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의 몸이란 어떤 의미일까. 〈보그〉 뷰파인더 앞에 모인 남자 슈퍼모델들에게 질문했다. 그 찬란한 정답의 몸이 여기 있다. 누구도 명확히 답하지 못했지만, 정답은 그들 몸에 있었다. 당대 패션이 원하는 몸. 트렌드와 스타일을 넘나들며 시대가 원하는 남자의 몸.

익숙한 단어인 ‘슈퍼모델’을 들었을 때, 남자 얼굴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린다, 나오미, 크리스티부터 지젤과 나탈리아 그리고 지지와 켄달까지. 수없이 많은 여자 슈퍼모델이 등장하는 동안, 그와 비슷한 인기를 누린 남자 모델을 찾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유명세나 인기에서 남자 모델은 늘 패션계에서 여자 모델의 뒷전이었으니까. 하지만 남자 모델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순 없다. 사회가 바라보는 남자에 대한 시각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남자 모델에 비춰지곤 했으니 말이다. 90년대의 건장한 모델이 사라진 21세기에는 소년처럼 깡마른 모델들이 나타났고, 메트로섹슈얼이라는 용어가 세상을 휩쓸었을 때는 중성적 모델들이 갑자기 쏟아졌다. 그뿐이 아니다. 남자 모델들은 당시 가장 쿨한 분위기를 담는 바로미터인 동시에, 패션이 바라보는 이상적인 남성성을 몸소 담는 그릇이었다.

<보그>는 지금 패션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남자 모델들을 집합시켰다. 주제는 ‘Body’. ‘지금 패션계가 이상적으로 꿈꾸는 남자의 몸은 뭘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 4월 <보그> 촬영을 위해 브루클린의 스튜디오로 당대 ‘쥬랜더’들이 모였다. 다분히 미국적 건강함을 무기로 장착한 가렛 네프는 환한 미소를 담은 채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또 에디 슬리먼이 포착한 소년 뱅상 라크로크는 아티스트적 분위기를 갖춘 남자로 변신한 채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10년째 패션계가 가장 사랑하는 얼굴인 클레망 샤베르노는 매혹적인 미소처럼 조용히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뒤를 이어 소년 모델의 유행을 이끈 제레미 영, 신세대의 아티스틱한 분위기를 풍기는 마일스 맥밀란, 메트로섹슈얼의 이상형에서 터프한 남성성을 표현하는 모델로 성장한 RJ 로젠스키까지.

이 여섯 청년은 모두 남자 모델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지난 10년간 이들은 TV 광고 속에서 미소를 건넸고, 거대한 전광판 위에서 포즈를 취했다. 패션지 화보와 광고, 런웨이는 물론이다. 다들 하나의 아이콘으로 인정받을 만한 인물들이다. 물론 모든 일이 즐겁진 않았다. 제레미는 속옷 광고 촬영을 위해 허벅지 체모를 면도한 적도 있다고 말했고, 마일스는 돈도 못 받으면서 일하는게 서글펐다고 고백했다. “한번은 엉덩이가 다 드러나는 바지를 입고 쇼에 선 적도 있어.” 뱅상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패션이 우습게 느껴질 법한 순간. “아냐, 패션계는 고마운 곳이야. 엄청난 기회를 선사해줬으니까.” 장편영화를 준비하는 미래의 영화감독 뱅상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모델이 아니었다면 결코 가지 못할 곳으로 떠났고, 절대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났어. 위대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지.” 가렛은 그런 경험을 통해 자신의 수영복 브랜드 ‘카타마(Katama)’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내 삶에 불만은 없어. 수영복을 디자인하며 내 얘기를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아. 하지만 모델로서 엄청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최고의 경험이거든.” <보그> 촬영 후 며칠 뒤 결혼식을 올린 뱅상 역시 동의했다. “내 삶은 기쁨으로 가득해! 지금 내가 준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모델 일을 통해 가능했으니까.”

“그런 걸 생각해본 적 없어.” 다시 이번 촬영의 주제인 몸으로 돌아가, 남자 모델에게 몸이란 어떤 의미일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클레망이 답했다. 그리고 얼굴에 최대한 많은 주름을 만든 채 한껏 웃어 보인 뒤 자리를 슬쩍 피하고 말았다. 우리는 뱅상에게 다시 물었다. “모델로서 자신의 몸을 정의한다면?” “난 모델이긴 하지만, 내 몸을 모델의 몸이라 생각한 적은 없는데?” 그렇다면 슬림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서핑을 하긴 해. 하지만 따로 운동을 하진 않지.”

세련된 프랑스 모델들과 달리 미국 모델들은 자신의 몸을 하나의 도구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운동이면 뭐든 좋아해. 등산, 자전거, 러닝, 트레이너와 운동도 하고. 모든 종류의 피트니스 수업을 들어봤을걸?” 조각도로 빚어낸 듯한 근육의 소유자 가렛 네프는 자신감 있게 말했다. 그는 몸의 변화에도 좀더 예민한 듯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근육이 늘긴 해. 하지만 여전히 마른 편이겠지?” 마일스의 답이다. “사실 <보그> 촬영을 위해 이틀 동안 열심히 가슴 운동을 했어. 어때?” “캔버스가 아닐까?” 차분한 영국 억양을 지닌 제레미가 고민 끝에 말했다. “디자이너, 사진가, 에디터, 스타일리스트가 꿈꾸는 패션을 그리는 곳. 그러니까 나처럼 마른 캔버스도 있고, 가렛처럼 큰 캔버스도 있겠지?” 자, 남자 패션을 정의할 여섯 개의 완전한 캔버스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