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GM 창립자가 복구한 이탈리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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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GM 창립자가 복구한 이탈리아 집

2021-10-07T15:40:16+00:00 2021.10.08|

2018년 불어닥친 허리케인 강풍이 이탈리아 리비에라 암석 지대에 자리한 마시모 조르제티의 드림 하우스에 큰 피해를 입혔다. MSGM 창립자와 그의 파트너는 집을 어떻게 복구했을까.

이 커플은 바다에서 미래에 갖게 될 집을 바라보았다.

해안가에 자리한 마시모 조르제티 커플의 은신처에서는 리구리아 바다 건너편 포르토피노까지 조망할 수 있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시가레츠 애프터 섹스(Cigarettes After Sex)의 노래, 지중해에서 자생하는 소나무, 이탈리아 스톤 파인에서 풍기는 진한 향, 야외 그릴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갓 잡은 생선, 잔에 부은 진과 로즈메리 칵테일, 짠 냄새 나는 피부, 모래색 머리칼, 바다에 떠 있는 태양… 마시모 조르제티(Massimo Giorgetti)는 리구리아(Liguria) 절벽 위에 지어진 집에서 맞이하는 7월의 저녁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곳은 이탈리아 리비에라(Riviera)로 알려진 해안 지대이며, 매력 넘치는 지중해의 여름은 정말 유혹적이다.

라팔로(Rapallo) 옆, 저 멀리 포르토피노 베이를 끼고 초알리(Zoagli) 암석 지대에 자리한 조르제티의 집은 주택보다는 은신처에 가깝다. 차를 아무리 가까이 주차해도 숲을 관통해 적어도 10분은 걸어야 집에 닿을 수 있다. 집이 무슨 오아시스인 것처럼 들린다고? 그게 사실이다. “그곳은 영적인 재활 센터 같아요.” 디자이너가 농담을 건넸다. “그곳은 성소입니다. 찾아온 사람들이 보고 놀랐죠. 에너지가 정말 엄청나거든요.”

그 집의 에너지는 처음부터 40대 중반의 조르제티와 남편 마테오(Matteo)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2016년 8월이었다. 이미 그 마을에서 집 한 채를 빌려 오랫동안 살던 커플은 매일 하던 대로 바위를 돌며 카약을 타던 어느 날, 바다에서 이 집을 바라보았다. “그저 ‘와우!’라는 생각만 들었죠.” 위치에 감탄하던 그들의 눈에 어느 노부인과 가족이 볕이 잘 드는 평평한 바위에서 집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완전히 매료된 커플은 그 뒤로 자신들의 드림 하우스를 보려고 보트를 타고 여러 번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뜻밖에 이듬해 6월 그 집이 매물로 나왔다. “어느 날 아침 짐에서 운동하는데 마테오가 광고를 보았다고 왓츠앱을 통해 전해왔죠. 우리는 그것이 그냥 집이 아니라 주택 세 채가 딸린 거대한 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거의 공원에 가깝더라고요.” 커플은 이곳의 이름이 라 베데타(La Vedetta, ‘망대’라는 뜻)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독일군 장군이 소유했던 전력도 들었다. 장군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탈리아에 주둔하는 동안 이곳에 매료되고 말았다. 1929년 부지를 모두 사들여 둥근 창이 달린 원래 구조물에 게스트 하우스 두 채를 증축했다. 그런 뒤 1980년대에 매각했고 브레시아(Brescia)의 사업가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관리가 어려워지자 결국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부지 규모는 조르제티에게 전혀 제약이 되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3개월 후인 2017년 9월 매매계약을 체결했고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충동적이었던 걸까? 그렇다. 경솔했던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15년간 포르토피노 주민으로 살았고, 주요 활동지 밀라노에서부터 작은 마을까지 차로 1시간 반이 걸리지만 이곳이 인연이라는 것을 알았다.

“집이 너무 좋아요. 하지만 처음 밀라노로 이사할 때는 악몽만큼 힘들었죠.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고,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새 브랜드를 론칭한 상태였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조르제티는 2009년 능통한 소셜 미디어 전략에 힘입어 모던하고 당당할 정도로 컬러풀한 스타일의 MSGM을 설립했다. 초알리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패션 산업으로부터 탈출구가 되었고, 그가 성장하던 친밀한 동네를 떠올려주었다. 실제로 친구들이 그 동네에서 빵집, 식당,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다(그의 고향 리미니(Rimini)는 밀라노에서 차로 4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이다).

거대한 돛 두 개가 이 집에 드리웠다. 바위를 깎아 만든 비밀 동굴은 이 집이 간직한 전쟁 역사의 유물이다.

어린 시절 마시모에게는 TV나 컴퓨터가 없었다. 맨발로 뛰어다니고 32명이나 되는 사촌들과 함께 아드리아 해안을 자유롭게 누비는 재미로 살았다. “또래와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가족들은 굉장히 소박했지만 행복한 삶을 추구했죠. 그래서 늘 긍정적인 에너지가 주입되었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위해 그때와 같은 분위기를 다시 조성하는 데 열정을 쏟은 이유다. 그렇지만 다음 해 라 베데타에서의 흥분은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풀장 타일 시공이 마무리되며 1년에 걸쳐 공들여 진행한 복구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2018년 10월, 슈퍼 태풍이 리구리아를 강타했다. 허리케인 강풍으로 방조제가 무너지고 도로가 쓸려나갔다. 슈퍼 요트 여러 척도 해안으로 떠밀렸다. 라 베데타와 다른 주택 레 피에트레(Le Pietre)와 엘리케(Eliche)가 거대한 파도에 완전히 덮이고 말았다. “집 내부를 비롯해 주변의 모든 것이 파괴되고 말았어요.” 조르제티가 말했다. 구글서치로 그 지역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집은 물리적인 겁니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가 기다려왔고 꿈꿔왔던 집이죠. 그 점이 중요했죠. 그래서 완전히 파괴된 그 집을 목격했을 때…” 그가 말끝을 흐렸다.

그렇지만 하나의 구조물로서 라 베데타는 처음은 아니지만 불멸의 존재임이 입증되었다. 그 집의 보수 작업에 즉시 착수했다. 조르제티가 작업을 맡겼던 건축가 미켈레 파시니(Michele Pasini)와 모든 납품 업체가 재작업에 합의했다. 똑같은 방법으로, 그렇지만 반값으로! “모두 마음 아파했고 도와주려고 했어요.” 6개월 후 2019년 5월 라 베데타가 두 번째 보수 작업을 마쳤다. 침수된 물품과 자재 중 절반을 그대로 사용했고, 이전보다 더 특별해졌다. 그래서 커플은 주말마다 잭 러셀, 팬, 토다를 데리고 지체 없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라 베데타는 이제 미니멀리즘의 평온함을 담고 있다. 파시니는 기존 둥근 창에서 힌트를 얻어 그 집을 보트처럼 설계했다. 지금 주방으로 사용하는 기존 망루에는 항해용 파란 선을 둘렀다. 그곳으로 이어지는 교차형 계단(Staggered Staircase)은 요트의 효율적 공간 활용 방식에 대한 오마주다. 갤러리처럼 우드 패널을 붙인 엔터테이닝 공간에는 파시니가 디자인하고 보수한 의자와 테이블이 특색을 이루고 있다. 그의 친구이자 MSGM 세일즈 매니저 시모네 무르자(Simone Murgia)가 만든 도자기 그릇이 사이드보드를 장식하고 있으며, 레몬과 오렌지가 늘 담겨 있다. 커피포트와 야외 점심 식사용 페스토를 만들기 위해 바질을 담아놓은 큰 냄비가 이 장면을 근사하게 만든다.

바다 테마를 이어가는 부엌의 굽은 크롬 난간이 단정한 마스터 베드룸과 그곳에 딸린 욕실로 이어진다. 욕실 바닥에는 500년대부터 리구리아 교회에 사용된 아르테시안 스톤(Artesian Stone)과 화이트 카라라 마블(Carrara Marble) 타일을 교차로 시공했다. 이 집에는 산을 깎아 만든 비밀스러운 작은 동굴이 있다. 이는 라 베데타가 전시에 사용된 것을 보여주는 잔해다.

여름철 노천극장으로도 활용되는 야외 테라스에는 거대한 돛 두 개가 이 집과 아래쪽 평평한 바위에 드리웠다. 태풍이 지나간 뒤 크기가 절반으로 줄었다. “이렇게 그것을 지켜나가고 있어요.” 조르제티가 말했다. “‘새로운’ 것을 억지로 들여놓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아침 7시에 수영(일어나서 2분이면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산에 오른 뒤, 마멀레이드를 바른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아낌없이 그것들을 공유한다.

향기 그윽한 야생 정원 사이에 나 있는 오솔길은 레 피에트레와 엘리케로 이어진다. 조르제티와 마테오의 가족부터 MSGM 스튜디오 팀까지 여러 게스트를 위해 마련한 이 공간은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도록 모던 스타일로 마무리했고 야외 샤워 시설도 갖추었다. 이 절제된 미학은 조르제티가 MSGM에서 보여주는 활기찬 디자인이나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던 푸치의 변화무쌍한 세상과는 거리가 멀다. “저는 ‘자신과 브랜드, 사생활’ 간에 균형을 찾았어요. 바쁘고 시끄러운 곳에 살면 미쳐버릴 거예요.” 밀라노에 있는 자신의 잔혹한 아파트는 그가 자주 입는 맨투맨과 어울리는 회색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색을 좋아하고, 색을 포인트로 사용하지만, 제 마음은 정말 깨끗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머물러야 합니다.”

이곳에서의 삶은 그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휴식을 준다. “이것을 즐기고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는 것이 큰 목표입니다. 영혼을 위한 병원 같아요.”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