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컴포트 크리에이터’는 누구인가요?
COMFORT ZONE
OTT 전성시대.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요즘 세대에게
새로 떠오른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있다!
이름하여 ‘컴포트 크리에이터(Comfort Creator)’. 요리할 때나 잘 때 틀어놓을 정도로 부담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을 올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저를 컴포트 크리에이터라고 불러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제게는 큰 칭찬이죠. 기분이 울적할 때 제 영상을 찾아주시곤 해요.” 유튜버이자 틱토커인 케이틀린 갈라마가(Caitlin Galamaga)가 말했다. 팝송을 들으며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올리는 그녀의 채널 구독자는 16만 명이 넘는다.
많은 이가 ‘아늑한 느낌’을 주는 크리에이터를 찾는다. 그 사람만 주는 편안한 느낌으로 안정을 찾기 위해서다. 최근 갈라마가는 ‘최애’ 컴포트 콘텐츠를 소개하는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녀의 리스트에는 <오피스> <뉴 걸> 같은 TV 드라마부터 유명 게임 유튜버 잭셉틱아이(JackSepticEye)나 발키레이(Valkyrae)도 포함됐다. 사실 이런 현상이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우린 늘 편안함을 찾기 위해 독서를 하거나 TV를 보는 등 다양한 미디어를 소비해왔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TV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 더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이들은 SNS에서 시청자와 직접 교류하고 댓글에 답변을 달며 오랜 시간을 보내니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기본적으로 집단에 속할 때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본능적 욕구를 지니죠.” 정신의학과 전문의 정동청 원장은 사회가 발달하고 직업이 세분화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대화 소재를 누군가에게 전달해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등장했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미디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된 ‘통로’ 역할을 한다고 덧붙인다. “미디어 자체가 우리에게 심리적 만족감을 준다고 정의하기보다 미디어를 ‘통로’로 접하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심리적 편안함을 제공해요. 이들의 스토리에 감정 이입이 되어 때로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때로는 연민을 느끼며, 때로는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거죠.”
팬데믹으로 지난 2년을 잃어버린 우리는 여전히 미디어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위로받길 원한다. 2020년 여름, <뉴욕 매거진>엔 대중문화 평론가 캐서린 반아랜돈크(Kathryn VanArendonk)의 ‘컴포트 TV의 시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반아랜돈크는 기사를 통해 팬데믹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차 <브레이킹 배드> 같은 잔혹물에서 <아바타 아앙의 전설>처럼 가볍고 유쾌한 시리즈물이나 <도전! 용암 위를 건너라> 같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의 불안감과 당혹감이 극에 달하고 TV 시청이 안전하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 되면서 편안함을 주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류 콘텐츠 또한 큰 액션이 있거나 웃겨야만 주목받는 방식에서 그저 잔잔하게 ‘나’다운 걸 보여주는 식으로 트렌트가 변모한다는 것이다(친구와 함께 있을 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일례로 노홍철과 정지훈이 국내 여행을 하며 그저 ‘놀고먹는’ 넷플릭스 웹 예능 프로그램 <먹보와 털보>, 잔잔한 일상을 공유하는 ‘일상 브이로거’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배우 신세경과 여성 듀오 ‘다비치’ 강민경의 유튜브 채널을 비롯해 2022년 버킷 리스트부터 극한의 몸매 관리법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쏟아내는 뷰티 크리에이터 송지아의 ‘Free지아’가 있다.
영상을 보며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기분을 전환하기에 어린 구독자들은 컴포트 크리에이터를 ‘애착 담요’에 비유한다. 전문가들은 요즘 ‘컴포트 크리에이터’가 주목받는 것은 1인 가구의 증가와 관련이 깊다고 말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허전함을 달래주고, 우울한 사람들은 우울한 생각에 빠져들지 않게 돕고,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그들의 역할 아닐까요? 거기다 기존 미디어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콘텐츠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집중해야 했다면, 컴포트 크리에이터가 생산하는 콘텐츠는 그런 부담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정동청 원장이 덧붙인다.
연인이나 친구, 가족과 함께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면서 실제 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처럼 상대방을 챙겨줘야 한다는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이. 이런 이유로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와의 관계를 정신 건강 측면으로 해석하는 이도 많다. “많은 유튜버가 자신의 정신 건강 상태를 솔직하게 공개하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정신 건강에 대해 더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갈라마가의 말이다. “사람들은 드라마의 등장인물에게 공감하지만 그들은 허구의 인물들이죠. 하지만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실존 인물이에요. 그래서 이들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더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거예요.”
130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틱토커 셸비 레나이(Shelby Renae)의 팬들은 레나이를 ‘컴포트 크리에이터’라고 부른다. 레나이는 라이브 방송이 어린 팬들과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를 형성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많은 팬이 라이브 방송을 좋아하고 안락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라이브 방송은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죠. 몇 시간 계속되는 방송에서 누군가가 쉬는 걸 보게 되니까요. ‘먹방’이나 편안한 팟캐스트와 같은 잔잔한 스트리밍 방송도 친구와 쉬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미디어나 온라인 플랫폼의 소비자가 매체를 통해 유명인과 심리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하는 ‘준사회적 관계’. 이때 콘텐츠 소비자는 이 관계를 상호작용으로 느끼지만 실제로는 일방적 관계라는 점에서 소비자의 환상에서 형성되는 관계로 해석된다. 기존 준사회적 관계는 일방성이 강하고 관계를 소비하는 팬덤이 익명성에 묻힌 존재였다면, 대안적 ‘준사회적 관계’는 개인에게 맞춤형 관계를 제공하고 일정 수준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 큰 정서적 만족감이 느껴진다는 장점이 있다. 단, 콘텐츠의 소비자가 이런 관계를 ‘준사회적 관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실제 ‘사회적 관계’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순간, 만족감은 오히려 더 큰 실망감으로 바뀔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며, 콘텐츠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도 다방면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기사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점은 ‘준사회적 관계’가 절대로 ‘사회적 관계’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사회적 관계도 직업적 관계, 사교적 관계 등등 다양한 종류가 있겠지만, 콘텐츠 소비자가 ‘준사회적 관계’에 기대하는 것은 연인이나 가까운 친구에게서 느낄 수 있는 수준의 정서적 친밀감이다. 그런데 정서적 친밀감을 경험케 하는 콘텐츠 제공자에게는 그런 관계가 결국 자신이 하는 일의 연장선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일대일 관계에서 가능할 정도로 깊은 수준의 정서적 친밀감을 여러 명의 불특정 시청자와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닐까? 환상과 실제를 착각하는 순간, 혼돈이 발생한다. 극단적 사례로, 인터넷 개인 방송에 빠져서 자신의 수입 이상의 지출을 하고 그걸 메우기 위해서 강력 범죄까지 저지른 예는 ‘준사회적 관계’를 실제 관계로 착각했을 때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콘텐츠 향유의 시대, 미디어 노출을 건전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균형적 소비가 해답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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