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 Is Back

일자거나 구불거리거나, 층이 있거나 없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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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드라마틱해요. 마구 잘라냈거든요. 리얼리즘보다는 인상주의 작품에 가깝죠.” 벨라 하디드가 메트 갈라 레드 카펫에 등장하기 몇 시간 전. 그녀의 헤어 스타일리스트 워드 스티거훅(Ward Stegerhoek)은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후 벨라가 레드 카펫에 모습을 드러내자 워드의 가위질은 패션계에 큰 화제가 됐다. “예상한 반응입니다. 이 짧고 거친 컷은 마법 같은 힘을 지녀요.”

순진한 얼굴의 벨라에게 세련미를 선사한 이 머리 모양의 이름은 보브 헤어. 우리말로 직역하면 ‘단발’이다. 벨라의 변신에서 눈치챘듯 보브 헤어는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동안의 비밀이다. 스티거훅은 나이 지긋한 중년 여인들도 단발로 최대 10년은 젊어 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단언한다. 잠시 눈을 감고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를 떠올려보라. 누구도 그녀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15세 때부터 보브 스타일을 고집해온 안나의 머리는 전설적 헤어 디자이너 비달 사순의 작품. 그녀의 아이코닉한 보브 스타일링은 지금껏 패션 월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브 헤어가 처음 이 세상에 나온 시기는 1900년대 초반, 그러니까 1914년 제1차,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의 사회 활동 기반이 마련되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해질 무렵이다. “전쟁으로 인한 여성의 사회 진출로 편리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이 주목받고 밀리터리 룩, 승마 바지, 테니스복 등이 유행하면서 긴 머리를 고집하던 여성들이 점점 단순하고 보이시한 보브 스타일을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보브 스타일의 유행은 1922년 시작됐어요. 한국에선 1890년대 중반 갑오개혁에 이은 국정 개혁인 을미개혁에 단발령이 공포된 기록이 있고 1929년 기생 중 처음으로 남도 출신 정금숙, 서도 출신 김금도 등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단발머리로 돌아와 한반도 멋쟁이들 사이에 크나큰 화제를 몰고 왔죠.” 아베다 살롱 교육부 김지효의 설명이다.

한 세기 전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가 <버니스 단발머리가 되다>를 집필한 이래 짧은 머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해방된 여성의 동의어였다. 1920년 미국의 여론 잡지 <뉴 리퍼블릭> 편집장 브루스 블라이븐(Bruce Bliven)은 소설 <플래퍼 제인(Flapper Jane)>의 여주인공을 이렇게 묘사했다. “제인은 아주 짧은 최신 보브 헤어에 도전했어요. 뒷머리는 거의 없고 앞은 그보다 약 20% 긴 모습이죠. 그녀의 파격적 스타일 변신으로 인해 작년에 돌았던 루머가 모두 헛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녀의 귀는 누구보다 멀쩡했으니까요.”

이번 시즌 당신의 귀가 드러나든 말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보브 헤어의 전성시대가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보브 헤어의 최대 장점은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스타일이란 것이다. 얼굴형에 따라 다르게 디자인할 수 있는 보브 헤어는 얼굴형 보정뿐 아니라 다양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어 오랜 시간 대중에게 사랑받아왔다.

이런 보브 헤어의 매력은 올해도 유효하다. 유행이 꽃피는 백스테이지만 봐도 알 수 있다. 결정적 신호탄은 지난 2017 S/S 컬렉션 프라다 쇼장에서 쏘았다. 당대 최고 헤어 스타일리스트 귀도 팔라우가 캐나다 출신 신인 모델 앰버 위트콤(Amber Witcomb)에게 턱선 기장의 보브 헤어를 연출한 것이다. 2017 F/W 쇼가 열릴 무렵 전 세계 멋쟁이들의 머리는 하나같이 보브 헤어였다. 프로엔자 스쿨러의 헤어 스타일리스트 홀리 스미스(Holli Smith)의 선택은 린다 에반젤리스타의 머리와 흡사한 90년대 보브 헤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스타일이 매력적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 팝 가수 셀레나 고메즈도 신보를 내놓기 직전 머리를 짧게 잘랐다. 디즈니 채널 쇼 프로그램 <미키 마우스 클럽> 아역 시절 셀레나의 풋풋한 모습과는 영원히 작별을 고하는 강렬한 한 방이었다.

유명 인사와 톱 모델만 설 수 있는 런웨이는 우리 일상과는 180도 다른 화려한 공간이다. 그래서 런웨이의 패션 & 뷰티는 리얼웨이와 간극이 크지만 보브 헤어라면 문제없다. 카다시안과 제너 패밀리가 믿고 머리를 맡기는 스타 헤어 스타일리스트 젠 아킨(Jen Atkin)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머리 감기 쉽고 일상생활이 간편한 보브 헤어를 원한다”고 주장한다. 보브 헤어 마니아이자 <보그> 칼럼니스트 린 예거는 약간의 준비물을 더하면 결과물은 더없이 훌륭해진다고 말한다. “갓투비(Göt2B) ‘울트라 글루드 인빈써블 스타일링 젤’을 추천해요. 보다 정돈된 보브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죠.”

아무리 예쁜 머리도 얼굴형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거울을 들고 당신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계란형 얼굴이라면 안심해도 좋다. 어떤 길이의 보브 스타일도 잘 어울린다. 만약 얼굴이 긴 편이라면 턱선 위 기장이 안전하다. 시각적으로 얼굴형이 짧아 보이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각진 얼굴은 <플래퍼 제인>의 여주인공 제인처럼 앞뒤 기장이 다른 언밸런스 스타일을 권한다. 일자 단발에 비해 시선이 분산돼 얼굴이 한결 작아 보인다. 둥근 얼굴형은 턱선 아래로 커트 라인을 잡고 가운데 가르마를 타면 상대적으로 얼굴이 갸름해 보여 둥근 얼굴형을 보완할 수 있다.

동양인의 모질은 서양인에 비해 강하고 두꺼워 보브 헤어 연출 시 옆으로 붕 떠서 자칫 삼각 김밥 형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니 완벽하게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C컬 스타일링보다는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밖으로 뻗치는 부분은 뻗쳐 나오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가벼운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 모로칸 오일 교육부 이수영의 실패 없는 팁은 ‘염색’이다. “보브 헤어 연출 시 내 머리보다 최소 한 톤 이상 밝은 컬러로 염색하길 권합니다. 숱이 많은 편이라면 무조건. 모발 색상이 어두우면 촌스러워 보일 가능성이 크죠.”

패션에 있어 아무리 도전 정신이 강하다 해도 뷰티 영역, 특히 헤어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그래서 우린 미용실 의자에 앉는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긴 머리를 짧게 잘라달라고 요구한 고객 중 후회의 눈물을 훔친 여인은 없느냐고 묻자 아킨은 코웃음 치며 이렇게 말했다. “천만에, 기쁨의 눈물뿐이었죠.” 뭐, 좀 실패하면 어떤가? 지금은 21세기다. 애써 자른 머리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면 헤어 연장 시술의 도움을 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도전해보길. 선선한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리는 가을은 보브 헤어 도전에 최적의 계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