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나드는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 10년 만의 재회
음악과 미술,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만난 그는 설명을 저어하고 감각을 권했다.

우리나라 대표 미술관의 하나로 세운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2015년 처음으로 문을 열 때 료지 이케다(Ryoji Ikeda)가 융·복합 창제작 프로젝트로 데이터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이제 개관 10주년을 맞아 그의 전시가 다시 열리며 지난 시간을 확인하고,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되짚고자 한다. 온통 검은색 차림으로 ACC에 들어선 그가 이런 감회를 전해왔다. “2015년에는 여러 데이터를 흑백의 패턴과 정밀한 전자음으로 변환한 거대한 설치 작품 ‘test pattern [n°8]’을 선보였죠. 전자신호를 0과 1로 나타내는 이진법을 활용해 일상의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 데이터를 바코드 형식으로 구현한 작품이에요. 지난해에도 ACC의 ‘ACT 페스티벌’에 참여해 오디오 비주얼 콘서트를 열었기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의 세 번째 만남입니다. 이번 개인전에는 설치 작품 7점을 선보이는데, 그중 4점이 신작입니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예술계도 많이 변했지만, ACC 주변에 멋진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이 생기고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거리가 된 것 같아서 예술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체감했어요.”
료지 이케다는 작품이나 전시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 아티스트로 악명(?)이 높다. 그와 인터뷰하기 위해서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유수의 매체가 대기 중이며 사진 촬영은 당연히 금지다. 다행히도 <보그>는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는데, 이런 기조는 그의 독특한 좌우명에서 비롯되었다.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확실하다면, 작품보다 글로 메시지를 전달했을 겁니다. 나의 비주얼 오디오 아트를 보면 관람객이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 자신만의 주제를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작가로서 메시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면 관람객은 해석에 대한 자유를 침해당합니다. 나는 비주얼 오디오 아트뿐 아니라 뮤지션으로서 콘서트도 자주 하는데, 콘서트에서는 사실 그 누구도 질문을 안 하지요. 전시에서도 질문은 필요 없습니다.”
작가는 관람객이 ACC에서 콘서트처럼 지적인 해석을 하기보다 즐기길 바란다. 그가 자부심을 가질 만큼 전시는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하고 남녀노소 모두에게 열려 있다. 작품은 그 자체로 설명되는 것이지 작가의 말이 정답은 아니다. 관람객과 비평가가 보는 것이 바로 정답이다. 그래서 그는 작품에 대해서는 아카데믹한 이성적 해석은 지양한다. 철학과 과학 이론을 통한 해석은 의미가 없다. 자신이 만든 작품이지만, 작품은 모두 개별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기에, 관람객의 해석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을 꺼린다.
그의 전시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임산부, 노약자 주의’ 표시다. 심신이 허약한 사람이 현란한 그의 미디어 작품에 집중하다 보면 섬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료지 이케다는 이처럼 관람객의 감각을 극단적으로 자극해 인지적 한계에 몰아넣는다. 이는 과학과 예술 융합의 실험을 통해 데이터 사회의 감각을 확장하는 ‘디지털 숭고(Digital Sublime)’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가 이처럼 작업을 통해 우리의 감각을 극단적으로 몰아세우는 이유는 뭘까?
ACC 학예 연구사 이애경은 이런 강렬한 자극은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복잡성과 정보의 과부하에서 인간이 느끼는 ‘언캐니(Uncanny)’를 체험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전시한 ‘test pattern [n°8]’에서 료지 이케다가 데이터의 물리적 변환과 감각적 몰입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전시 작업은 데이터와 인간의 존재, 기술과 인식의 경계, 디지털 시대의 숭고와 존재론적 불안 같은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주제를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거대한 스크린 한가운데 검은 원이 보이고, 연속적으로 깜빡이는 밝은 빛이 그 주위를 감싸는 ‘point of no return’(2018)과 ‘critical mass’(2025)는 칠흑 같은 어둠을 강조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경험케 하죠.” 블랙홀 같은 검은 원은 우주 행성처럼 보인다. 백색과 흑색의 대비는 주파수를 발산하는 백색소음과 다른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개발된 사인파의 청각적 대조와 결합하며 관람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한다. 이 두 작업은 그의 다른 작업보다 더 추상적인데, 관람객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또 하나의 특별한 부분은 그는 자신을 뮤지션으로 여긴다는 것. 자신은 비주얼 아티스트가 아니라 음악가라고 정의한다. 그렇기에 단순한 미술 전시가 아니라 사운드와 비주얼을 하나의 심포니로 느끼길 바란다. “데이터의 본질적 아름다움은 인간 감각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전시는 작곡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 전시도 ACC라는 공간에서 받은 영감을 작곡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공간을 느끼고 파악하고 이를 전시에 반영했어요. 공간에 따라 같은 작품이라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전 전시 작품도 매일매일 새롭게 해석할 수 있고, 3월에 시작한 미국 애틀랜타 하이 뮤지엄 전시도 ACC와 비슷한 스케일인데, 두 현장의 아우라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작품은 개별적 존재입니다만 전시를 통해 하나의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작용합니다.”
그의 작품이 이토록 맹렬하게 경계를 유영하는 것은 지난 30년간의 발자취에서 유추할 수 있다. 료지는 1990년대 일본의 실험적인 전자음악 레이블을 통해 최소한의 음향을 사용한 사운드 아트 작업을 발표하면서 청각적 한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일본 실험 예술 그룹 덤 타입(Dumb Type)과 협업하며 다양한 작업을 했다. 2010년부터는 MIT 미디어 랩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인지 과부하 상태에서 경험하는 미적 체험을 작품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적용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모든 작품이 정신을 쏙 빼놓진 않는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이자 단연코 가장 많은 관람객이 감탄한 아름다운 작품은 20년의 제작 기간을 가진 ‘data-verse 1/2/3’다. 나사(NASA),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인간 게놈 프로젝트 등에서 수집한 우주 관측 자료, 유전자 정보 등으로 제작했다. 3개의 스크린과 고주파 사운드를 통해 미시적 세포에서부터 거시적 우주까지 동시에 체험하며 신비롭기까지 하다.
“대표작 ‘data-verse 1/2/3’를 완성하는 데 20년이 걸렸습니다. 내 작품의 과학적 데이터는 모두 진실에 기반하지만, 관람객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순수한 음악처럼 즐기길 바랍니다. 데이터는 크게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두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동적 데이터는 매일 매초 변하는 기상정보와 같은 것입니다. 정적 데이터는 이미 존재했지만 인간이 과학과 수학의 발견으로 알게 된 천체물리학이 있죠. 저는 주로 정적 데이터를 활용하는데, 자연과 인간의 존재를 포괄하는 철학적 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적 데이터와 동적 데이터를 조화롭게 사용했다. 예를 들어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규모가 크기에, 어떤 부분을 추출해 사용할지 공부하고 이론을 배워서 작품에 적용했다. 그렇기에 작품 제작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데이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꺼내는 과정도 작곡과 같다. 그에게 중요한 부분은 예술을 느끼는 것. 작품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보다 경험하고 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롭게 선보인 ‘슬리핑 뷰티(잠자는 숲속의 공주)’ 연작은 평면 작업입니다. 작품을 설명하고 싶지 않은데···(웃음) 작품 제목부터 다른 작품보다 시적이지요. 무한 지속하는 무리수(원주율)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무리수는 늘 존재해온 개념인데, 전시를 통해 아마 역사상 처음으로 방대한 양을 보여주는 것일 테죠. 이런 경험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눈을 뜬 것 같아서 제목을 그렇게 지어봤어요.” 기술과 예술의 경계가 사라진 요즘 시대의 작품을 보고 싶다면 확실히 료지 이케다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전시는 12월 28일까지 이어진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한 가지 의문이 더 깊어졌다. 기술과 데이터가 예술을 주도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VK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글
- 이소영(미술 전문 칼럼니스트)
- 사진
- COURTESY OF A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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