 가져가지 않을까 싶던 예상과 달리 변기 등 배수구를 뚫는 뚫어뻥을 골랐다고 한다. 내 아파트 역시 물건이 너무 많아서, (보통은 또 물건을 사러) 집을 나설 때면 ‘이곳을 털러 온 도둑에게’ 알아서 원하는 걸 가져가라는 쪽지를 남길까 싶은 생각이 가끔 들 정도다.

    그리하여 몇 달 전에는 이것들을 팔든, 기부하든, 재활용하든, 나눠주든, 지하철에서 모르는 척 잃어버리든, 아니면 다음번에 화성에 가는 우주선에 실어 보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물건들을 처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원치 않는 물건을 거실로 가져와 쌓았다. 한마디로 산더미였다.

    어떤 이들은 물건과 결별하는 과정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버리는 일 자체는 쉽다. 정말 어려운 일은 그 물건들의 새로운 거처를 찾아주는 거다. 지난겨울 브루클린에 사는 한 여성이 옷장에 있는 옷 50여 벌을 이웃에게 거의 무상으로 나누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후에도 그 옷의 대부분은 그대로 옷장에 남아 있었다. 알고 보니 사람들은 공짜보다 자신이 싸게 구입하는 걸 선호했다.

    멜라니아 트럼프가 마크롱 부부를 만날 때 썼던 커다란 하얀색 모자를 (거기다 그 모자를 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그린 수채화와 그 수채화의 NFT까지) 17만 달러에 경매에 내놓았다면, 우리 역시 내놓는 물건에 약간의 대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주 약간이다.

    TIP 1 우리 현실은 <TV쇼 진품명품>이 아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서랍에서 발견된 건 할아버지가 쓰시던 곰방대뿐, 고려 청자는 없다.

    맨 처음 내가 팔려고 내놓은 건 1950~1960년대에 투옥 중이던 미국인들이 담뱃갑 포장지를 꼬아 만든 민속공예 핸드백이었다. 1990년대에 이베이에서 사 모은 것들이었다. 나는 은퇴한 우체국 직원 스탠 제닝스(Stan Jennings)에게 이것들을 팔 방법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제닝스는 1998년부터 이베이와 엣시(Etsy)에서 물건을 팔아온 경력이 있다. 일단, 핸드백을 일괄로 묶어서 팔지, 하나씩 따로 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일괄 판매로 내놓으면 특정 물건만 구매하고 싶어 하는 수집가는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고, 재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인터넷 판매업자만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좋은 가격을 받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이어서, 물건을 경매에 부쳐야 할지 아니면 고정가로 팔아야 할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유니크하고 희귀한 물건이나 수요가 많은 물건은 경매에 부쳐서 입찰 경쟁이 불붙기를 기대해도 좋지만, 이미 인터넷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고정가로 올려서 충동구매자들이 클릭 한 번으로 물건을 사가게 하는 게 좋다고 했다. 물건 설명에 특별히 첨부하면 좋은 말이 있는지 묻자, 그는 ‘유니크한’ ‘좋은 얘깃거리가 될 만한’ ‘비흡연자의 집에 있던 물건’ 등이 좋다고 조언해주었다.

    TIP 2 좋은 이야기가 판매를 이끌어낸다.

    판매할 물건 설명에 그것의 유래나 감동적인 일화를 함께 소개해보라. 예를 들어 “이 마른 개암나무 열매는 나폴레옹의 행운의 부적이었습니다. 그는 아우스터리츠 전투 중에도 이 열매를 주머니에 지니고 있었으며, 승리의 공을 이 열매에 돌렸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옵니다”처럼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없다면 그 열매는 그냥 흔해빠진 열매일 뿐이다.

    나는 그 핸드백을 ‘1960년대 수감자들이 담뱃갑 포장지로 만든 빈티지 트램프 아트 핸드백’이라는 제목으로 1억5,200만 명의 구매자를 보유한 이베이 ‘역사적 물건’ 섹션에 75달러에 올렸다. 나라면 그 정도 가격을 주고 구매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구매 제안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제목에 ‘수집용’이라는 말을 추가했고, 가격을 65달러로 내렸다. 여전히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공예품, 핸드메이드 주얼리, 면사포 같은 결혼 장식품, 빈티지 물건, 장식용 스티커 등이 주로 거래되는 사이트 엣시에 글을 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무반응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입을 때보다 소파 위에 던져둘 때 더 멋져 보이는 옷가지로 관심을 돌렸다. 이베이의 대안으로 구제 옷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플랫폼은 많다. 디팝(Depop)은 이른바 힙쟁이들이 즐겨 찾는 온라인 거래 플랫폼 앱이다. 사용자의 90%가 25세 미만이며, 올라오는 매물 역시 그 나이대를 잘 반영한다. 뼈대가 있는 고스풍 코르셋 뷔스티에(75달러), 판다 모양의 극세사 폰 케이스(25달러), 롤러블레이드(22달러 99센트) 같은 영한 아이템이 주를 이룬다. (디팝은 판매되는 매물 금액의 10%를 수수료로 받는다.)

    그래도 현실에서 직접 발로 뛰는 걸 선호하는 편인가? 여러분의 물건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위탁 판매점에 가보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매디슨가에 있는 브라운스톤 건물의 2층과 3층을 모두 쓰는 라 부티크 리세일(La Boutique Resale) 매장에 가방 몇 점을 가져갔다. 공동 대표 프랭크 아키노(Frank Aquino)가 햄버거 패티에서 대장균을 검사하는 식약청 직원처럼 내 물건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감정 결과 털모자에는 안쪽 그로그랭 띠에 작지만 치명적인 얼룩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리넨 소재의 베이지색 마놀로 블라닉 구두에는 ‘와우’ 할 만한 요소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내려졌으며, 클러치는 디종 머스터드 색감이 썩 매력적이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날 물건 4개를 맡긴 뒤 영수증을 받아왔다(스카프 2개는 각각 49달러와 42달러, 크리지아 트위드 수트는 150달러, 가오리 가죽으로 된 이브닝 백은 80달러로 책정됐다). 이 물건들이 90일 이내에 팔린다면 책정된 가격의 절반이 내 수중에 들어올 것이다.

    물론 수많은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해 집 근처 이웃에게 물건을 팔 수도 있다. 한국의 당근 마켓처럼 말이다. 나는 그중 두 군데에서 거래를 해보았다. 크레이그스리스트(Craigslist)와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Facebook Marketplace)다. 크레이그스리스트는 공유 경제의 각기 다른 두 가지 모델을 대변하며, 돈을 버는 수단이기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나누는 장 같던 1990년대 인터넷 사이트의 전형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주식을 상장하지도 않았으며, 주로 맞춤 광고를 통해 2020년 86억 달러의 수익을 낸 페이스북과 달리 초창기부터 소규모 수익만 거두고 있다. 크레이그스리스트에서 소파를 팔면 소파만 팔리지만, 페이스북에서 소파를 팔면 당신의 개인 정보도 함께 팔릴 수 있다.

    나는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와 크레이그스리스트에 13개 물품을 올렸고, 그중 7개를 팔았다. 이를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다. 날씨가 추우면 포근한 침대보가 붕어빵처럼 팔려나간다. 거래 속도가 빠르며, 수수료도 없고, 운송료도 들지 않는다. 경쟁을 뚫고 물건을 사가는 구매자가 나와 합의하에 서로 편한 장소에서 물건을 거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 아파트 로비에서 말이다. 퀸스에 사는 한 간호사는 내게서 그릇을 사간 후 그걸 자기 집 선반에 멋지게 장식한 사진을 보내주었고, 극세사 이불 세트를 사간 여자는 자기 여동생의 다이어트 비결까지 덧붙인 감사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린 시절 집 앞에서 레모네이드 가판대를 세워놓고 팔던 일의 어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시간당 더 많은 돈을 벌려면 차라리 베이비시터 일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내 조카가 결혼식에서 쓴 물건을 팔고 싶어서 원래 가격이 25달러인 정수기를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에 내놓았다. 조카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문의는 열 번 넘게 왔는데, 거래 장소에 나타나지 않거나 값을 지나치게 깎으려는 사람이 많았어요. 어떤 남자가 ‘7달러에 파실 생각 없나요?’ 이러더라고요. 그런데 그분과 거래 장소와 시간도 정해야 하고, 지불 방식도 협의해야 했어요. 너무 일이 복잡하더라고요. 고작 7달러 벌자고 이러나 싶고, 신경 쓸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결국 다 무료 나눔 했죠.”

    TIP 3 온라인으로 물건을 나누고 싶다면, 받기로 한 사람이 물건을 전부 가져가는 것으로 해라. 그러지 않으면 마끼다(Makita) 무선 드릴처럼 좋은 것만 쏙 골라가고, 낡은 파일, 연보라색 침대보, 아보카도 슬라이서는 다시 당신의 짐이 된다.

    사람과의 교류를 최소한으로 하고 익명으로 나누는 걸 선호한다면, 우리에겐 셀 수 없이 많은 자선단체가 있다. 굿윌(Goodwill)은 부자들로부터 물건을 기부받아 저소득층을 고용해 그것들을 수리한 뒤, 다시 부자들에게 팔거나 저소득층에게 나눠주던 보스턴의 한 공사가 1902년에 설립한 단체다. 오늘날 굿윌은 미국 전 지역에 3,000여 곳의 스토어를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의 굿윌스토어는 우리가 편한 친구에게 줄 법한 모든 물건을 다 받는다. ‘프리 스토어 프로젝트(The Free Store Project)’는 가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물건을 받으며, 그곳에 있는 물건을 영구적으로 대여하기도 한다. 아주 구체적인 물건을 취급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단체도 많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화장실 캐비닛에 들어 있는 오래되고 망가진 마스카라 솔은 노스캐롤라이나의 애팔래치아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으로 처음 시작된 비영리 기구 ‘완즈 포 와일드라이프(Wands for Wildlife)’로 보내보라. 야생동물 보호자들이 새 깃털이나 동물 털에서 날벌레 알, 흙, 벼룩, 진드기, 애벌레를 털어내는 데 유용할 것이다(wandsforwildlife.org). 털 코트는 어떨까? 요즘엔 아무도 진짜 털 코트를 원하지 않는다지만,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 버지니아 노퍽에 있는 ‘세이크리드 프렌즈(Sacred Friends)’는 낡은 털 코트를 잘라 아픈 동물을 따뜻하게 해줄 작은 망토나 숄로 만든다(1sthawksnest@gmail.com). PETA도 털이나 가죽 옷 기증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기증받은 털옷을 노숙자에게 나눠주거나(PETA 웹사이트는 “노숙자는 털옷을 입어도 용서되는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난민에게도 보냈다.

    3m 가까이 되는 플라스틱 기린 모형은 어떻게 해야 할까? 버버리 직원들은 매장 전시용으로 쓰임을 다한 기린과 고릴라, 큰부리새 모형을 뉴욕에서 가장 큰 재활용 창작 센터인 ‘머티리얼스 포 더 아츠(Materials for the Arts)’에 기부했다. 1978년에 설립된 이 센터의 목표는 지원이 필요한 공동체의 학교와 창작자에게 미술 도구와 재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1,000평에 달하는 센터 창고에 쓰지 않는 단추나 구슬, 자잘한 장식품을 전달해보는 건 어떨까. 플라스틱 크리스마스트리,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 나온 주황색 점프수트, 블룸버그사의 사무실 의자, 그리고 곧 그곳으로 보낼 나의 스토브 등 어떤 잡동사니도 받아줄 것이다.

    초판이라고 해서 반드시 책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 또한 아니다. 내 친구 파이론은 런던에서 발간된 <해리 포터> 책의 초판본은 “어이없을 정도로 비싸다”고 말한다(약 47만1,000달러에 팔렸다). 당시 아무도 이 책이 출판계의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 여기지 않아서 초판본을 많이 인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시리즈 후반부의 초판본은 우편요금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이와 같은 수요와 공급의 논리는 서명이 있는 판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헤밍웨이의 서명이 있는 책이라면? 당연히 가치 있다. 하지만 존 업다이크(John Updike)의 서명이 있는 책이라면? 글쎄다. 알고 보니 업다이크는 책 쓸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서명을 남겼다.

    “제게는 25달러 이상을 매길 수 있는 책인지 아닌지가 가치 있는 책을 판단하는 기준이 돼요.” 파이론이 말했다. “만약 매입상이 어떤 책에 1달러를 제시한다면 더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누군가 어떤 책에 150달러를 제시한다면 다른 의견을 더 들어보는 게 좋죠.”

    TIP 4 명심하라. 연식이 오래됐다고 해서 가치 있는 책은 아니다.

    이미 들어본 얘기겠지만, 젊은 사람들은 물질주의적인 베이비 부머 세대 부모들이 축적한 물건에 관심이 없다. 은식기, 크리스털 접시, 퐁뒤 세트 같은 것도 젊은 사람들은 원치 않는다. 어차피 공짜 물건인데 왜들 그렇게 따지는 걸까? Z세대 친구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 세대는 우리 손으로 직접 꾸미고 디자인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원해요. 내 공간이 부모님 집의 축소판이 되길 원치 않는 거죠.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기 힘으로 인생의 한 부분을 일궈냈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 거예요.”

    스물일곱 살의 한 젊은 청춘은 17평 남짓한 공간을 다른 이들과 함께 쓰는 데 익숙해졌다면서 “내 짐을 둘 수 있는 공간이 매우 한정적이에요”라고 말했다. “우리 세대는 내 집 마련이나 더 큰 공간에 살 거란 기대가 없기 때문에 잡동사니를 쌓아두기보다는 내게 꼭 필요하고 현재의 한정된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물건을 사죠.” 내 친구의 스물여덟 살 된 아들은 이에 관해 가장 철학적인 설명을 내놓았다. “어쩌면 우리 세대도 다른 세대만큼 많은 것을 사들이고 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디지털 기기로 소비를 많이 한다는 게 다른 점이에요. 이런 식의 소비는 우리가 미니멀리스트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어요. 실상은 물리적 잡동사니를 정신적 잡동사니로 대체한 것뿐인데 말이에요.”

    TIP 5 죽음의 장점 중 하나는 죽고 나서 뒷정리를 본인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고 세 군데를 꽉 채운 짐 더미를 처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상속자들이 알아서 하게 남겨둬라. 아, 유언장에 그중 값나가는 게 하나 있다는 말을 꼭 적도록. (VL)

    PATRICIA MARX
    일러스트
    ANNA HAIFI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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