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 모델이다! 동그란 듯 갸름한 얼굴형에 튀어나온 광대와 통통한 볼, 붓으로 그은 듯한 눈매와 꽃잎 같은 입술. 진화된 젊은 한국 여성들의 얼굴을 정의하는 다섯 명의 코리안 모델.

이제 모델을 꿈꾸는 한국 소녀들 중에는 거울 앞에서 양 볼 가득 빵빵하게 바람을 불어넣거나, 눈꼬리 끝을 있는 힘껏 잡아당겨 길고 가는 눈을 만든 채 요리조리 자신의 얼굴을 뜯어보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최소한 내가 모델에 적합한 신체 조건을 갖춘 10대 소녀(물론 그렇게 될 리는 없지만)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왜 여느 소녀들처럼 아침마다 눈두덩에 쌍꺼풀 테이프를 붙이려고 애쓰거나 코가 오뚝해지길 기도하며 코끝에 빨래집게를 집고 잠자리에 들지 않느냐고? 답은 자명하다. 연예인이나 아이돌이 아닌 패션모델을 원한다면 순정 만화 속 주인공보다는 개화기 흑백사진 속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여인의 얼굴 쪽이 훨씬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와 패션 기자, 사진가 등이 추앙해 마지않던 패션모델들(대중보다 패션 전문가들의 눈에 아름다웠던!)을 찬찬히 떠올려보자. 닥종이 인형 얼굴의 장윤주, 결코 서구적인 마스크는 아닌 한혜진과 김원경, 길게 찢어진 눈매의 최소라, 통통한 볼살이 매력적인 진정선, 그리고 장윤주를 쏙 빼닮은 신성 배윤영까지. 그들의 얼굴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동그란 듯 갸름한 얼굴형에 붓으로 그은 듯 가로로 찢어진 눈매, 톡 튀어나온 광대뼈, 웃을 때 더 통통해지는 볼, 뾰로통하게 튀어나온 꽃잎 같은 입술.

“장윤주의 등장과 함께 패션계에 한국형 얼굴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1997년 진태옥 쇼의 오프닝 모델로 몽골리안풍 의상을 입은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등장하자 쇼장은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했죠. 모두 ‘대체 저 아이는 누구야?’라고 수군거리며 그녀를 주목했어요. 큰 키와 강인한 골격, 큼지막한 이목구비의 서구형 모델이 장악하던 때 닥종이 인형 같은 얼굴은 신선한 충격이었죠.” 〈보그 코리아> 편집장은 또렷이 떠오르는 20여 년 전을 회상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말하자면 한국의 케이트 모스 같은 존재였어요. 전혀 새로운 신인류 모델이었으니까요.” 당시 장윤주가 ‘재목’임을 한눈에 알아본 진태옥 역시 백스테이지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 “머지않아 이 아이가 한국의 케이트 모스가 될 거야.”

그리고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 한국형 얼굴의 모델들이 패션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선 1999년 슈퍼엘리트모델선발대회에 응모한 한혜진과 김원경이 모델 에이전트의 눈에 띄었다. 김원경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전 서류 심사, 혜진이는 수영복 심사에서 떨어졌어요. 그런데 원서 접수 담당자한테서 모델 해보지 않겠느냐며 연락이 왔죠. 지금의 신화사 신귀란 이사와 에스팀 김소연 대표였어요.”

김원경이 동아TV에서 해외 패션쇼를 보며 모델의 꿈을 키우던 90년대에는 모델 이소라를 필두로 한 서구형 모델들이 주류를 이뤘다. 웬만한 남자들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봐야 할 키와 입체적인 외모로 아마조네스 같은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풍기던 민윤경, 김은심, 박영선, 이종희, 조명숙 등. “제가 활동을 시작할 당시엔 이미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었어요. 기존 모델 그룹을 잇는 박둘선, 노선미, 장경란 등에 송경아, 그리고 장윤주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공존했죠.” 김원경은 스스로도 자신이 기존 모델 그룹보다 새로운 그룹인 장윤주파에 속한다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데뷔 초에는 윤주 언니와 생김새가 닮아서 다들 ‘키 큰 장윤주’라고 부르곤 했어요. 윤주 언니가 저보다 조금 작았거든요.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저 역시 꼬꼬마 축에 들었죠. 선배들은 다들 180cm에 달하는 장신들이었으니까요.”

모델계의 대모라 불리는 YG케이플러스 고은경 대표는 지극히 아시아적인 토종 얼굴은 패션계에 늘 존재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못난이과’로 분류되는 이 모델들은 서구의 시각에서 볼 때 이국적인 매력이 있었기 때문. “그렇지만 분명한 차이는 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한국형 얼굴은 바비 인형처럼 예쁘다고 할 순 없었지만 여성스럽고 아름다웠어요, 자연스러움이 있었죠. 무엇보다 얼굴이 더 작아지면서 비율이 좋아졌어요.” 신귀란 이사는 한혜진과 김원경의 작은 얼굴과 훌륭한 신체 비율이 한눈에 들어왔다고 기억했다. “수많은 모델 지망생을 보면서 경험치로 알게 된 건데 몸이 길고 늘씬하면 보통 얼굴 아래쪽, 하관이 발달한 경우가 많더군요. 아무리 몸이 길고 예뻐도 얼굴이 크면 전체적인 비율이 좋지 않으니 모델로서는 적합하지 않죠.” 그녀는 인형처럼 예쁘장한 서구적인 얼굴보다 동양적인 ‘멀멀한’ 얼굴이 전통 의상뿐 아니라 백인 기준으로 디자인된 하이패션 또한 패셔너블하게 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쭙잖게 따라 하기보다는 오히려 확실한 대비에서 매력적인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 반응이 좋았던 모델들(혜박, 한혜진, 이현이)을 보면서, ‘그들의 찢어진 눈매와 광대뼈가 없었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해외에서 활동하며 동서양 모델들과 작업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성희는 서구에서 전형적인 동양인 얼굴의 모델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과 한국 패션계에서 한국형 얼굴을 선호하는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아무리 서구형으로 예쁜 얼굴이라고 해도 결국엔 서양의 것을 흉내 내는 데 그칠 뿐입니다. 제 생각엔 <보그 코리아>가 우리만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데 무게중심을 두기 시작했고, 점차 한국 패션계에서 그런 전반적인 분위기가 형성됐죠.” 그녀는 최소라의 갸름한 얼굴을 촉촉하고 투명한 피부 톤으로 연출한 다음 수묵화를 그리듯 집중해서 초승달처럼 길고 가는 눈썹을 그렸다. 어딘가 낯익다고 생각한 순간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조그맣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것 봐요, 마치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같지 않아요?” 스타일리스트 김예영은 <보그 코리아> 커버 화보를 진행하며 세계적인 톱 모델들을 두루 봐왔다. 그녀는 한국 모델의 매력을 조선백자에 비유했다. “백자처럼 은은하고 단아하게 흐르는 곡선의 미. 정적이면서도 고귀해 보이죠. 서구 모델들이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노골적인 섹시함을 과시한다면 한국 모델들은 보일 듯 말 듯, 은근하게 섹시한 매력을 풍깁니다.”

한국의 패션 피플들이야말로 늘 작은 얼굴에 큼지막한 이목구비로 꽉 찬 화려함보다는 마치 고요한 수면처럼 평면적이고 투명하며, 오묘한 여백의 미를 머금은 소녀에게 반하곤 했다.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은 패션 기자와 사진가가 표현하는 특별한 이미지를 위해 모델이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이기도 하다. “모델은 기본적으로 인상이 너무 또렷하면 안 된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얀 도화지처럼 비어 있는 얼굴이 가장 좋죠, 모델이란 늘 변화의 여지가 필요하니까요. 그게 우리가 원하는 ‘모델의 얼굴’ 아닐까요?” 사진가 강혜원은 얼굴 예쁜 연예인들이 오히려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 또한 비슷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고은경 대표는 실제로 디자이너 중 상당수가 연예인급의 팬덤이나 영향력을 가지지 않은 한, 예쁘장하게 생긴 모델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1970~80년대만 해도 모델이 되기 위해 성형수술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렇지만 저는 절대 성형수술을 권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모델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자연스러움이죠. 자연스러운 얼굴, 건강한 피부, 찰랑이는 머릿결!”

대다수가 서구적인 인형 얼굴을 원하고 과감한 성형수술을 시도하는 요즘, 이런 전통적인 한국형 얼굴은 사실 모델 세계에서나 만날 수 있다. 촬영장에 가면 같은 한국인임에도 마치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빠져나온 듯한 모델들의 모습이 외국인보다 더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 고귀한 순수 혈통을 지키듯 유독 패션계에서만 선호돼온 이 얼굴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궁금해졌다. 〈플라스틱 드림>의 저자이자 국내 성형외과 의사 1세대인 성형외과 전문의 김수신 박사는 이들 한국형 모델들의 얼굴이 평균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동양적인 미가 극단적으로 강조된 외모라고 평했다. “서양 사람들과 대등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동양미를 갖췄군요. 동그스름하게 앞 광대가 돌출돼 있거나 얼굴이 커 보이는 옆 광대가 있어 얼굴이 평면적으로 보이죠. 전체적으로 얼굴에 비어 있는 면적이 넓어서 밋밋한 느낌입니다. 코의 크기나 입과의 거리 등 전체적으로 적절한 균형감을 갖추고 있어 큰 단점으로 여겨지진 않지만, 첫눈에 강하게 와 닿거나 눈에 확 띄는 얼굴은 아니에요.”

여기까지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실. 그렇지만 그 인상에 대한 해설은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서양인의 얼굴은 좁고 긴 얼굴에 코가 우뚝 솟아 있고 입도 커서, 상대적으로 얼굴이 더 작아 보이면서 입체감은 강하죠. 모델들의 얼굴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 한국인에게 익숙한 얼굴이라서가 아닙니다. 동서양 구분 없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편안하고 신선한 인상 때문이죠. 평면적인 데다 눈·코·입도 오밀조밀해서 친근하고 부담이 없습니다. 공격적이라기보다 보호해주고 싶은 인상이랄까요?” 한국인뿐 아니라 서양인의 눈에도 그렇게 보일 거라는 설명은 그동안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 “대체적으로 옆 광대가 발달해 우리나라 사람들 눈에는 평균 이상으로 눈 아래 부위의 가로 폭이 넓어 보일 겁니다. 그렇지만 각지고 억센 얼굴은 아니에요, 선이 부드러워요.” 모델들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하던 김수신 박사는 보면 볼수록 이 얼굴이 예뻐 보여 큰일이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요즘 워낙 성형수술한 얼굴에 익숙해서인지 오히려 새롭고 세련돼 보이는군요! 사실 성형수술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다면 아마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얼굴일 겁니다.”

지난해 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초로 공개된 금동 가면 한 쌍이 화제였다. 찢어진 눈과 볼록한 광대뼈, 강한 턱, 긴 코 등 전형적인 북방계 얼굴의 특징을 과장되게 표현한 이 가면은 2~3세기 부여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한국인 얼굴의 원형으로 추정됐다. 고려시대에서 기원한 하회탈의 각시탈도 금동 가면과 상당히 비슷한 상이다. 좀더 여성스러운 소첩 역의 부네탈은 각시탈보다 광대뼈 없이 전체적으로 납작하고 턱이 작은, 갸름한 타원형 얼굴에서 한결 부드러운 여성미를 자아낸다. 반면 서산 마애삼존불은 동그랗고 통통한 얼굴형에 눈도 부리부리하고 코도 펑퍼짐하며 입술도 두툼하다. 두루뭉술하게 ‘한국인의 얼굴은 이러하다’는 인식은 있지만 정확한 한국인의 얼굴이란 어떤 걸까? 그리고 한국형 얼굴이라 평가받는 모델들은 얼마나 전통적인 한국인 얼굴에 가까울까? 경찰청 몽타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세계 최초로 얼굴 연구 분야를 개척한 최창석 명지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는 한국인의 얼굴에 대한 대부분의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상학 버금가게 신비로운 그의 이론이 철저한 데이터 통계 분석에 입각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배윤영의 사진을 본 최창석 교수의 첫마디는 놀라울 정도로 ‘식상’했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마치 고대 신화처럼 신비롭고 흥미진진했으니까.

“얼굴이 갸름하면서 턱이 좁은 전형적인 북방계 미인형입니다. 조선시대 기생 중에 이런 얼굴이 아주 많았죠.” 6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남방계가 거주했던 한반도에 석기시대 무렵 북방계가 들어왔고, 소수였지만 생존력 강한 북방계가 한반도에 세력을 확장하게 됐다. 그리고 한국인 얼굴의 대략적인 틀이 잡힌 건 삼국시대 즈음. DNA 조사에 따르면 조선시대부터 한국인의 약 60%가 북방계였다. “조선시대에는 북방계 얼굴을 미인으로 쳤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집단의 평균적인 얼굴을 미인이라고 인식하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축적돼 있습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얼굴은 이국적인 거지, 아름다운 게 아니에요.” 북방계 얼굴은 갸름하면서 긴 얼굴형에 눈썹이 흐리고 눈은 가늘면서 길게 올라가 있다. 광대뼈가 크고 턱은 길며 입술은 얇다. 남방계는 짐작 대로 동남아시아인의 얼굴. 얼굴이 넓적하며 이마가 좁고 턱이 사각 턱이다. 눈썹이 진하고 눈은 크며, 코가 짧고 입술이 두껍다. 실제로 본 장윤주나 배윤영의 얼굴은 길쭉하지 않다고 소심하게 이의를 제시하자, 대표적인 남방형 얼굴로 배우 이요원을 들었다. “모델들과 비교해보면 얼굴형이 넓적하고 짧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남방형과 북방형을 나눌 땐 전형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우리는 모두 남방형과 북방형이 모자이크처럼 조합된 얼굴이죠.” 그리고 모델들에 대한 논리적이면서도 운명론적인 이론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모델들의 얼굴로 통계를 낸 적이 있어요. 모델뿐 아니라 배우와 운동선수 중에는 북방계가 월등히 많습니다. 그 이유는 북방계가 시베리아에서 사냥하던 인종이라는 데 기인하죠. 활동적으로 몸을 쓰는 일에 유리하도록, 오랜 세월 유전자에 축적돼 이어져온 겁니다.” 반면 남방계는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열매를 채취하고 해안에서 조개를 줍거나 물고기를 잡는 정적인 활동을 했기 때문에 현대에도 경영이나 정치, 판검사, 지식인층이 많다는 것. 그렇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북방계가 60%임에도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구형 얼굴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많이 쓰는 연예인은 북방계보다 남방계에 가까운 외모를 가지고 있는가?

“아름다움은 권력입니다.” 그는 미의 기준과 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입을 열었다. “조선 말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 그들은 침략자인 동시에 정복자였습니다. 힘을 가진 자였죠. 그때는 일본인의 얼굴이 이상적으로 보였습니다. 우리와 많이 다르진 않지만 한국인에 비해 남방형에 가깝죠. 그보다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6·25 사변이에요. 다 져가는 전쟁의 판도를 엎은 미군은 실로 대단해 보였을 겁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신학문이 들어왔고 지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것도 다 서양 문물에 기반한 지식이죠. 자연스럽게 서양인은 동경의 대상이 됐습니다.” 최창석 교수는 우리 본연의 얼굴과 추구하는 얼굴의 격차가 큰 것은 우리나라에서 성형수술이 발달하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대중적인 미의 기준과는 거리가 먼 한국형 얼굴이 패션계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데에 놀라움을 표했다. “조금도 덜거나 더하지 않고, 이 모델들은 가장 정직한 한국인의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얼굴이 패션계 밖에서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면 그것은 패션계와 매체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걸 방증하는 겁니다.”

90년대 말에 데뷔한 30대 중반 모델과 바로 지난해에 캐스팅된 19세 모델 사이의 신체적 발달에 대해 인류학적으로 접근하기엔 20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은 충분치 않다. 그러나 매 순간을 필드에서 직접 목격해온 고은경 대표는 500명 중에 한 명도 찾기 어려웠던 과거에 비해 요즘은 신체 조건만으로도 눈에 띄는 모델 지망생이 훨씬 많아졌다고 인정한다. “예전엔 패션 위크와 패션지 화보뿐이었지만 요즘엔 예능 프로그램이나 연기 등 모델의 활동 분야가 다양해졌습니다. 에이전트 측에서도 예전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보는 게 사실이에요. 방송 출연을 고려해 TV에도 적합한 얼굴인지를 따지다 보면 예전에 비해 더 작은 얼굴에 선이 곱기를 바라죠. 그럼에도 발육 상태가 좋다보니 가능성 있는 아이들은 더 많아졌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20대 초반 남녀 모두 머리 크기는 작아지고 다리가 길어져 과거 6.7등신에서 현재 7.5등신으로 신체 비율이 점차 8등신에 가까워지고 있단다. 또 1950~60년대 출생자까지는 체격과 함께 얼굴 크기도 전체적으로 커졌으나 70년대 이후 출생자부터는 턱이 급격히 좁아지고 작아지는 추세. 뇌 용적의 증가에 따라 두개골은 커지고 머리 앞뒤 길이도 길어지고 있지만 턱은 지난 5년간 용적이 15%나 줄었다고 한다. 가장 큰 원인은 물러진 음식물의 영향으로 씹는 데 힘을 들일 필요가 없어져서 턱뼈가 퇴화하고 자연스럽게 하관이 전체적으로 짧아진 것. 그리고 하관이 짧은 얼굴은 전형적인 동안의 특징이다. “진정선이나 배윤영은 윤주, 혜진, 원경, 소라에 비해 어려 보이죠. 실제로 어리기도 하고요. 여섯 명 모두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이라는 것도, 특별히 사랑받는 모델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한국형 얼굴은 그동안 우리가 기억하는 이들 외에도 많았을 거예요. 이 친구들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면 거기에는 단순한 겉모습 외에도 모델로서의 실력과 재능까지 포함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훨씬 더 빛나고 매력적인 외모를 갖췄더라도 사진가와 소통하는 방법, 현장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모델로서 매력 있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사진가 유영규는 이들의 외모를 더욱 빛나게 하는 건 모델로서의 뛰어난 자질이라고 말했다. 그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몸을 쓰는 데 뛰어난 북방형으로 태어났고, 자신에게 재능 있는 분야에 뛰어들었으며, 동일한 출발선에 섰던 남들보다 더 노력했으니까. 자신의 장점을 ‘다양한 메이크업을 소화하는 얼굴’이라고 멋쩍게 말하던 김원경은 머리에 ‘간난이’ 가발을 얹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 전쟁고아 같아!”

굵고 길게 그린 눈썹에 광대뼈 위에 가득 뿌려진 주근깨는 영락없이 얼굴을 찌그러뜨리고 울음보를 터뜨리기 직전인 못난이 인형. 그렇지만 카메라 앞에 서자 금세 피터 린드버그 사진 속 여인처럼 서정적인 표정이 얼굴 가득 떠올랐다. 자연광 아래 비스듬히 서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가느스름하고 까만 눈동자는 스티브 맥커리의 ‘아프간 소녀’처럼, 6·25 전쟁통에 홀로 된 소녀 같았고, 순식간에 고요해진 스튜디오에는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예전에 모르던 부분에 대해서 예쁘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요!” 배윤영은 작고 통통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짭조름한 대구 사투리를 구사했다. “예전에는 주근깨도, 코도, 입도 다 싫었거든요. 모델 일을 하면서 미처 모르던 부분까지 칭찬을 듣다 보니 이젠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어요.” 헤어 스타일리스트 한지선은 모델로서 배윤영의 장점을 질문하자 어깨를 으쓱하며 명쾌하게 답했다. “완벽한 컨디션을 갖췄다는 것. 얼굴형에 맞게 두상도 작고 동그랗죠. 심지어 반곱슬 머리칼이 자라난 이마 라인까지도 예쁘답니다.” 데뷔한 지 겨우 1년 남짓한 고 3 소녀가 카메라 앞에서 얼굴의 각과 눈빛에 미묘한 변화를 주며 사진가를 매료시키는 건 가히 놀라운 수준.

사진가 윤명섭은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시즌 2 때부터 진정선을 봐왔다. “첫 촬영의 주제가 블랙 스완이었어요. 얼굴 생김새를 알아보기엔 메이크업이 상당히 진했죠. 그렇지만 포즈를 매우 능숙하게 해낸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진짜 발레리나처럼 손가락 끝까지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죠.” 그때에 비하면 요즘은 젖살도 빠지고 한결 여성스러워진 게 사실. 그러나 화려한 꽃무늬 한복과 장식적인 헤어스타일에 둘러싸인 가운데서도 진정선의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과 호기로운 광대뼈는 기마민족의 기상처럼 여전히 도도하고 아름다웠다.

한편 한혜진의 흡입력 있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가끔 신기가 느껴질 정도다. 어떤 말을 더할 수 있을까? 모델 에이전트도 여전히 한혜진의 아우라에서 벗어나지 못했노라고 실토한다. “아직도 모델 지망생들을 보면서 ‘어디 한혜진 같은 아이 없나’ 두리번거리곤 합니다. 그 카리스마에 대적할 만한 인물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때로는 스스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죠.” 못난이라고 놀리듯 부르면서도 이 특별한 얼굴들을 특별히 편애해왔고, 대중적인 미의 기준에서 벗어남에도 번뜩이는 재능을 알아본 우리 패션계가 한국의 전통 얼굴을 보존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만약 이를 패션계가 찾는 색다름에 대한 취향 정도로 치부한다면 그건 스스로의 원류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우리의 얼굴. 시술로 비슷해진 서구형의 예쁜 얼굴과는 차원이 다른 주체적인 아름다움의 원형.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패션계는 이런 한국형 얼굴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