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Style Travel

2017.05.07

Style Travel

영국의 귀족, 캐번디시 가문의 저택 채즈워스 하우스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500년간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패션을 되돌아보는 〈House Style〉. 런던의 디자이너 최유돈이 이 특별한 공간을 방문한 소감을 〈보그〉에 전해왔다.

영화  속에 등장했던 채즈워스 저택의 풍경. 저택 입구에는 공작 부인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에 입었던 드레스가 자리하고 있다.

영화 <오만과 편견> 속에 등장했던 채즈워스 저택의 풍경. 저택 입구에는 공작 부인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에 입었던 드레스가 자리하고 있다.

햇살이 따사로운 4월 초 어느 봄날, 셰필드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영국패션협회(British Fashion Council)에서 운영 중인 디자이너 후원 프로그램, ‘패션 트러스트’의 일원으로 채즈워스 하우스(Chatsworth House)의 초대를 받아서다.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House Style: Five Centuries of Fashion at Chatsworth> 전시(올해 10월 22일까지)의 ‘프라이빗 투어’를 위한 특별한 초대. 영국의 대표적 귀족 ‘캐번디시(Cavendish)’ 가문이 지난 500년간 이 저택에서 즐기고 함께했던 패션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스텔라 테넌트가 알렉산더 맥퀸 쇼에서 입고, 선물 받았던 블랙 레이스 드레스도 전시 초반에 만날 수 있다.

스텔라 테넌트가 알렉산더 맥퀸 쇼에서 입고, 선물 받았던 블랙 레이스 드레스도 전시 초반에 만날 수 있다.

이 특별한 전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채즈워스 하우스와 캐번디시 가문에 대한 예습이 필요하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 당대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하드윅의 베스(Bess of Hardwick)가 지은 저택은 영국 귀족을 대표하는 캐번디시 가문의 고향이 되었다. 그리고 당대 멋쟁이들이 이 저택을 거쳐갔다. 영화 <공작 부인: 세기의 스캔들>에서 키이라 나이틀리가 연기했던 조지아나 공작 부인부터 프레드 아스테어의 누나이자 초기 할리우드의 스타였지만 찰스 캐번디시 경과 결혼했던 아델 아스테어,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으로 하팅턴 후작과 결혼한 캐서린 케네디, 그리고 영국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미트포드 자매 중 한 명으로 11대 공작 부인이었던 데보라까지. 여기에 데보라의 손녀이자 슈퍼모델인 스텔라 테넌트도 빼놓을 수 없다.

캐번디시 가문의 여인들이 입었던 웨딩드레스들. 왼쪽 끝이 헬무트 랭이 디자인한 스텔라 테넌트의 드레스.

캐번디시 가문의 여인들이 입었던 웨딩드레스들. 왼쪽 끝이 헬무트 랭이 디자인한 스텔라 테넌트의 드레스.

나와 함께 저택에 도착한 팔머 하딩의 듀오 디자이너, 가레스 퓨, 홀리 풀튼 등 함께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을 비롯, 패션 트러스트의 이사진들을 직접 반긴 건 현재 저택에서 살고 있는 12대 데본셔 공작(Duke of Devonshire). 그와 함께 공작의 며느리인 레이디 로라 벌링턴(Lady Laura Burlington)이 우리를 기다렸다. 모델부터 롤랑 뮤레의 뮤즈 겸 디자이너, 패션 에디터와 바이어까지 경험한 그녀는 공작의 아들과 결혼하면서 캐번디시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것도 바로 레이디 벌링턴. 그녀는 직접 미국 <보그>의 해미시 보울스와 함께 500년간 모은 패션 아이템과 초상화, 사진을 정리했다. 여기에 패트릭 킨먼스(Patrick Kinmonth), 안토니오 몬프레다(Antonio Monfreda)가 저택을 바탕으로 전시를 디자인했다(전시의 후원은 구찌가 맡았다). 몇 년 전 나에게 유돈 최 셔츠와 코트를 특별 주문한 적 있어 더 반가웠다.

채즈워스 하우스 앞에 선 디자이너 최유돈.

채즈워스 하우스 앞에 선 디자이너 최유돈.

그들은 우리를 우선 공작 가족들이 머무는 서재 공간으로 인도했다. 그곳에서 공작은 우리에게 근사한 차를 대접하며 이 전시의 기획 의도와 에피소드 등을 간단히 소개했다. 곧 이어진 건 지난 5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패션 역사 여행. 조지아나 공작 부인의 초상화 아래에는 존 갈리아노가 그녀를 바탕으로 디자인했던 옥색 드레스(쇼에서는 스텔라 테넌트가 입었던)가 자리했고, ‘데보라’ 공작 부인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에서 입었던 붉은 드레스가 저택의 입구를 지켰다(영화 <오만과 편견>에서 미스터 다아시가 내려오던 바로 그 계단). 그 밖에도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60주년을 맞아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서 촬영한 사진(당시 전 세계 왕족과 귀족의 옷차림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 데보라 공작 부인이 1953년 무슈 디올에게 특별히 주문한 핑크 새틴 드레스 등도 모두 인상적이었다.

캐번디시 가문의 남성들이 전통적으로 입은 스웨터. 각 세대별로 위트 넘치는 문구를 장식하곤 했다.

캐번디시 가문의 남성들이 전통적으로 입은 스웨터. 각 세대별로 위트 넘치는 문구를 장식하곤 했다.

‘하드윅의 베스’ ‘조지아나 이펙트’ ‘컨트리 리빙 앤 앤터테이닝’ 등 다양한 섹션으로 나뉜 컬렉션 중 나를 가장 매혹한 건 귀족 가문과는 얼핏 어울리지 않을 듯한 현대적 감각과 위트 넘치는 디자인. 아주 전통적인 지방시의 웨딩드레스와 테넌트가 입었던 헬무트 랭의 티셔츠 웨딩드레스가 함께 자리했고, 데보라 공작 부인의 곤충 주얼리 컬렉션과 레이디 벌링턴의 크리스토퍼 케인 로퍼를 한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 등등. 또 남자들이 주로 입었던 위트 넘치는 문구의 스웨터, 여러 군데 기워 입은 헤링본 재킷 등도 기대하지 않았던 매력이었다.

이번 전시를 이끌었던 레이디 로라 벌링턴. 그녀가 구찌 드레스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번 전시를 이끌었던 레이디 로라 벌링턴. 그녀가 구찌 드레스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소더비와 채즈워스 하우스의 직원이 이끌어주었던 전시 투어가 모두 끝나자 공작 가족의 다이닝 룸으로 우리를 다시 안내했다. 아직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는 이곳은 그야말로 우리를 흥분하게 하는 컨템퍼러리 작가들의 보물 창고. 우리와 함께 점심 식사를 즐기던 중 데본셔 공작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캐번디시 가문은 언제나 동시대 아티스트와 스타일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전 세대의 전통만 고집해서는 이러한 컬렉션이 이루어지지 않았겠죠.” 아직 거장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던 루치안 프로이트가 그린 가족들의 초상화가 저택 복도를 장식한 것도 바로 그 이유. 딸기를 올린 아주 영국적인 자두 케이크를 디저트로 대접한 공작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흐르는 시간에 따라 우리도, 스타일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요?”

    에디터
    손기호
    현지 취재
    최유돈
    포토그래퍼
    EUDON CHOI, COURTESY OF CHATSWORTH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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