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쓰는 제냐의 서사시, 오아시 제냐

2026.05.28

자연에 쓰는 제냐의 서사시, 오아시 제냐

“우리는 대지의 표면 위에서 예술의 새로운 지형을 발견해야 한다.” 저명한 대지예술가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이 1968년 <아트포럼>에 기고한 에세이에 나오는 문장이다. 1960년대 후반 등장한 대지예술은 자연을 매체로 삼는 예술 사조로, 미술 작품이 추구하는 영원성에서 벗어나 풍화와 침식, 변화를 기꺼이 수용한다.

100km²에 이르는 이탈리아 알프스의 자연 공간 오아시 제냐(Oasi Zegna)는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가 주도해 만들었다. 그곳을 접한 순간 나는 대지예술이 떠올랐다. 자연에 철학과 의지, 예술을 입혔기 때문이다. 제냐 가문은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ESG’라는 개념이 회자되기 훨씬 전부터 황폐한 산맥에 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오아시 제냐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232번 도로를 구축하면서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와 교류했다.

그 결정적 인물은 20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위대한 조경가 피에트로 포르치나이(Pietro Porcinai)다. 1910년 제냐가 설립된 해에 피렌체에서 태어난 포르치나이는 고향에 스튜디오를 세울 때부터 스스로를 ‘자연의 전도사’이자 ‘이탈리아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건축가’라 소개했다. 그는 지역의 역사와 특성, 환경 데이터와 생태학적 접근, 당대 요구를 읽어내는 능력으로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발전시켰다. 1950년대부터 개인 정원을 넘어 이탈리아에서 미개척 분야였던 생태 복원, 산업 시설 조경 등으로 확장해갔고, 제냐와 운명적 협업을 이어갔다. 제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부터 캠페인 모델까지 그들이 브랜드 철학을 공유하는지 숙고한 뒤 함께한다. 포르치나이 역시 단순한 건축가로 제냐가 탄생한 트리베로(Trivero)에 초청한 것이 아니라 같이 철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그 협업을 통해 유리, 빛, 물, 식물이 조화를 이룬 윈터 가든을 완성했다. 트리베로의 카사 제냐(Casa Zegna), 카 지아닌(Cà Gianin), 빌라 알 록(Villa Al Roc)을 중심으로 정원을 일상의 삶과 지역 풍경을 잇는 다리로 해석했다. 단순한 온실이나 식물원이 아니라 건축과 식물, 사람이 자연에 스며든 공간으로 가족의 친밀한 시간, 비즈니스 장소로 사용됐다.

무엇보다 트리베로의 고전적인 빌라와 차가워 보이는 공장에 그늘막, 격자무늬 창살, 수직 정원이라는 ‘자연 장치’를 들였다. 생산 공간에 품위와 아름다움을 선사한 것이다.

오아시 제냐가 궁금하다면 2026년 봄을 맞아 선보인 제냐의 글로벌 앰배서더 매즈 미켈슨(Mads Mikkelsen)의 캠페인 영상 ‘더 윈터 가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매즈 미켈슨이 아이코닉한 트리플 스티치™ 슈즈를 신고 윈터 가든을 거닌다. 제냐는 슈즈뿐 아니라 전 세계의 엄선된 생산자로부터 공급되는 가장 희귀한 울 섬유인 벨루스 오리움(Vellus Aureum), 유연하고 정교한 세컨드 스킨 레더 의상을 선보여왔다. 그 실루엣은 여유롭고 유연하며, 절제된 자신감으로 계절이 바뀌듯 몸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세컨드 스킨 소재로 완성된 ‘일 콘테(Il Conte) 재킷’의 정교한 설계부터 스티치까지, 모든 디테일이 편안함과 우아함, 주변 세계와 조화를 추구한다.

윈터 가든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제냐 재단(Fondazione Zegna) 이사장 안나 제냐(Anna Zegna)의 말이 떠오른다. “풍경은 우리의 현재일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억입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각자의 삶을 통해 저마다의 풍경을 그려나가기 때문이죠.” 제냐는 오늘날 럭셔리 브랜드가 외치는 ‘지속 가능성’을 진실하게, 가장 오래 실천했다. 지금 우리는 어떤 풍경을 그리고 있는가. VL

김나랑

김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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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매번 배웁니다. 집에 가면 요가를 수련하고 책을 읽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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