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부터 오사카까지, ‘보그’의 구찌 패션·문화 답사기
서양과 동양,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다섯 도시에서 우리 시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피렌체, 런던, 서울, 마드리드, 오사카를 관통하는 〈보그〉 에디터들의 패션·문화 답사기.
From Florence
다시 한번 스타트 라인에 선 패션 하우스가 과거를 거두고, 미래를 보여주는 법.
패션 하우스는 보통 평론가에게 같은 쇼를 두 번 보겠느냐고 묻지 않는다. 하지만 2026 크루즈 컬렉션만큼은 두 번의 관람이 구찌의 계획에 철저히 포함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가 아니라 어디에서 보는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5월 15일 오후, 첫 번째 관람을 위해 피렌체 팔라초 세티만니(Palazzo Settimanni)에 자리한 구찌 아카이브에 도착했다. 아르노강 너머 남쪽 지역에 있는 건물은 15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1953년부터 구찌의 주요 작업장이었다. 톰 포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던 1990년대에는 구찌 쇼룸으로 쓰였고, 100주년을 맞은 2021년에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이 공간을 하우스 아카이브로 탈바꿈시켰다.
몇몇 패션계 인사를 제외하면, 첫 번째 쇼는 전적으로 구찌에 가장 충실한 주요 고객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한때 포드가 쇼룸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눴고, 전시된 과거 뱀부 백을 구경했다. 위층에는 4년 전쯤 봤던 실크 스카프 보관용 장식장이 있었는데, 런웨이 설치를 위해 얼룩덜룩한 거울을 깔아 높아진 바닥 때문에 한구석으로 치워놓았다.
런웨이 위로 반사되며 공개된 컬렉션은 어느 정도 구찌 레디 투 웨어의 여러 시대를 혼합한 것처럼 보였다.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끈 것은 1960년대 젯셋 글래머. 포드가 하우스 DNA에서 발견해, 재직하는 동안 낡은 이미지에서 탈피해 필수 아이템으로 바꿔놓은 정신이다. 풍성한 털 장식 코트와 네크라인이 깊이 파인 시퀸 드레스를 바탕으로, 그의 후임자들을 상징하는 모티브를 암시적으로 덧입혔다. 리본 장식과 극적인 호화로움은 미켈레의 것이었고, 몸에 꼭 맞는 세련된 실루엣은 프리다 지아니니가, 망사 패턴과 남성적인 가죽 아우터는 사바토 데 사르노가 떠올랐다. 더 넓게 보면 지나치게 양식화되고 영화처럼 확장된 부르주아 여성의 데카당스를 표현하고 있었으며, 감성은 여성적이고 세련된 파리 스타일과 화려하고 대담한 피렌체 스타일을 넘나들었다.
첫 번째 쇼가 끝난 후 구찌 CEO 스테파노 칸티노(Stefano Cantino)가 런웨이에 머물렀다. 예상한 대로, 그는 구찌에 부임할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가 공식적으로 업무를 시작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역할을 잘 인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몇 시간 뒤 구찌 직원들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든 비가 한차례 내렸고, 우리는 두 번째 쇼를 보러 돌아왔다. 이번에는 좀 더 대중을 위한 시간이었다. 폴 메스칼, 비올라 데이비스, 줄리아 가너, 제프 골드브럼과 이정재를 비롯한 관람객이 천천히 아카이브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쇼를 한차례 관람한 평론가들은 그들과 함께하지 않고, 산토 스피리토 광장(Piazza Santo Spirito)에 위치한 지정석으로 갔다. 모퉁이를 돌면 나오는 공공 광장으로, 잠깐 내린 비를 우려한 건 이 때문이었다. 광장 인근 바와 카페에는 구찌 직원들이 앉아 있었고, 피렌체의 수많은 패션 팬들이 쇼를 보기 위해 바실리카 아래 모여 있었다. 아카이브 안에서 엔니오 모리코네의 사운드트랙이 울려 퍼졌고, 뒤이어 칼다이에 거리(Via delle Caldaie) 코너에서 모습을 드러낸 모델들이 울퉁불퉁한 돌길을 지나 분수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이 펼쳐졌다.
결국 두 번의 쇼를 경험한 이유는 아카이브를 살아 움직이게 만들고자 하는 구찌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스튜디오 팀이 디자인한 컬렉션은 구찌의 과거를 산뜻한 방식으로 현재에 도입하는 작업이었으며, 이는 뎀나가 앞으로 보여줄 미래를 예고하는 시도였다. (VK)
- 글
- LUKE LEITCH
- 사진
- COURTESY OF GUCCI
- SPONSORED BY
- G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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