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전적인 세상에 대비하는 패션의 자세
온통 호전적 뉴스가 지배하는 세상. 대체 우리는 뭘 입어야 할까. 디자이너들은 패션을 통해 보호의 메시지를 전한다.
8월 1일 자 <뉴욕 타임스> 표지는 의미심장했다. 로고마저 검게 물든 표지, 유일한 문구는 다음과 같다. “30년 전, 우리는 지구를 구할 수 있었다.” 그 아래 자리한 기사 제목은 단 한마디. “Losing Earth.” 편집부는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통찰력 깊은 기사만으로 한 권을 채웠다.
세상 이야기를 파고드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면, <뉴욕 타임스> 표지는 매우 적절하다. 한반도는 110년 만에 타오를 듯한 최악의 폭염을 경험하고, 지금도 남부 캘리포니아 들판은 거대한 산불로 불타오르고 있다. 지구 반대편 그린란드에는 결코 녹지 않던 빙하가 녹아내리는 바람에 쓰나미 경보가 내렸고, 서늘한 스웨덴 북부에 자리한 삼나무 숲이 대형 화염에 휩싸였다. 예측할 수 없는 재해로 가득한 지구. 자연 참사뿐만이 아니다. 난민 사태와 정치적 긴장감, 사이버 테러와 주식시장 모두가 우리에게 불안을 가중시킨다.
이토록 호전적 세상에서 패션의 역할은 과연 뭘까. 2018년 디자이너들은 우리를 보호하고 감싸며 안식처를 제공해주기로 암묵적 동의를 한 듯 보인다. 실용적인 작업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스타일이 대표적인 예다. 알 수 없는 질병(오염된 환경에서 비롯된)에 시달리는 줄리안 무어가 등장하는 영화
여성에게 든든한 보호막이 되고픈 디자이너는 또 있다. “여성은 힘을 지닌 동시에 보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공격적인 밤거리로 나가 모험을 즐길 수 있도록 말입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네온 컬러의 나일론 패딩을 더한 외투로 여성들을 거친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애썼다. 몽클레르를 새롭게 디자인한 발렌티노의 피엘파올로 피촐리와 사카이의 치토세 아베, 릭 오웬스 역시 두툼한 패딩으로 모델들의 연약한 몸을 감쌌다. 무엇보다 언제 폭염이었냐는 듯 곧 찾아올 한파에 이보다 더 든든한 동반자가 또 있을까.
젊은 세대에겐 작업복 자체가 흥미로운 영감이다. 뉴욕시의 환경미화원 유니폼을 컬렉션으로 탈바꿈시킨 헤론 프레스톤(Heron Preston)은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결의를 다졌다. 네온 컬러 테이프라는 아이디어는 준야 와타나베, 언더커버, 오프화이트 컬렉션에서도 볼 수 있었다. 런던의 크레이그 그린(Craig Green)과 어콜드월(A-Cold-Wall) 역시 공장 혹은 공사장 인부 작업복을 영감의 대상으로 꼽는다. 딱딱한 나일론에 실용적인 포켓을 더하고 빛을 반사하는 테이프까지 추가했다. “Handle with Care” “Do Not Touch” 등의 문구를 더한 스웨트셔츠가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경향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보호’에 대한 패션 제안은 되돌려 생각해보면 패션계가 그토록 부르짖던 미래주의에 대한 현실적 대안일지 모른다. 햇빛을 반사하는 캘빈 클라인 은박 코트와 트위드 코트에 숨겨진 프라다의 패딩은 2018년 여성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던지라 부추긴다. 패션이 세계를 구원하지 않더라도, 그 속에 사는 이들에게 위안은 안겨줄 수 있으니 말이다. “많은 이들이 아름다움이야말로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번 컬렉션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성과 인류애, 자애로움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 세상을 구할 거예요. 그리고 아름다움도 그 구원에 살짝 도움을 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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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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