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tly Greatly
여자들은 셀린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비 파일로를 좋아한다. 동시대 여자들을 위한 그녀의 작업은 은밀하고도 위대하다.
내가 바라보는 상대는 늘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본다. 짝사랑의 법칙은 사사로운 감정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이치에 해당된다. 패션계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현상처럼 너무도 큰 사랑을 받는 디자이너는 늘 어딘가로 떠나거나 벗어나고 싶어 한다. 약 1년 전, 잠재적 가능성으로만 거론되던 이슈는 구체적 형태를 드러내며 패션계를 공황 상태에 빠뜨렸다. 피비 파일로가 셀린을 떠날 거라는 소문에 상당수는 남아 있는 셀린 컬렉션을 ‘채집’하기 위해 중고 위탁판매 사이트로 돌진했다. 결국 떠도는 루머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하우스의 공식 입장이 담긴 다급한 메모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어딘가로 떠나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떨쳐버릴 수 없다. 그리고 다프네를 쫓는 아폴론처럼 도피적인 디자이너를 향한 짝사랑의 마음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환상이 아닌, 깊이 이해 받았다는 느낌과 동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비 파일로의 셀린 컬렉션이 얼마나 멋진지를 설명할 때면 많은 이들이 가정생활과 일을 병행하는 삶을 묘사하곤 한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곧바로 직장으로 출근하는 여자의 삶. 그리고 그 일상에 적합한 실용성과 우아함을 겸비한 셀린의 옷. 이 공감대는 파일로가 컬렉션 작업을 할 때 늘 자신의 삶을 기준으로 삼는 데서 비롯됐다.
피비 파일로는 갤러리스트인 남편 맥스 위그램, 딸 마야와 두 아들 말로, 아서와 함께 런던 북부에 살고 더 이상 밤 11시까지 일하지 않는다. 가정과 일의 균형에 있어서 절대 타협하지 않는 태도와 노동 윤리는 그녀가 셀린에서 확고히 한 기준 중 하나다. 업무에 치이는 고통스러운 삶은 끌로에와 함께 떠나보냈다. 2001년 파일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직후 끌로에의 매출은 솟구쳤고 RTW부터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전년 대비 수익이 60% 성장했다. 그동안 그녀는 파리와 런던을 오가느라 남편과 공유해야 할 일주일 치 이야기를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안에 몰아서 해치우는 데 지쳐버렸다. 그녀는 이에 대해 “조작된 가짜 삶을 살거나 물건처럼 다뤄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결론은 런던을 베이스로 일하는 조건을 협상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로맨틱한 프렌치 하우스를 떠나겠다는 결정은 바뀌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그녀가 끌로에를 떠난 이유는 명확했다. 끌로에에서는 끌로에의 미학을 따라야 했지만 파일로는 온전한 자신의 신념을 따르길원했다. 지금 그녀는 디자인에 있어서 완전한 지휘권을 가진다. 그게 셀린에서 일하는 이유다.
피비 파일로는 <보그 코리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셀린은 이렇다 할 아카이브도, 독창적인 DNA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나는 이 하우스를 재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흥분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했죠. 지금 셀린에는 우리가 집중하고 개선해 나가는 목적의식이 있어요. 내가 설명해야 할 모든 것은 이미 제품에 담겨 있고요. 나는 이 하우스가 신중하고 느긋하고 편안해지길 바랍니다.”
그녀는 종종 셀린이 무엇을 의미하냐는 질문에 ‘나 자신’이라고 답해왔다. 일견 이보다 오만할 수 있을까 싶지만, 거기에 담긴 진짜 의미는 진지하고 현실적이다. 그녀는 셀린을 입는 동시대 여자들이 자신과 그들을 동일시하기를 바란다. 파일로 자신 또한 그들처럼 일과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양쪽의 필요에 부합하도록 매일 노력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내가 셀린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건 이겁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옷을 입고, 자신이 원하는 걸 입으라는 거죠. 타인을 위한 옷을 입지 마세요. 나는 남을 위해 차려입는 과정에서 무력화되거나 성적 대상화된 여자들의 이미지를 수도 없이 봐왔습니다. 난 우리 고객이라면 우리가 중요시하는 가치에 공감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파일로는 현실의 삶을 위한 디자인을 하며 자신이 직접 입을 만한 옷을 상당수 컬렉션에 포함시키고 실제로 그 옷을 입어왔다. 그녀가 “다리가 세 개 달린 바지 같은 걸 디자인하는 건 사절”이라고 말한 건 유명한 일화다. 파일로식의 클래식함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개인적 상상의 부산물은 셀린 컬렉션에 매우 사적이고도 독특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이것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서 원단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파일로는 클래식한 원단과 새로 개발한 기능성 원단을 동시에 사용하길 즐긴다. 울, 펠트, 울 실크, 면 같은 전통적인 원단 외에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라이크라, 말총, 글리터 등 필요한 원단을 개발하는 건 디자이너뿐 아니라 컬렉션에도 매우 중요한 과정이며 하우스는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원단을 아카이브로 축적하는 과정을 진행 중이다.
그녀가 선택한 원단은 컬렉션에서 지극히 솔직하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제 역할을 한다. 그녀는 원단에 있어서도 보이는 그대로 작용하는 부류를 좋아한다. “우리는 늘 최고급 원단을 사용하죠. 그 점에 있어서 우리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재단에 있어서도 완벽을 기하고요. 우리는 제품을 제작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하우스의 아틀리에는 대부분 프랑스 사람들로 이뤄져 있지만 그들 모두 최고의 하우스에서 경험을 쌓았고 그들이 익힌 기술은 다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죠.”
셀린의 테일러드 아이템의 경우 전통적으로 남성 맞춤복을 제작해온 피렌체 외곽의 카루소 공장에서 제작된다. 안감까지 아름답게 마무리한 정확한 재봉은 장인 정신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런 것들로 인해서 셀린 옷의 평균 가격대는 천정부지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파일로 자신도 300만원대의 셀린 코트가 비싸다는 데 동의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를 바라고 실제로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아름다운 원단으로 잘 만들어진 옷을 사는 건 일종의 투자고, 그 옷은 금세 버려지는 게 아니라 그 옷을 입은 여자의 인생과 함께 오래 지속돼야 하기 떄문이다.
아름다운 실용주의자인 그 자신이 셀린 컬렉션을 위한 최고의 모델임에도 그녀는 자신이 하우스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에 만족한다. 어차피 그녀에게도 최우선은 일이 아니라 가족이니까. 그녀는 스스로 ‘적당히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며, 일에 있어서 자신의 타협적인 태도에 대해 솔직하다.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허덕이며 일하는 패션계에서 이런 태도는 건방지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그동안 화려하고 풍족하다고 여겨졌던 패션계에는 가장 럭셔리한 가치, 즉 인간다운 삶이 결여돼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파일로는 2008년 셀린에 합류하기 전,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3년 동안 잠시 패션계를 떠났다. 그녀 역시 자신이 매우 특수한 케이스였고 혜택을 누렸음을 인정한다. 패션업계는 원한다고 해서 필요한 만큼 충분히 쉬기도 어렵거니와 그런 결단을 내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곳이다. 파일로는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일을 관뒀고 첫 1년은 모든 것이 멋지게만 느껴졌다. 느긋하게 쉬었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몇 주를 흘려보냈다. 컬렉션도, 패션지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게으름뱅이처럼 주야장천 파자마와 트랙 수트만 입었다. 두 번째 해에는 둘째 말로를 낳았고 오직 아이를 돌보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뒤뜰에서 노는 아이들의 에너지가 어색하게 느껴졌고 그녀는 다시 돌아갈 곳이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경제적인 독립 또한 그녀에게 상당히 중대한 이슈였다. 남편 맥스의 수입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파일로는 열세 살 때부터 신문을 돌렸는데, 매주 토요일마다 주급을 받아 자신에게 필요한 걸 사곤 했다. 그 후로 여태까지 그녀에겐 늘 자신의 수입이 있었다. 파일로는 ‘종속된 여자’의 이미지를 싫어한다. 생각하고 판단할 때 온전히 자신을 중심에 두기 위해서는 자신의 수입을 가지는 건 절대적이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더더욱.
물론 그녀는 일을 사랑하고 패션을 사랑한다. 심지어 미친 스케줄과 지옥 같은 데드라인조차 사랑할 정도다. 가정과 휴식에 집중하는 시기를 보내고 자신의 레이블을 내는 것에 대해 생각 중이던 그녀에게 때맞춰 LVMH가 접촉해왔다. 그녀는 기꺼이 일할 준비가 돼 있었다. 또 자신만의 방식, 즉 런던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팀과 함께 브랜드를 새로 단장하는 것에 대한 전권 위임이라는 조건에 대한 의지 또한 확고했다.
셀린으로 패션계에 복귀한 후 강하고 단호한 그녀의 평정심은 그 무엇에도 끄떡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 역시 다른 모든 이들처럼 일과 관련된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이곤 한다. 처방전부터 치료법까지, 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걸 시도했고 결국 명상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녀의 사무실 책상 뒤에는 커다란 통유리창이 있는데 그녀는 공포감이 밀려올 때면 하늘을 보면서 더 큰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한다. 그 순간 당장 해결해야 할 눈앞의 문제나 방 안에서 옷 더미와 씨름하고 있는 자신이 아니라 더 큰 세상과 계획에 대한 상상. 물론 즉각적 처방은 셀린과 어울린다고 할 수 없는 KFC 치킨이지만 말이다.
이런 이야기는 그녀의 스튜디오가 거대한 혼돈 그 자체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 그러나 메이페어 지역 캐번디시 스퀘어에 위치한 셀린의 런던 본사는 갤러리처럼 우아하다. 이곳은 그녀가 셀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후 첫 1년 동안 낡은 건물을 공들여 재건한 디자인 스튜디오다. 그녀의 베이스캠프는 이곳이고 파리에는 한 달에 단 며칠만 머무른다. 대신 그녀가 디자인한 옷을 제작하는 기술자들이 진행 중인 샘플을 보여주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프랑스에서 런던을 방문한다.
조지 왕조 시대 타운하우스 건물 로비에 들어서면 프랑스 사진작가 마린 위고니에(Marine Hugonnier)의 바다 풍경을 담은 사진과 팀 노블(Tim Noble)과 수 웹스터(Sue Webster)의 빛을 내는 조명 작품 ‘포에버(Forever)’가 맞이한다. 2층에 위치한 디자이너의 사무실은 천장이 매우 높고 거대한 창으로 둘러싸여 있다. 벽에는 멕시코 아티스트 호세 다빌라(Jose Dávila)의 작품과 미세한 다이아몬드 분말로 뒤덮인 앤디 워홀의 요셉 보이스 초상화가 걸려 있다(아직도 그 작품들이 걸려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파일로는 그 초상화 같은 광택의 원단을 개발하려고 했지만 다이아몬드 분말 없이는 불가능해서 포기한 적이 있다.
운 좋게도 2017 S/S 컬렉션에서는 원하는 예술 작품을 무대로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셀린 쇼를 위해 파리 테니스 클럽에 설치된 거대한 S자 형태의 이중 거울(자신도 비치면서 건너편도 볼 수 있는) 파빌리온은 댄 그레이엄(Dan Graham)의 작품이다.
“오래전에 뉴욕의 디아 비콘(Dia:Beacon) 뮤지엄에서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습니다.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내 컬렉션 의상이 만화경 같은 댄의 설치물을 통과하며 다채로운 빛깔을 드리우는 걸 보고 싶었어요. 사실 사람들은 파빌리온 벽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컬렉션은 더 복잡한 반사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죠.” 쇼 노트에는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의 육체가 세상에 구속돼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댄 그레이엄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파일로는 늘 그렇듯 사회적 상호작용, 공상과 생활 전반이 자신의 작업을 이끌어가는 주된 원동력이라고 쇼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셀린을 입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용감해지고 안심할 수 있으며 기분 좋게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셀린을 입은 여자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 없고, 입었을 때 자신의 몸이 구속됐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파일로는 너무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고 내성적이며 감춰진 여자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그녀는 아마도 셀린을 통해 보여주는 자신의 디자인만큼이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일 외에 사생활을 철저히 지키고 싶어 하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걸 꺼린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완벽하게 진실해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디자인의 진정성이든, 일시적이고 상업적인 접근에 휘둘리지 않는 중심이든. 셀린에서 하는 모든 것은 순전히 참되고 그녀는 마치 자신의 레이블 작업을 하듯이 거기에 전념하고 있다.
-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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