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가족’, 분명 스릴러 영화인데 웃음이 나오는 이유
*이 글에는 영화 <보통의 가족>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사실 보통 이상의 가족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한 집안에서 변호사와 의사가 났으니, 그것부터가 보통 이상이다. 형인 재완(설경구)은 거대 로펌의 변호사다. 그는 사이코패스 같은 범죄자여도 재벌이라서 수임료를 많이 준다고 하면 변호할 수 있다. 동생 재규(장동건)는 언제나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모범적인 의사다. 그들의 아내들도 남편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돈보다 의사로서의 명분과 명예가 중요한 재규는 해외 의료봉사를 나갔다가 만난 번역가 연경(김희애)과 결혼했다. 재완은 아내와 사별한 후, 사무실 근처에서 떡집을 운영하던 젊고 아름다운 여자 지수(수현)를 만나 재혼했다. 그들은 가끔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함께 한다. 재규 가족이 모시고 사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자식들의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대화의 주제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은 자녀들이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이번에도 저녁 식사를 하며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한다. 이때부터 그들의 굳건한 세계관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보통의 가족>의 원작은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2009)다. 형제의 가족이 자녀들의 범죄를 두고 벌이는 입장 차이를 그리는 설정은 같지만, 원작은 영화보다 더 넓은 주제의 대화를 그린다. 유색인종 입양아가 겪는 차별, 친자식과 입양아의 차이, 폭력성의 유전 등 하나의 사건 안에 얽힌 여러 사회적인 요소 등, 그것이 유럽 사회에서 첨예하게 논의되는 주제라면, <보통의 가족>은 한국의 가족이 겪을 법한 갈등에 주목한다. 쉽게 말해 한국인이라면 ‘긁힐 수밖에 없는’ 설정들이다. 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형제 사이에 발생한 부의 차이, 그로 인해 생겨난 미묘한 신경전, 또 그래서 종종 벌어지는 뒷담화. 변호사와 결혼한 형님은 집에서 필라테스를 할 수 있는 운동실을 갖고 있지만, 번역가인 동서는 변변한 방도 없이 베란다에 책상을 놓고 일한다. 게다가 이 형님은 동서보다 훨씬 더 어리다. 여기에 치매인 어머니를 장남이 아니라 차남의 집에서 모시면서 일어나는 감정 문제도 더해진다. 한국 관객이라면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어디선가 듣기라도 했을 갈등들이다.
무엇보다 <보통의 가족>은 ‘자식 앞에서 한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한국의 부모들을 긁는다. 가장 크게 약해지는 건, 지금까지 ‘공정’과 ‘정의’의 편에 서 있었던 차남 부부다. 재규는 아들의 입시를 위한 일에도 ‘아빠 찬스’를 허용하지 않는 인간이었지만, 결국 그도 별수 없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당장 아들을 데리고 경찰서로 끌고 가려 했던 그는 이후 범죄를 덮을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식욕이 돌아오는 표정을 보여준다. 엄마 연경은 국제 단체에서 봉사하면서 기아로 고통받는 빈국의 아이들에게 눈물을 흘리던 사람이지만, 그녀 또한 엄마로서 정체를 드러낸다. 아들의 범죄를 감출 것인가, 아들을 자수시킬 것인가를 놓고 그녀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우리가 살린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그래도 돼(이 사건을 덮어도 돼).” 또 그녀는 제대로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의견에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마음의 감옥이라는 게 있는 거예요.” <보통의 가족>을 보다가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 바로 이런 장면이다. 인간의 밑바닥을 목도하게 되는 장면이라고 할까? 그들의 뻔뻔함에 기가 차서 나오는 웃음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밑바닥을 이해할 수밖에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기도 하다.
<보통의 가족>은 보통 이상의 가족들이 결국 보통의 한국인으로 전락하는 풍경을 그린다. 이 영화가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같은 당대의 배우들을 필요로 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자녀의 범죄 앞에서 우아함을 지킬 수 없는 부모는 그만큼 현실적이지만, 사실은 초라하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정의의 편에 서 있던 배우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연기할 때,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흥미도 배가될 것이다. 그처럼 <보통의 가족>은 한국 관객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자기 안의 밑바닥까지 들춰보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그런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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