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짜리 쪼리, 더 로우라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유
몇 주 전, 제 메일함에 신발 브랜드 ‘리프(Reef)’ 관련 홍보 자료가 들어왔습니다. 아마 낯선 이름일 거예요. 리프는 샌디에이고 기반의 신발 브랜드로, 서핑을 사랑하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형제가 1984년에 창립했습니다. 처음에는 투자금이 4,000달러, 한화 615만원 정도에 불과한 작은 브랜드였어요. 이후 캘리포니아 해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며 규모를 키워나갔죠.

2005년에는 미국의 종합 패션 지주회사인 VF 코퍼레이션에 인수됐습니다. 당시 브랜드 가치는 1억8,770만 달러, 한화 약 2,900억원에 달했죠. 2018년에는 락포트 그룹에 재매각됐습니다. 금액 관련 자세한 사항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긴 세월 동안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는 것은 분명하죠. 어쨌든 메일에는 밑창에 병따개가 내장된 ‘패닝(Fanning)’ 스타일의 신발이 출시 21주년을 맞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법적 음주가 가능해지는 연령을 맞이했다는 거죠.
메일을 받은 당시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부 캘리포니아 출신인 저에게, 리프는 남자 대학생들 또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아빠들에게 잘 어울리는 브랜드였거든요. 다시 말해 딱히 멋스러운 브랜드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 브랜드의 스포티한 이미지와 독보적 인기를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편안함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특정 계층에서 선호도가 매우 높으니까요. 하지만 ‘패션’ 영역에서 보자면, 글쎄요. 그닥 스타일리시한 느낌은 아니니까요.
지난주, 더 로우의 최신 슈즈 컬렉션이 하나둘 공개되기 시작했습니다. 보헤미안 무드의 우븐 슬리퍼, 순례자 느낌의 로퍼, 매끈하고 세련된 슬라이드 샌들 등 종류가 매우 다양했죠. 그중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댄(Dan)’ 샌들이었습니다. 은은한 스티치 디테일이 돋보이는, 두툼한 갈색 스웨이드 스트랩의 플립플롭이었죠. 그 디자인을 마주하자 온몸의 신경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잘못 봤나? 200만원에 달하는 이 플립플롭… 완전히 ‘리프 감성’을 담고 있었거든요.
혼자만의 생각인지 의심스러워 동료 몇 명에게 사진을 보냈는데, 그들도 제 생각에 동의했습니다. 더 로우의 새 샌들에는 분명히 리프 특유의 에너지가 묻어 있었어요. 특히 이 신발은 은은하게 리프의 베스트셀러 오하이(Ojai) 클래식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물론 짚고 넘어가자면, 리프가 이런 디자인의 신발을 발명했거나 유일하게 대중화한 브랜드는 아닙니다. 수많은 브랜드가 비슷한 스타일을 선보여왔죠. 더 로우에서 이전에 출시한 ‘비치 샌들’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고요. 솔직히 처음에는 이 신발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절제된 라인과 은근히 관능적인 감각을 선사하는 ‘듄’이나 ‘시티’ 플립플롭과 비교했을 때 너무 투박하고 둔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죠. 듄이 파인 다이닝이라면, 댄은 ‘인간 사료’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저는 더 로우를 만든 패션 천재들, 메리 케이트와 애슐리 올슨의 선택을 기본적으로 존중하니까요. 그들은 곧 무엇이 멋있어질지, 사람들이 어떤 것을 탐낼지 누구보다도 빠르게 알아챕니다. 그게 그들의 일이기도 하죠. 사실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플립플롭은 관심 밖의 아이템이었습니다. ‘듄’이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죠. 이 신발은 출시되자마자 순식간에 ‘올여름의 신발’로 등극했고, 플립플롭 열풍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올슨 자매가 선택한 디자인이었기 때문이죠. 비싼 가격에도 말이에요. 아니, 어쩌면 그 가격 덕분에 더욱 주목받은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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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올슨 자매는 우리가 더 묵직하고 존재감 있는 실루엣을 원하게 될 거라고 직감한 모양입니다. 그들이 그렇다면, 제가 뭐라고 감히 그들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올슨 자매는 우리가 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그 무언가가 정확히 뭔지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초자연적 통찰력을 갖춘 셈이죠.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 영리하게 변주하기를 택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트렌드는 바탕에 깔아둔 채, 스트랩을 조금 더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어 우리가 새 시즌의 신발을 신선하게 느끼게끔 만들었죠.
그런 점에서 올슨 자매가 약간은 어설픈 느낌의 ‘서퍼 감성’을 담아낸 것도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닙니다. 그들 역시 뼛속까지 캘리포니아 여자들이니까요. 헐렁한 카고 반바지와 매치하면 묘하게 아베크롬비 광고 속, 완벽하게 이상화된 의상 같은 느낌이 들죠. 어쩌면 그들이 느끼고 있는, Y2K 트렌드에 대한 향수를 반영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유명한 만큼 비밀도 많은 올슨 자매가 정확히 어떤 경로를 통해 이 디자인을 선택하게 됐는지 알 방법은 없습니다. 단순한 해설가로서 제가 알 수 있는 건, 그들이 자신들의 신비로운 감각 속에서 이를 끄집어내고, 충분히 고민한 뒤, 지금 이 순간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는 것뿐이죠. 올슨 자매가 올여름에는 더 두꺼운 스트랩이 잘 어울릴 거라고 선언했고, 그래서 진짜로 그렇게 된 거예요. 실제로 그들은 액세서리 분야에서 꽤 훌륭한 실적을 쌓아온 디자이너들이기도 하잖아요.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에서 수여하는 CFDA 액세서리 디자이너상을 네 번이나 수상했을 정도니까요. 그러니 이번에도 그냥 그들을 믿어보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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