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자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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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갖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 스토리다.” 알랭 드 보통이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으로 불리는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한다면, 신작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행나무)은 사랑이 시작된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다. 설렘이 빠진 자리를 현실감각으로 메우는,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지조차 헷갈리는 이 상태는 사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건 단지 사랑의 시작”이며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임을 깨달아가는 수련 과정에 다름 아니다. 수련의 끝, 과연 어떤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상대를 진심으로 ‘00한다’는 것. 그것이 러브 스토리의 진실이자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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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만났더라면 ‘오빠’, 잡지계에서 만났기에 ‘선배’, 길에서 만난다면 ‘아저씨’인 40대 중반의 두 남자 송원석, 정명효가 책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하여(책들의 정원)>를 냈다. 더없이 선량한 인상을 가진 두 남자가 카페에 앉아 지하철에서 신문 보던 사람, AFKN이라는 신천지, 토큰과 회수권의 시대를 논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괜히 마음이 좋다. 술자리를 빙자하여 생존을 위한 전략을 구사해도 부족한 요즘, 이들이 나누었을 숱한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그러므로 과거의 것이 아니다. 현재를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자, 어떤 미래에도 순진함과 인간성을 등가로 놓겠다는 의지다. 아재들의 선량한 추억팔이에 한마디 거들며 동참하고 싶은 마음, ‘사라져가는 것들’은 그렇게 우리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