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 on the Rise

콜린 퍼스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 〈러빙〉으로 제89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루스 네가. 아이리시‐에티오피아계인 그녀는 연기의 왕좌에 도전하고 있다.

“솔직히 좀 아웃사이더예요. 싸움꾼 기질도 좀 있고요.” 친구들은 루스 네가를 이렇게 평했다. 슬릿이 깊게 파인 스트라이프 톱과 팬츠, 펌프스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솔직히 좀 아웃사이더예요. 싸움꾼 기질도 좀 있고요.” 친구들은 루스 네가를 이렇게 평했다. 슬릿이 깊게 파인 스트라이프 톱과 팬츠, 펌프스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오늘 상태가 아주 엉망이네요.” 루스 네가는 벗겨진 초록색 네일을 가리키며 아이리시 악센트가 살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스스로 머리를 잘랐지만 정리가 안 돼 전문가를 찾아갔다고 했다. 오늘 여권을 갱신하고 왔다는 그녀를 본 포토그래퍼는 “음… 블렌딩을 좀 해볼까요?”라며 얼굴을 가리켰고, 그제야 네가는 자기 얼굴에 브론저와 파우더를 너무 발랐음을 알아챘다. 평소 화장대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은 거다. 그녀는 자학 개그에 강했고, 대화 중에 작은 뼈대를 자주 움직였다.

루스 네가와 조엘 에저튼은 영화 <러빙>에서 1958년 버지니아에서 법적인 부부가 된 첫 흑인, 백인 커플인 밀드레드와 리처드 러빙을 연기했다. 제프 니콜스 감독은 영화의 투자를 받으려고 애쓸 때 “루스 네가가 누구죠?”라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저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가 이제야 ‘빵!’ 터진 거죠.”

런던의 프림로즈 힐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 방문했다. 그녀는 남자친구이자 배우인 도미닉 쿠퍼와 살고 있다. 건물 밖으로 고개를 빼쭉 내밀고 손 인사를 한 그녀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왔다. “도미닉이 전화 인터뷰를 하고 있어서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짧은 터틀넥을 입고 있었는데 방금 갱신한 여권을 빠르게 브라 안에 넣었다. 드라마 <프리처>에서 튤립 오헤어로 나오는 네가를 본 적 있다면, 이런 만화스러운 활력이 익숙할 거다. 선호하는 운동도 이스라엘 무술인 크라브 마가다. 그녀는 튤립 역할에 대해 “남자들이 했을 때만 괜찮게 받아들여지는 장난을 칠 수 있어서 좋아요” 라고 했다. <프리처>의 제작자인 코미디언 세스 로건은 네가를 무척 좋아한다. “그녀는 웃긴 장면을 더 웃기게 만들어요.”

“1초 전엔 스물두 살 정도 됐죠.” 서른다섯 살의 네가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자신과 전혀 다른 역할에 자주 캐스팅될 만큼 변화무쌍하다. 튤립만 해도 원래는 가슴이 큰 금발 캐릭터였다. 6년 전 그녀는 국립극장의 첫 번째 흑인 오필리아가 됐고 반대했던 사람들의 항복을 받아냈다. 할리우드로 넘어온 대부분의 영국 출신 배우는 귀족적인 이미지로 쏠리는데, 이 아이리시-에티오피아인 여배우는 모든 이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국경이 모호한 세계의 왕족 같다.

무대 위의 네가는 놀라울 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그녀는 영국 연극계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한 작가는 “순간적으로 몰입하는 비법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평했다. 영화 속의 네가는 대사 없이도 관객을 웃기거나 감동시킬 수 있다. <러빙>에서 용감하게 가족을 지켜낸 밀드레드 러빙을 연기한 그녀는 열광적인 리뷰를 끌어냈고 오스카의 화두가 됐다. 니콜스 감독은 “살면서 좋은 배우를 많이 봤지만 네가의 연기는 믿을 수 없었어요”라고 했다. 네가는 밀드레드 러빙 역할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가끔 배우에게는 전후가 확연히 나뉘는 ‘비포 앤 애프터’ 캐릭터가 찾아와요. 이번이 그렇죠.” 영향은 즉각적이었다. 칸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한 뒤 네가는 호텔 풀사이드 레스토랑에서 마티니를 마셨다. 루비색 립스틱, 핑거 웨이브 헤어스타일, 검은색 레이스의 마크 제이콥스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누군가는 <러빙>을 봤다며 네가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다들 따라 일어서서 그녀의 이름을 연호했다.

네가는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님은 백인 아이리시 간호사와 흑인 에티오피아인 의사로 병원에서 만났다. 정계의 폭력 사태가 발발했을 때 네 살이었던 루스와 그녀의 어머니는 아일랜드로 넘어와 아빠를 기다렸다. “원래는 미국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빠가 제때 빠져나오지 못했죠.” 3년 뒤, 그녀의 아버지는 차 사고로 숨졌다. “전화와 편지로 소식을 들었어요. 1988년에요. 슬픔에 빠진 아이를 위한 상담 따윈 없던 시절이죠.” 그녀의 어머니는 다시 결혼하지 않았다. “엄마는 생존자예요. 밀드레드 러빙과 매우 닮았죠.” 하지만 밀드레드 러빙과 달리 어머니는 흑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편견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저희 엄마는 그랬던 적이 없대요. 절대로요.”

아이리시-에티오피아계 배우인 네가는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23명 정도’의 남자 사촌들과 보냈다. “늘 사고를 치고 다녔어요.” 그녀의 눈동자처럼 영롱한 빛깔의 플라워 장식이 달린 재킷, 톱과 팬츠는 지방시 by 리카르도 티시(Givenchy by Riccardo Tisci).

아이리시-에티오피아계 배우인 네가는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23명 정도’의 남자 사촌들과 보냈다. “늘 사고를 치고 다녔어요.” 그녀의 눈동자처럼 영롱한 빛깔의 플라워 장식이 달린 재킷, 톱과 팬츠는 지방시 by 리카르도 티시(Givenchy by Riccardo Tisci).

아일랜드의 리머릭으로 간 네가는 남자 사촌만 ‘23명 정도’인 대가족에 섞여 들었다. “사촌들과 다른 대우를 받은 적은 없어요. 저는 그저 계속 말썽 부리고, 사고 치고…” 그녀는 열한 살 때 영국으로 이사했다. 소설가 토니 모리슨, 제임스 볼드윈, 시인이자 배우 마야 안젤루에게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흑인이기에 겪어야 하는 경험이 담긴 글에서 동질감을 느꼈어요.”

네가는 80년대 판타지 영화 <라비린스>에서 데이비드 보위가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을 본 순간 배우가 되고 싶었다. 또 소외에 관한 영화 <트레인스포팅>과 프랑스 영화 <증오>를 보고 “그래, 나도 이제 열여덟 살이 되니까 여길 떠나서 저걸 해봐야지”라고 생각했다.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의 드라마 스쿨에 다니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조지 피츠모리스와 셰이머스 히니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때 네가의 졸업 작품을 본 감독 애니 라이언은 “오 마이 갓, 얘랑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네가는 롤리타 역에 캐스팅됐고 그것이 돈을 받는 첫 연극 무대였다. 네가가 열여덟 살 때, 어머니와 함께 에티오피아에 있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았다. “삶의 많은 부분이 갑자기 끝나버린 듯했어요. 제가 아일랜드인이자 에티오피아인이라고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졌어요.” 30대 초반, 그녀는 이런 상처을 상담을 통해 전문적으로 치유받았다. 그때 많은 것을 깨달았다. 배우가 된 진짜 이유도.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에 접근하게 됐어요. 인생의 숨겨진 표면이오.” 국립극단에서 그녀와 두 번이나 작업한 연출가 니콜라스 하이트너는 그런 복합적인 점이 연기에 드러난다고 했다. “그녀의 연기는 아름다울 만큼 투명해요. 동시에 비밀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죠.”

이틀 뒤, 우리는 테이트 모던 뮤지엄에서 만났다. 네가는 아프로-쿠바-중국계 미술가인 윌프레도 람의 전시를 보고 싶어 했다.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장 미셸 바스키아가 떠오르는 작가라며. 그녀는 오버사이즈 안경을 쓰고 캐멀색 코트를 입고 뛰어왔다. “너무 미안해요.” 숨을 헉헉대며 말했다. 조금밖에 늦지 않았지만, 오는 길에 많은 친구를 사귄 것 같았다. 운전사는 자기 때문에 늦었다고 책임을 뒤집어썼고, 박물관의 보안요원도 네가를 알고 있었다. 전날엔 남자 친구인 도미닉 쿠퍼가 17세기의 호색한인 로체스터 백작 역을 맡은 연극 <리버틴>의 프레스 행사가 있었다. 쿠퍼와 네가는 2009년 연극 <페드르>에서 그리스인 커플로 나왔을 때부터 함께해오고 있다. “7년이에요. 배우 수명으로 치면 4900만 년 정도!” 갤러리를 돌아다니는 동안 네가는 마음에 드는 램의 그림을 발견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폭발한 것 같은 그림이었다. 네가는 채플린 같은 표정으로 작품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보안요원이 나타나서 어린아이 대하듯 제지했다. “봤어요?” 네가는 속삭이더니 빨리 다음 방으로 이동했다. 네가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많이 그렸다. 지금도 그리냐는 질문에 코를 찡그렸다. “저는 취미를 별로 안 좋아해요.” 단호했다. “여가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여행을 하고, 친구들이 저를 버리려고 하기 전에 만나죠.” 그녀는 얼마 전 패티 스미스의 회고록 <M 트레인>을 읽었고, 제이디 스미스의 신작 소설인 <스윙 타임>을 시작하던 참이었다. 제프 니콜스와 다시 일하고 싶고 아이리시 작가인 매브 브레넌의 전기 영화를 찍길 바랐다. 하지만 현재로선 7월에 촬영이 끝나는 <프리처> 시즌 2 이후의 일은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휴가가 절실해요.”

네가를 뉴욕에서 다시 만났다. <러빙>의 프로모션으로 정신없을 때였다. 네가는 “목소리가 72 옥타브는 내려갔어요. 병에 걸린 80세 노인 같네요”라고 했다. 그녀는 대중매체에 나서길 두려워했다. 20분간 지미 펄론의 <더 투나잇 쇼>에 출연하는 것보다 8개월 동안 나체로 무대에서 연기하는 게 낫다고.

<러빙>은 미국 내 인종 문제에 대한 화두를 불러오고 있다. 그녀는 할리우드의 다양성 부족이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제는 창피할 지경”이라고 했다. 배리 젠킨스의 영화 <문라이트>나 에바 두버네이의 다큐멘터리 <13번째> 같은 움직임도 있지만 갈 길이 멀다고. 그녀는 <러빙>이 국립 아프리카계-미국인 역사문화박물관에서 상영된 첫 무삭제 영화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사람들이 <러빙>을 ‘조용한 영화’라고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굉장히 목소리가 큰 영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