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님 나들이와 별들의 노래, 빛으로 가득 찬 방혜자
예술가들은 저마다 이상향을 품고 삽니다. 그 이상향이란 다름 아닌 자신이 끝내 구현해내고자 한 세계지요. 한국 현대미술에서 초기 추상에 몰두한 귀한 여성 작가 방혜자에게 그것은 다름 아닌 빛이었습니다. 1937년에 태어나 2022년에 작고한 방혜자 작가의 작품을 오는 9월 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대거 만날 수 있는데요. 전시는 빛이라는 화두가 이 여성 작가의 작업과 삶을 어떻게 비추었는지, 그리고 예술가는 어떻게 그 빛을 묵묵히 따라 걸어갔는지를 보여줍니다. 빛을 표현하고자 한 열망과 빛의 의미를 찾는 여정, 방혜자는 이 둘을 자신의 삶 안에서 온전히 통합해냈습니다. 다소 시적인 전시 제목 <방혜자 –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라는, 빛을 그리는 데 일생을 바친 한 예술가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방혜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 동양인 최초로 참여한 작가로도 유명하죠. 이번 전시는 ‘빛의 화가’로 명성을 떨친 방혜자의 작업 변천사를 잔잔하게 보여줍니다. 방혜자는 지난 1961년에 새로운 미술을 탐구하고 내적으로 성장하고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납니다. 당시 그녀를 뒤흔든 앵포르멜 경향의 과감한 작업은 물론 그 사이사이에 한국의 자연과 색채에 대한 연구와 관심을 시사하는 작업까지, 동서양의 재료와 기법이 두루 어우러진 작품들을 이번에 만날 수 있지요. 방혜자의 몸은 프랑스에 있었지만, 작가의 성찰 대상은 자연의 음양, 계절과 오행, 동양철학으로 확장했습니다. ‘별들의 노래'(1987)나 ‘하늘과 땅과 손을 잡고'(1988) 등의 작품 앞에서는 우주적인 추상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더군요.


마음속 깊은 곳의 빛을 표현하고자 한 방혜자는 회화를 비롯해 벽화, 판화,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탐구했습니다. 또 한지를 재료로 삼기도, 프랑스 남부 루시용의 붉은 흙을 도입하기도, 부직포를 활용하기도 했죠. 특히 배채법을 활용한 작업들을 볼 때마다 놀라운데요. 얇은 부직포나 한지의 뒷면에 색을 칠해서, 그 색이 앞면으로 은은하게 배어나게 하는 방식이죠. 안으로부터 서서히 투명하게 차오르는 듯한 빛… 그래서일까요. 그녀의 회화는 빛의 물성을 드러내면서도 물질을 넘어서는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우주의 빛 같기도, 드넓은 세계를 떠다니는 빛의 입자 같기도, 그리고 어떤 초월적인 상태를 열망하는 우리의 마음 같기도 하죠. 실제 작가는 작업 전 명상과 기공으로 내면을 수양했다고 하는데요. 방혜자의 작업에서 ‘그리다’와 ‘보다’는 그저 작업을 위한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구도적, 수행적인 의미를 띱니다.


세 개의 화면으로 구성된 ‘물성과 빛'(2007)이라는 작업 앞에서는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어떻게 닥지, 천연 안료, 루시용 황토를 활용해서 이토록 반짝이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어디선가 혼란한 세상을 비추는 한 줌의 빛이 새어 나오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빛을 색으로 표현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클로드 모네와 조르주 쇠라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의 질감과 느낌을 그리기 위해 평생 고투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이들은 빛을 그린 게 아니라 색의 대비와 조화를 통해서 이것을 빛으로 인지하는 순간을 찾아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방혜자는 물리적인 빛이 아니라 내면의 빛을 구현합니다. 우주의 에너지와 생명의 빛으로 가득 찬 방혜자의 작업 앞에서 마주한 사색의 순간, 이를 경험한 저와 경험하지 못한 저는 아마도 다른 사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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