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스타워즈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지드래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런저런 얘기가 쏟아지고 있지만, 사실 유명 연예인의 미술관 나들이는 그리 새로운 일도 아니다. 궁금한 건 스타를 매개로 한 예술과 대중의 LTE급 소통이 끝난 그다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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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드래곤’이라는 이름의 파워는 메르스보다 강력했다. 지난 6월 8일, 지드래곤과 국내외 아티스트 14팀이 참여한 전시 <피스 마이너스 원: 무대를 넘어서>의 기자 간담회가 열린 서울시립미술관은 취재진으로 북적거렸다. 기자들은 앞다퉈 손을 들어 질문했고, 간담회가 끝난 후에도 한참을 서성거리며 노트북에 뭔가를 두들겼다. 10년 넘게 전시 기자 간담회를 다녔지만 그런 풍경은 처음이었다. 미술 전시 간담회 현장이란 대체로 한산하고 하품 날 만큼 조용하다. 곧 이번 전시와 관련된 기사가 실시간으로 쏟아졌다.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공 미술관이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소속 가수 홍보에 동참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물론 서울시립미술관과 YG엔터테인먼트 양측 모두 어느 정도 논란은 예측했을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전시를 밀어붙인 건 실보단 득이 더 많으리란 각자의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팝 스타의 미술관 나들이는 그리 새로운 일도 아니다. 얼마 전까지 MoMA PS1 갤러리에선 비요크의 전시가 열렸고, 글램 록의 선구자 데이비드 보위의 2013년 빅토리아&알버트 뮤지엄 전시는 개관 이래 최단 기간 매진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아카이브 전시가 아닌 미술 전시 사례도 있다. 지난해 파리의 페로탱 갤러리에서 열린 퍼렐 윌리엄스의 전시회 <Girl>은 퍼렐 윌리엄스와 페로탱 측의 전문 큐레이터가 공동 큐레이팅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기획이나 구성 면에서 이번 지드래곤 전시와 꽤 비슷한데, 모든 여성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퍼렐의 앨범에서 제목과 주제를 따왔고(<피스 마이너스 원>은 지드래곤의 앨범 로고다), 퍼렐과 그의 아내 헬렌의 얼굴을 새긴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을 비롯, 유명 아티스트 30여 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제이 지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미술계 스타다. ‘Picasso Baby’에서 제이 지는 팝 스타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 미셸 바스키아와 동급에 놓았다. 그는 스스로를 “새로운 장 미셸(I’m the new Jean Michel)”이라고 표현했다. 뉴욕의 페이스 갤러리 안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을 땐 내로라하는 전 세계 미술가들과 큐레이터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한가운데 서서 랩을 했다. 쌍둥이 부가티를 타고 아트 바젤을 누비는 자신의 호화로운 일상이며 루브르 박물관 부럽지 않은 대저택과 그 집 안 구석구석을 채운 온갖 예술 작품에 대해 실컷 떠들어댔다. 그 자리엔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 비치도 있었다. 2012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 전에서 전시장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관람객과 일대일로 눈빛을 교환하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여기 예술가가있다’는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제이 지의 뮤직비디오도 사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미술에 좀 관심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나 이름 있는 미술가였던 마리나 아브라모 비치는 막강한 문화 권력을 지닌 이 월드 스타 덕분에 더욱 유명해졌다.

<피스 마이너스 원> 전시가 막 시작된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을 한 바퀴 둘러봤다.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건축사무소 SoA의 설치 작업이 보인다. 공사장 ‘비계’를 연상시키는 이 구조물은 중앙 계단 전체를 터널처럼 휘감는다. 전시장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먼저 지드래곤의 소장품을 모아놓은 ‘(Non) Fiction Museum’이다. 무대의상과 뮤직비디오에 사용된 소품뿐 아니라 그가 수집해온 아트 퍼니처와 미술품이 섞여 있다. 이 모두가 그럴듯하게 어울리도록 전체 공간을 디자인한 건 요즘 뜨는 2인조 디자인 그룹 ‘패브리커’다. 버려진 천으로 버려진 가구를 새롭게 디자인해온 이들은 석촌호수의 초대형 오리 ‘러버덕’을 20여 개의 흔들의자로 부활시키기도 했다. 두 번째 공간은 지드래곤을 작품의 모티브 삼아 권오상, 손동현, 진기종, 마이클 스코긴스 등 국내외 작가들이 새로만든 작품으로 꾸며진다. 세 번째는 해외 작가들의 영상과 비주얼 아트작업으로 지드래곤의 스타일과 어울릴 법한 작품을 선별해 소개하는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지드래곤과 인터랙티브 디지털 미디어 그룹 사일로 랩이 함께 작업한 뮤직 박스가 있는데, 여러 개의 거울에 환영처럼 지드래곤의 모습이 비쳤다 사라지고 그의 음성이 메아리친다. 사일로랩은 나이키, 젠틀몬스터와의 이색 콜라보레이션 작업으로도 유명하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깔끔하게 마감된 이벤트 전시다. 순수 미술 작가들이 다수 참여하긴 했지만 현대미술의 흐름이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보통의 미술관 기획전과는 성격이 다르다. 애초에 기획 의도가 지드래곤을 매개로 한 미술과 대중의 소통이다. 이러한 의도 자체가 문제될 건없다. 여기에 대한 얘기는 뒤에서 다시 하기로 하자. 일단은 ‘그래서 가볼만 한지 아닌지’가 더 궁금할 테니까. 평소 미술관 출입 자체에 부담을 느껴온 이들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열혈 팬들은 말할 것도 없다. 1만3,000원(학생 1만1,000원)의 입장료 외에 신분증과 함께 현금 3,000원을 더 낸다면 1시간 동안 지드래곤이 직접 녹음한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는 데다, 약간의 노력을 더하면 지드래곤의 사인이 있는 스페셜 티켓도 얻을 수 있다. 입장료가 비싸다는 얘기도 있는데,작품의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갤러리 전시가 거의 무료인 것과 달리 티켓 수익으로 전시 운영비를 충당해야 하는 미술관의 입장료는 대체로이 정도 수준이다.

뭔가 대단한 걸 바랐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기존 미술관 전시보다 나은 부분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굿즈 숍이다. 대중과의 소통을 바란다면서 우리나라 미술관은 주차 문제나 음식, 휴식 공간, 기프트 숍 같은 아주 기본적인 부분에 무심한 경향이 있다. 그간 예술적 감성이라곤 도통 찾아볼 수 없던 미술관 기프트숍이 처음으로 뭔가 신경을 썼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다.

확실히 세상은 달라졌다. 반세기 전, 앤디 워홀이 마이클 잭슨의 초상화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미술계의 스타가 되었다면, 요즘은 그냥 유명인 자체가 걸어 다니는 예술 작품이고 아티스트다. 게다가 이들은 미술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을 만큼 부자다. 물론 상업 가수가 엄청나게 유명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영역 너머의 전문 분야에서까지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게 경우에 따라 좀 불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요즘 같은 미디어 시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는 당연한 결과다. 절대왕정 시대의 봉건주의 사회에선 군주와 귀족이 그랬다. 이 같은 흐름에 불만을 표하자면 얘기는 한도 끝도 없어진다. 어쨌든 정치, 사회, 예술 전 분야가 연예인과 친해지지 못해 안달이다. 그건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좀더 정확히는이들의 유명세를 이용하고 싶어 이런저런 묘안을 꾸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촬영에 까다롭게 굴던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연예인 화보나방송 촬영을 위한 장소 대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SNS에 스타와의 인증 사진을 올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홍보에 도움만 된다면 무엇이든 할 기세다.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유명하기만 하다면!

그런 노골적인 스타 마케팅의 대표적인 예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크 로스코 전시였다. 이 전시의 부제는 심지어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다. 전시장에 비치된 팸플릿 속 작가의 얼굴 옆엔 애플이라는 글로벌 기업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의 얼굴이 나란히 실렸다. 전시장을 방문한 스타들의 이름과 사진을 첨부한 보도 자료가 뿌려지기도 했다. 전시장 내에서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월간 윤종신 4월호 ‘The Color’는 마크 로스코 작품에 대한 3분 58초짜리 감상문이다. 곡 작업에 참여한 빈지노는 그 그림들 앞에 서서 랩을 한다. “요즘엔 오히려 심플한게 먹힌다니까. 그래서 내가 요새 팔린다니까. I’m the simplest, I’m the hottest.”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이 자본주의 공장의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던 로스코라면 아마 저세상에서 ‘무덤 킥’을 날렸을것이다. 마크 로스코 입장에선 이런 굴욕이 없다. 20세기 미술계 거장의 전시가 유명 인사들의 이름값에 끼여 팔린 셈이니까. 어쨌든 장사는 됐다. 이번 마크 로스코 전시를 주관한 ㈜코바나컨텐츠는 필립 할스만의 <점핑 위드 러브>전 때도 피겨 여왕 김연아를 비롯, 유명인들을 전시에 끌어들여 재미를 본 바 있다. 이 문화 예술 컨텐츠 전문 업체의 부사장은 요즘 <님과 함께> 시즌 2에 출연 중인 아나운서 김범수다. 당시는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등이 점프하는 순간을 담은 상업사진 전시였던만큼 꽤 괜찮은 홍보 전략이었다. 하지만 순수 미술 전시라면, 그것도 주인공이 마크 로스코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번엔 좀 앞뒤가 안 맞았다.

<피스 마이너스 원>전은 YG 측이 먼저 서울시립미술관 측에 제안하면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고 한다. 1년 전부터 YG는 이를 위해 미술계 전문 인력들을 끌어들였고, YG와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들이 각각 절반씩 작가들을 선정해 전시를 꾸렸다. 물론 전 과정엔 주인공 지드래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서울 전시가 끝나고 나면 해외 순회 전시도 이어질 예정이다. 공식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YG 측은 작품 구입을 비롯해 상당한 예산을 투입했다고 알려졌는데, 이 같은 장기 계획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생명인 대중 스타 입장에선 확실히투자할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시립’이라는 이유로 그 나름의 부담을 떠안았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 모두 이번 전시가 잘되길 바란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아마 웬만큼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양측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선별된 작품에서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인파가 몰릴 게 분명한 이번 전시에 그간 대중적인 흥행을 기대하기 힘들던 젊고 실험적인 작가들을 끼워 넣어 조금이라도 더 친근하게 그들을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기왕이면 이 관객들이 다음에 또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사실 이게 첫 번째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그 의도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먹힐지는 다소 의문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기자 간담회에서 “서울 시민 중 미술 향유층은 약 15% 정도다. 나머지는 미술관에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 이분들을 미술관으로 이끌기 위해 대중문화 장르와 크로스오버해 미술계 지평을 넓힌다는 의미”라고 이번 전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말을 되짚어보면 나머지 85% 시민은 일종의 관광객이라는 얘기가 된다. 물론 이 한 번의 기회로 이들 중 10분 1이라도 붙들 수 있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어떻게든 뜨내기손님들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는 관광지 식당들이 ‘누구누구가 다녀간 집’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자랑스레 내거는 이유도 다그런 거니까. 일단 문을 열고 들어와야 맛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알다시피 관광지 식당을 다시 찾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간판이 요란할수록 대부분 장삿속만 챙기는 그저 그런 집이기도 하거니와 제법 색다른 맛을 느꼈더라도 여행을 즐기는 이가 아니라면 다시 찾기 힘든 탓이다. 그래서 예술이라는 이 테마 여행 자체를 좀더 즐길 수 있는 환경을만드는 게 중요하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미술관 내 식당과 기프트 숍, 그밖의 즐길 거리 등 예술과는 아무 관련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좀더 신경 써줄 수는 없을까? 좋은 전시를 기획하고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게 가능하도록 젊은 작가와 큐레이터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보장되어야 한다. 돈이 오가는 미술시장이나 스타가 왕림하는 행사 외엔 좀처럼 미술에 관심 없는 언론 매체도 문제가 있다. 그러면서 이럴 때만 공공 미술관의 책임 운운하며 벌떼처럼 달려들어 웅얼대는 건 사실 좀 새삼스럽고 민망하다. 화려한 스타를 매개로 한 대중과 예술의 LTE급 소통도 좋지만, 속도보다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 좀더 먼 미래를 볼 필요가 있다. 저 멀리서 빛나는 스타에만 목을 매기엔 각자 남은 할 일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