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일까, 재킷일까? 이걸 입으려고 봄을 기다렸어요
저에게 트렌치 코트는 늘 마음은 가지만 손은 가지 않는 아이템이었습니다. 허리를 잘록하게 조이면 지나치게 점잖아 보이고, 발목까지 떨어지는 오버사이즈는 제가 아니라 코트가 주인공인 기분이 들었죠. 어떻게든 시크한 척을 해봤지만, 솔직히 편하진 않았습니다. 멋을 입는다기보다 멋을 감당해야 하는 옷처럼 느껴졌죠.
그럼에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트렌치 코트가 생각납니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처럼 클래식한 로망 같은 거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또각또각 도시를 걸어나가는 장면, 거래처와 열정적으로 통화를 하는 장면 같은 게 떠오르죠. 평범한 출근길도 왠지 영화 오프닝처럼 만들어준달까요. 하지만 막상 사면 1년에 몇 번 못 입었습니다.

그러다 길이가 짧아진 트렌치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이 트렌치의 밑단을 과감히 잘라냈거든요. 종아리까지 내려오던 무게를 덜어내니, 코트가 아니라 재킷처럼 가벼워졌습니다. 박시한 어깨와 짧은 길이는 다리 비율을 또렷하게 살리고, 움직임도 훨씬 경쾌해졌죠. 무엇보다 코트에 먹힌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반가웠습니다. 흰 티셔츠와 청바지 위에 걸쳐도 과하지 않고, 미디스커트와 매치해도 답답하지 않습니다. 환절기 특유의 애매한 날씨에 딱 맞는 균형을 만들어주죠.

코트도, 재킷도 아닌 길이. 그 애매함 덕분에 오히려 선택이 쉬워졌습니다. 부담은 줄이고 트렌치 특유의 이미지는 그대로 누릴 수 있으니까요. 이번 봄에는 한두 번 입고 옷장에 넣어두지 말고, 데일리 아우터처럼 줄창 입어보세요. 로망으로만 두기엔 너무 잘 만들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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