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하는 여자

해외 직접 구매, 일명 ‘직구 쇼핑’이 대한민국 남녀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알뜰한 소비자의 필수 덕목이자 국내 미입고 제품을 획득하는 직구 쇼핑의 매력, 그리고 직구 마니아들의 노하우.



사건 하나. 요즘 멋 좀 부린다 싶은 여자들의 필수품은 ‘메르시’ 팔찌. 금색 로고 펜던트와 세 개의 작은 방울이 리버티 원단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디자인으로, 판매처는 파리 마레의 멀티숍 ‘메르시’다. 가격은 단돈 7유로에 불과하지만, 국내 온라인 쇼핑몰의 판매가는 2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판다는 이 팔찌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얼마 전 한 블로거가 휴가 차 파리로 떠난 친 구를 통해 건네받은 메르시 팔찌를 개당 1만8,000원이란 비교적 ‘착한’ 가격에 넘기겠다는 게시글을 올리자, 이내 65개의 덧글이 달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판매가 종료됐다. 사건 둘. 7월 말 <조선일보> 주말 섹션에 게재된 한 건의 기사. ‘해외 브랜드 바가지와의 전쟁’이 라는 주제의 일종의 고발성 기사로 한국에만 들어오면 초고가 명품으로 둔갑하는 브랜드의 횡포에 신물이 난 쇼퍼들이 해외 공식 사이트를 통해 해당 제품을 ‘직접’ 구매하는 직구가 소비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는 내용. 복잡한 유통구조에서 발생하는 ‘뻥튀기 가격’의 심각성을 느낀 몇몇 브랜드는 ‘가격 인하’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눈치챘겠지만, 이 모두는 ‘직구’ 쇼핑에 관한 사건 사고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해외 인터넷 쇼핑 규모는 6억4,000만 달러. 불과 1년 만에 50% 이상 늘어난 수치로, 지난 3월 선보인 온라인 해외 쇼핑 코너 ‘원클릭 직구’는 오픈 이래 매달 20~30%씩 꾸준히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직구 쇼핑의 백미는 국내 미입고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여기에 가격까지 저렴하니 한번 빠지면 답도 없다는 ‘개미 지옥’이란 별명이 붙을 만하다.

크리니크 홍보팀 김현정 과장은 에스티 로더 컴퍼니에서 알아주는 직구 쇼핑 마니아. 그녀의 전문 직구 품목은 향수다. “희귀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뿌듯함.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거예요. 향수의 경우 5만원 이하 제품은 주로 너도나도 뿌리는 ‘국민 향수’일 수 밖에 없는데, 직구를 통하면 국내에선 이름조차 생소한 개성만점의 향수를 건질 수 있죠. 세일하면 한화로 3만원에 ‘득템’할 수 있답니다.” 미국 코티사의 바닐라 필드(Vanilla Field), 제시카 맥클린탁(Jessica McClintock)을 비롯,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나온 조 말론 런던의 ‘화이트 라이락&러바브’도 이베이(ebay.com)에서 구입했다. <보그 코리아> 패션팀 막내 기자도 직구 쇼핑에 관한 지식으로 따지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열혈 직구 마니아. 셀프네일 마니아답게 그녀의 주 관심 품목은 손끝 예술에 관한 모든 것! “10 꼬르소 꼬모 서울에서 23만원에 구입한 메탈 팁이 현지에선 7만원대에 판매된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그 후론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으면 인터넷 서칭부터 시작하죠.” 그녀의 위시 리스트는? 홍콩 출장에서 접한 뒤 사랑에 빠졌다는 영국 네일 브랜드 시아떼(Ciate)의 벨벳 매니큐어란다.

그렇다면 야무진 ‘주부 9단’들의 직구 쇼핑 품목은? CJ E&M의 푸드 채널 ‘올리브’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박연호는 아이허브(iherb.com) 쇼핑에 푹 빠져 있다. “미국 뷰티&헬스 전문 사이트지만 한국어 지원과 전 세계 직배송 서비스를 제공해 배송대행지없이도 OK죠!” 평소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미입고 식재료 탐험을 즐긴다는 그녀의 ‘장바구니’ 속엔 늘 닥터 베스트(Dr. Best)의 영양제, 샹달프(St. Dalfour)의 블루베리 잼, 퓨리티 팜(Purity Farms)의 고농축 버터, Y.S. 에코 비 팜(Y.S. Eco Bee Farms)의 아카시아 꿀, 하니앤손스(Harney&Sons)의 홍차 티백이 들어 있다. “리빙 소품은 다이퍼스(dipers.com)에서 해결해요. 맥클라렌(Maclaren)이나 퀴니(Quinney) 같은 명품 유모차를 비롯해 유아 식기류와 장난감을 백화점 대비 30% 이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죠. 심플한 디자인으로 사랑받는 주방식기 전문 브랜드 옥소(OXO)의 경우 최대 50% 이상 차이 나기도 해요.” 공연기획사 창작컴퍼니다 홍보실장 김태양의 직구 추천 사이트는 루랄라(ruelala.com)와 글릿(glit.com). “특히 매주 일요일이면 한 주간의 재고를 모아 할인에 할인을 더한 팝업창이 열리죠.” 루랄라를 끊을 수 없는 이유라고 말하는 그녀가 ‘선데이 나이트 스타일아톤(Sunday Night Styleathon)’에서 ‘득템’한 제품은? “스팽스와 여미터미 등 군살 정리에 탁월한 보정 속옷을 시중가의 3분의 1이라는 파격 할인가에 구입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착한’ 가격이라 선물용으로 여러 개 쟁여놨답니다.”

북유럽풍 인테리어가 유행하면서 메이드 인 스칸디나비아, 핀란드, 스웨덴 가구와 식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세트 스타일리스트 ‘7도어스’ 민송이 실장이 즐겨 찾는 직구 사이트 역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센터(scandinaviandesigncenter.com)’다. “요즘 수입 인테리어 매장에서 들여온 북유럽 브랜드 제품들은 죄다 이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350달러 이상 구매시 무료 배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매일 출석하듯 접속해 야금야금 봐두었다가 한꺼번에 구입하죠.” 비트라, 프리츠 한센, 까르텔 등 고귀한 몸값의 디자인 체어에 대한 욕망도 영국 사이트 ‘네스트(nest.co.uk)’에서만큼은 내지를 수 있단다. “비트라(Vitra), 유텐실로(UtenSilo) 제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요. 세일기간과 할인쿠폰이 맞물리면 최대 40% 이상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그날 말이죠.”

이제껏 컴퓨터와 친하지 않다는 이유로, 혹은 인터넷 쇼핑은 어딘지 찜찜하다는 편견으로 남들 다 하는 직구 쇼핑을 애써 외면하진 않았는가. 총알배송만 어려울 뿐 파격적인 할인율과 선택의 다양성은 무료한 일상에 화끈한 에너지가 돼줄 것이다. 다만, 직구 쇼핑에 있어 교환이나 반품만큼 치욕스러운 일도 없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국제 배송료를 이중으로 내고 싶지 않다면, 나라별 사이즈 조건표는 사전에 충분히 숙지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