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브로치
우아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유쾌한 아트 작품으로 변신 중인 브로치. 니트 카디건이 아닌, 바이커 재킷과 랩 스커트, 가죽 장갑에 브로치가 등장했다!
50년대 레이디라이크 룩의 황금기에서 브로치의 활약은 대단했다. 떡하니 달아주는 것만으로 말괄량이 아가씨를 요조숙녀로 변신시켰을 뿐 아니라 사랑의 증표로도 활용됐다. 전쟁에서 돌아온 장군들이 한쪽 어깨를 장식하는 견장이 있었다면, 우아한 숙녀들의 재킷 칼라엔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결혼식을 위해 23캐럿의 불가리 브로치를 선물 받았고, 소피아 로렌, 그레이스 켈리, 다이애나 왕세자비 등 한 세기를 풍미한 아름다운 여인들을 더욱 빛나게 해준 것 역시 브로치였다.
그런 브로치의 이미지가 이번 시즌 미우치아 프라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면? 매끈한 플렉시글라스 소재로 만든 큼직한 브로치는 유쾌한 팝아트 작품처럼 보였고, 초현실적인 컨셉의 프라다 의상에 적절하게 활용됐다. “1940년대 합성수지인 베이클라이트 주얼리에서 영감을 받았죠!” 미우치아의 말대로 자그마한 크리스털 주얼리가 입체적으로 붙어 있는 플렉시글라스 꽃 브로치는 두 겹의 새틴으로 제작된 파스텔 수트와 인조가죽 재킷, 여성스러운 원피스 등에 잔뜩 붙어 있었다. 또 진짜 브로치를 잔뜩 붙인 듯한 트롱프뢰유 새틴 원피스도 등장했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일까요?” 미우치아 여사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는데, 여성스러움에 대한 예찬을 브로치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한 것 만은 확실했다.
“1930~60년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시절 그의 옷을 즐겨 입던 귀족 여인들이 사용하던 브로치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알렉산더 왕 또한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뒤져 오래된 유물을 발견했다. 그건 하우스의 창시자 이니셜을 활용한 ‘CB’ 브로치와 ‘B’ 브로치, 스페인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의 이름을 딴 리본과 크라운으로 장식된 드롭 브로치, 영원한 태양을 상징하는 크레스트 브로치, 어부(발렌시아가의 아버지가 어부였다)에서 영감을 받은 닻모양 브로치 등등. 다양한 형태의 이들 브로치는 랩 스커트, 니트 스웨터, 긴 가죽 장갑, 드레스의 여밈 장식 등으로 사용됐다. 말하자면 브로치는 이번 시즌 발렌시아가 컬렉션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오브제였다.
왕이 고상한 옛 이미지를 부활시켰다면, 샤넬은 트위드 재킷의 한쪽 면을 브로치와 배지로 가득 메웠다. 프랑스적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한 이번 컬렉션에서 칼 라거펠트는 샤넬을 상징하는 모든 이미지를 브로치와 배지에 담았는데, 퀼팅, 까멜리아, 진주, 스키, CC 로고, 독일 음식인 브레첼과 맥주, 벽시계 등등으로 표현됐다. 이런 독특한 모티브들이 트위드 재킷에 장식되자 우아한 재킷이 젊고 유쾌한 의상으로 탈바꿈했음은 물론. 이처럼 브로치를 엉뚱하게 연출한 건 생로랑의 에디 슬리먼도 마찬가지다. 그는 바이커 재킷의 넓은 라펠 한쪽에 앙증맞은 곤충 브로치를 슬쩍 얹었다. 망사를 덧댄 풍성한 미니 드레스에 거미 한 마리, 테일러드 재킷 위엔 장수풍뎅이, 모피 코트에는 나비, 턱시도 재킷엔 왕거미… 펑크와 페티시로 무장된 그의 쇼에 하이 주얼리에서나 볼 법한 클래식한 곤충 브로치라니! 하지만 스트리트 펑크 룩이 하이패션으로 신분 상승하는 데는 약간의 하이엔드적 요소면 충분했다.
캐시미어 카디건과 오랜 인연의 끈을 끓고 이번 시즌 좀더 유쾌하고 재미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브로치. 그런 만큼 스타일링을 좀더 과감하고 재미있게 즐겨볼 필요가 있다. 가령 터틀넥 스웨터의 목주름 부분을 브로치로 슬쩍 여미거나(에르메스), 밋밋한 니트 스웨터를 독특한 철제 브로치로 장식하거나(MSGM), 긴 가죽 장갑 위를 브로치로 장식하거나(발렌시아가), 밋밋한 카멜 코트의 여밈 장식으로 사용하거나(마르니), 베레모 위(MBMJ)에 잔뜩 달거나. 평범한 옷이나 모자, 장갑이 새것처럼 변신하는 건 시간문제. 올가을 브로치의 매직이 시작됐다.
- 에디터
- 김미진
- 포토그래퍼
- YOON MYUNG SUP
- 모델
- 강소영
- 스탭
- 헤어 / 김승원, 메이크업 / 강석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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