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평생 ‘그 여인’만 그리는 화가, 제나 그리본 #여성예술가17

2023.09.06

by 김나랑

평생 ‘그 여인’만 그리는 화가, 제나 그리본 #여성예술가17

제나 그리본은 꿈속의 여인을 만났다. 평생 그 여인만 그릴 생각이다.

자신이 그린 ‘Here for You’ 앞에서 뮤즈이자 약혼자 매켄지 스콧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제나 그리본. 스콧이 입은 노란색 수트 셋업은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그리본이 입은 니트 드레스는 프라다(Prada).

JENNA GRIBBON

제나 그리본(Jenna Gribbon)은 2017년이 구상화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해 그녀는 38세였다. “저라는 존재, 특히 성 정체성에 대해 이해하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랜 방황의 가장 큰 원인은 레즈비언 커플을 쉽게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이죠. 게이 남자들의 로맨스가 묘사되기 시작한 역사는 꽤 길어요. 하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주변에서 퀴어 여성을 보기가 정말 어려웠죠.”

그리본은 캠퍼스 커플이었던 매튜 그리본(Matthew Gribbon)과 결혼한 뒤 금방 이혼했다. 이후 소설가 줄리안 테퍼(Julian Tepper)와 연인이 되었고, 아들 사일러스(Silas)를 낳아 함께 살았다. (결혼하지 않은 그리본과 테퍼는 다자 연애 관계였다.) 이때 그리본은 토레스(Torre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인디 록 가수 겸 작곡가 매켄지 스콧(Mackenzie Scott)을 만났다. 열두 살 연하의 매력적인 여성 스콧은 그리본의 유일한 연인이자 뮤즈가 되었다.

1년 전, 나는 그리본의 브루클린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그녀의 안내를 따라 키 큰 나무와 아담한 자갈길로 이루어진 동화 같은 비밀 정원을 지나자 비로소 스튜디오의 실체가 눈에 들어왔다. 낮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높은 층고와 채광 좋은 창을 지닌 방이 등장했다. 그녀의 스튜디오는 내가 뉴욕에서 여태껏 방문한 수많은 작업실 중 가장 매력적이었다. 이탈리아의 콜레치오네 마라모티(Collezione Maramotti)에서 지난해 10월 열린 그녀의 개인전 <Mirages>에 소개된 작품이 하얀 벽돌 벽에 나란히 걸려 있었다. 전시를 통해 소개된 10점의 그림 중 9점이 스콧을 그린 작품이었다. 길이가 4m에 달하는 ‘Here for You’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 속 스콧은 녹색을 배경으로 짧은 팬츠를 입고 카우보이 부츠를 신은 채 다섯 개의 핀 조명이 비추는 석판 위에 반듯이 누워 있다. 스콧의 잿빛 금발 머리가 석판 가장자리로 흘러내렸고, 립스틱을 칠한 듯 유난히 분홍빛이 도는 젖꼭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궁금한 듯 고개를 관객 쪽으로 향한 아름다운 얼굴에서는 괴로움이 엿보이기도 했다. 토머스 에이킨스의 그림 ‘그로스 박사의 클리닉’에 등장하는 환자나 다나 슈츠의 그림 ‘Presentation’ 속의 반쯤 죽은 거인도 떠올랐다. 그러나 그리본의 그림은 어딘가 달랐다. 스콧의 포즈는 초상화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여성 오달리스크처럼 보이지만 남성의 시선을 통해 묘사된 모습과는 달랐다. “사람들은 예술 작품에서 벗은 몸을 보는 것을 익숙하게 여기죠. 나체는 매력적이고요. 하지만 저는 그림 속 나체를 보는 일 또한 능동적인 행위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제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벌거벗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내가 이걸 이렇게 오래 보고 있으면 안 돼’라는 생각이 들죠. 즉시 순수한 심미안에서 벗어나 나체가 사회적으로 의미하는 바(극도의 취약성을 의미하는 나체)를 민감하게 의식하는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돼요. 그런 걸 의도하죠.” 그림을 곰곰이 들여다보던 나에게 그리본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어 마찬가지로 배경색이 초록색인 초대형 그림 2점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불타고 있는 스콧을 그린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안대 밑으로 한쪽 눈만 내밀고 있는 스콧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그림이었다. 그 외 나머지 그림은 크기도 작고, 격정적인 느낌도 훨씬 덜했다. 그리본의 말에 따르면 크기가 작은 그림은 기록을 위한 의미가 크다. 하지만 정교한 채색과 이를 통해 스콧의 잿빛 금발 머리에 햇살이 차르르 떨어지게 표현한 그리본의 그림은 크기와 상관없이 뛰어난 작품성을 자랑한다. 요즘 들어 찾아보기 힘들어진, 회화가 선사하는 순수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림이었다. “제 그림이 시각적인 즐거움으로 가득하길 바라죠.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하거든요. 그런 즐거움이 보는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예술가로서 이런 마음가짐이 생길 때쯤 운명적으로 스콧을 만났죠.” 우리는 더 진지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 자세를 고쳐 앉았다.

2017년 8월(그리본을 처음 만나기 일주일 전이었다)의 어느 날 스콧은 이상한 꿈을 꿨다. “어떤 여자가 저를 떠나는 아주 슬픈 꿈이었어요. 그녀는 저를 사랑하지만 떠나야 한다고 말했죠. 하지만 여전히 제 얼굴을 붙잡고 있었어요. 정확히 1년 뒤,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지만 제나는 다시 돌아왔죠.” 스콧이 회상했다. 똑같이 키가 아주 크고, 여전히 젊고 싱그러운 그리본과 스콧은 이스트 빌리지의 어느 아일랜드 술집에서 우연히 만났다. 두 사람 모두 동성과의 연애 경험이 있었다. 그날 저녁, 둘은 서로의 삶과 일,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그리본이 그때를 떠올렸다. “저는 테네시 출신이고 조지아에서 대학을 다녔어요. 반대로 매켄지는 조지아 출신이고 테네시에서 대학을 다녔죠.” 첫 만남에서 스콧은 보드카를 스트레이트로 계속 마셨고, 그리본은 그중 절반을 테이블 아래 버렸다. “서로에게 정말 강하게 이끌렸죠. 새벽이 되기도 전에 우린 술집에서 이미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엉켜 있었어요.” 몇 달 후 그리본은 스콧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콧은 그녀의 뮤즈가 되었고, 그리본은 이제 스콧 외에 다른 인물은 거의 그리지 않는다. (열두 살 아들 사일러스가 유일한 예외다.)

Here for You, 2022. Photo: Dario Lasagni

그리본 역시 스콧의 뮤즈가 됐다. “제나의 그림은 제 노래에 언제나 가장 큰 영감이 돼요.” 스콧의 오른팔에 새겨진 글자 모양 타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본이 새겨준 타투로 ‘제나와 사일러스’라고 적혀 있었다. “제나에 관한 노래와 제나를 위한 노래가 정말 많아졌어요. ‘Silver Tongue’와 ‘Gracious Day’, 최근 발매한 ‘Don’t Go Putting Wishes in My Head’의 가사도 온통 그리본에 대한 이야기죠.”

테네시주 녹스빌 교외에서 태어난 그리본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혼자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 부모님은 그녀가 두 살 때 이혼했다. 다섯 살 때는 어머니, 오빠와 함께 조지아주 서배너 외곽 지역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그리본의 어머니는 온갖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심지어 엄마 없는 아이들에게 양어머니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리본의 어머니는 재혼 후 그중 네 명을 입양했다.) “그림에 대한 갈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가족 중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화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그리본이 항상 시험지와 과제 종이 빈 공간에 그림을 그린다며 어머니를 소환했다. “어머니는 선생님에게 제가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 같으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그렇다고 대답했죠.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 제나에게 그림 그리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제 딸은 화가가 될 테니까요.’ 그 후 미술대학에 입학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그리고 꿈은 이루어졌다. 그리본은 미술대학으로 유명한 애선스의 조지아 대학교에서 아주 행복한 4년을 보냈다. 영화 제작에도 관심이 생겼다. 장 콕토, 자크 리베트, 아그네스 바르다 등 특히 프랑스 영화감독의 작품에 매료됐다. (몇 년 전, 런던 심 스미스(Sim Smith)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그리본은 자신의 그림을 아그네스 바르다의 영화 스틸 이미지와 병치해 전시했다.) 여러 실험적인 영화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영상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여전하다. 그녀는 2020년 발매된 스콧의 노래 ‘Too Big for the Glory Hole’의 뮤직비디오를 디렉팅했다.) 대학에서 그리본은 매튜 그리본을 만났고, 대학을 채 졸업하기도 전에 둘은 결혼했다.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응원하며 친하게 지낸다.

2003년에 그리본이 뉴욕으로 이주할 때만 해도 구상화는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전시할 갤러리를 찾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리본은 젊은 예술가들이 뉴욕에서 경험할 법한 온갖 풍파를 경험했다. 윌리엄스버그에서 네 명의 룸메이트(그중 한 명은 매튜 그리본이었다)와 함께 살았고, 제프 쿤스의 수많은 어시스턴트 중 한 명으로 1년 동안 일했으며, 친구의 주선으로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역사적인 초상화의 모사화를 그렸다. 이를 계기로 2006년 윌리엄스버그의 사라 보웬(Sarah Bowen) 갤러리에서 드디어 첫 개인전을 열게 됐다. 몇 년 후 LA와 첼시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다. 기회의 땅이 조금씩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구상화를 그리는 젊은 예술가들이 설 자리는 없었어요. 수많은 동료들이 저에게 힘든 싸움은 이제 그만두라고, 그림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죠. 하지만 제가 고집이 좀 센 편이라서요(웃음). 제가 그리고 싶은 걸 계속 그렸어요. 누군가 저를 찾기까지 무려 15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지만요.”

2010년 12월에는 아들 사일러스가 태어났다. 1년 뒤 사일러스의 친부 줄리안 테퍼와 그리본은 롱아일랜드시티에 예술가들을 위한 아지트인 오라클 클럽을 개장했다. 시 낭독회가 열리고, 피아노와 레코드플레이어에서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세 가족은 클럽 위층에서 생활했다. 그리본은 예술가 친구들이 열정적으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그린 실물 크기의 초상화를 그려 클럽 내부에 걸어두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시절이기도 했어요.” 육아의 고충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저를 남편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이 싫더라고요. 사일러스를 데리고 갤러리에 가면 ‘아직도 그림 그리세요?’라고 묻는데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화가 치밀었어요. 어떤 남자가 갤러리 오프닝에 자신의 아이를 데려가면 사람들은 그를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여기지만 여자가 아이를 데려가면 그녀와는 진지한 얘기는 하지 않으려 하죠.” 2016년 오라클의 임대료가 크게 오르자 결국 커플은 클럽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리본은 미술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고 뉴욕 시립 대학교 헌터 칼리지에 지원해 합격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감지했다. “단순히 새로운 환경에서 느낀 변화가 아니었어요. 세상이 바뀌고 있었죠. 구상화에 대해 다시금 살아나는 사람들의 관심, 사람들이 SNS를 통해 새로운 예술을 찾으려는 움직임 등이 피부로 느껴졌어요.”

그리본은 뉴욕 첼시의 프레데릭스 앤 프레이저(Fredericks & Fraser) 갤러리에서 열린 4인 단체전에 참여했는데 그때 선보인 그림 5점이 모두 판매됐다. 첫 번째 개인전 <When I Looked at You the Light Changed>의 무대도 이곳이었다. 역시 작품은 모두 팔렸다. 작품 중에는 나체와 반나체 여성이 다른 여성들과 레슬링하는 그림이 있었는데, 이는 오랜 역사를 지닌 남성 중심적 예술계를 비꼰 것이었다. 그리본은 자신의 거실에서 개최한 레슬링 파티에 친구들을 초대했을 때 촬영한 사진을 그림 소재로 활용했다. (하지만 그리본은 인물을 결코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큐레이터 겸 작가 앨리슨 진저러스(Alison Gingeras)가 증언했다. “제나는 살아 있는 회화 거장이에요. 그녀가 메리 카사트와 베르트 모리조 같은 인상주의 화가의 명맥을 멋지게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카사트와 모리조가 탐구한 젠더화된 공간을 친밀감과 욕망, 친근한 여성의 시선으로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어요. 손에 붓을 쥐고, 카메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말이죠.”

Acid rococo tenderscape, 2021. Oil on Linen, 80×64in, Todd-White Art Photography. Courtesy of MassimoDeCarlo

프레데릭스 앤 프레이저에서 열린 그리본의 또 다른 개인전 <Uscapes>에 걸린 20점의 그림 중 6점이 높이 2m, 너비 1.7m에 달하는 대형 작품이었다. 그림 속 그리본과 스콧은 전부 실물보다 크게 묘사됐다. 클로즈업된 나체의 인물들은 서로 얽혀 있고, 관객은 그리본의 다리 사이로 스콧을 보게 된다. 스콧의 가슴과 허벅지, 음모, 형광 분홍색의 젖꼭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본은 사실주의를 이끈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1866년 작품 ‘The Origin of the World’를 무척 좋아한다. 노골적으로 여성의 성기에 초점을 맞춘 그림이다. “이토록 꾸준히 충격적이면서도 성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그림이 또 있을까요? 여성 화가가 그린 작품이었다면 훨씬 더 좋아했을 거예요. 물론 누구나 여성의 몸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만 말이죠. 이 그림은 여성의 해부학적 구조를 대상화한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맥락을 갖고 있어요. 여성의 몸을 둘러싼 육체적이고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을 모두 고려하죠.” 그리본은 이와 비슷한 그림을 그린 적 있다. 소파에 누워 있는 스콧의 모습을 그린 ‘A Simple Demonstration’이라는 작품이다. 하의를 입지 않은 채 다리를 양쪽으로 벌린 스콧은 심지어 팔을 뻗어 자신의 모습을 보라며 우리를 그림 안으로 끌어들인다. 쿠르베의 그림은 인물의 얼굴을 묘사하지 않았다. 인물의 정체는 숨겨져 있다. 하지만 그리본은 <Uscapes>로 묶어 선보인 모든 대형 초상화에서스콧의 정체를 온전히 드러냈다. 그녀가 여성성을 대하는 방식은 연약한 신체와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포용하려는 사랑 노래 같다.

콜레치오네 마라모티에 전시된 그리본의 그림. Photo: Dario Lasagni

“스콧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에 예술이 녹아 있어요.” 그리본은 강조했다. 그리본과 스콧은 함께 미술관, 영화관, 공연장에 가는 것을 즐긴다.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가거나 간단히 술 한잔하러 외출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는 언제나 작업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그리본은 훗날 그림에 참고할 수 있도록 눈앞에 있는 스콧을 사진으로 담는다. “최근에는 일주일 간격으로 록시 뮤직과 윌리 넬슨의 공연을 보러 갔어요.” 그리본이 작업할 때 스콧은 보통 책을 읽거나 음반을 듣는다. 또한 사일러스까지 다 함께 체스와 카드 게임을 즐기는 저녁에는 완벽한 비율의 맨해튼 칵테일을 만들어 그리본을 행복하게 만든다.

긴 시간 끝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 보이지만 제나 그리본의 성공 가도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에는 특히 바쁜 시간을 보냈다. 뉴욕 프릭 컬렉션의 ‘Living Histories: Queer Views and Old Masters’ 프로젝트에 초대받은 아티스트 4인 중 한 사람으로, 유서 깊은 아트 피스와 함께 전시될 작품을 만들어 예술의 새로운 맥락을 창조했다. 그녀의 새 작품 ‘What Am I Doing Here? I Should Ask You the Same’은 르네상스 화가 한스 홀바인이 그린 토머스 크롬웰 초상화 옆에 걸렸다. 원래는 한스 홀바인의 토머스 모어 초상화가 걸려 있던 자리였다(이 그림이 다른 곳에 대여 전시되는 동안 그리본의 그림이 이곳에 걸리게 된 것이다). 그림 속 스콧은 왕에게 어울리는 붉은색과 보라색 벨벳 옷을 걸치고, 강렬한 분홍빛 젖꼭지를 드러낸 채 과감한 포즈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리본이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데 구심점 역할을 했던 프레데릭스 앤 프레이저를 떠나 LGDR 갤러리에 새로운 둥지를 튼 것 역시 지난해다. LGDR은 도미니크 레비(Dominique Lévy), 브렛 고비(Brett Gorvy), 아말리아 다얀(Amalia Dayan), 잔느 그린버그 로하틴(Jeanne Greenberg Rohatyn)이 합심해 연 갤러리다. 마시모데카를로 갤러리와 LA의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갤러리마다 각기 다른 장점과 매력이 있어요. 특정 사람이나 갤러리가 제 커리어의 모든 카드를 쥐고 있지 않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리본은 올해도 카사 마사치오(Casa Masaccio) 갤러리, 콜레치오네 마라모티, LGDR에서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며 바삐 움직인다.

하지만 가장 행복하던 최근의 기억은 지난해 연말 열린 결혼식이다. 그리본과 스콧은 몬턱에 있는 친구네 집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을 마친 후엔 브루클린의 타운 하우스로 이사했다. 뉴욕에 산 지 20주년이 되는 해에 영원한 안식처를 마련했다는 것이 그리본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스콧은 그리본에게 영원한 모델이자 뮤즈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스콧에게 그리본도 그럴 것이다. 그리본은 영원한 반쪽을 만난 감동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반복해서 그림으로써 관객 역시 스콧을 점점 더 친근하게 느끼겠죠. 그리고 그림을 통해 그녀의 변화를 고스란히 목격하게 될 테고요. 스콧은 단순한 모델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이 그녀를 알아보게 됐고, 그녀는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잔상을 남기는 존재가 됐어요. 그 사실이 무척 흥미롭고, 그래서 우리의 앞날이 점점 더 기대돼요.” (VK)

#여성예술가17

Dodie Kazanjian
포토그래퍼
Clément Pascal
패션 에디터
Jorden Bickham
헤어
Tsuki
메이크업
Kuma
전시 그림 사진
Dario Lasag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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