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왜 패션은 블랙과 미니멀리즘을 사랑하는가

2023.02.03

by 권민지

    왜 패션은 블랙과 미니멀리즘을 사랑하는가

    2022년은 명실상부, Y2K의 해입니다. 크롭트 톱과 카고 팬츠, 오버 핏 셔츠와 와이드 팬츠 그리고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아디다스와 푸마의 스니커즈가 이를 분명히 말해줍니다. 그럴 뿐 아니라 엔데믹을 맞아 다운된 기분을 스타일로 업시키는 ‘도파민 드레싱’까지, 요즘 트렌드는 그야말로 알록달록, 총천연색입니다. 하지만 시대와 트렌드를 초월해 언제나 유효한 스타일이 있습니다. 바로 블랙과 미니멀리즘입니다. 블랙은 모든 색의 종착역이고, 미니멀리즘은 패션의 출발선이나 다름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검은색과 리틀 블랙 드레스
    검은색은 도도함을 극한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그러니까 가장 패셔너블한 애티튜드를 표할 수 있는 색입니다. 지금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블랙 룩의 이미지는 1920년대,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라는 진취적이고 담대한 디자이너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왼쪽)가브리엘 코코 샤넬. Getty Images

    Courtesy of Chanel

    이 전설적인 디자이너는 1926년 패션사에 한 획을 그을 엄청난 드레스, 바로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선보였습니다. 길이가 짧은 칵테일 드레스의 한 종류로 흔히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LBD’라는 약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그것 말입니다. 이 드레스의 특징은 바로 장식적 요소가 과감하게 배제된 심플한 디자인인데요. 당시는 옷이 사회적 계급을 가늠하는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장식적 요소가 철저하게 배제된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는 성별, 계급과 관련한 사회 관념을 전복시켰습니다. 그동안 패션에서 군림하던 철옹성 같은 계급을 완벽하게 없애버린 거지요. 또한 실용주의에 입각한 디자인은 세련되었고 더없이 모던했으며, 시크(Chic)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정립했다는 평을 듣기에 충분했습니다.

    미니멀리즘, 질 샌더 그리고 스튜디오 니콜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는 사회, 경제적으로 큰 위기가 찾아왔지만, 미국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미국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와 독일에서 주로 일던 실험적 사조가 미국 문화와 결합함으로써 미국은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다양한 미술 운동이 뉴욕에서 일었습니다. 미니멀리즘은 해당 시기에 일어난 다양한 운동 중 하나였습니다.

    미니멀리즘은 패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니멀리즘 패션’의 사전적 정의는 ‘최소한의 단순한 요소를 조합해 큰 효과를 내는 옷차림’입니다. 근본적인 아름다움을 지향하기 때문에 절제된 실루엣과 컬러를 쓰는 것이 특징이죠.

    질 샌더 1992 S/S 컬렉션에서, 슈퍼모델 린다 에반젤리스타.

    요즘 트렌드와는 반대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패션 인플루언서의 옷차림을 보면 패션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개성’이란 곧 ‘특이함’의 동의어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개성적인 룩이 꼭 휘황찬란하고 관능적인 아이템을 휘감는 것만 의미할까요? 어쩌면 진정한 ‘개성’이란 시대에 휘둘리지 않는 변함없는 초연함을 뜻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소개하는 이 두 브랜드, 질 샌더와 스튜디오 니콜슨처럼요.

    현재까지도 유효한 철학, ‘질 샌더’

    질 샌더의 창립자 ‘하이데마리 일리네 잔더’. Getty Images

    현재까지도 미니멀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브랜드. 질 샌더는 최고급 소재를 사용하는 한편, 장식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 간결함을 추구합니다. 브랜드의 창립자 ‘하이데마리 일리네 잔더(Heidemarie Jiline Sander)’는 독일인으로 인체에 부착하는 어떤 장식도 거부했고, 오로지 직물을 통해 표현하는 순수한 실루엣만 허용했습니다. 그녀의 미니멀리즘은 밀란 부크미로빅, 라프 시몬스, 루시와 루크 마이어에 이르기까지 많은 디자이너가 이어가고 있죠.

    질 샌더 2012 F/W 맨즈웨어 컬렉션에서,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프 시몬스.

    질 샌더 2022 S/S 컬렉션에서, 현재 질 샌더를 이끄는 디자이너 듀오 루시와 루크 마이어.

    새롭고 굳건한 ‘스튜디오 니콜슨’

    Courtesy of Studio Nicholson

    Courtesy of Studio Nicholson

    Courtesy of Studio Nicholson

    스튜디오 니콜슨은 2010년 닉 웨이크먼이 론칭한 컨템퍼러리 패션 브랜드입니다. 20년의 디자이너 경력을 가진 그녀는 첼시예술대학에서 섬유 디자인 대학원 과정을 밟는 동안 이 브랜드를 출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깔끔하고 부드러운 실루엣 외에도 이 브랜드에서 눈여겨볼 점은 바로 사이트에 마련된 저널 섹션입니다. 깊이 있는 글을 통해 디자이너가 지향하는 아이덴티티를 주제로 소통하며, 스튜디오 니콜슨만의 미니멀리즘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보그 이탈리아> 전 편집장 프랑카 소짜니. Getty Images

    수많은 패션 크리에이터가 검은색을 고집하고 심플한 옷을 입는 이유가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 끝에서 발견한 단어가 바로 ‘애티튜드’였습니다. 검은색이 수만 가지 색을 품듯이, 패션 크리에이터 또한 그렇게 다양한 개성을 품어야 하는 거죠. 모든 스타일과 색으로부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냉정함도 가져야 하고요.

    <보그 브리티시>, <하퍼스 바자 USA> 전 편집장 리즈 틸버리스(Liz Tilberis). Getty Images

    패션을 향한 이런 태도는 결국 대중의 취향을 유행의 최전방에서 기민하게 생산해내야 하는 이들이 끝내 검은색과 미니멀리즘을 선택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액세서리가 없다고, 럭셔리 로고가 박히지 않았다고 해서 무작정 단출하다고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적어도 겉치장을 하나씩 버리기까지 수백 번 고민하고, 시도하며, 실패를 거듭한 이들의 관록이 낳은 결과물일 테니까요.

    프리랜스 에디터
    김태엽
    포토
    Getty Images,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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