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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2023.04.01

by 정지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제주 성산에서 이 글을 써요. 이원하의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문학동네, 2020)를 다시 펼치면서요. “2022. 1. 22 제주 함덕 만춘서점 / 1. 23 제주 세화에서 읽다. 자연에서 나와 너로.” 책에 짧은 메모를 남기는 습관 덕에 나와 시집의 연원을 기억할 수 있어요. 제주 동쪽 바다 마을에 사는 시인이 제주의 새(1부), 싹(2부), 눈(3부), 물(4부)을 말하는 이것은 온통 제주, 제주 동쪽 바다 마을을 따라 남쪽으로 한 단씩 내려가며 다시 시를 읽는 내게도 이것은 온통 제주, 제주, 제주.

    Pixabay

    시집은 온통 자연과의 깊은 연루 속에 있어요.
    “하도리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슬슬 나가자/ 울기 좋은 때다/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밭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혼자 울기 좋은 때다// 위로의 말은 없고 이해만 해주는/ 바람의 목소리/ 고인 눈물 부지런하라고 떠미는/ 한 번의 발걸음/ 이 바람과 진동으로 나는 울 수 있다” –‘여전히 슬픈 날이야, 오죽하면 신발에 달팽이가 붙을까’
    하늘을 보고 울 때를 기다리고, 때가 되면 바람에 기대 울어요.
    “빨래를 하려고 일어났다가 오랜만에 쏟았다/ 내가 하도 울어서 바다가 생겼다/ 멍든 물을 뒤지다가 바람을 쓰러뜨렸다/ 파도도 내가 그랬다// 온통 평상인 섬에서/ 마음을 들키며 살고 있었다” -‘누워서 등으로 섬을 만지는 시간’
    울음으로 바다를 만드는 이곳에서는 마음을 숨길 수 없어요.

    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문학동네, 2020)

    그런데요, 왜 울어요?
    “추억하는 일은 지쳐요// 미련은 오늘도 내 곁에 있어요// 내가 표정을 괜찮게 지으면/ 남에게만 좋은 일이 생겨요” -‘서운한 감정은 잠시라도 졸거나 쉬지 않네요’
    “그는 살아요/ 매년 혼자서 잘 살아요// 수국도 내가 참견 안 했으면/ 잘 살았을 거예요// 혼자서 잘 사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바로 내가 울게 되는 지점이에요// 나도 나 없이 살아지죠/ 살아지지만/ 그럴 경우// 교접하지 못하는 두 개의 안녕 때문에/ 발목에 호수가 생기는 게 문제죠” -‘나를 받아줄 품은 내 품뿐이라 울기에 시시해요’
    나 없이도 잘 사는 당신 때문에, 그런데도 살아지는 나 때문에 울어요.

    Pexels

    그래서요, 계속 울까요?
    “너에게 불쑥, 하나의 세상이 튀어나왔을 때/ 나에게는 하나의 세상이 움푹, 꺼져버렸어// 그날부터 웃기만 했어/ 잘 살펴보지 않으면 속을 알 수 없지/ 원래 어둠 속에 있는 건 잘 보이질 않지// 빛을 비추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싶어서/ 웃기만 했어// 얼마나 오래 이럴 수 있을까/ 정말 웃기만 했어” -‘빛이 밝아서 빛이라면 내 표정은 빛이겠다’
    “낮이란 낮은/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낮에는 자꾸 다짐하게 되니까/ 새 마음 먹게 되니까/ 내가 잘 보이니까// 자주 무섭다가/ 그 상태 그대로 매번 웃는다” -‘동경은 편지조차 할 줄 모르고’
    바다 탓을 할까요. 이곳의 웃음에는 언제나 축축하니 물기가 서려 있어요.

    그럼, 어째요, 이렇게만 웃을까요?
    “밤이 넓어서/ 초 하나로는 부족할 때/ 베개 같은 표정은 버리고 싶어졌어요/ 조용히 지내느라 시끄러웠던 바람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까요// 회전문처럼 표현이란 것을/ 해야 한다는 걸 느꼈으니까요” -‘선명해진 확신이 노래도 부를 수 있대요’
    “영원히, 말고/ 잠깐 머무는 것에 대해 생각해/ 전화가 오면 수화기에 대고/ 좋은 사람이랑 같이 있다고 자랑해/ 그 순간은 영원하지 않을 테니까/ 지금 자랑해” -‘환기를 시킬수록 쌓이는 것들에 대하여’
    담을 그릇도, 다음도, 내일도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지금 말해요.

    그럼, 이렇게 웃어요.
    “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이제 알 것 같아요. 시집의 첫 번째 시이자 표제시는 실은 제일 마지막에 도착한 시임을. 제주의 자연 안에서 울음 섞인 웃음을 거듭하다 웃는 웃음임을. 당신 말마따나 정체도 발전도 끝이 없네요. 웃음도 끝이 없네요.
    그런데요, 제주 살면 나도 그렇게 웃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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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홈페이지, Pixabay,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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