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발리에 집 짓기

2022.03.29

발리에 집 짓기

집 안에서도 정서가 충족되는 환경이 절실해 발리에 집을 지었다. 인내심이 늘었고 자아 탐색의 시간도 길어졌다.

내 집은 전망이 좋다. 삼면이 트인 거실에선 바다와 숲, 일몰과 일출이 보인다. 작은 인피니티 풀 끄트머리엔 아궁 화산이 컵케이크처럼 얹혀 있다. 정원엔 야자수, 파파야, 망고, 아보카도, 바나나가 자란다. 공사가 끝나면 여기에 꽃을 더하리라. 부겐빌레아와 플루메리아, 붉고 흰 장미를. 매일 그것들에 둘러싸여 요가를 할 것이고, 카페의 오픈 키친처럼 설계한 주방에서는 킨타마니에서 갓 따온 커피콩을 볶고 호밀빵을 구울 것이다. 하늘을 떠다니는 연인과 바이올린 켜는 염소가 등장하는 샤갈의 풍경화 같은 그림 일기를 매일 써나갈 것이다. 이 집이, 그러니까, 완공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나는 망한 건축 회사 사장의 딸이다. 나 자신이 시골 주택에서 오래 살았고, 주변에 ‘집은 소유가 아니라 안식을 위한 공간’이라 믿는 철없는 낭만주의자들이 많아서 빌라 수리부터 상업용 빌딩까지 온갖 건축 괴담을 섭렵했다. 그래 서 누가 공사를 한다면 나는 일단 말리고 본다. ‘집은 짓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대리석에 음각해 전 세계 주민 센터에 걸어두고 싶다. 니체나 쇼펜하우어나 마크 트웨인 같은 죽은 백인 남성의 이름이라도 도용해서 모두가 기억하게 하고 싶다. 더구나 주택? 대도시 아파트 대출금을 갚기 위해 평생 노동하는 것이 치사하다고 전원주택 청소, 수리, 유지, 관리라는 또 다른 평생 노동을 선택한다? 다른 동기가 있지 않는 한 후회할 것이다.

그걸 다 알면서 어쩌다 내 집을 짓게 되었는가 하면, 잠시 정신이 나갔다고 해두자. 원래 부동산은 미쳐야 미치는 것이라고 버지니아 울프인가 백범 김구 선생인가 누가 그랬다. 코로나 록다운이 결정적이긴 했다. 나는 원래 떠돌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집이란 다음 여행을 위한 베이스캠프일 뿐이어서 단출할수록 좋았다. 집 하나 관리하는 걸로 부족해서 케렌시아를 갖겠다며 바닷가에 통유리 별장을 짓는 오디오 수집가나 텐트 꾸미기에 진심인 장박 캠퍼들, 야산에 움막을 짓는 자연인들을 이해 못했다. 하지만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시간이 반년 동안 지속되자 집 밖에 안 나가도 정서가 충족되는 환경이 절실했다. 전원생활 유튜브를 찍겠다고 수억 들여 농가를 꾸미는 사람들도 있는데, 마침 발리에서 최고의 전망을 가진 땅이 ‘코로나 세일’ 중이니 좋은 투자가 아닌가. 나는 체온만으로도 식물을 기절시키는 마성의 살식마인데 그땐 어찌나 정신이 나갔던지 열대의 타샤 튜더가 되겠다는 소망까지 품었다. 딴에는 똑똑하게, 건축가가 장담하는 기간과 예산의 1.5배를 각오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훗, 나는 당신들이 흔히 보던 어수룩한 건축주가 아니라고! 덤벼보시지!

결국 4개월이면 짓는다던 집은 15개월째 완성이 안 되고 있다. 비용은 건축가 입장에선 1.3배 정도가 되었으니 선방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입장에선 그보다 큰 손해가 났다. 늘어난 기간만큼 임시 거주지의 월세가 추가 소요되었고, 환율이 폭등했고, 계약서에 없는 비용은 계속 불어나는 중이다. 계약서에 설비 항목이 있으면 보통은 ‘아,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게 해준다는 거구나’ 생각하지 ‘이 집에는 펌프가 필요한데 그 펌프를 보관할 창고를 누구 돈으로 어떻게 지을지는 추후 별도 협의하자’는 의도가 담겼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지 않나. 모든 항목이 그런 식이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건축가는 “두 달 뒤엔 진짜 완공”이라는 말을 염불처럼 외고 있는데, 진정 안타깝고 두려운 것은 그 두 달이 여러 번 갱신된 지금도 그가 저 말을 할 때마다 진심이라는 사실이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발리에서 외국인이 믿고 맡길 시공사가 흔치 않다 보니 내 집을 포트폴리오 삼아 작업을 늘려가려던 건축가 친구는 공사가 끝나기도 전에 주문 폭주 사태를 맞았다. 인부들은 공사 감독이 지시를 해야, 공사 감독은 건축가가 지시를 해야, 건축가는 건축주가 닦달을 해야 움직이는 것이 생리다. 그런데 건축주는 무지하고 건축가는 바쁘니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 와중에 건축가가 불법 목재업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작업반장이 돈을 훔쳐 달아나고, 인부가 코로나에 걸리거나 음주 운전으로 사망하는 사건까지 생겼다. 건축가의 경험 부족도 문제였다. 이곳에서 접한 다양한 건축 괴담을 고려하면 그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다만 현장을 잘 모르니 바람과 실행 사이에서 큰 오차가 난다. 제작 일주일, 설치 사흘이면 된다던 목공 작업이 가용 인원을 총동원하고도 한 달 반이 걸리는 식이다. 작업의 완성도는 논외로 하자. “샤워 부스가 설계도보다 가로세로 10cm씩 작네요? 하하. 괜찮습니다. 44 사이즈로 다이어트를 해볼게요. 빨리만 끝내주세요.” “문틀이 모두 1도씩 기울었네요? 아, 수평계가 고장이었어요? 괜찮습니다. 큐비즘이라 해두죠.” “여긴 왜 타일이 들떴죠? 아, 아닙니다. 가구로 가리면 되죠.” “이 벽은 왜 왁스 자국이 얼룩덜룩하죠? 다시 하긴요. 선반을 달게요! 제가 책이 많거든요. 부디 빨리만…” “데크의 목재 패널을 가로로 붙이냐 세로로 붙이냐? 마 빠르고 싼 방향으로 해주이소.” “집이란 게 물 안 새고 기둥 안 무너지면 그만이죠, 안 그래요? 아… 옥상 방수 페인트는 초반에 얘기했는데… 그걸… 안 하셨어요? 하하하.”

말했다시피 망한 건축 회사 사장의 딸이자, 이런 예술가 저런 사업가를 두루 만나본 전직 기자로서, 나는 이렇게 단언할 수 있다. 세상에 동종 분야 경쟁자끼리 가장 무자비하게 헐뜯는 두 부류가 있는데, 바로 영화인과 건축인이다. 외부에서 보면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분야지만 당사자들 입장에선 치열한 피티를 뚫고 투자나 시공을 유치하는 게 가장 큰일이니 남의 성과는 열심히 깎아내리고 무조건 자기가 더 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 그러니 그들의 말은 반의반 정도만 믿는 것이 건축주의 정신 건강에 이롭다. 물론 예외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엇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호언장담은 실망을 낳는다. 그게 전적으로 건축가의 문제만도 아니다. 건축은 수많은 요소가 맞물려 돌아가는 작업이다. <인셉션>의 천재 건축가 애리어든처럼 토지만 보고 건물의 내외부를 단번에 완성형으로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디자인, 설계, 시공, 배관, 콘크리트, 목공 등을 모두 직접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어디서 무슨 변수가 발생할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건축주 입장에선 생애 가장 큰돈을 쓰는 경험이지만 건축가에겐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일 뿐이어서 쌓이는 섭섭함도 있다. 발리에는 예산이 몇억 초과해도 눈 하나 깜빡 않고 “비트코인으로 결제해도 되나요?” 할 수 있는 건축주가 수두룩하다. 그러니 조그만 집 한 채 지으면서 조바심치는 내가 오히려 유난이다. 어쨌든 공사를 시작하고 나면 예산이 넉넉지 않은 물주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공사가 중단되는 일만은 막아야 하니까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어르고 달랠 수밖에 없다. 같은 이유로 공사 막판이 되면 갑자기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거절할 수도 없다. 그러니 계획에 작은 오차가 생기는 것도 참지 못하는 완벽주의자거나 타인의 잘못에 극히 엄격한 사람은, 다시 말하지만, 집은 짓기보다 사는 것이 좋다.

발리에 집을 짓기 시작하고부터 종종 문의를 받는다. “나도 발리에 살고 싶다. 코로나가 끝나면 가서 부동산 투어를 할 예정이다.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나.” 대화를 해보면 이곳 법은커녕 수원에서 남산타워 찾는 식으로 지리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비키니 두 장 달랑 입고 피라냐 떼가 득실대는 호수로 스노클링을 나서는 격이다. 웰컴 투 헬이십니다, 고객님, 비키니까지 도둑맞지 않도록 행운을 빌어요!

멋모르는 이민자들이 현지 인부를 직고용해서 집을 짓다가 팀을 세 번 바꾸고 수영장만 일곱 번 고쳤다거나, 땅 주인이 자기 몰래 은행 담보대출을 받고 안 갚는 바람에 공사비 한 푼 못 건지고 갓 지은 집에서 쫓겨났다거나, 예산이 말도 못하게 초과되어서 공사를 중단했다는 식의 괴담은 끝도 없다. 디자인만 배워서 견적서 한 장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외국인 한량들이 언어를 무기로 건축가입네 일을 따냈다가 수습 못하고 드러눕는 경우도 많다. 최신 괴담은 부동산 투자사 이야기다. 그들은 코로나가 시작된 후 인터넷으로 집 장사를 시작했다. 멋진 웹사이트를 만들어놓고 VR 플랜만으로 200채를 팔았다. 아름답고 신성한 발리의 정글 속에 내 영혼을 뉠 수 있는 친환경 홀리데이 홈을 갖고 싶나요? 당신만의 천국이 여기에 있답니다. 하지만 그 200채 중 지난 2년 동안 실제로 지어진 건물은 단 네 동에 불과하다. 사장의 포르쉐 숫자가 그보다 빨리 늘었다. 곧 ‘엔데믹’이 시작되고 고객들이 현장에 들이닥칠 텐데 저 사태가 어떻게 끝이 날까, 이곳 업계에선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발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이든 제주든 유럽이든 미국이든 마찬가지다. 건축주가 된다는 건 돈을 쓸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사방에 소문을 내는 행위이고, 당신의 주머니를 노리는 사기꾼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 공부를 해야 하고, 어지간한 시행착오는 웃어넘길 수 있는 담대함도 필요하다. 어차피 무엇을 상상하건 당신은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게 될 테니까.

그럼에도 자신이 살 집을 직접 짓는 데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이 시골에 주택을 지으셨는데, 아버지는 화초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거실에 배수 시설 딸린 실내 화단을 만들었다. 나는 실내 화단의 기능 자체보다 무뚝뚝한 경상도 커플의 애정이 물리적으로 구현된 공간이라는 점에 깊이 매료되었다. 나는 내가 짓는 집이 그와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집을 디자인하면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와 같이 살 사람에겐 무엇이 중요한가, 이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인테리어나 리모델링과는 깊이가 다른 자아 탐색의 시간이었다. 건축은 눈에 안 보이는 요소도 중요한데, 직접 지으면 적어도 벽 속에 철근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배관은 몇 센티미터짜리를 썼는지, 콘크리트 함량은 제대로 되었는지, 보는 제대로 넣었는지, 잘 몰라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대조해볼 수 있어 안심이 되기도 한다. 주택은 일곱 번은 지어봐야 마음에 쏙 들게 나온다는데, 나는 완공도 안 된 내 집이 이미 사랑스럽다. 오래 쓸 생각으로 가구를 맞추고, 수년 후를 기대하며 울타리에 묘목을 심는 일이 즐겁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여느 큰일도 지나고 보면 늘 그렇듯, 울타리가 다 자랄 즈음엔 진척 없는 공사에 조바심치던 나날이 찰나처럼 느껴질 것이다. 집은 짓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내 맘대로 되는 것이던가. 건축은 절충과 타협을 배우는 과정이고, 때론 비뚤어진 문짝에서 큐비즘을 읽어내는 초연함도 필요한 것이다. (VK)

에디터
조소현
이숙명(칼럼니스트)
이미지
Getty Images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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