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앙팡 리쉬 데프리메

2025.06.24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앙팡 리쉬 데프리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앙팡 리쉬 데프리메

촬영 전 헨리는 “담배를 손에 쥐고 있어야 긴장이 풀릴 것 같다”고 말했다. 장 프루베의 철제 빈티지 도어가 검게 칠한 외벽과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는 ERD 서울.

패션 위크 취재 3년 차, 처음으로 쇼에 지각할 뻔했다. 복작거리는 걸 피하기 위해 쇼장에 일찍 가려고 노력하는 편인데도 말이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니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부피가 큰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낀 채 쇼를 봐야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지난 1월, 지각할 뻔했던 건 순전히 앙팡 리쉬 데프리메(Enfant Riches Déprimés, ERD) 플래그십 스토어와 ERD 창립자 헨리 알렉산더 레비(Henri Alexander Levy)가 운영하는 카페 겸 빈티지 서점 안티 퍼블릭 라이브러리(Anti Public Library) 때문이었다. 매장에서는 가죽 재킷과 바지를 여러 벌 입어보느라, 안티 퍼블릭 라이브러리에서는 미시마 유키오의 책과 수십 년 전 절판된 매거진에 정신이 팔렸다. ERD 파리와 안티 퍼블릭 라이브러리는 내가 출장 중 ‘무슨 일이 있어도 가봐야겠다’고 다짐한 곳이었다.

휘황한 럭셔리 브랜드의 매장도 아닌데, ERD의 공간에 더 큰 매력을 느낀 이유는 간단하다. ERD가 지금 가장 ‘문제적인’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헨리는 논란이 있는 인물을 보란 듯 캠페인 모델로 캐스팅하고(지난해에는 사타니스트라는 의혹을 달고 사는 록 스타 마릴린 맨슨이었다), 성 추문을 일으켜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된(터부를 깨자면, 테리 리처드슨이다) 포토그래퍼에게 캠페인 촬영을 의뢰한다. 흡사 플럭서스 예술가의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보는 듯한 ERD의 컬렉션은 파리 패션 위크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쇼로 거듭났다. 2025 가을/겨울 컬렉션에는 골판지로 만든 탱크가 등장했고, 2024 봄/여름 컬렉션 중에는 피에타상을 오마주하며 ‘신성모독’ 직전까지 갔다. 2012년 론칭 이후 다양한 하위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옷을 선보이며 컬트적 팬덤을 보유한 ERD가 파리에 이어 서울에 두 번째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했다.

헨리는 촬영 내내 자신보다 공간이 돋보이는 사진을 원한다고 말했다.

내가 만난 헨리는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디자이너보다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예술가에 가까웠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 그는 담배라도 손에 쥐고 있어야 긴장이 풀릴 것 같다고 고백했다. 카메라 앞이 영 불편하다는 듯, 사진가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자리를 이탈하기 일쑤였다.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때도 헨리는 귀를 갖다 대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형식적인 답변은 하지 않겠다는 듯, 질문을 받을 때마다 수십 초에 걸쳐 생각을 정리한 뒤 신중하게 고른 말을 내뱉었다. 촬영은 험난했고 인터뷰 내내 난생처음 들어보는 영어 단어가 귀를 폭격했지만(녹취를 풀며 영어 사전을 10번 넘게 검색한 건 처음이었다), 헨리가 원망스럽진 않았다. 그의 그런 태도가 도리어 ‘ERD스럽게’ 느껴졌다.

몸에 새겨진 문신에서도 헨리가 겪은 모든 기쁨과 슬픔이 느껴지는 듯하다.

“ERD는 제 평생의 과업입니다.” 검은색 송아지 가죽으로 뒤덮인 의자에 앉아 간단한 소개를 부탁하자, 헨리는 ERD가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브랜드명을 ‘우울한 부잣집 아이들’로 지은 이유 역시, 그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헨리는 자신이 겪은 모든 트라우마, 고통 그리고 기쁨이 ERD에 투영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유년기의 경험과 심리학은 ERD의 큰 부분이죠.” 헨리는 고개를 돌려 행어에 걸린 옷을 살피며, 예술을 할 때 비로소 자신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ERD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Anti/Neo/Post’라는 소개 문구가 적혀 있다. 각 단어가 헨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세 단어를 병렬한 이유가 무엇인지 안다면 ERD의 본질에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질문했지만 헨리는 대답을 피했다. 어쩌면 회피보다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헨리는 단어란 곧 페인트고, ERD는 자신이 그려낸 그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단어로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 의미가 아니라 단어 자체가 주는 느낌이다. “정의를 내리면, 단어를 둘러싼 느낌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요. 세상에는 또렷한 것보다 흐릿한 상태로 두는 편이 나은 것도 분명 존재합니다. 저는 제 사상과 감정을 정제하고 배치할 뿐이죠.” ERD를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내 착각이었다.

콘크리트를 의도적으로 노출한 ERD 서울.
꾸뛰르적인 드레스가 걸린 매장 내부.

ERD 서울 역시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간이다. 새까맣게 칠한 외벽에서는 어떤 생동감도 느껴지지 않지만, 진회색 콘크리트를 노출한 내부는 날것 그대로의 매력을 뿜어낸다. ERD 서울에 대해 묻자 헨리는 기다렸다는 듯 ‘좋은 건축물’에 대한 지론을 쏟아냈다. “최근 패션과 건축은 급속도로 획일화되고 있습니다. 좋은 건물이란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면서도 위험을 감수해야 해요. 낭만주의, 고전주의와 브루탈리즘 등 다양한 건축 사조에서 영감을 받은 ERD 서울이 고객의 감정을 자극했으면 합니다.”

컴컴한 ERD 서울의 반대편에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가 주황빛으로 번쩍이며 위용을 뽐낸다. 럭셔리 피라미드의 정점을 고고하게 지키는 에르메스와 사람이 자전거에 치이는 그림을 가죽 재킷에 수놓는 ERD는 완벽한 상극이다. 이 역시 의도한 것인지 묻자, 헨리는 품에서 가죽 커버를 씌운 노트를 꺼내 들었다. 1분 정도 노트를 뒤적인 그는 천천히 입을 뗐다. “저는 ‘아웃사이더 오브젝트’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사람입니다. 대중은 주목하지 않거나,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예술과 사물 같은 거죠. 그런 것들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된 ERD의 옷은 기존 럭셔리 브랜드가 제안하는 옷과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띱니다.” 헨리는 자세를 고쳐 앉은 뒤, 결연한 눈빛과 함께 ERD가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ERD는 그 자체로 럭셔리라는 이름의 거대 시스템에 대항하는 존재죠.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위치한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ERD 서울은 한국 럭셔리 시장에 분열을 일으킬 거예요.”

물론 ERD가 ‘아웃사이더 오브젝트’라는 무기만 들고 럭셔리 업계에 맞서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독립 브랜드라는 신분 역시 ERD가 내세우는 무기다. 대중을 의식할 필요도, 트렌드에 집착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테리 리처드슨의 복귀를 도운 것도(8년 가까이 특별한 활동이 없었던 테리는 ERD 캠페인을 촬영한 후, 최근 한 유명 매거진의 커버를 담당했다), 매번 도발적인 캠페인 이미지를 선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헨리는 “브랜드 이미지에 어울릴 거라는 생각에 그런 결정을 내렸을 뿐”이라고 조용히 덧붙였다.

ERD가 선보이는 모든 아이템은 헨리의 취향에서 비롯된다.

ERD의 모든 시발점은 결국 ‘헨리 알렉산더 레비’라는 한 개인으로 귀결된다. 그는 자신이 독재자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독재가 필요하죠. ERD는 철저히 제 취향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입니다. 모든 결정은 제 몫이죠.” 그 말처럼, ERD 서울에도 헨리의 기호가 구석구석 배어 있다. 장 프루베의 철제 빈티지 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서면, 레이몬드 페티본(Raymond Pettibon)의 그림이 삽입된 하드코어 펑크 밴드 블랙 플래그(Black Flag)의 전단지가 가장 먼저 ‘손님맞이’에 나선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콜라주 아티스트 월레스 버만(Wallace Berman)의 작품 두 점이 전시되어 있다. “취향이란 구체적이고 개인적이어야 합니다. 음악을 찾아 듣고 예술품과 건축물을 감상하는 시간이 쌓이다 보면 첨예한 취향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는 자신의 취향이 오랜 시간 단련한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카페인, 술, 빈티지 포토 북, LP, 카세트테이프 등으로 가득한 안티 퍼블릭 라이브러리 역시 헨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집약해둔 공간이다. 안티 퍼블릭 라이브러리를 오픈한 계기에 대해 묻자, 그는 한 개인이 하나부터 열까지 큐레이팅한 장소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고 답했다. “그런 공간은 도시 전체의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죠. 파리의 문화 역시 안티 퍼블릭 라이브러리 덕분에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안티 퍼블릭 라이브러리 서울’을 기대해도 될까? “물론이죠. 안티 퍼블릭 라이브러리 서울이 생긴다면, 서울도 조금은 덜 물질적으로 변하지 않을까요?”

지난 1월 안티 퍼블릭 라이브러리를 방문했을 때 내가 어떤 LP를 집어 들었는지, 또 각자 좋아하는 아르 브뤼(Art Brut)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휴대폰 녹음기 마크는 40분을 넘기고 있었다. 슬슬 헨리를 보내줘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ERD를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없나?” 헨리는 이날 처음으로 1초 만에 답을 내놨다. “Fuck.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자기만족을 위한 겁니다. 소비자와 비평가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블랙 플래그에 대해 한참 더 이야기했다. (VK)

에디터
안건호
포토그래퍼
이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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