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M이 뭐길래

발라드보다 친숙해져버린 EDM, 박명수도 한다는 EDM. 지금 가요계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음악 EDM이 대체 뭐기에 이 난리일까. ‘뿅뿅’ 뮤직의 진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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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에 평화 대신 온 세상에 EDM이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매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리는 DJ” 순위를 4년째 굳이 따로 집계해 발표하고 있고, 젊은이들은 눅눅한 지하 공연장에서 신발 끝을 바라보며 연주하는 밴드맨 대신 높은 단상에 올라가 조그를 돌리며 양팔을 세차게 흔드는 DJ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런 흐름을 약빠른 언론이 놓칠 리 없다. 의도치 않게 2년마다 돌아오는 가요계 축제이자 살육의 장이 돼버린 <무한도전>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박명수는 담당 프로듀서 아이유에게 자신의 EDM 외길 인생을 강요하며 빈축을 샀고, <슈퍼스타K>와 <쇼미더머니>로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와 래퍼 덕을 톡톡히 본 음악 전문 채널 엠넷(Mnet)은 스타 DJ를 발굴하겠다며 DJ 서바이벌 프로그램 <헤드라이너>를 론칭했다. 그야말로 온 세상이 EDM이다.

이즈음에서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대체 EDM의 어떤 매력이 21세기 대중을 이렇게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사실 EDM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단순한 의미를 가진 단어다. ‘Electronic Dance Music’. 즉, 전자악기로 만들어진, 우리를 춤출 수 있게 만드는 거의 모든 음악을 EDM이라 칭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란 얘기다. 테크노, 딥 하우스, 트랜스, 덥스텝, 빅 룸 하우스,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모두 EDM이다. 맥이 탁 풀리려는 찰나, 하지만 지금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EDM의 의미는 그 보다는 훨씬 지엽적이고 한정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클럽이나 파티, 축제 등 개방된 장소에서 수천수만의 사람을 동시에 춤추게 할 수 있는, 초반에는 잔잔하게 애를 태우다 후렴구에는 어찌 되었든 무언가 ‘터뜨리며’ 관객을 준비된 무아지경으로 몰고 가는 일련의 음악들. EDM은 ‘빠빠빠’ 아니면 ‘까까까’ 아니냐는 오해를 오해라 부를 수 없는 심정을 이해못할 것도 없다.

EDM은 각각 2010년과 2011년 세계적 히트를 기록한 욜란다 비 쿨 & 디컵의 ‘We No Speak Americano’와 LMFAO의 ‘Party Rock Anthem’의 전국구적 인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회자되기 시작한다. 2011년 발표한 앨범 <Nothing But the Beat> 한 장으로 EDM신의 흐름을 흥겨운 댄스 팝으로 완벽히 전향시켜버린 데이비드 게타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좀더 넓은 곳에서, 좀더 빠르게, 관객들을 흥분시킨다. 명확해진 세 가지 목표 아래 보다 밝아진 모습으로 대중화된, 이토록 흥 넘치는 음악을 흥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한국인들이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다. 기가 막히는 떼창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박수를 몸에 지니고 태어난 한국 관객들 아닌가.

실제로 한국의 EDM 붐이 국내 신의 성장이나 장르 음악으로서 인식된 것이 아닌, 일종의 ‘축제’ 형태로 각광받기 시작했다는 점은 꽤나 흥미롭다. 라이브 클럽을 대체하며 어느새 홍대 골목을 빼곡히 메운 각종 댄스 클럽은 물론, 불과 2~3년 사이 눈부신 성장세로 몸집을 불리며 페스티벌계의 새로운 블루칩으로 떠오른 각종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물리적 지표다. 굳이 찾아보거나 떠나지 않아도 티에스토, 데이비드 게타, 하드웰, 아비치, 스크릴렉스 등의 동시대 아이콘들을 실시간으로 홈그라운드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리지널의 부재나 신의 발전 속도와는 너무도 상이한 온도 차가 여전히 물음표를 남기기는 하지만, 속이야 어찌 되었든 겉으로는 이 흐름을 ‘즐기는’ 이들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현실을 거부하기 힘들다. 그것도 어쩌면 이 장르가 가진 가장 순수한, 본질에 가까운 방식으로 말이다.

이 놀라운 성장세를 순간의 유행을 따르는 허무한 공포탄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 한번 ‘맛’을 본 영광을 가능한 한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내부로 끌어안는 것이다. 박명수의 ‘쪼쪼’나 이정현의 오리엔탈 테크노, 10분 안에 관객을 흥분시키지 않으면 탈락의 문으로 조용히 사라져야 하는 운명의 DJ 서바이벌이나 오늘 밤 나를 미쳐버리게 만들 ‘파티’를 위함이 아닌 ‘음악’ 그대로를 위한 음악. “EDM은 이제 ‘Event Driven Marketing(공연 주도형 마케팅)’”이라며 EDM과의 결별을 선언한 데드 마우스나 “이제 EDM은 특정 장르의 음악을 지칭하며, 우리 모두에게 같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말한 일렉트로니카의 큰형님 피트 통의 말은 2015년 한국의 EDM 붐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한 주요 명제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한국의 일렉트로니카 신은 그 존재의 진정성을 재차 요구해야 할 정도로 크게 흥한 적도, 흔들린 적도 없다. 흔히 한국의 전자음악 1세대라 불리는 모하비, 가재발, 트랜지스터헤드의 진지한 음악적 탐구와 윤상, 신해철 같은 대중 가수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여린 역사의 시작점으로 본다면, 유일한 부흥기는 시부야 케이의 영향이 듬뿍 느껴지는 라운지 계열 일렉트로 팝이 유행하던 2000년대 초·중반 정도라 할 수 있다. 날카롭게 스쳐 지나간 반짝 인기를 뒤로한 채 서서히 고사해가는 듯하던 한국의 일렉트로니카 신은 다행히도 최근 서서히 자생력을 지니기 시작했다. 일등 공신은 물론 페이스북과 사운드클라우드, 밴드캠프 등 SNS 서비스의 활약이다. 정기적으로 전자음악을 소개하는 <와트엠>이나 <e.p.r> 같은 이벤트는 물론, 영기획이나 허니 배저 레코드 등 젊고 부지런한 신생 전자음악 레이블이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 분명 의미는 있지만 아직은 작다. 심지어 세계 음악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EDM의 인기에 비한다면 너무 미미해 곧 슬퍼질 지경이지만 포기는 아직 이르다. 지금의 EDM 광풍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듯, 당신을 춤추게 할 다음 음악이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역시 누구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자세를 낮추고, 춤을 멈추지 않은 채, 끊임없이 예민하게 귀를 닦아 놓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