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그리고 패션을 총체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면
이탈리아의, 이탈리아에 의한, 이탈리아를 위한 세레나데.
“그건 우리답지 않습니다.”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가 지난 40년간 쌓아온 작품의 정점인 알타 모다(Alta Moda), 알타 사토리아(Alta Sartorìa), 알타 조엘레리아(Alta Gioielleria) 컬렉션을 기념하는 것에 대해 처음 논의했을 때, 옷을 입힌 마네킹의 교훈적인 퍼레이드가 포함된 전시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가바나가 말했다. 대신 그들은 밀라노 팔라초 레알레(Palazzo Reale)의 공간을 몰입감 있게 활용해 ‘파토 아 마노(Fatto a Mano)’, 즉 장인들의 훌륭한 수작업을 통해 이탈리아 문화의 정서와 사랑에 기반을 둔 오페라처럼 사치스러운 일련의 극적 장면을 연출해냈다.
프랑스 패션 역사학자 플로랑스 뮬레(Florence Müller)가 큐레이팅한 전시 <From the Heart to the Hands: Dolce&Gabbana>는 7월 31일까지 밀라노에서 개최된다. 그는 2010년 <Yves Saint Laurent: The Rétrospective>, 2018년 <Dior: From Paris to the World>를 기획했다.
“지금은 패션 하우스가 아틀리에와 고유한 기술(Savoir-faire)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대중화되었습니다.” 돌체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인하우스 사토리아(Sartorìa, 재단실)를 가지고 있었죠. 저는 사토리아에서 나고 자랐고, 언제나 ‘완벽한 테일러드 재킷(La Giacca Perfètto)’에 대한 열정이 있습니다.” (돌체의 스튜디오에는 아버지의 사토리아에서 가져온 거울과 아버지가 저명한 대주교에게서 받은 성모 마리아 그림이 있다.)
가바나가 말했듯 2012년 알타 모다 론칭은 “그들 스스로에게 무한한 창의성을 선물하게 된” 기회였다. 또한 이번 전시는 바로크풍 소용돌이 장식이 떠오르는 파스텔 톤 아이싱을 얹은 시칠리아 디저트 카사타(Cassata)만큼이나 풍부한 우주로 떠나는 시네마틱 투어와도 같다. 초대장에는 밀라노 대성당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서 도시의 상징 역할을 하는 황금 조각상 ‘마돈니나(Madonnina)’에서 영감을 받은 드레스 차림의 모델이 그려져 있다. “시칠리아에서 처음 밀라노에 도착했을 때 마돈니나에게 기도했어요.” 돌체가 과거를 회상했다. “다시는 시칠리아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게 해달라고 빌었죠. 마돈니나는 제 기도를 들어줬어요!”
10가지 챕터로 구성된 전시는 전용 설치물에서 진행된다. 첫 번째 챕터는 틴토레토(Tintoretto) 그림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베네치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Scuola Grande di San Rocco)의 화려함에서 영감을 받았다. 거울 천장이 달린 웅장한 갤러리는 듀오 디자이너의 오랜 뮤즈인 뉴욕 아티스트 안 두옹(Anh Duong)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는데, 정교한 재단 기술의 혼합체를 보여주는 마네킹을 둘러싸고 있다.
현대적인 거울의 전당으로 설계된 다음 공간은 바르비니(Barbini)와 바로비에르&토소 (Barovier&Toso) 같은 베네치아의 역사적인 유리 제조업체를 기념한다. 앤티크 샹들리에 아래로 보석처럼 빛나는 섬세한 수공예 유리 꽃 장식이 달린 드레스와 케이프가 반짝이고 있다. 뒤를 이어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의 대표작 <표범(Il Gattopardo)>(1963)에 헌정하는 방이 나타난다. 격동의 186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부르주아 신흥 세력 사이에서 몰락하는 귀족 사회를 그린 영화다.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돌체가 설명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언제나 갈등하며 패션을 이끄는 상반된 원동력을 상징하기도 하죠.” 영화를 촬영한 팔레르모의 팔라초 간지(Palazzo Gangi)의 연회장을 이곳에 그대로 재현해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함께 전시했다.
실제 작업 중인 알타 모다 재단사로 가득한 돌체앤가바나 하우스의 사토리아를 본뜬 공간과 로마 팔라초 파르네세(Palazzo Farnese)의 건축에서 영감을 얻은 르네상스 공간이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유명한 그림이 호화로운 의상으로 재해석되어 있었다. 다음 장소에서는 2022년 알타 모다 쇼에 등장한 흰색 바로크 아라베스크 무늬가 눈부시게 빛났고, 아그리젠토(Agrigento) 신전의 계곡(Valle dei Templi)에서 선보인 2019년 컬렉션 속 여신의 토가(Toga, 고대 로마 의상) 주름에서는 뿌리인 그리스에 대한 시칠리아 문화의 찬사가 느껴졌으며, 밀라노 스칼라 극장(La Scala)과 극장의 붉은 벨벳 객석을 향한 경의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돌체앤가바나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다.
결국은 믿음에 관한 것이다. “패션이 현실을 넘어 또 다른 영역, 판타지와 꿈의 세계로 데려다줄 수 있다는 거죠.” 뮬레가 말했다. 이 전시가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의 걸작을 소개하는 으리으리한 쇼케이스인 만큼 그들이 사랑하는 조국을 빛내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나라 말이다.
“이탈리아 사람은 모두 예술가입니다.” 돌체가 덧붙였다. “모든 이탈리아 가문의 혈통에는 카라바조와 가깝거나, 미켈란젤로를 알거나, 베르디와 함께 노래한 친척이 있죠. 이탈리아인에게는 라구 소스 만드는 것조차 예술적 표현이에요.”
“저를 믿으세요(Believe me).” 플로랑스 뮬레의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날 비행기 연착으로 새벽 1시가 넘어 밀라노에 도착해 아침부터 1시간 넘도록 돌체앤가바나 최초의 전시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으니 모든 감각이 점점 둔해지던 참이었다. 아직 실체를 보기 전이라 조금은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러다 이토록 매력적인 말을 들으니 화자(話者)가 궁금해질 수밖에!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어 컨퍼런스가 끝나고 재빨리 팔라초 레알레로 향했다. 실크로 된 표범 무늬 점프수트에 금색 단추가 달린 검정 재킷을 입고, 잔머리 하나 없이 깔끔하게 빗어 묶은 머리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 플로랑스가 전시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처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모두를 첫 번째 방으로 안내했다.
이탈리아 색이 짙은 현란한 브랜드. 솔직히 고백하자면 돌체앤가바나에 대한 인식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하우스의 여성 오뜨 꾸뛰르 컬렉션을 뜻하는 알타 모다 역시 접근성이 매우 낮은 편이라 오래전부터 관심을 끊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검정 벨벳 커튼을 들추며 플로랑스를 따라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미 돌체앤가바나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섬세하게 짠 레이스로 만든 웨딩드레스, 새틴을 촘촘히 땋아 만든 거대한 케이프, 바구니처럼 엮어 만든 코르셋 등 2012년 7월 첫 알타 모다 컬렉션부터 2023년 12월 선보인 최근 컬렉션에 이르는 의상 중 장인 정신이 가장 돋보이는 상징적인 작품만 엄선해 전시해두었기 때문이다. 벽에는 매 시즌 알타 모다 의상을 입은 자신을 그린 아티스트 안 두옹의 그림이 가득 걸려 있었다. “패션은 다른 예술 형태와 마찬가지로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곳인 ‘심장’에서부터 그것이 형태를 잡도록 하는 ‘손’까지의 여정입니다. 이 전시는 심장이 머무는 장소를 추적하고, 대규모 투어인 알타 모다의 숨결이 닿은 곳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인간의 손길, 파토 아 마노(수작업)에 집중하죠.”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는 다소 직관적인 전시 제목에 대해 설명했다.
개인적인 감동 포인트를 하나 더 밝히자면, 돌체와 가바나의 애국심이다. 전시를 구성하는 10가지 주제는 두 디자이너의 영감의 원천이지만, 대부분 이탈리아와 연관이 있다. 베네치아 전통 유리공예에 경의를 표하고, 다큐멘터리를 통해 시칠리아 수레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알리며, 스투코(Stucco) 공예를 뛰어난 수준으로 끌어올린 시칠리아 바로크 조각가 자코모 세르포타(Giacomo Serpotta)에게 찬사를 보낸다. 영화, 건축, 예술, 음악, 종교 등 이탈리아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를 소개하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돌체앤가바나에서 타오르미나(Taormina), 시라쿠사(Siracusa)처럼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거치며 선보이는 알타 모다를 두고 ‘그랜드 투어’라고 하는 것도 그리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다.
4월 6일, 팔라초 레알레에서 전시 공개를 기념하는 오프닝 이벤트가 열렸다. 창립자 듀오와 나오미 캠벨, 밀라노 시장을 비롯한 대표 인물들의 리본 커팅과 함께 파티가 시작됐다. 셰어, 데미 무어, 헬렌 미렌, 릴리 제임스, 로지 헌팅턴 휘틀리, 루피타 뇽 등 굉장한 셀러브리티 군단에는 글로벌 앰배서더 문가영과 NCT 도영이 합류해 화제를 모았다. “돌체앤가바나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한 명의 디자이너로 묘사됩니다. 일종의 고대 신화 속 괴물이죠. 이 둘이 함께 있으면 무시무시하답니다.” 흰색 브로케이드 수트 차림에 커다란 샹들리에 이어링을 매치한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오랜 친구들에게 장난스러운 축사를 남겼다. 다 함께 크게 웃고 난 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탈리아식’ 저녁 식사가 이어졌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말펜사 공항, 저녁 메인 뉴스로 당일(4월 7일) 시작된 돌체앤가바나 전시에 대한 소식을 보도하고 있었다. 내심 부러웠다. 이렇게 대규모의 전시가 과연 밀라노시, 더 나아가서는 이탈리아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었을까? “이탈리아는 작은 나라지만, 보존되어야 할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전통과 우수성 덕분에 아름답고 독특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배운 모든 것, 우리가 만난 장인들의 숙련도, 우리가 발견한 새로운 기술, 이탈리아의 벨로 에 벤 파토(Bello e Ben Fatto, 아름답고 잘 만들어진 것)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아무것도 소실되지 않도록 말이죠.”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란 두 디자이너가, 이탈리아에서 브랜드를 설립하고, 이탈리아에서 매 시즌 컬렉션을 선보이며, 이탈리아 곳곳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만 이어가고 있다는 건 더없이 특별하다. 돌체앤가바나가 표현하려는 것은 결국 이탈리아 그 자체가 아닐까. (VK)
- 글
- TIZIANA CARDINI
- 사진
- COURTESY OF DOLCE&GABBANA
- SPONSORED BY
- DOLCE&GABB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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