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정원에 찾아온 장미의 계절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함께 탄생한 전설의 주인공 장미.
늘 최상의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패션 정원에 장미의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매년 봄 몬테카를로에서는 그레이스 왕비 재단에서 주최하는 자선 행사 ‘발 데 라 로즈(Bal De La Rose)’가 열린다. 세계 곳곳의 사교계 인사들이 참여한 올해 행사의 절정은? 분홍색 벨벳 드레스를 입은 릴리 알렌의 특별 공연!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에도 진지하게 열창하는 그녀의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수십 송이의 실크 장미 꽃다발로 채운 후드가 달린 이 드레스는 칼 라거펠트가 그녀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었다.

물론 라거펠트의 눈에만 장미가 포착된 건 아니다. 자선 행사보다 몇 주 전에 열린 2015 F/W 파리 패션 위크에서 알렉산더 맥퀸의 사라 버튼이 ‘The Jam’의 ‘English Rose’를 배경음악으로 영국식 장미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 그로부터 6개월 전에는 레이 카와쿠보가 ‘장미와 피’를 주제로 한 탐미적인 꼼데가르쏭 컬렉션을 발표했었다. 그런가 하면 뭘 하든 1,000만 명의 팔로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셀러브리티 모델 카라 델레빈은 샤넬 가을 쇼가 끝난 후 장미 꽃잎을 가득 채운 욕조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패션계의 장미 사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12년판 미국 <보그>는 영국 장미 화원에서 영감을 얻은 꾸뛰르 드레스를 판매하는 런던 매장을 소개했다. 1987년 봄 파리 꾸뛰르 컬렉션에서는 크리스찬 디올, 크리스찬 라크로와, 장 파투 등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장미 모티브 드레스를 선보였다. 그 가운데 이브 생 로랑의 모델은 장미무늬 이브닝 드레스에 화사한 장미 다발을 안고 무대에 올랐다. 샤넬의 동백꽃, 생 로랑의 양귀비, 메리 퀀트의 데이지처럼 패션 하우스마다 상징적인 꽃을 가꾸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이 꼭 한 번씩 건드린 꽃은 장미다.

바야흐로 장미를 패션으로 즐기기에 좋은 재료가 잔뜩 준비된 시즌. 꼼데가르쏭의 난해한 스타일을 시도하긴 힘들겠지만, 마이클 코어스의 우아한 장미 패턴 드레스는 파티 걸들을 충분히 유혹하고 남는다. 또 장미무늬와 아플리케를 몽땅 동원한 시몬 로샤의 셔츠 드레스와 피터 솜의 팝아트적인 장미무늬 수영복은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얇은 실크 양말 위에 펌프스를 신은 듯 보이는 돌체앤가바나의 장미 자수 앵클부츠는 어떤가. 모던함의 상징인 셀린조차 빨간 장미 패턴의 플레어 드레스를 선보였으니 이번 시즌 장미는 그야말로 핫한 꽃이다.

디자이너들의 장미 사랑은 다가올 가을 컬렉션에도 이어진다. 매 시즌 장미의 신품종 개발에 열을 올리는 듯한 돌체앤가바나는 모델들에게 장미 생화가 한가득 담긴 토트백을 쥐게 했다. 또 안토니오 마라스, 오스카 드 라 렌타, 블루마린, 마크 제이콥스,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도 올가을엔 장미의 화사함에 취해보길 권한다. 저마다 레드팜, 핑크 스커트, 캔들 라이트, 큐피트 인 더 가든 등 그 이름도 예쁜 장미 데이터베이스(무려 6,500가지)에서 온갖 품종을 꺼냈으니까. 여기에 생생한 디지털 프린트, 팝아트 작품처럼 변형한 패턴, 자수와 비즈 장식, 오간자 아플리케 등 장미를 재해석한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이렇듯 장미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선사한다. 그러니 눈 깜짝할 사이 지나는 계절의 여왕 5월, 들장미 패턴의 보헤미안 드레 스를 입고 장미 축제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장미가 여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유난히 사진 속에 장미를 자주 등장시키는 팀 워커도 이렇게 말했으니까. “장미는 완벽함 그 자체입니다. 결코 질리지 않죠. <미녀와 야수> 속 야수가 벨에게 장미를 건네는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장미는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