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가 말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후의 삶

최근 들어 일종의 ‘실존적 멀미’를 앓고 있습니다. 20대에 썼던 무언가가 여전히 유효할 뿐 아니라, 어째서인지 다시 ‘트렌드’가 되어버렸거든요. 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얘기예요. 그 책은 평범한 소설로 남지 않았습니다. 인용되고, 밈이 되고, 리부트되고, 재해석되며, 영화가 되고, 뮤지컬이 되었으며, 속편까지 나왔죠. 오래전에 쓴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 살아남았습니다. 그곳을 떠날 생각이 없는 지박령처럼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말이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썼을 때 저는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워크숍 과제용 에세이로 썼죠. 다들 알다시피, 20대 초반은 세상을 유난히 예리하게 관찰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물론 그렇게 관찰한 내용을 해석할 능력은 전혀 갖추지 못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저는 문화 현상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그 글을 쓴 게 아니었습니다. 거창한 계획도 없었고, 별다른 비전도 없었어요. ‘그래, 언젠가 이 제목은 유해한 직장 문화를 상징하는 표현이 될 거야.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인용되는 책이 될 거야’ 따위 예언적인 구상 또한 있었을 리 없죠. 누군가를 무너뜨리고 복수하려는 의도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권력 있는 여성의 비서로 일한 경험을 썼을 뿐이었어요. 당시 저를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기억을 있는 그대로 휘갈긴 거예요. 충분한 거리감이나 성숙함, 자기 보호 본능 따위 없이 말이죠.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 후 쏟아진 관심은 제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일부는 호의적이었지만, 상당수는 악의적인 비난이었어요. 그런 관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몇 년에 걸쳐 조금씩 배워나갔죠. 그 가운데 저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많은 여성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것을요. 북 콘서트나 사인회에서 저는 폭군 같은 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만으로도 또 다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쓸 수 있을 정도였죠. 알고 보니 ‘미란다’는 패션계에만 있는 존재가 아니더군요. 패션계의 미란다는 단지 옷을 더 잘 입을 뿐이었죠.

그 무렵 영화를 개봉했습니다. 작품이 영화화되는 경험을 해본 작가라면 공감할 겁니다. 제 이야기는 더 화려하고, 역동적이며, 아주 재미있는 뭔가로 바뀌었습니다. 영화는 제 캐릭터들에게 아름다운 얼굴과 목소리, 환상적인 옷, 무엇보다 스케일을 부여했죠. 그리고 어느 순간 저는 문득 이 이야기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단순한 해석을 넘어, 사람들은 이야기를 완전히 그들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소설 속 대사를 인용하고, 세부적인 사항을 바로잡으며, 상상 이상으로 열정적인 코스프레를 했죠. 그리고 굿즈까지! 처음에는 에코 백과 슬로건 티셔츠 정도였는데, 스튜디오 마케팅의 힘을 빌리자 말 그대로 온갖 물건으로 확장됐습니다. 족집게, 보드카, 심지어 30만 달러짜리 자동차로까지요. 이야기를 넘어 하나의 ‘프랜차이즈’가 된 거죠.
이 모든 건 정말 기분 좋으면서도 동시에 몹시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작품이, 제 손을 완전히 떠나버린 거예요. 꽤 잘나가는 전 애인이 우리 관계에 대해 동네방네 말하는 꼴을 지켜봐야만 하는 느낌이었죠.

종종 앤디 삭스에게서 여전히 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대답은 옛날에도 지금도 ‘네’입니다. 하지만 방식은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과거 사진 속 저를 알아보듯 그녀에게서 저를 찾게 됐죠. 얼굴은 익숙하지만 옷차림은 촌스러운데, 그 당시 내린 ‘흑역사’ 같은 선택이 떠올라 해명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달까요.
앤디는 아주 명확한 도덕적 선택지 속에 살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모습의 인간이 되었다가,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옵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요. 저는 그 자신감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꽤 나이를 먹은 지금은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사람은 단 한 번의 극적인 순간 때문에 변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조금씩, 심지어 꽤 합리적인 방식으로 삶의 모순에 적응해나가죠.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돌아보고 깨닫는 겁니다. ‘흠, 내가 중요하게 여긴 게 이런 거였나?’ 멀리 왔기에 돌이키기는 이미 늦었지만요.
지금 제가 이 책을 다시 쓴다면, 아마 줄거리가 많이 달라질 겁니다. 반드시 더 부드러워진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훨씬 더 다층적인 내용이 담기긴 하겠죠. 이제 저는 더 많은 것에 공감하니까요. 비서뿐만 아니라 상사도,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20대도, 이미 그 과정을 지나온 사람들도 말이죠. 그런 이해는 시간과 경험, 몇 번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서만 얻어집니다.
동시에, 그 책을 썼던 당시의 저는 지금의 제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로 여과되지 않은 솔직함이죠. 덜 조심스럽고, 덜 정치적이며, 덜 걱정하는 마음가짐. 젊고 분노에 차 있을 때만 나올 수 있는 대담함. 거기에는 분명한 힘이 있습니다.
20년이 넘는 동안, 사람들은 20대 초반의 저를 계속 만나왔습니다. 그 사이 저는 여덟 권의 소설을 썼고, 아홉 번째도 곧 나올 예정이며, 결혼도 했고, 제가 그 작품을 썼던 나이대에 가까워진 두 아이를 키우며, 조금 더 복잡하고 조금 덜 확신에 찬 사람이 됐습니다. 앤디는 이제 저라는 사람과는 꽤 멀리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죠.
그럼에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편을 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라우면서도 필연적인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캐릭터들은 여전히 할 말이 있고, 그들이 사는 세계 또한 어떤 형태로든 계속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권력과 정체성, 타협 등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여러 문화적 렌즈를 거친 덕에 현시대에 더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현재 우리는 경계 설정, 유해한 직장 환경, 야망의 대가에 대해 20년 전에 비해 훨씬 더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죠.
최근 인터뷰나 공개 석상에서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작은 사실이 있습니다. 아마도 제 선택이나 특권에 대한 비난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이제 말하려고 합니다. 저는 ‘트롤러’에서 살고 있어요. 장거리 항해용 모터보트 말이에요. 역사적으로 봐도 전혀 ‘보그 스타일’의 삶은 아니죠.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 저와 남편은 집을 팔고 아이들을 자퇴시킨 뒤 3년간 바다를 떠돌아다니며 살았습니다. 래시가드를 입은 채 낯선 지역을 항해하고, 홈스쿨링을 하고, 생선을 직접 잡아 요리하면서요. 얼마 전 외딴곳에 정박한 채 부엌 가위로 머리를 다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보그>에서 일하던 시절 생각한 미래와는 거리가 있는 삶 같은데.’
저는 지금 바하마의 외딴 지역 어딘가에 정박해 있습니다. 거의 90일 정도 됐군요. 배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죠. 아침에는 원고를 수정하고 이메일을 보내거나 에이전트 또는 제작자와 줌 회의를 합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관련 소식을 추적하기도 하고요. 아주 정상적이고 균형 잡힌 사람인 것처럼요. 하지만 오후가 되면 모든 걸 꺼버립니다. 선내 주방을 청소하거나 낚시를 하고, 가끔 아이의 숙제를 도와줘요.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20대 때와는 정말 많이 달라졌죠.
예전에는 값비싼 브랜드의 신발이나 가방에 집착했습니다. 지금은 통조림이나 냉동이 아닌 신선한 채소를 찾는 데 집착하죠. 객관적으로 보면 정말 이상한 변화입니다. 하지만 웨스트엔드 뮤지컬 속 나이젤의 대사처럼 “직업도 있고, 꿈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칼 라거펠트 장갑처럼 딱 맞는 삶을 살고 있어요.” 초현실적이면서도 즐거운 변화죠.
이제는 압니다. 어떤 이야기가 세상에서 살아남고 회자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요. 저는 절대 관여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시작점이 되는 것뿐이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옷이나 배경, 캐릭터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때문에 계속 돌아보고 곱씹게 되는 것이죠. 여전히 우리가 답을 찾고 있는 바로 그 질문이요. 그럼, 대답해보세요. 당신이 원하던 삶의 대가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소망하던 것을 이룬 당신은, 여전히 그것을 원했던 바로 그 사람으로 남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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