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분만의 모든 것

건강한 아기는 우렁차게 운다? 아니다. 겁나고 힘들어서 운다.
엄마와 아기 모두에게 사랑과 기쁨, 감동과 환희가 가득한 출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 알아야 한다.
출산을 앞둔 〈보그〉 뷰티 디렉터가 본인이 직접 체험할 자연 출산을 미리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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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가정 출산 장면이 화제다. 고등학생 서봄(고아성)이 예비 시댁에 들렀다 갑자기 출산을 하게 되는 장면인데, 이후 가정 출산이 무엇인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가정 출산은 자연 출산의 한 종류로 말 그대로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다.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것은 ‘자연 출산’은 ‘자연분만’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 제왕절개를 하지 않으면 ‘자연분만’이라고 말하지만, ‘자연 출산’은 의료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진통제, 무통주사, 유도분만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엄마와 아기가 주체가 돼 ‘스스로’ 진행하는 출산법이다. 스스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의 위대한 능력과 아기들이 지닌 스스로 태어날 수 있는 능력을 믿고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아기를 낳는 것! 몇십 년 전만 해도 아기들은 이렇게 태어났는데, 병원 출산이 일반화된 지금은 무척 생소한 개념이 됐다.

처음 가정 출산에 대해 들었을 때 나 또한 ‘집에서 아이를 낳는다고?’ 그건 의료 시설이 부재했던 구한말쯤의 얘기 아닌가’ 싶었다. 아기를 낳으려면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사실 병원 분만 외에 출산을 위한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조차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런데 자연 출산은 알면 알수록 아주 매력적인 출산법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 영국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 또한 히프노버닝(자기 최면을 이용한 자연 출산법)으로 조지 왕자를 낳으면서 자연 출산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구시대의 산물이라 여겼던 자연 출산이 지금은 아기와 엄마에게 가장 행복하고 안전한 출산법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난 당장 김옥진 조산사의 ‘자연주의 출산’이란 강의에 참석했다. 그녀는 30년간 1만여 명의 아기를 받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산사 중 한 명이다. 내용은 놀라웠다. 동영상 속에서 자연 출산의 모습(‘울지 않는 아이’라는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꼭 찾아보시길!)은 내가 알고 있던 출산 현장과는 너무도 달랐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는 분만 장소가 수술실이 아닌 일상 공간이라는 것(조산원이나 병원 내 자연출산센터도 분만실이 방처럼 꾸며져 있다). 실내는 어두웠고(아기는 열 달 동안 어두운 곳에서 지냈기 때문에 수술실의 강한 조명은 지나친 자극이 된다), 주변은 조용했으며(자궁 속은 의외로 시끄럽다. 엄마의 심장과 내장 기관 소리,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 등이 끊이지 않지만 아기는 그 소리를 양수, 즉물 속에서 듣기 때문에 공기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소리, 특히 수술 도구들이 부딪히는 금속 소리, 엄마의 악다구니, ‘힘주세요!’란 고함 소리 등은 아기에겐 충격적일 수 있다), 출산 전까지 산모는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병원 분만 시엔 임산부 대기실에서 심박동계를 배에 붙이고 포도당을 맞으며 다른 산모들과 함께 누워 있어야 한다. 이는 오히려 진통 시간을 늘린다), 원하는 자세로 아기를 낳았다(다리가 들린 불편한 자세가 아닌 중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편한 자세). 아빠가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산모가 신음 소리(악다구니나 비명이 아닌)와 호흡을 이어가는 가운데 비죽 아기 머리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놀랍게도 조산사는 “이제 힘주지 말고 이완하세요”라고 하자 산모가 편안하게 기운을 뺏고, 아기는 어깨를 돌리면서 스르륵 자기 힘으로 세상 밖으로 빠져 나왔다.

브라보! 회음 절개를 하고 의사가 아기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배 위에 올라타 누르는 일은 필요 없었다. 탯줄을 그대로 매단 채(아기는 뱃속에서 탯줄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폐로 숨을 들이마시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탯줄을 너무 빨리 자르면 혈액과 산소, 영양분의 공급이 갑자기 차단된다) 엄마의 가슴 위로 옮겨졌다. 아기를 맞이하는 엄마와 아빠는 무척 행복하고 감격스러워 보였다. 더 놀라운 것은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가 울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눈을 뜨고 엄마를 바라보고 생긋 웃었다. 출산이란 경험이 이렇게 멋진 것이었다니! 부모들은 아기에게 편지를 읽어주기도 하고, 뱃속에 있을 때 자주 들려줬던 노래를 다시 불러주기도 하고, 어루만지고, 젖을 물리고, 목욕을 시키며 출산 후 한두 시간을 보냈다. TV 드라마 속에서 봐오던 고통, 긴박함, 소란스러움, 기진맥진함 대신 아기와의 만남은 사랑과 환희, 감동이 가득한 축제의 현장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덕분에 걱정과 불안함으로 가득했던 임신 기간은 덩달아 기뻐졌다. 이제는 그렇게 걱정스럽던 출산일이 아기를 만날 수 있는 날로 손꼽아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출산은 아기가 생애 첫 세상과 대면하는 현장입니다. 그 첫 느낌이 따뜻한 환영과 사랑인지, 차갑고 무서운 것인지는 그 아이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합니다.” 3차 병원(종합병원) 내 최초로 자연출산센터 ‘이지버스’를 오픈한 강북삼성병원 산부인과 이교원 교수가 설명했다. 기존의 병원 분만은 의료진 위주다. 의료진에게 맞춰진 분만대, 조명, 수술 도구들이 갖춰진 수술실, 그리고 그곳의 위생을 지키기 위해 산모는 관장과 제모를 하고 물과 음식도 금지당한다. 산모는 긴장감과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수술실에서 불편한 자세로 고정된 채 의료진의 지시에 따라 아기를 낳아야 한다. 심지어 가끔은 레지던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산모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진을 하고 수업을 한다. 이건 분명 반갑고 기쁘고 소중하게 다뤄지고 있는 느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연 출산은 보급되지 않는가. 무엇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히프노버딩의 창시자 메리 몽간 여사는 ‘출산은 고통스러운 것’이란 생각은 사실과는 다르며, 이는 하나의 집단 최면이라고 지적했다. 이건 사회적 책임이 크다.

TV 속 출산 현장의 모습은 늘 고통이었고, 의료진 또한 산모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은 진통제 외에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진통을 아기와 나를 위해 필요한 단계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연 출산을 하는 산모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심하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강길전 교수는 <황홀한 출산> 추천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통증의 가장 보편적인 원인은 근육조직에 필요한 산소 결핍입니다. 진통의 경우 자궁이 수축할 때마다 자궁의 혈류가 차단되고 이로 인해 산소 공급이 줄어들면서 생기는 것이죠. 그런데 산모가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선입견 때문에 몸을 긴장시키면 혈관은 더욱 수축되고 진통은 심해집니다. 반대로 명상, 이완법, 호흡법 등을 충분히 연습했다 활용하면 긴장이 풀리고 뇌에서는 엔도르핀이라는 자연 마취제가 분비돼 훨씬 진통을 덜 겪게 되죠. 지압을 받을 때 통증과 함께 시원한 쾌감을 느끼는 것은 아픈 부위가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죠. 순수한 기쁨 속에서 아기를 낳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통주사로 전혀 아프지 않게 출산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구미가 당기는 일 아닌가. “무통주사를 맞으면 정말 고통 없이 아기를 낳을 수 있느냐”란 질문에 이교원 교수는 웃었다. “네. 거의 안 아파요. 약간 불편한 정도? 대신 진통도 느려집니다. 그래서 촉진제를 거의 세트로 맞게 되죠. 그래서 출산 후 많이 아플 확률이 높아지죠. 어딘가에 부딪혀서 통증을 느끼면 우리 몸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무통주사를 맞으면 아기가 골반 내 근육과 인대를 늘리고 벌리면서 내려올 때(특히 촉진제를 맞으면 아기는 더 급하고 격하게 내려올 수밖에 없게 된다) 몸이 방어 작용을 하지 않죠. 때문에 무통이 끝난 산후에 아프다, 힘들다고 하죠. 그래서 자연 출산을 하면 회복이 빠르다고 말하는 겁니다. 진통을 하면서 몸이 자연스럽게 방어 작용을 하고 호르몬도 충분히 분비됐기 때문에, 출산하자마자 걸어 다니고 다음날 바로 퇴원할 수 있죠.” 이는 아기에게도 유익하다. “진통과 출산을 할 때 산모의 몸은 호르몬을 생성합니다. 마라톤을 하거나 산행을 할 때 힘듦이 정점을 찍고 넘어설 때 느끼는 쾌감을 ‘크라이머스 하이’ ‘러너스 하이’라고 부르죠. 이때 엔도르핀이 마구 분비되는데 산모들도 마지막 진통을 딱 넘길 때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마더스 하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그 쾌감이 무척 황홀하다고 하더군요. 또 진통과 휴식기 사이에 옥시토신이라는 행복 호르몬도 분비되죠. 이 모든 호르몬은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달됩니다. 이렇게 흠뻑 ‘호르몬 샤워’를 하고 태어난 아이는 정말 다릅니다.”

이교원 교수가 보여주는 사진은 놀라웠다. “아기가 눈을 뜨고 엄마를 바라보며 웃죠. 저도 이제까지 몰랐어요. 사실 아기가 눈을 뜨는 것에 관심도 없었죠. 정상인지 확인하고 “딸이에요” “아들이에요” 얘기해주고 아기는 바로 신생아실로 보냈으니까요. 그렇지만 출생 후 1시간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 사이 엄마와 아기와의 본딩, 즉 애착 형성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때 서로 눈을 바라보며 각인을 해야 합니다. 이런 아기들은 부모와의 유대 관계도 좋고 잘 웃고 성격도 좋죠. ‘자연 분만’을 하면 아기가 엄마의 산도를 통과하면서 미생물과 접촉,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건 의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그런데 ‘자연 출산’을 하면 ‘정신 면역’도 생긴다는 거예요. 1900년대 초 미국에서는 출산 시 산모를 전신 마취를 시켰어요. 산모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취지였죠. 산모는 가스마취를 시키고 아기의 머리를 겸자로 집어 뽑아냈기 때문에 당시 태어난 아기들의 머리에는 붉은 멍 자국이 선명했죠. 그런데 이렇게 태어난 아기들이 청소년기에 자살하는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태어날 때 생긴 트라우마죠. 세상과의 첫 만남이 폭력적이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연 출산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출산 과정만큼이나 열 달간의 태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요즘은 자연 출산도 하나의 스펙처럼 취급되더군요. 임신 기간 내내 무관심하다가 막판에 자연 출산 하겠다고 찾아옵니다. 운동도 안 하고, 아기와 공감도 없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20kg씩 몸무게가 늘어서는 자연 출산을 하겠다. 답답하죠. 이는 산모만의 책임만이 아닙니다. 주변에서 ‘집안일 하지 마라’ ‘잘 먹어라’ ‘움직이지 마라’ 잘해준다는 게 이런 식이죠. 자연 출산의 대모 미셀 허당은 ‘여자들은 애기를 잘 품고 있어야 할 용기로 전락해버렸다’라고 비꼬았습니다. 모두 부자연스러운 임신과 출산으로 가게 하는 지름길이죠.” 김옥진 조산사가 말했다. 이교원 교수도 “자연 출산에서 열 달간의 태교는 95%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산전 교육은 필수다. 자연 출산을 할 수 있는 건강 상태인지 철저하게 산전 검사를 하고, 태교, 식습관, 운동, 호흡법 등에 대해 배우고 실천한다. 무엇보다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태담을 하며 연결성과 사랑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정 출산이라면 응급 시 어떤 병원의 어떤 의사에게 바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지 등을 조산사와 상의하고 미리 준비한다.

임신을 하면 두려운 것 투성이다. ‘축하 드려요’란 짧은 인사말 뒤로는 긴긴 경고의 문구들이 이어진다. 엄마들의 임신, 출산 스토리는 남자들의 군대 경험담 뺨치게 고통과 힘겨움 일색이다. “임신해서 너무 좋겠다” “얼마나 예쁜 아기일까” “임신 기간을 행복하게 보내라” 등 산모가 자부심을 느끼고 기분 좋게 하는 말보다 “이제 고생문이 열렸다” “어떡하냐. 진짜 아픈데” “태어나고 나면 더 고생이다”란 말을 몇 배는 더 많이 듣는다. 그건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위험하고 저것도 위험하다” “머리가 크다” “산모 골반이 좁다” “기형아일 수 있으니 검사를 해야 한다” 이걸 넘어서야 한다. 산모가 자신과 아기를 믿고 기쁘게 출산을 기대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해하지 말자. 꼭 자연 출산을 해야 좋은 어머니라는 것은 아니다. 모든 어머니들은 위대하다. 열 달을 사랑으로 아기를 품고 기쁨으로 낳았다는 그 자체로 축하받고 칭찬받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다만 병원 분만만이 출산의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산모에게 강요되는 현실은 달라져야 한다. 산모는 자신이 원하는 출산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병원에 자신이 원하는 출산 환경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반가운 소식은 ‘캥거루 케어를 하고 싶다’ 분‘ 만 중 음악을 틀어달라’ 원‘ 하기 전까지는 심박동계를 달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 등 자신의 출산 환경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산모들이 늘고 있고, 많은 병원들이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병원 부설 자연출산센터와 자연 출산 병원들도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북삼성병원, 순천향병원, 메디플라워, 김옥진 조산원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런 경우 추가 비용은 감수해야 한다. 조산원 분만은 병원 분만과 금액이 비슷하지만, 내가 원하는 조산사를 대동해 종합병원에서 자연 출산을 하거나 고급 자연 출산센터일 경우 가격은 높아진다. 그러나 덕분에 안락한 공간과 원할 때 음식, 음료가 제공되는 환경, 아기가 나올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주고, 출산 후에도 아기와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뿐이다.

유럽과 서구 선진국에서는 자연 출산율이 30%에 이른다. 네덜란드는 75%가 자연 출산을 하는데, 그중 40%는 가정 출산이다. 자연 출산이 유난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수중분만을 최초로 시도했던 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박문일 학장의 조언을 기억하자. “나는 아기를 낳을 때 심지어는 임신 기간 내내 출산 그 자체보다는 진통에 대한 공포에 더 크게 시달리는 임신부들을 자주 만나곤 한다. 그들은 출산을 무시무시한 일로 인식하기 때문에 너무도 쉽게 현대 의학에 의존하려 든다. 그 결과 온갖 산과적 처치들이 무분별하게 동원됨으로써 엄마와 아기는 협력할 기회를 잃을 뿐만 아니라 잠재적 부작용과 후유증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모든 여성에게는 ‘스스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있고, 모든 아이에게는 스‘ 스로’ 탄생할 능력이 있다. 아무리 탁월한 의료 기술이라도 인간에게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자연 능력을 빼앗아버린다면 그것은 진정 인간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다.” 탄생은 축복의 순간이어야 한다. 모든 어머니와 아기들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