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유효한 오페라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작곡해 종전 무렵인 1945년에 완성한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는 오늘을 얘기한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관람하던 중 온라인에서 코너에 몰리다가 매장된 사람들, 그로 인한 비극, 진실 여부와 상관없는 ‘카더라 통신’이 떠올랐다.
<피터 그라임스>는 1830년경 영국 동부 서퍽의 작은 어촌에서 피터 그라임스가 재판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부인 그의 일을 돕던 어린아이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책망하다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후 그라임스는 진위와 상관없이 비난받고, 그가 데려온 고아가 또다시 죽으면서 마을 사람들의 혐오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 작품은 서퍽 출신의 시인 조지 크래브(George Crabbe)가 쓴 시 ‘자치구(The Borough)’에서 설정을 가져와 소설가이자 극작가 몬태규 슬레이터(Montagu Slater)가 오페라 대본으로 각색했다. 원작에서는 피터 그라임스가 조수를 살해하는 악인이지만, 오페라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의심과 혐오로 죽음에 내몰리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물론 피터 그라임스가 선인은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살 집을 짓고 마을 사람들에게 무시받지 않기 위해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이를 위해 어린 소년들에게 매섭게 노동을 강요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성정이 아이들 죽음의 증거일까? 그 사람의 평소 행실이나 일방적으로 설정한 이미지를 기준으로 우리는 상대를 단정 짓는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연유의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선입견을 갖고 쉽사리 판단한다. 상대가 명망 있고 잘나갈수록 우리의 시기와 질투, 끌어내림의 욕망까지 가세해 멋대로 결론을 내린다. 요즘엔 온라인이라는 무기까지 있어 그 과정은 더 쉬워졌다. 최근 인기 드라마 <참교육>에서 학부모가 사적 복수심으로 교사를 아동 학대로 신고한 뒤 “아님 말고”라고 말했듯, 우린 진실이 무엇이든 섣불리 행동한 뒤 ‘아님 말고’ 같은 무관심으로 잊어버린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본래의 생활로 돌아간다. 스스로 폭풍의 바다로 들어가는 피터 그라임스는 이미 잊은 채 말이다.

<피터 그라임스>의 서사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의 음악 덕분이다. 1930년대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던 그가 당시 사장되어가던 오페라 시장을 되살린 흥행작이자 첫 번째 대규모 오페라 작품이 <피터 그라임스>다. 극에서 압권은 합창이다. 마을 사람들의 일방적인 혐오를 표현하는 극적인 합창을 듣고 있으면 객석에 앉은 내가 소름이 끼친다. 다수의 횡포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브리튼의 작곡이 여실히 담아냈다. 이번 한국 초연에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오페라스튜디오합창단과 위너오페라합창단이 참여했다. 알렉산더 조엘(Alexander Joel) 지휘의 오케스트라 간주곡 또한 극의 강렬함을 고조시킨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피터 그라임스>가 연상되는 최근 사건을 얘기하는 것을 실제로 들었다. 어떤 이야기 플롯은 인간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반복될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내가 피터가 될까 봐 두려움을 갖기 전에 마을 사람 중 하나는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포토
-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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