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애정하는 물건 7’ EP/PER 대표 장경진_THE LIST
연남동의 바 EP는 연남동에 본격적으로 패션 피플이 모이게 된 시점보다 꽤 앞선 2015년 문을 열었다. 2020년 을지로에 문을 연 와인 바 PER는 내추럴 와인 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보다 꽤 앞서서 내추럴 와인을 소개했다. 패션과 음식업계에는 유독 ‘감’이 빠르고 탁월한 사람이 있다. 이 두 곳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장경진은 최근 후암동 복합 문화 공간 콤포트 서울의 음료 창작과 와인 리스트업을 맡으며 활동 반경을 더욱 넓히고 있다. 디자이너의 빈티지 가구가 유행하기도 훨씬 전 그는 @studio_zipcode 계정에서 자신의 취향이 가득 담긴 가구를 판매하기도 했다. 패션과 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건 그가 일할 때 입는 준야 와타나베의 재킷이나 바 한쪽에 자리 잡은 책들의 커버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성복 모델리스트,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디렉터, 가구 디자이너 등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펼쳐온 장경진에게 요즘 가장 애정하는 물건을 물었다.
Knoll – Gae Aulenti sofa
집에 TV나 커다란 모니터가 없다. 옆으로 누울 수 있는 2~3인용 소파도 없다. 그냥 혼자 편하게 앉아서 생각하고, 쉬고, 술 마시고, 책 읽는 의자만 있다. 업장 일뿐 아니라 외부 일을 맡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금융 치료, 나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최고인 듯하다. 이 1인용 소파는 외부 업무 후 나에게 준 선물이다.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는 이탈리아 여성 건축가인데, 한국에서는 조명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놀(Knoll)에서 소개한 이 소파는 재생산하지 않아 빈티지로만 구할 수 있다. 다리와 팔걸이의 철골구조가 정말 멋있는 데다 낮고 넓은 비율이 재미있다. 단, 편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Asics x Comme des Garçons Shirt – Tarther SD-α Pink
핑크색을 좋아한다. 마음에 드는 예쁜 핑크색을 찾는 일은 꽤 힘들다. 특히 한국에서 남성 사이즈의 핑크 제품을 구매하기는 더 힘들다. 하지만 아식스와 꼼데가르송 셔츠의 협업 신발을 봤을 때 모든 생각이 정리되었다. 괜찮은 제품, 나한테 맞는 사이즈, 예쁜 핑크라니. 이건 반드시 구매해야 했다.
818 Tequila
요즘은 연예인이 주류 사업을 하는 것이 숨길 일도 아니고, 멋지고 쿨한 일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박재범의 원소주가 있고, 해외에는 제이지의 샴페인, 코너 맥그리거의 위스키가 있다. 그중 개인적으로 제일 멋지다고 생각하는 건 켄달 제너의 818 테킬라다. 켄달 제너의 팬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준비했고, 맛을 다듬었다고 하니 다른 연예인의 술보다 더 멋지게 생각된다. 술도 좋은 것, 선물도 좋은 것. 그것이 핫하디핫한 셀럽의 술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Human Made – Sake Storm Cowboy
유행이라는 단어보다 패셔너블한 느낌으로 술과 문화를 바라본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의 행보를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휴먼 메이드 제품을 즐겨 입지는 않지만 디렉터 니고(Nigo)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선물 받은 휴먼 메이드의 사케 스톰 카우보이는 파랗고 예쁜 병에 담긴 사케다. 병에 ‘Middle Press, Limited to 1000 Bottles’라고 쓰여 있는데, 1,000병 한정판이라니, 이보다 더 좋은 이유가 있을까.
Charlotte Perriand – Ceiling Wall Lamp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샬로트 페리앙의 램프를 처음 발견했다. 주인공의 방 벽에 설치된 조명을 잊지 못하다가 MK2 대표님의 초기 쇼룸에서 발견했다. 나는 샬로트 페리앙을 몰랐고, 대표님은 <시계태엽 오렌지>의 소품으로 램프가 나온 것을 몰랐다. 내가 학생 때 이야기니까 진짜 오래전이다. 현재 운영 중인 공간의 컨셉과 잘 어우러지는 조명이 아니어서 위시 리스트에만 올려두었는데, 이번에 이사하는 집에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영화에서는 벽 조명으로 사용하지만, 한국은 벽 조명을 설치하기 어려워 현재는 천장 조명으로 사용 중이다. 수은 코팅한 전구라 직접적으로 빛이 나지 않아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 조명이 더 특별한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운항하는 항공편이 없을 때 벨기에의 셀러에게 구매했는데, 중간에 사라져서 찾을 수 없었다. 6개월 후 어느 날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조명이 배송되었고, 깜짝 선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지만.
Maison Margiela – Topstitch Detail Blazer
결혼식 예복으로 입은 재킷이다. 만들다 만 옷 아니냐며 양가 어른들의 큰 저항을 받았다. 아내의 드레스는 시몬로샤의 드레스였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기에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싶었다. 보통 예복은 한 번만 입을 텐데 마르지엘라 재킷은 외부 행사에서 자주 입었다. 쉽게 이야기해서 본전을 뽑은 가성비 좋은 재킷이다. 이 옷을 입고 결혼을 또 하는 일은 절대 없겠지만 외부 행사는 자주 하고 싶다.
Mark Borthwick – Not in Fashion
마크 보스윅의 사진을 좋아한다. 시력이 좋은 편인데 그가 찍은 안경 캠페인을 보고 마이키타 안경을 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의 사진을 좋아한다. 이 책을 발매했을 당시 못 사다가 다시 사려고 알아보니 가격이 엄청 비쌌다. 요즘 가격이 싸게 느껴질 정도로 비쌌던 기억이 있다. 고민하다가 아마존인가 이베이에서 구매했다. 원래 웃돈 주고 사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어릴 때 읽은 동화처럼, 학창 시절 읽은 단편소설처럼, 감수성 풍부했던 시절 읽은 시집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이정표 같은 마크 보스윅의 사진집은 웃돈을 주고 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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