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하얀 거탑〉, 영화 〈리턴〉에서 카리스마 있는 외과 의사로 강한 인상을 남긴 김명민.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에서 그가 이번에 받아 든 역할은 차갑고 날카로운 베테랑 ‘전직’ 형사다.

김명민의 배우 인생에 우회전은 없다. 1996년에 SBS탤런트로 데뷔해 지금까지 서른네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참여하면서 그는 한순간도 길게 쉬어본 적이 없다. 2000년대 초반 장선우 감독의 야심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비슷한 실패가 줄줄이 이어졌고, 블록버스터 대란의 영향으로 김명민 역시 아픔의 쉼을 취해야만 했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방영된 대하 사극 <불멸의 이 순신>이 없었더라면, 배우 김명민이란 이름은 사라졌을지 모른다. 김명민에겐 주요한 터닝 포인트가 두 차례 지나갔다. 한 번은 위에서 언급한 <불멸의 이순신>의 점프고, 또 다른 한 번은 의사 장준혁을 탄생케 한 드라마 <하얀 거탑>이다. 그는 <하얀 거탑> 시절을 돌아보며 유폐의 연기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를 시작하며 생각한 건 발화하고, 소비하는 연기, 대사가 아닌 안으로 충전하는 연기, 대사를 치자는 것이었다.” 그만큼 노력했다. 이 충전의 연기법은 그의 배우 인생 통틀어 가장 중요한 테마다. 소비하지만 다시 재충전되고, 발화되지만 다시 흡수되는 리사이클링의 순환 구조가 김명민의 연기엔 있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본래 <감옥에서 온 편지>란 원제로 시나리오가 쓰였다. 하지만 촬영하며 조금씩 코믹 휴먼 드라마의 틀을 닮아갔고, 결국 제목도 어둠이 가득한 원제가 아닌, 조금은 발랄하고 밝은 톤으로 수정됐다. 그리고 이 변화는 김명민의 코믹한 연기와도 연결된다. 포스터에서 코에 반창고를 붙이고 씁쓸하게 웃음 짓는 모습은 형사로서의 애로 사항, 잠시 취하는 휴식을 표현한다. 포스터 한 장에 영화 전체의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는 셈이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살인 누명을 쓴 남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로부터 시작된다. 김상호가 연기한 권순태는 자신이 며느리를 죽이지 않았다 탄복하고, 김명민이 연기한 최필재는 그의 편지 속 진심을 믿어본다. 본래 형사였다가 개인 사정으로 브로커가 된 그는 형사의 민첩함뿐 아니라 공무원이기 때문에 발휘하지 못하는 순발력으로 행동한다. 김명민의 기지와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김명민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술도 마시지 않는다. 동료 배우들과 술자리를 하는 것보다는 얼른 집에 들어가 와이프, 아이와 시간 보내기를 즐긴다. 그리고 이런 그의 검약한 스타일은 연기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가 의사나 형사 같은 ‘사’ 자 배우인 것도, 항상 통솔력을 자랑하는 남자인 것도 다 생활 속에 배어 있는 바른 생활의 태도 덕분이다. 김명민은 어느 감독의 말을 빌려 “배우는 인간이 아니다, 비인이다”라는 표현을 썼다. 아닐 비(非) 자에, 사람 인(人)을 쓰는 비인(非人)은 말뜻 그대로 사람에 반하는 누군가를 상정한다. 고양이를 연기할 땐 고양이가 되어야 하고, 토끼를 연기할 땐 토끼가, 고구마를 연기할 땐 고구마로 변신해야 한다. “연극과에 들어간 뒤 첫 수업이 고양이를 연기하는 거였다. 고양이가 되어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집에 고양이를 데려다놓고 24시간을 관찰한 것 같다. 대충 머릿속의 뭉텅이 이미지만으로는 실존을 표현할 수 없더라.” 그에게 고양이는 단순히 한 마리의 동물이 아니라 배우의 속, 그리고 캐릭터의 외양을 의미했나 보다.

섭씨 0℃부터 100℃까지 온도를 재본다면 김명민은 10℃ 이하에서 맴돈다. 그의 연기는 항상 똑 부러지고, 차가우며, 냉철하고, 품이 넓다. 그리고 이는 수만 번 넘게 달걀로 바위를 치다 끝내 바위를 부숴버리는 경사를 맞이하는 형사의 역할을 한다. “촬영 현장에 갈 때는 사전에 모든 준비를 끝마친다. 물론 즉흥적인 것이 더 유효하고 이익이 될 수 있지만, 감독님과 얘기하다 혼란에 빠질 때가 많다. 내 안에서 온전히 배우의 외모, 성격을 쌓고, 그걸 그대로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에게 이 메소드 스타일의 연기론은 선택의 범주가 아닌 당연지사의 문제다. “나는 메소드 연기를 한다. 사람들도 그렇게 얘기하고. 이건 배우라면 언제든 한번은 거쳐가야 하는 거다. 뭐든지 흉내를 낼 순 있지만 그건 알맹이가 없는 텅 빈 껍질이다. 알맹이, 그러니까 본질을 낚아채려면 내가 그 본질이 되어봐야 한다.”

30여 년 전 김명민은 배우를 꿈꾸는 꼬마 아이였다. 그는 일찍이 연기자로 살겠다고 마음을 굳혔고,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진학했다. 탄탄대로의 수순이었다. 죽을 만큼 좋아하는 걸 포기하고 싶지 않아 택한 선택이었고, 생활과 연기를 밀착시키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안 하면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다. 나의 가정 생활처럼, 샐러리맨의 직장 생활처럼 연기를 다듬어야 했다. 1년 365일 항상 그 캐릭터로 살아야 하는 거다.” 여기에 김명민은 없고 수많은 서로 다른 작품 속 인물들이 숨 쉰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의 포스터에서 보이듯 실제 영화 본편은 꽤나 웃음을 주는 구석이 있다. 일종의 코믹 휴먼 드라마란 장르다. 스릴러의 탈을 쓴 희극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명민에겐 배우를 시작하며 붙어 다니는 별명이 있다. ‘단상병’이다. 대중 앞에 나서길 좋아하고, 무대 위에 올라가 있지 않으면 불안해한다는 그는 가정에서도, 현장에서도 항상 먼저 나서서 일하고, 연기하는 배우다. “일종의 리더십이다. 내 안에 지휘관이 서너 명 있는 것 같다.” 올해 마흔다섯이 된 그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았고, 고민하는 열의도 멈추지 않았다. 이건 그가 20여 년 동안 정상에 머무를 수 있는 이유이고, 많은 감독이 어디에 두어도 쓸모를 하는 배우가 될 수 있는 비결이다. 김명민에게 놓인 세상은 오직 전진의 풍광이다.

김명민은 윤종찬 감독의 공포 영화 <소름>에 출연한 이후 TV 드라마는 출연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지금과 달리 영화는 배우, 드라마는 탤런트라 보는 시각이 있었기에, 탤런트는 배우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윤종찬 감독님을 비롯한 많은 분이 그런 얘기를 했다. 너는 영화용 인물이니 영화에만 집중하라고.” 그렇게 수년을 보냈다. 그러다 사실 둘 다 별 차이 없는 연기 장터란 생각에 TV 드라마에도 눈을 돌렸다. 그래서 노희경 작가의 슬픈 멜로 <꽃보다 아름다워>의 방영이 가능했고, 지금도 곳곳에서 회자되는 명작 <하얀 거탑>이 탄생했다. “무당은 굿을 안 하면 못 살고 배우는 연기를 안 하면 못 산다. 이건 죽을 때까지 짊어져야 할 업보다.” 그에게 타고난 업보는 한 가정의 가장, 그리고 한국 영화계와 안방극장의 스타 정도일 것이다. 김명민은 메소드 연기 방법을 창시한 러시아의 스타니슬랍스키의 말을 꺼내 인용했다. “학교 다닐 때 영화 문학, 연기론 등 서적을 읽고 배웠다. 이론 실습의 교재였다.” 그리고 이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 방법은 그의 배우 생활을 지탱하는 큰 척추가 되었다. 루게릭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20여 킬로그램의 살을 빼고, 마라톤 선수가 되기 위해 실제 마라토너로 살던 시간은 그에게 둘도 없는 재산이다. 배우가 세상을 떠난다면 이름과 함께 타인으로 살던 많은 시간이 꽃을 피운다.

연기자를 꿈꾼 김명민이지만 밥을 굶을 만큼 배가 고프던 시절에 그는 옷 가게에서 판매 아르바이트를 했다. 비정규 직원임에도 그의 상술은 빛을 발해 매해 판매액을 갈아치웠고, 끝내는 정직원, 사장의 실적보다 두 배 많은 성과를 냈다. “아무리 배우가 하고 싶어도 굶으며 놀고 있을 순 없었다.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는 배역은 언제라도 오지 않는다. 연명하기 위한 일인 동시에 연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방도였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를 마치고 신작을 준비 중인 그는 또 한 번 스릴러물에 빠져든다. 다음 영화는 그가 다시 한 번 ‘연기 본좌’의 힘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주·조연 구별 없이 움직이는 김명민은 그야말로 연기 노동자다. 그에게 펼쳐질 금빛 미래를 예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