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기묘하고 아름다운

2023.02.20

기묘하고 아름다운

신화는 당대의 상상력을 가늠해볼수 있는 좌표다. 이탤리언 일러스트레이터 리비아 카르펜차노는 환상적이고도 기묘하게 신화를 탈바꿈시킨다.

정원은 사적인 공간이지만 물리적인 이유로 공적인 성격을 지닌다. 피렌체 피아차 델라 시뇨리아에 있는 메르칸치아 궁전의 구찌 가든(Gucci Garden)도 그렇다.푸른 잔디는 없지만 구찌라는 브랜드를 다각도에서 이해할 전통의 기록과 현재를 보여주는 실험이 공존한다.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평론가 겸 큐레이터 마리아 루이사 프리사는 구찌 세계를 예술적으로 확장시키는 전시를 열고 오직 구찌 가든에서만 살 수 있는 부티크 전용 제품을 선보여가며 이 정원을 가꾼다. 그 창의적인 향을 맡기 위해 전 세계에서 벌과 나비가 스스로 날아들도록 지금 구찌 부티크 스토어는 일러스트레이터 리비아 카르펜차노(Livia Carpenzano)의 ‘환상’으로 충만하다. 천지창조에 관한 대서사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탐구해온 그녀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기발한 상상을 더했다. 리비아 카르펜차노의 관찰력, 재치, 정교한 솜씨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현실과 다른 어딘가, 환상에 재배치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읽으면서 숲에 대한 묘사와 짐승들의 상징성에 대해 나의 뇌 속에 달팽이 껍데기 같은 소용돌이가 생겼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작은 것’들을 그리게 된 것은 그 경험의 자연적 연장선상이다. 내 작품은 각각의 무게에서 환상과 현실의 각 층을 신중히 교차하며 스미는 악의 위태로움을 묘사한다.” 유서 깊은 아름다움을 동시대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정원에서 리비아 카르펜차노는 현세의 기원을 기묘하면서도 기발하게, 작은 유머를 담아 그려낸다.

구찌 가든을 위해 작업한 작품의 출발이 궁금하다. 풍부하고 비옥한 토대를 제공하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이미지를 구상했다. 최종 탄생한 작품은 몇몇 간결한 그래픽 제스처를 활용해 에피소드를 기록하거나 경험을 간략히 이야기하는 일련의 시리즈다. 나는 신화 속 이름을 기록했고 그 안에서 가련한 자들의 무고한 면모나 동물들의 아름다움을 찾아갔다.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직관적 작업이었다. 처음에 그린 드로잉이 이미 최종 이미지였다.

구찌와 협업은 어땠나. 가족 가운데 평소 구찌를 종종 입는 안드레아를 통해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만났고, 구찌 가든의 독점 컬렉션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다. 중요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와 나 사이에 형성된 놀랍도록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친밀감에 매우 기뻤다. 서로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건전한 욕구를 바탕으로 정제되고 잘 묘사된 미학을 찾는 과정이었다. 정직한 충동이 바탕이었기에 인공적이거나 과도한 의도가 거의 담겨 있지 않았다.

리비아 카르펜차노와 구찌가 협업한 제품이 구찌 가든 스토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도상학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업하게 된 계기는 뭔가. 과거의 미적 코드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 내 작품에서는 자조적 아이러니와 웃음, 가벼운 분위기에 대한 욕구를 찾을 수 있다. 만화나 아동용 도서에서 이와 같은 영감을 찾는다. 터무니없고 무작위 코미디에 의해 잔혹한 주제를 떨쳐버리는 유치한 접근이다. 모든 외부 요소가 결합되어 상징적인 아이콘을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프네 에피소드를 위해 뭉크의 그림 ‘사춘기’를 활용해 아이가 여성이 되는 과정을 찬란하게 묘사했다. 이는 나의 작품 속 주인공이 탈출한 폭력적 상황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책에서 건조하고 몽환적 언어로 묘사된 잔혹한 에피소드다. 악몽을 흐릿하고 유리한 위치에서 본 것처럼 느끼게 했다.

작품 속 동물이나 사람은 새로운 상징인가, 전해 내려오는 상징성을 답습하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 인물들에서 찾은 상징주의는 내 상상력을 뒤흔들었다. 고대의 취향은 늘 내가 좋아하고 나를 들뜨게 만드는 것에 더 가깝게 다가가게 한다. 결국 종잡을 수 없으면서도 꽉 찬, 정말 좋은 이야기를 하기 위한 명분으로 작용한다. 사람은 나체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알몸이란 거짓이나 감추는 것으로부터 벗어난 우리 자신을 의미한다. 비율의 결여와 귀중한 결점을 좋아한다. 거짓을 말하려 하지만 늘 실수하거나 청중을 연극적으로 놀리는 사람이 하는 동작처럼. 물론 나는 우스꽝스러운 에로티시즘도 사랑한다.

아시아 문화에도 관심이 있나. 모든 나라의 대중적 우화 문화를 매우 좋아한다. 아시아 우화를 탐구해본 적 없지만, 서양에는 없는 동물이 등장하거나 이를 둘러싼 인식이 다른 경우가 있음을 안다. 늘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 받길 바란다. 예를 들면 낯선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거나, 혼자 산책하거나, 세세한 꿈의 내용을 전부 기록하거나, 유치한 구절을 읽거나, 위협하는 얼굴을 봤을 때처럼. 가끔 그림 그릴 용기가 사라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좋다.

정교하고 세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작업할 때 고수하는 원칙은 뭔가. 내 손을 최대한 믿는다. 내가 재고하지 않게 하고 모든 망설임과 충동이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하는 도구를 쓴다. 색채를 사용할 때는 오일과 왁스 파스텔을 섞는다. 식품 라벨과 어머니의 빈티지 장갑에서 환상적인 색채 조합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래된 타일의 문양이나 고대 로마의 포장된 표면도 자주 사용한다. 정말 신기한 점은 어디를 보든 재료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보그 코리아>를 위해 재작업해서 보내온 작품
‘Lamporecchio’. 로마 외곽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던 시절 처음 그린 그림 중 하나다. 작품명은 2시간에 걸쳐 도착한 버스 정류장의 이름이다.

당신의 작품은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이해 보인다.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특정한 인상을 받길 바라며 작업할 때도 있나. 몇 년 전 전시에서 어느 관객이 최고의 말을 해줬다. “정말 즐거웠어요”라고. 내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가닿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것을 미리 계획하면 거짓된 메시지에 이를 수 있다. 진실과 솔직한 마음을 담아 그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저 내 작품이 관객의 심기를 살짝 건드리는 ‘뭔가’였으면 한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뭔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에게도 좋다. 어떠한 것도 결정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어떤 소녀였나. 유쾌하면서도 독립적이었고, 수줍음이 많고 사려 깊었다. 아직도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가상 놀이다. 운전하는 6시간 동안 도마뱀이나 고무 밴드의 모험 같은 것에 빠져들기도 했다. 뭐든 잘 먹었고 여러 장르의 영화를 봤다. 어떤 일에도 금방 신이 났다.

최근 골몰하는 주제가 있나. ‘어른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다. 일상에서 작은 것을 바꾸고, 세계를 둘러보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거나 자신에 대해 행복을 느끼고, 귀중한 것을 나누는 행위. 도덕적 원칙보다 더 확실한 것을 찾기 위해 스스로 해야 하는 도전에 관해 자주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언제나처럼, 무시하는 것.
아름다운 것.
보기 싫은 것.
기분 좋은 것.
기분 나쁜 것.

그 모든 것.

어떤 일이 당신 앞에 놓여 있나. 나는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태피스트리를 만들고 싶다. 9월에는 트라스테베레(Trastevere)에 있는 아름다운 스튜디오에서 훌륭한 아티스트이자 소중한 친구와 함께 공간을 나눠 쓸 수 있다.

궁극적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나. 화려한 배경에 우스꽝스러운 인물을 그리고 싶다. 그 안의 메시지는 관객에게 달렸다.

지금 어디서 답변을 쓰고 있나. 드디어 해변가에 와 있다! 이탈리아의 태양이 내리쬐고 들판의 냄새로 가득하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Courtesy of Getty Images for Gucci, Livia Carpenz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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