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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평범함, 최민영의 시작

2023.05.29

by 류가영

    사랑스러운 평범함, 최민영의 시작

    레더 재킷과 셔츠, 블랙 타이, 팬츠는 페라가모(Ferragamo).

    누군가에겐 특별한 서울의 밤.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 칭한 배우 최민영의 존재감이 번쩍였다.

    턱시도 재킷과 셔츠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아직은 미래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 신인 배우와의 만남을 앞두고 설렘과 기대감이 밀려드는 이유다. 아, 물론 최민영이 신인은 아니다. 10년 전 뮤지컬 <보니앤클라이드>에 어린 클라이드로 출연한 후 아역 배우로서 경험치를 차곡차곡 쌓아왔으니까. “사실 데뷔는 <구름빵>이라는 어린이 뮤지컬이었어요. 우연히 청소년 신문에서 광고를 본 어머니의 추천으로 고양이 남매 홍시∙홍비 중 홍비 역할로 생애 첫 오디션을 치르게 됐죠.” 그레이 수트 셋업을 입고 등장한 최민영이 또박또박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이후 그는 뮤지컬 <명성황후> <프랑켄슈타인> <킹키부츠>에 출연했고, <운빨로맨스>(2016), <힘쎈여자 도봉순>(2017), <미스터 션샤인>(2018), <이태원 클라쓰>(2020),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 등 굵직한 드라마에 얼굴을 비치며 무대를 넓혔다. 그러면서 연기에 대한 관심과 욕심도 점점 커졌다. “어릴 땐 그저 관심 많이 받고, 친구들이 멋있다고 해주니까 마냥 좋았던 거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있었고요. 연기보다는 배우라는 직업이 좋았던 거예요.”

    계원예술고등학교 진학은 연기가 좋아서, 연기를 더 배우고 싶어서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예고 시절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그의 음성에 미세한 속도감이 더해졌다. “학창 시절을 정말 행복하게 보냈어요. 연극영화과는 반이 딱 하나라 3년 내내 똑같은 친구들과 붙어 지냈죠. 아침부터 밤까지 땀 흘리며 무대 만들고, 공연 연습하고, 성적과 상관없이 순간을 충분히 즐겼어요.” <2020 DIMF 뮤지컬 스타>에 출연한 일 역시 고등학교 시절 경험한 잊을 수 없는 사건 중 하나다. 내년이면 벌써 10주년을 맞이하는 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최민영은 여섯 번째 우승자가 됐다. “예고생이라면 모두가 주목하는 대회에서 우승해 기쁘고 뿌듯했어요. 살면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 순간이에요. 연기할 때는 사실 목표가 불확실하잖아요. 목표가 없을 수도 있고, 지극히 사소할 수도 있고요. 오랫동안 좇던 목표를 달성하는 희열이 엄청났어요.”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넘버 ‘운명’을 선곡해 안정적인 퍼포먼스와 흡인력을 증명한 최민영은 당시 우승 소감으로 “자만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열심히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은 고루하지만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무대를 활보하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내주는 법이니까.

    사실 최민영에게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바로 넷플릭스 시리즈 <엑스오, 키티>의 주인공 김대헌(Dae)으로 캐스팅된 사연이었다. 10부작 시리즈 <엑스오, 키티>는 한국계 미국인인 주인공 라라 진(라나 콘도어)의 러브 스토리로 뜨겁게 사랑받은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스핀오프 시리즈다. “<엑스오, 키티>의 오픈 캐스팅 소식을 접했을 때 한창 바쁘게 촬영 중이었어요.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다 어느 날 문득 ‘아차’ 싶더라고요. 모집 마지막 날 겨우겨우 오디션 영상을 제출했어요.” 해외 제작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회가 되겠다 생각한 최민영은 오디션 과정에서 나쁘지 않은 피드백을 들으며 조금씩 자신감을 키웠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제작진이 ‘강아지상’을 원했대요. 누가 봐도 한국인처럼 보이는 순박한 외모면 좋고요. 아주 유창하지도, 너무 어색하지도 않은 딱 저 정도 영어 실력을 원한 것 같기도 해요.” 최민영은 묘한 얼굴을 갖고 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통해 그를 처음 제대로 응시했을 때 선하면서도 고집은 있어 보이고, 의도를 알 수 없지만 악의는 없어 보이는 그의 얼굴이 내 머릿속에 친근한 잔상을 남겼다. “유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전 마음에 들어요. 호아킨 피닉스와 에디 레드메인 같은 배우를 동경하며 배우로서 좀 더 개성 있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보통의 얼굴에 더 많은 색깔을 입힐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마음에 듭니다.”

    사랑스러운 평범함은 최민영이 칭송하는 ‘대’의 매력이기도 하다. 특별할 것 없는 ‘대’가 주인공 키티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유는 남보다 한발 앞서는 사랑과 배려, 따뜻함 때문이라고 말이다. 다른 출연진의 매력을 묻자 한 명 한 명 고심해서 소개하는 최민영은 그런 ‘대’와 겹쳐 보였다. “애나는 쾌활하고 독립적인 주인공 키티만큼 에너지가 넘쳐요. 부드러운 카리스마도 갖고 있죠. 민호 역의 (이)상헌이 형은 깔끔하고 위트 있는 사람이에요. 냉소적인 매력도 있고요. 유리로 등장하는 (김)지아 누나는 생각이 깊고 마음이 따뜻해요. 실제 모습과 각자가 맡은 캐릭터가 너무 비슷해서 신기했죠. 촬영이 시작되기 전 한 달 정도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맛집’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정말 친구처럼 놀았어요. 어릴 때 캐나다에서 1년을 보내고 난 후 정체돼 있던 영어 실력도 덕분에 엄청 늘었죠.” 또래 배우들과 친구처럼 교류한 현장은 청춘기의 배우들에겐 즐거운 놀이터이자 자연스러운 배움터였다. 마지막으로 전작과는 다른 이번 시리즈만의 매력을 묻자 그가 답했다. “이전까지는 라라 진과 피터 카빈스키(노아 센티네오), 둘의 로맨스에 집중했다면 <엑스오, 키티>는 다양한 인물과 관계, 사건을 비춰요. 10개 에피소드를 각각 다른 감독님이 연출했기 때문에 훨씬 속도감 있죠. 개인적으로 인물의 매력과 서사가 한층 짙어지는 후반 에피소드를 좋아해요.”

    올해 스물둘. 연기에 대한 최민영의 태도는 한결 진지해졌다. 과거보다 연기하는 인물의 매력과 행동, 히스토리를 관객에게 설득시켜야 하는 임무가 막중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시기에 만난 영화 <드림팰리스>는 고마운 작품이다. 김선영, 이윤지 배우와 함께 연기하며 최민영은 캐릭터를 끈질기게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배웠다. 필요한 시점에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어준 이 작품을 그는 ‘길라잡이’라 표현했다.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지만 의도치 않은 부분에서 엄청난 감정이 밀려올 때가 있어요. ‘올인’ 하듯 쏟아부어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죠.” 한때 축구 선수가 되기를 꿈꾸던 최민영은 쉬는 날엔 축구와 볼링, 드라이브를 즐긴다. 그러고 보니 연기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도 건강한 스포츠맨십이 느껴졌다. 집중해서 덤벼들되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결과에 기쁘게 승복하는 것. “‘잘 모르겠으면 뜨겁게라도.’ 언제부턴가 가슴속에 새긴 문장이에요. 결정을 내리거나 행동할 때 뭘 좀 알고 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결국 해봐야 아는 거잖아요. 아직 젊어서, 무서울 게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 저에겐 충분히 숙고하는 것보다 경험으로 몸소 깨닫는 것이 훨씬 중요하게 느껴져요.”

    촬영 당시 최민영은 <엑스오, 키티>의 LA 홍보 일정을 위해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하루하루 새로운 성과를 거머쥐는 나날 속에서 최민영이 보여준 침착함은 인상적이었다. 얼마 뒤 최민영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Hollywood’ 네온사인 앞에서 재치 있게 브이 포즈를 취한 그의 사진이 업로드됐다. 예상치 못한 비가 내린 <보그> 촬영일, 천진난만하게 서울의 밤을 누비던 최민영은 그렇게 자기만의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VK)

    실크 수트는 김서룡(Kimseoryong), 탱크 톱, 스카프,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튼 재킷과 팬츠, 니트 톱, 탱크 톱은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실크 수트는 김서룡(Kimseoryong), 탱크 톱, 스카프,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브러시드 페인팅 재킷과 시가렛 팬츠, 셔츠, 부츠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에디터
    류가영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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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트리뷰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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