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우크라이나> 에디터가 말하는 전쟁의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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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 우크라이나> 에디터가 말하는 전쟁의 참상

2022-08-05T20:36:17+00:00 2022.03.17|

2월 24일 새벽 러시아가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수도 주변 곳곳에는 미사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인이라면 영원히 잊지 못할 끔찍한 광경에 대해 <보그 우크라이나> 직원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밟은 순간, 우리 편집 팀 대부분은 우크라이나에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지금, 비참한 나날을 보내고 우리가 살아남은 과정을 여러분께 이야기하고 싶다. 끔찍하던 아침은 이런 말과 함께 시작되었다. “러시아가 우리를 공격했대요.”

비올레타 페도로바(Violetta Fedorova), <보그 우크라이나> 선임 에디터

2월 24일 오전 6시 이웃에게 걸려온 전화에 잠에서 깼어요. “러시아가 침공했대요. 지금 보리스필(Boryspil) 공항에 폭격을 가하고 있어요. 우리랑 함께 가고 싶으면 얼른 짐을 싸세요. 우린 떠날 거예요.” 우린 15주간 떠나 있을 준비를 해야 했어요. 중요한 문서, 현금, 옷가지와 물을 챙겼어요. 마지막으로 아파트의 문을 걸어 잠근 후, 저는 신께 이곳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죠. 우리는 키이우(Kyiv)에서 50km 떨어진 시골 저택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곳까지는 약 9시간이 걸렸죠. 거기서 며칠 머물다 집으로 돌아가길 바랐어요. 저녁이 되자 군용 비행장이 여전히 운용 중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졌어요. 러시아 군인들이 빼앗으려고 맹위를 떨치고 있기는 했지만요. 2월 25일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곳을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폭발음이 멀리서 들리긴 했지만 러시아군이 키이우로 오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머물던 집은 그 길 위에 있었어요.

우린 우크라이나 서부로 가기로 했어요. 남자 친구의 가족이 그곳에 살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29시간 동안 800km의 거리를 달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거의 이틀간 잠을 자지 못했고, 단 1분도 멈추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애썼어요. 교통 정체를 피해 들판을 가로질러 갈 땐 진흙탕에 빠지기도 했어요. 2월 25일 저녁 우리는 스타로코스탼티니프(Starokostyantyniv)의 비행장에 떨어진 로켓을 간신히 피했고, 지역 간 검문소를 지날 때는 꽉 막힌 차량 속에서 수차례 검문을 받았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차를 모는 것이었어요. 차에 기름을 넣는 문제도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혔죠. 주유소를 찾더라도 차 한 대당 겨우 20리터만 주유할 수 있었고, 많게는 50대가 대기할 때도 있었어요. 굉장히 두려운 여정이었습니다.

엄청난 의지와 몸에서 뿜어 나오는 아드레날린 덕분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어요. 지금 저는 슬로바키아 국경에서 겨우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보그 우크라이나> 업무를 본격적으로 처리하며 해외 언론과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카르파티아(Zakarpattia)에 이제 막 도착한 사람들을 도와 머물 공간을 찾아주고 있어요.

키이우를 떠난 이후 저는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더 성장하고 성숙해진 것 같은 느낌이죠. 피란길에 오른 후 제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사실을 오늘 깨달았어요. 그 어느 때보다도 냉정하고 단호한 마인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다리아 슬로보댜니크(Daria Slobodyanik), 컬처 에디터

전쟁이 발발하던 순간 저는 자고 있었어요. 남자 친구의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깼죠. “공습이 시작됐어요.” 그의 동료 간호사가 말했어요. 시계를 보니 오전 5시 37분이었습니다. 몇 분 후 폭탄 소리를 들었는데, 우리 방공망이 가동해 러시아의 공격에 대응한 것이었어요. 그때까지도 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출근해야 하나 고민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다음 폭발음이 연이어 들렸어요(브로바리(Brovary) 군 기지에 미사일이 떨어진 소리였어요). 출근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죠. 곧바로 우리는 키이우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 남자 친구는 내과 의사로, 키이우의 군 병원에서 구급 의료 대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전 7시 그는 군 병원 호출을 받았습니다. 남자 친구는 병원에 다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매일 말해주는데, 이건 지난 며칠간 제가 들은 최고의 뉴스예요.

위기 상황에서 제 민첩한 실행력은 살아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거예요. 전쟁 중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아요. 그리고 오전 8시경 나는 현장에 있는 동료에게 내가 키이우에 계속 머물 예정이며 이 사태에 대해 <보그> 기사를 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이런 모습의 패션 잡지 웹사이트를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에요. 트렌드를 살펴보고 유명 인사를 인터뷰하는 대신, 지혈하는 법과 우크라이나 군대를 돕는 방법에 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키이우에 머무는 것에 관해 글을 썼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무엇이 특별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에겐 책임져야 할 아이들도 없고, 이웃과 함께 피신처로 사용하는 주차장이 있으며, 앉아서라도 잘 수 있는 자동차도 있어요. 우리는 떠나야 할지 말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냥 여기에 있는 것뿐입니다. 저는 할 수 있는 건 뭐든 하려고 합니다. 지역 방위부를 위해 메밀 요리를 하고 군 병원을 위한 음료를 구매하며, 우크라이나 디지털 변혁부에서 창설한 IT 군대를 돕고 있습니다. 이웃 사람들과 함께 집 앞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있는데, 여기서 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극소수일 뿐이에요. 이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기를 강력히 바라죠. 이를테면 오크맛디트(Okhmatdit, 어린이 병원)나 다른 병원에 음식을 가져다주는 일 같은 것 말이죠. 자원봉사자들에 따르면 지금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와 의사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키이우에서 사이렌 소리가 그렇게 자주 울리지 않았으면 해요. 사이렌이 울리지 않는 단 몇 분만 살아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죠.

우리는 대피소에서 나흘 밤을 보냈어요. 앞으로 며칠을 더 보내야 할까요? 하룻밤이면 최소 다섯 번 이상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첫째 날 밤에는 모든 것이 흔들렸어요. 우리 근처의 국방경비대 기지를 중심으로 전투가 있었다고 해요. 공중에서 목표물을 공격하는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저는 단순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죠. 마침내 적군을 물리치고 포돌(Podol)에서 마시는 향긋한 커피. 머리를 감을 수 있는 평범한 행복을요. 지금으로선 머리를 감는 것이 두려워요. 물소리 때문에 경보음을 놓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거든요.

매일 아침 8시 잠에서 깨면 아버지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몰래 받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오데사(Odessa)에 계시고, 아버지에게서 오는 전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전화입니다. 전쟁 발발 후 처음 며칠간 제가 정말 두려움을 느꼈을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최전방에 있는 사람들, 정말 중요한 사람들을 계속 생각합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있는 처남의 동료 야로슬라프(Yaroslav), 체르니히우(Chernihiv)에서 전투 중인 올해 스무 살이 된 처남 바냐(Vanya), 러시아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은 구급차에 있던 구급 의료 대원들, 주요 지역에서 실시간 현장 상황을 전해오는 기자들. 우리 대통령. 나라를 아끼는 수천 명의 사람들. 전쟁은 이례적으로 우리를 똘똘 뭉치게 해주었어요. 값진 삶의 교훈이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큽니다.

 

이리나 볼로드코(Irina Volodko), 세일즈 매니저

저는 그날을, 그 차가운 공포를 영원히 기억할 것 같습니다. 2022년 2월 24일. (…) 남자 친구의 전화기에 울리던 그 벨 소리. 그 시간에는 당연히 누구도 그냥 전화를 하지 않죠. 동시에 저는 뉴스를 봐야겠다는 직감에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다른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서둘러요, 전쟁이 시작됐어요.”

요 며칠 내내 저는 봉쇄된 키이우에 머물고 있습니다. 공습으로부터 대피해야 한다는 내용의 경보음이 끊임없이 울려 두려움을 느낍니다. 언젠가는 집으로 걸어가 진입로 입구까지 간신히 도착한 적도 있어요. 아파트 단지로 가는 지름길을 택하기 위해 방향을 틀었는데, 사이렌이 다시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이 걱정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걱정되고, 내가 옳은 결정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불안합니다. 모두가 그러하듯, 누군가와 연락할 때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 이야기를 합니다. “괜찮아?” 때때로 불안감은 신경쇠약과 눈물로 그 모습을 바꾸죠.

 

크세니아 샤고바(Ksenia Shagova), <보그 우크라이나> 브랜드 매니저

우리 모두 그렇겠지만, 전 죽을 때까지 2월 24일을 잊지 못할 거예요. 이른 새벽 저는 눈을 떴어요. 뉴스를 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죠.

“뉴스 봤어?”

“아니, 아직.”

“키이우에 폭탄이 떨어지고 있어.”

우리는 계획이 있었고, 준비해놓은 것들이 있었어요. 그러고는 뭘 챙기기로 했는지 잊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아파트를 뛰어다녔어요. 동시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죠. 양치질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안 섰어요. 거리로 나가, 곤차 거리(Gonchar Street) 오르막을 따라 걸었습니다. 조용히 일하러 가는 사람들, 가게에 빵을 가져가는 이들, 백팩을 멘 남자들을 마주쳤죠.

우리는 키이우 근처 농장에서 이틀을 지냈는데, 한 명이라도 늘 경계를 설 수 있도록 교대로 잠을 잤습니다. 잠이 들까 걱정되었지만, 제 교대 시간이 끝날 때까지 무사히 기다릴 수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우리는 앞만 보고 자동차를 몰았어요. 탈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큰 기쁨이었습니다. 최근 키이우 근처에 있는 수많은 교량과 도로마저 파괴되었어요. 제 친구가 저에게 컴퓨터를 주었어요(제 것은 사무실에 있어요). 그날 저는 처음 잠이 들었고, 업무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제 조국을 위한 최소한의 쓰임이라도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어요.

 

마리나 슐리키나(Maryna Shulikina), <보그 우크라이나> 에디터

전쟁에 대한 저의 인상은 역사책,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의 소설, 극적인 영화, 목격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어요. 과거의 사건은 낭만주의, 고통, 연민, 위대함, 승리가 뒤섞인 세상의 기억 속에서 모아졌죠. 그러나 2월 24일 공습은 그 이전의 삶,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놓았습니다. 이제 전쟁은 그 후 따라올 조치와 행동을 결정짓는 무자비한 분노 그 자체로 보입니다.

이 분노는 저를 움직이게 하고 동기를 부여하며, 그 어떠한 주저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요즘 저를 유일하게 두렵게 하는 것은 바로 말(Words)입니다. 동료들, 여러 사람과 함께 우리는 정보 전쟁의 군사가 되었어요. 필터링과 검토를 마친 뉴스가 끝없는 강물처럼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기본 욕구는 권위를 잃었고, 조금 더 대담한 욕구는 자취를 감췄어요. 우리 머릿속을 차지한 유일한 생각은 어떻게 하면 이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가였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화두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스베틀라나 로슈크(Svetlana Roschuk), 상무부 책임자

전쟁이 나기 3일 전, 저는 아버지가 계신 루츠크(Lutsk)로 향했어요. 흘러나오던 뉴스와 제 직감, 공포감이 더해져 불안감을 느꼈거든요. 새벽 5시 우리는 두 번의 폭발음에 잠에서 깼어요. 근처 군용 비행장에 폭격이 있었죠. 비행기는 일찌감치 이륙해 정찰 임무 중이었습니다. 다음 날 리우네(Rivne), 리비우(Lviv), 볼로디미르(Volodymyr)의 비행장도 공격을 당했어요.

아직도 저는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21세기 유럽의 중심에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 잘 상상이 안 됩니다. 저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뉴스를 보며 비명을 지를 뿐이에요. 매일 친척과 친구들에게 연락해 무사한지 묻고 있어요. 러시아군이 키이우, 하르키우(Kharkiv), 체르니히우(Chernigov)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모든 소중한 도시를 엉망으로 만들고 파괴하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너무 괴로워요. 일반 시민과 아이들이 죽어가는 과정은 또 어떨까요. 이제 돌아갈 곳도 없습니다.

저는 사이코패스를 향한 분노와 증오로 울부짖으며, 우리 국민, 군대, 예전에는 극도의 냉소로 바라보던 대통령을 향한 자부심으로 눈물 흘립니다. 솔직히 우리 대통령에게 이 정도의 모습을 기대하지 못했어요. 그는 장난기 있는 얼굴을 가진 용맹한 호랑이입니다.

 

알라 아키멘코(Alla Akimenko), <보그 우크라이나> 번역가

저는 수미(Sumy, 수미주의 주도)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부터 군사작전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들었어요. 수미는 우크라이나 북동쪽에 자리한 도시로,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 지역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간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어요.

불안한 요 며칠간, 수미 시민들은 적군을 상대로 싸웠고 진정한 강인함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어요. 러시아 침략자를 향한 증오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어요. 살인과 파괴를 향한 혐오감 역시 그랬죠. 러시아군의 폭격을 피해 수미 시민들은 어린아이들과 함께 대피소에 머물러야 합니다.

시민들이 일제히 방위군으로 합류하고 있으며, 도시를 용감히 수호하고 있어요. 이번 주 철도 근로자 두 명이 무기도 없이 적군의 탱크를 억류해 그 안에 있던 군인을 붙잡았어요. 러시아군은 도로에 장비를 버리고 있고, 우크라이나인들은 버려진 이 무기를 잘 활용할 방법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수미 시민들은 힘을 합쳐 적군에 맞서 싸우고 있어요. 평생 러시아어를 써온 사람들조차 자신의 정체성을 우크라이나인으로 바꾸고 있어요. 어쩔 줄 모르는 패닉 상태가 아닙니다. 우리 조국을 적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결의만 있을 뿐입니다.

 

알료나 포노마렌코(Alyona Ponomarenko), 뷰티 에디터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은 더없이 공포스러운 문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4시 정각, 키이우에 폭격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2월 24일 저는 불안감에 뒤척이다 뉴스를 보려고 일어났어요. 그리고 몇 분 후 진동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것이 전쟁이라는 게 실감 나지 않았죠. 21세기 문명화된 유럽에 히틀러는 죽은 지 오래니까요. 그런데 이제 그가 되살아난 것 같았어요.

(…) 우리는 도시 반대편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죠. 하지만 이동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키이우는 교통 정체로 꽁꽁 묶여 있었어요. 아이와 어른들, 개, 고양이 모두 탈출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키이우 근처 시아버지 댁에 들렀습니다. 자물쇠조차 없는 나무 문이 달린 지하 저장고가 있었는데, 그곳을 대피처로 삼기로 했습니다. 오이, 딸기잼, 당근 상자가 쌓인 선반이 가득했죠. 너무 추워서 입김이 눈으로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폭격이 있을 때면, 우리는 밖으로 나가 의자에 앉아서 지켜보았어요. 공포로 뼛속까지 얼어붙었죠. 그리고 조용해지면 우리는 피로감에 쓰러지는 듯했고, 짧은 잠을 자기 위해 집으로 향했어요. 옷은 그대로 입고요. 낮 동안에는 <보그 우크라이나> 기사를 썼습니다. 평소의 뷰티 팁 대신, 상처의 출혈을 멈추는 방법이 게재되었지요.

<보그 체코>에서 일하는 동료 신디 케르베로바(Cindy Kerberová)가 자주 메시지를 보내주었고, 머물 곳과 여러 도움을 주는 동시에 공감으로 제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딱 한 번 만난 것이 전부인 신디는 기꺼이 저에게 손을 내밀었고 마음을 활짝 열어주었어요. 그녀가 없었다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했을 거예요.

도중에 우리는 지인의 집이 있는 프랑키비츠(Frankivsk)에 들렀어요. 따뜻한 집이 우리를 환영했죠. 음식으로 꽉 찬 식탁,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 편안한 침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피란처와 집을 오가며 살던 나날, 진 빠지는 도로에서의 시간, 2시간 동안 차가운 바람이 살을 에는 도로 한복판에서 바람 빠진 타이어를 교체해야 했던 순간까지, 그 모든 것을 겪은 후 맞는 따뜻한 환대에 저는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비상 경계선으로 향했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어요. 중간에 먹을 샌드위치까지도요.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조국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내 나라와 함께 있겠다고 결심했어요.

우리는 조국을 돕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크라이나인입니다. 함께 힘을 합치면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신께서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강합니다. 전 세계가 우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선과 악의 대결이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선이 결국 이길 것을 압니다.

 

발레리아 라코마(Valeria Lacoma), <보그 우크라이나> 에디터

2월 24일 오전 5시 남자의 고함에 잠에서 깼습니다. “레라, 일어나! 전쟁이 시작됐어!” 저는 충격을 받았죠. ‘너무 호들갑스럽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저는 여행용 가방을 꺼내러 갔어요. 가방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담았습니다. 동시에, 그 누구도 이 비극의 규모를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마을을 벗어나기로 했어요. 그러면 조용해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마을을 벗어나자, 상황이 굉장히 심각하다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엄청난 교통 정체, 주유소 앞에 늘어선 수백 대의 차량, 슈퍼마켓의 혼잡한 대기 줄, 문 닫은 약국까지. 모든 이의 눈에 두려움이 서려 있었습니다. 저는 소셜 미디어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러시아인들이 우리나라를 비방하는 무서운 영상을 발견했어요. 그 후 도시를 떠난 것이 실수였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위험 지역에 있었으니까요. 러시아 군대가 우리가 있는 쪽으로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방공호의 부족, 근처의 군사 기지, 우리 집에서 500m 떨어진 곳에서 탱크 부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정보까지. 날이 갈수록 모든 것이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들었어요. 처음으로 폭탄이 폭발하는 걸 직접 느꼈어요. 폭격기가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도시로 연결된 교량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사흘 동안 잠을 거의 자지 못했어요. 네트워크 연결, 음식, 물, 약도 없이 도시로부터 완전히 차단될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때 저를 집어삼킨 공포와 무력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언제든 삶이 끝날 수 있다는 감각이 매일 더 커져갔습니다. 신의 가호로, 우리는 키이우를 벗어날 수 있었어요. 길고 지난한 여정이었습니다. 어떤 도로는 폭파되었고, 어디에나 폭발음이 난무했으며, 공중에서는 전투가 벌어졌고, 수없이 많은 검문소를 우회하거나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순조로운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길게 늘어선 줄에서 기다려야 했고, 그 긴 줄 때문에 도시 통금 시간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저는 신께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그리고 자동차에 기름을 넣을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들판을 가로지르다 멈춰 꼼짝달싹 못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다행히도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갔습니다. 지금 저는 키이우를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우크라이나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어요. 이 악몽이 빨리 끝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