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S/S 파리 패션 위크 DAY 8
트렌드의 트렌드가 바뀐 걸까요? 이제 트렌드는 각자 선택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된 듯합니다. 선형적으로 흐른다기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사라지는 느낌이 들죠. 대세의 근간을 이루는 개인 간의 공감대와 교집합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중이고요. 파리 패션 위크의 대미를 장식한 세 하우스와 디자이너는 이처럼 정신없이 변화하는 흐름에 휘둘리는 대신 그저 그들이 가장 잘하는 일, 옷 짓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듯했습니다. 컬렉션마다 하우스와 디자이너의 색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것만 같았죠. 매끄럽게 다듬어진 런웨이 대신 거칠고 혼란한 세상을 배경으로 했을 땐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고요. 이제 어떤 옷을 입어볼까요? 파리 패션 위크 8일 차, 오늘의 쇼를 소개합니다.
미우미우(@miumiu)
천장 레일에 매달려 끝도 없이 돌아가는 인쇄물. 쇼장은 오래된 신문 공장과 비슷했습니다. 좌석에는 ‘진실 없는 시대(The Truthless Times)’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단 신문이 놓여졌죠. 폴란드 아티스트 고쉬마 마쿠가(Goshka Macuga)의 구상으로 탄생한 풍경이었습니다. 신문에 새겨진 QR코드를 탭하면 영국 출신 작가 슈몬 바사르(Shumon Basar)가 엔드코어에 대해 다룬 에세이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로 희미해진 개성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는 점에서 이번 프라다 쇼와 일맥상통하기도 했습니다. 바사르는 엔드코어에 대해 “우리가 한때 영원히 사실일 거라 여겼던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느끼지만 결코 종말은 오지 않는 상태의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연옥에서 기약 없이 지옥을 기다리는 느낌이랄까요?
컬렉션은 이번에도 역시 미우미우만의 방식으로 옷장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입었던 원피스를 떠올리게 하는 산뜻한 화이트 드레스로 시작한 행렬은 엉성해서 사랑스러웠죠. 미우미우 2005 S/S 컬렉션에서 차용한 1970년대 스타일의 기하학적인 프린트와 사립학교 스타일, 스포티한 비키니와 빈티지 슬립, 웨스턴 벨트와 웨이트리스 드레스 등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요소가 한 룩에 만화경처럼 뒤엉켰습니다. 옷에 부여한 모든 의미와 배경을 거두고, 제멋대로 꺼내 입은 듯한 느낌이었죠. 힐러리 스웽크와 알렉사 청, (여자)아이들의 민니와 윌렘 데포 등 다양한 분야의 셀럽들이 런웨이를 누볐고요. 이런 어지러운 혼합은 어떤 면에서 ‘엔드코어’의 뉘앙스와도 맞닿아 있었습니다(미우치아 프라다는 컬렉션과의 직접적 연관성을 부정하긴 했지만요). 지금껏 믿었던 모든 것들이 불확실해진 시대, 거꾸로 생각하면 이는 곧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미우미우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혼란이었습니다.
샤넬(@chanelofficial)
샤넬이 그랑 팔레로 돌아왔습니다. 크리에이터 스튜디오는 ‘비상’이라는 주제로 이번 컬렉션을 꾸렸습니다. 4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보수 공사를 마친 그랑 팔레의 유리 지붕 아래에는 거대한 새장이 놓였죠. 새와 새장은 샤넬 하우스에 중요한 의미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생전 재봉사 중 한 명에게 새와 새장을 선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일화는 1991년 바네사 파라디가 출연한 코코 퍼퓸 캠페인의 모티브가 되어주었고요.
테마에 걸맞은 가볍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컬렉션 전반을 휘감았습니다. 부드러운 파스텔 컬러와 블랙 앤 화이트, 슬릿 디테일을 더한 스커트와 깃털로 쌓아 올린 칼라, 트위드와 날개처럼 흩날리는 케이프 등이 달콤한 여운을 남기며 우리 앞을 스쳐갔죠. 뜨개질 패턴은 그랑 팔레의 철제 구조를 닮았습니다. 비행 수트처럼 여성 조종사를 연상시키는 룩도 인상적이었고요. 버지니 비아르를 대신할 이에 대한 소문이 여전히 무성하지만 샤넬의 크리에이터 스튜디오는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냈습니다. 늘 그래 왔듯이요. 유리 지붕을 통해 들어온 햇살 덕분일까요? 트위드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유독 생생하게 반짝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루이 비통(@louisvuitton)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루이 비통에서의 10주년을 매듭지으며 시간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번 시즌의 목적지는 르네상스 시대였습니다. 오래된 성이 있는 프랑스 루아르 계곡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제스키에르에게는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시대겠죠.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의 혼합은 제스키에르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초반부터 이런 면모가 여실히 드러났죠. 퍼프 슬리브와 페플럼 디테일을 더한 재킷 아래에는 스포티한 바이커 쇼츠와 가방 손잡이를 스트랩으로 삼은 샌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시즌 그가 진짜 심혈을 기울인 건 ‘경계를 허무는 것’이었습니다. 한층 가볍고 유연한 형태로 말이죠. 그래서일까요? 모든 옷이 중력에서 벗어난 듯 가뿐한 실루엣을 자랑했습니다. 재킷은 블라우스보다 부담이 덜해 보였고, 스카프를 느슨하게 둘러 맨 듯한 스커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드레스 가운은 바람보다 가벼워 보였고요. 하이라이트는 피날레를 장식한 프린트 재킷! 현대 천체와 대기 현상을 르네상스 스타일로 표현한 이 프린트는 아티스트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의 시리즈 ‘Studies Into the Past’ 중 일부입니다. 컬렉션을 매듭짓기에 제격인 룩이었죠.
#2025 S/S PARIS FASHION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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