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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영원히 독신으로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2023.02.16

by 이소미

  • Annie Lord

드디어 영원히 독신으로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하면 꼭 나만의 공간을 만들 거야.”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Love is Blind)>를 보려고 TV에 노트북을 연결하던 룸메이트 로티(Lottie)에게 말했다.

“언제 할 건데?” 로티가 물었다. 딸기 요거트의 은박 뚜껑을 핥던 나는 동작을 멈추고 말했다. “만약에 말이야.”

돌이켜보면 그 ‘만약’이라는 단어가 참 새삼스럽다. 내가 뱉은 단어에도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요즘이다. ‘언젠가 내 짝이 나타날 것’이라는 오랜 믿음이 차츰 무너지는 중이니까. 나는 늘 언젠간 결혼하고 행복하게 잘 살 줄 알았다. 상상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비앙카 재거의 웨딩 수트처럼 새하얗지만 그렇다고 뻔하지도 않은 나만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버진 로드를 걷는 내 모습, 그 후엔 임신을 하고 내 허벅지에 누운 아이를 토닥이며 잠을 재우는 일상 같은 것들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꿈꾸던 당연한 미래가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있다. 이전에 이런 기사를 하나 읽었다. ‘25세에 만난 사람이 당신이 결혼하게 될 사람’이라는 내용이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 적어도 내 주변에는 이에 해당하는 이가 거의 없다. 최근 내 친구도 맥락은 비슷하지만, 한층 절망적인 버전을 들려주었다. ‘당신이 27세에도 싱글이라면, 앞으로도 영원히 혼자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 출처가 명확하진 않다. 열심히 구글링을 해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은 내 뇌리에 깊이 박혔다.

요즘은 전 남자 친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긴장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손등을 꼬집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 손등을 사랑스럽게 쳐주던 그의 모습, 잠옷으로 제격이던 그의 티셔츠를 집에 몰래 가져온 일, 누군가와 이토록 가까운 적이 없었고, 그 누구도 내 인생에 이토록 깊이 들어온 적이 없었다는 사실까지. 그립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도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꾸만 내가 싱글인 이유를 굳이 설명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간 이상한 남자들을 많이 만났고, 지금은 내 일에 집중하고 있으며, 내 취향이 까다로운 편이라고 말이다.

지난 할로윈 데이, 나는 누군가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갔다. 아젤리아 뱅크스의 노래 ‘212’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옆에 있던 남자가 세게 울려 퍼지는 스피커 소리를 뚫고 내게 소리쳤다. “방금 그 부분 다시 불러줄 수 있어요?” 사실 불가능했는데, 왜냐하면 노래 가사를 하나도 몰랐던 나는 멜로디에 맞춰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어요! ‘난 8시까지 저녁을 먹었고, 이제 똥을 쌀 차례야!’” 나는 기꺼이 그 ‘아무 말’을 되풀이해 불러주었다.

그는 웃었다. 초록, 빨강, 보랏빛의 레이저 사이로 비치는 그를 보며 나는 잠깐 고민했다. 구부정하게 서 있지 않으면 천장에 달린 조명에 부딪힐 정도로 키가 컸고, 옷도 잘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직업은 무엇인지, 파티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어디서 왔는지 등을 밤새 묻는 건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는 것보다 재미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생각이 계속 났다. 몇 번 만난 데이트 상대보다 그 남자처럼 파티에서 스쳐 지나간 이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려는 건, 내가 싱글로 지내는 건 오롯이 내 선택이라는 이야기다.

언젠가 ‘내 짝’이 나타날 거라고 믿어도 될까? 파티에서 마침내 그를 만나고, 몇 주 후에 열린 약혼식에서 ‘지금까지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한 여자는 없었다’고 연설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도 될까? 휴일을 함께 즐기고, 나른한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서로의 부모님 집에 데려가고, 함께 서로의 어릴 적 사진을 구경하는 날이 올까? 플라스틱 보석과 비즈로 머리를 꾸민 내 옛 사진을 보며 ‘넌 어릴 때부터 꾸미는 걸 좋아했지’라는 우리 부모님의 단골 멘트를 나란히 듣는 날이 올까? 만약 인생이 그런 시나리오로 전개되지 않는다면 나는 슬퍼해야 할까? 그럼 그 대신 나는 대체 무슨 꿈을 꾸어야 할까?

올여름, 나는 홀로 그리스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 초반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아테네에서 히드라섬으로 가는 배를 놓친 것이다. 항구에서 장장 5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내겐 아침 식사 후 챙겨온 푸석해진 롤빵밖에 없었다. 밀짚으로 엮인 비치백에 꼬인 개미들은 이미 내 책과 충전기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할 수 없이 이 작은 친구들을 하나씩 눌러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배고픔을 잊기 위해 엄청난 양의 물만 들이켰다. 방광염에 걸릴 지경이었다.

볼일이 너무 급했던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청소하던 남자와 부딪쳤다. 그는 내 이름을 묻더니 대걸레 막대기를 마이크 삼아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덕분에 기분은 한층 나아졌다. 화장실에 나오고 나서 생각해보니 상황이 그리 나쁘게만 흘러가진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실수 때문에 누군가가 피해를 본 것도 아니고, 배 좀 놓쳤다고 해서 누가 날 혼내지도 않았으니까. 히드라섬에 도착한 후에는 기분이 더 좋아졌다. 이 모든 과정을 나 스스로 겪었기 때문이다. 복숭아즙이 팔을 타고 줄줄 흐르는 줄도 모른 채 맛있게 먹었고, 물 밖에서도 내 다리 사이를 오가는 물고기들이 눈에 보일 만큼 깨끗한 물에서 수영도 했다. 그땐 정말 혼자서도 행복한 나 자신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마음으로 살면 어떨까? 아이를 낳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나이가 될 때까지 말이다. 아침부터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아도 상관없는 비싼 오피스텔에서 혼자 눈을 뜨고, 먹고 난 그릇을 싱크대에 그대로 둔 채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고, 종일 나를 괴롭히는 사람 때문에 힘들어할 필요도 없는 그런 삶이라면 어떨까?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니 따로 내 방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할 필요조차 없는 삶이라면 어떨까?

물론 아직까지는 이 삶이 내가 그토록 꿈꿔온 내 짝과 함께하는 미래보다는 희망적이지 않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내가 싱글의 삶을 즐길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거다. 꿈은 현실이 아니다. 꿈은 무언가가 실현되었을 때, 그제야 깨닫게 되는 무언가다. 만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그 흐릿한 꿈에 내 미래를 기대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현실은 꿈보다 훨씬 더 근사하게 펼쳐지는 법이니까.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뭐지?” 내가 나에게 묻는다. “지금 이 현실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 뭘까?”

    Annie Lord
    사진
    Getty Images
    출처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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