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레보비츠와 나눈 통화

<보그>와 <베니티 페어>의 사진가 애니 레보비츠의 사진은 대중문화의 변천사와 현대사를 예리하게 포착해낸 시대의 눈이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지난 12월 7일부터 애니 레보비츠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눈이 쌓이던 밤, 레보비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다.

12월의 어느 날, 베니스의 호텔에서 수잔 손탁이 촬영한 애니 레보비츠(1994).

애니 레보비츠는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천일야화를 써 내려간다. 콧대 높은 할리우드 스타나 자존심 강한 천재 예술가, 최고의 권력자라도 레보비츠의 카메라 앞에 서면 자신의 운명을 잠시 그녀에게 맡겨야 한다. 믿어도 좋다. 레보비츠의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실제 삶보다 흥미진진하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게다가 레보비츠의 사진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회화를 전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리처드 아베돈이 유명 인사들의 얼굴을 무자비할 만큼 적나라하게 촬영함으로써 늙고 병들어 죽는 보잘것없는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면, 레보비츠는 인간의 삶 속에 숨겨진 100만 가지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웃기고, 슬프고, 때로는 황당하며, 섹시하거나, 한 편의 동화처럼 사랑스러울 때도 있다. 공군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차를 타고 공군기지를 떠돌던 어린 시절에 경험한 상상력과 무용수였던 어머니가 물려준 감수성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극적인 사진들은 드라마 같은 사연들을 남겼다. 벌거벗은 존 레논이 자궁 속 아기처럼 몸을 웅크린 채 오노 요코를 끌어안은 모습을 담은 <롤링스톤스>의 커버 사진은 유명하다. 존 레논은 그로부터 4시간 뒤에 열성 팬의 총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임신한 데미 무어의 누드 사진을 커버로 실은 1991년 8월호 <베니티페어>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여성의 몸에 대한 숱한 담론을 만들어냈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레보비츠의 꿈 같은 사진 속 주인공이 되었다가 현실로 돌아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무용담을 신나게 늘어놓는다. “애니 레보비츠는 당신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사진을 찍을 거예요. 그리고는 끝내 자신이 원하던 사진을 얻어내겠죠. 왜냐하면 그녀는 당신보다 인내심이 많으니까요.” 헬리콥터를 타고 눈보라 속을 날아가 아이다호의 산꼭대기에서 스키를 탄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얼어 죽을 만큼 추웠던 1997년 <베니티 페어> 커버 사진을 놓고 아직까지 농담을 한다. 우피 골드버그는 우유를 가득 채운 욕조 속에 퐁당 빠진 채 깔깔거렸다. “글쎄, 나한테 우유통에 들어가라는 거예요. 우아해 보이지만 먼지가 떠다녀서 괴로웠다고요.” 여든이 훌쩍 넘은 전설의 보컬리스트 토니 베넷이 전라 상태로 포즈를 취한 레이디 가가를 스케치했던 2012년 <베니티 페어> 화보 역시 레보비츠의 즉석 아이디어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듀엣곡을 녹음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섰던 토니는 아무튼 스케치를 했고, 그 누드화는 경매에까지 부쳐졌다. “토니 베넷인데, 대체 내가 왜 벗었을까요?” 가가는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레보비츠의 사진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럼에도 그녀만을 찾는다.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는 “니콜 키드먼에게 화보 촬영을 요청하면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오게 마련이지만, 사진가가 애니 레보비츠라고 하면 당장 호주에서 달려올걸요?”라고 말했다. 지체 높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예외는 아니다. 제프 쿤스는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이상한 나라의 오즈’ 화보에서 키이라 나이틀리를 안고 하늘을 나는 날개 달린 원숭이로 분했다. 어느새 레보비츠와의 사진 작업은 유명 인사라면 한 번쯤 거쳐야 할 필수 코스가 되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지난 12월 7일부터 애니 레보비츠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처음이다. 반전운동과 로큰롤 등 히피들의 시대를 상징하는 <롤링스톤스>의 사진가로 출발해 <베니티 페어>와 <보그>의 간판 사진가가 된 그녀의 사진은 대중문화의 변천사는 물론, 닉슨 대통령의 사임과 911 테러 사건 등 현대사의 잊을 수 없는 순간과 사람들 이야기를 예리하게 포착해낸 시대의 눈이다. 뉴욕의 지성 수잔 손탁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사라예보와 르완다의 전쟁터를 누빈 전사의 눈이기도 하다. 2004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수잔 손탁과의 사랑은 레보비츠의 프레임을 더욱 확장시켰다. 전시 오프닝을 며칠 앞두고 레보비츠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서울에서의 만남이 틀어진 후, 인터뷰는 전화로 진행됐다. 180cm에 가까운 껑충한 키, 한결같은 검은 옷, 일정한 길이를 유지하고 있는 헝클어진 갈색 머리, 안경을 쓴 예순다섯 살 레보비츠의 얼굴을 떠올렸다. 화려한 패션계에서 반세기를 살았지만 그녀는 늘 수수한 모습이다. 뉴욕 시간으로 오전 9시, 서울은 밤 11시. 미국 동부엔 폭설주의보가 내렸고, 서울엔 처음으로 눈이 쌓였던, 새하얀 낮과 밤이었다. 뉴욕 사무실로 전화를 걸자, 정적을 깨고 레보비츠의 우렁찬 목소리가 씩씩하게 태평양을 건너왔다.

뉴욕에서 촬영한 패티 스미스(1996),

반가워요! 며칠 전부터 시작된 당신의 서울 전시는 벌써부터 열기가 뜨거워요. 소식 들었나요?

네. 전시는 아주 잘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시 시작에 맞춰 서울에 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네요. 2014년엔 꼭 서울에 갈 기회가 생기길 고대하고 있어요.

그 유명한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사진을 이번 전시에서는 볼 수 없어 섭섭했어요. 90년 이후의 작업으로만 전시를 한정한 까닭은?

예전 작업을 돌아보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데, 이번 전시는 ‘Part II’에 해당돼요. 첫 번째(1970~1990)가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이라면, 두 번째(1990~2005)는 사진가로서의 제 삶을 다루고 있죠. 머지않아 ‘Part III’도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앞날은 알 수 없지만, 그건 2005년부터 2020년까지의 작업이 됐으면 좋겠어요.

“모든 사진은 내 삶의 일부”라고 말하곤 했어요. 이번에 전시된 사진들을 통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순간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1990년에서 2005년 사이, 제 삶엔 아주 큰 변화들이 일어났어요. <베니티 페어> <보그>와 작업하는 동안 제 아이들이 태어났고, 가장 절친한 벗 수잔 손탁이 세상을 떠났고, 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는 같은 시기에 일어난 두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적인 제 삶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문화죠. 지난 15년의 시간을 담은 사진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신기하게도 개별적인 그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를 서포트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어요.

전시장에서는 그 두 가지 이야기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전시되고 있었어요.

전시장에 걸린 작은 흑백사진은 개인적 작품이고, 커다란 컬러사진들은 매거진과의 작업이에요. 종종 사람들이 그 방대한 사진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작품을 골라보라고 하는데, 그건 너무 힘들어요. 왜냐하면 제 사진의 힘은 각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진의 역사 속에 있기 때문이죠.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커다란 덩어리인 셈이에요. 그래도 꼭 한 가지를 고르라면, 제 어머니의 사진을 선택하겠어요!

그런 질문은 계획된 바 없었지만, 듣고 보니 왜 하필 어머니의 사진인지 궁금하군요.

그 사진에서는 카메라가 의식되지 않거든요. 편안하게 나를 보는 어머니에게선 사랑이 느껴져요. 그래서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마치 어머니와 같이 있는 기분이 들죠. 마치 카메라는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만 같고요. 상업사진에서는 그런 고차원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이런 사진이 나오기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에겐 너무나 의미 있고 중요한 작품이에요.

<보그>에서부터 사라예보 내전까지, 당신은 동시대의 가장 화려한 세계와 가장 처참한 세계를 카메라에 담아왔어요. 사진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그런 엄청난 양극단을 동시에 오가며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좋은 질문이군요. 전쟁터에 가게 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사진을 찍을 때, 평소와는 감각이 달라져요. 뭐랄까, 매우 예민해진다고 할까요? 제 심장과 마음과 눈과 모든 감각이 아주 민감해지죠. 특히 연예계의 화려함이나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 같은 것들이 아주 피상적으로 다가와요. 물론 전 대중문화를 사랑하고,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모두 존경합니다만, 전쟁터에서 돌아와 매거진 작업을 할 땐 몹시 이상한 기분이 들죠. 그렇지만 전 그런 점이 흥미롭고, 그와 같은 감정이 제 삶뿐 아니라 사진에도 힘을 실어준다고 생각해요. 상업사진임에도 우리 인생과 세상을 보는 다양한 눈을 갖게 하죠.

컴벌랜드 섬에서 진행된 세계적인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우아한 도약(1990)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같은 최고 권력자부터 가장 아름다운 할리우드 스타들과 천재 예술가들이 기꺼이 당신 카메라 앞에 섰죠. 그들 중에서 당신을 가장 매료시킨 사람은 누구였나요?

물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굉장한 명사죠. 상상해봐요. 버킹엄 궁에서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여왕 사진을 찍어달라고 제안하는 거예요. 그건 대단한 경험이었어요. 미국 대통령도 촬영한 적이 있죠. 하지만 그 질문에 답하긴 어려울 것 같네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삶 속의 여러 등장인물 중에서 한 명을 고르는 건 불가능해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아주 사적인 사진 이야기는 어때요? 당신의 휴대폰 속엔 어떤 사진이 담겨 있죠?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사실 전 휴대폰 카메라는 사용하지 않아요. 항상 작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휴대폰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 한 방식이란 건 인정해요. 요즘은 사진으로 의사소통까지 하잖아요? 이건 일종의 새로운 언어예요. 그것도 아주 진보적인!

늘 가지고 다닌다는 그 작은 카메라로는 주로 무엇을 촬영하나요?

전 언제나 어디를 가든 항상 그 카메라를 가지고 다녀요. 가족사진 같은 사적인 순간들을 담는데, 어떨 때는 들고만 있을 뿐, 아무것도 안 찍을 때도 많아요.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사진 촬영보단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좀더 즐기는 편이죠.

쉰한 살에 첫딸 사라를 출산했고, 대리모를 통해 두 명의 쌍둥이를 얻었어요. 엄마가 애니 레보비츠라서 아이들은 참 좋겠어요. 자신들의 성장 과정을 멋진 사진으로 기록해줄 테니 말이죠.

하하. 아이들은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들에겐 다른 흥미로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사진 따위는 안중에도 없죠. 큰딸이 열두 살, 밑에 두 딸들은 이제 여덟 살인데, 심지어 걔들은 내가 자주 자기들 사진을 찍는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죠. “엄마, 우린 지금 휴가 중이라고요. 제발 사진 찍는 것은 이제 그만…” 하하.

아까 한국에 오고 싶다고 했는데, 만약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카메라에 꼭 담고 싶은 인물이 있나요?

그전에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먼저 둘러보고 싶어요.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고 다양한 이슈가 있다고 들었는데, 여행을 통해 좀더 알고 싶어요. 아직까지 한국에서의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없지만, 생각해 본 적은 있어요. 한국의 대통령을 촬영하게 된다면 무척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아요.

박근혜 대통령 말인가요? 그녀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에요.

물론 알고 있죠. 아주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현재로서는 제 희망 사항이죠. 그런 기회를 실제로 만들어준다면 저로선 무척 기쁘고 영광스러울 거예요. <보그 코리아>가 같이 작업을 추진해보는 건 어때요?

멕시코 여행 중에 찍은 수잔 손탁(1989).

노력해보죠. 몇 년 전, 미국 <보그>에서 전지현을 촬영했을 땐 어땠어요? 늘 그랬듯이 촬영을 앞두고 그녀에 대해 꽤 많은 자료 조사를 했다고 들었어요.

전지현이라면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의 여배우를 말하는 건가요? 물론 기억나죠! 그 영화의 감독이 웨인 왕이었을 거예요, 아마. 한국에서도아주 유명한 배우라고 알고 있는데, 그녀는 정말 아름답고 특별했어요. 촬영도 즐거웠고요.

만약 사진가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전 건축과 역사에 아주 관심이 많아요. 한국을 방문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기도 하고요. 한국의 뛰어난 역사적 건축물들을 보고 싶어요. 가끔은 내가 건축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롤링스톤스의 미국 투어 공식 사진가로 공연장을 따라다니던 70년대엔 로큰롤이나 펑크 음악을 자주 들었다면, 레이디 가가나 마일리 사이러스 사진을 찍는 요즘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좀 부끄러운 얘기일 수도 있지만, 포크 음악이에요. 밥 딜런과 U2의 보노를 사랑하고, 조니 캐시의 딸 로잔느 캐시의 음악을 즐겨 들어요. 롤링스톤스를 비롯해 여러 록그룹과 같이 작업하긴 했지만,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포크 뮤직이 제일 좋아요. 물론 롤링스톤스를 매우 존경하고, 그들이 위대한 록 밴드라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렇지만 전 지금도 포크 음악을 제일 사랑해요.

자, 이제 오늘 하루 일정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이 인터뷰 이후엔 수많은 마감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죠. <베니티 페어>와 함께 여러 명의 할리우드 배우들을 촬영한 커버 촬영이 있고, <보그>와 <베니티 페어>의 표지를 찍었는데, 아시다시피 촬영 전후로도 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잖아요? 촬영 전 미팅, 촬영 후의 수정과 편집 작업 등등. 오늘은 주로 다음 촬영에 대한 사전 미팅들이 잡혀 있어요. 휴, 쉬는 날이 없어요. 어느 땐 제가 세 명쯤 되면 좋겠다니까요. 복제 인간을 만들어 애니 레보비츠 123번이 일을 분담하는 거예요.

하하. 그것 괜찮네요. 하지만 곧 일이 세 배로 늘어날걸요? 셋 다 완벽주의자일 테니까요.

맞아요. 매일 시간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행복해요. 그리고 그 일들을 해낼 수 있으니 즐겁고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는 점 역시 영광스럽죠.

멋진 시간이었어요. 곧 한국에서 만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역시 <보그 코리아>와 특별한 작업을 함께할 기회가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럼,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