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걸작, 전방위 예술가 아델 러츠의 원더랜드

2026.06.03

모더니즘 걸작, 전방위 예술가 아델 러츠의 원더랜드

영화 <비틀쥬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데이비드 번을 위한 의상을 만들기도 한 아델 러츠는 디자인과 모델 활동, 예술과 연기를 넘나드는 예술가다. 로스앤젤레스 로럴캐니언에 위치한 그의 집 또한 모더니즘 걸작이다.

거실에는 아델 러츠의 조소 작품 ‘최초의 재벌과 그의 일가’가 압도적으로 눈에 띈다.

거실에는 아델 러츠(Adelle Lutz)의 조소 작품 ‘최초의 재벌과 그의 일가(The First Corporate King and Family)’가 보이고, 한구석에는 다양한 크기의 아코디언 종이 소파가 놓여 있다. 친구가 아델 러츠의 로스앤젤레스 저택 앞에 나를 내려주며 “그렇지 않아도 여기 멋있는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더군”이라고 말했다. 지난 세기 주요 반체제 인사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 해도 과언이 아닌 로럴캐니언은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조니 미첼(Joni Mitchell), 짐 모리슨(Jim Morrison), 닐 영(Neil Young), 린다 론스태드(Linda Ronstadt), 캐스 엘리엇(Cass Elliot), 프랭크 자파(Frank Zappa) 모두 1960년대에 이곳에서 살면서 활동했다. 주민 중 한 명인 70대 후반의 아델 러츠는 과거에 모델, 배우, 예술가, 디자이너, 활동가로 활약한, 그야말로 진정한 전방위 예술가다. 그는 팀 버튼의 오리지널 <비틀쥬스>에서 ‘데이 오(Day-O)’ 노래에 맞춰 엉뚱한 춤을 귀엽게 선보였으며,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과 데이비드 번(David Byrne) 같은 유명인들의 의상을 제작했다. 그의 조소 작품과 개념 미술 작품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주인처럼 멋진 그의 집은 사회적으로 의식 있는 건축가 그레고리 에인(Gregory Ain)이 1941년에 지은 것으로, 로럴캐니언 정상 부근에 자리한다. 러츠의 창의적 연출과 리모델링으로 저택은 전보다 한층 더 멋지게 빛나고 있다.

가구 디자이너 크리스 레렉(Chris Lehrecke)이 큼지막한 선반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스툴 위에 일본에서 수입한 개 조각상이 놓여 있다. 노구치 조명의 종이 전등갓에는 주얼리 디자이너 가브리엘라 키스(Gabriella Kiss)가 디자인한 순은 소재 곤충이 자리한다. 앞쪽 마네킹에 걸린 옷은 러츠가 1986년 영화 <트루 스토리스(True Stories)>를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디자인한 것이다.

러츠는 1980년대 중반 이 저택을 구입했다. 당시 이 집은 세 명의 주인을 거치며 시크한 모더니즘 걸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잡다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벽난로에는 여러 색깔의 현관용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어요.” 그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당시 상태를 회상했다. “전반적으로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같은 스타일이었죠. 바닥에는 진녹색 장모 카펫이 깔려 있었고, 거실 벽에는 두루미 벽화가 그려져 있었어요.” 관리인이자 스토리텔러로서 러츠는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구조를 다시 손보기 시작했다. 이 집을 역사적인 원형으로 복원하려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이곳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담아내는 프로젝트였다.

우선 이 집을 현재 건축 기준에 맞춰야만 했다. 1940년대 경사지에 관한 건축 규정은 지금과 달랐고, 애초에 현대 구조물에 필수적인 강철이 아닌 아스팔트 슬래브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었다. 러츠는 또 이 집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싶었다. 들보에 낸 채광창은 작은 해충의 우아하지만 이제는 사라진 활동을 보여준다(그는 이를 ‘흰개미 구겐하임’이라 부른다). 다이닝 룸 바닥에 있는 유리 패널은 로럴캐니언의 바위들을 박물관 디오라마처럼 보여준다. “이 집의 흔적을 발굴하는 과정이 무척 중요했어요.” 러츠가 말했다. 부지에서의 예상치 못한 발견은 자신의 예술적 감각과도 일맥상통했다. 에인의 작업처럼 그의 작업도 종종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소재를 전환한다. 식사 테이블 위에는 달 모형이 걸려 있고 수공으로 잘라 붙인 돌과 타일로 된 바닥에는 군데군데 다양한 색의 직사각형 무늬가 있다. 내장된 유리 ‘디오라마’가 로럴캐니언의 바위 지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에인이 디자인한 파티오의 부서진 부분은 길을 닦는 데 재활용했다. 나무 사다리를 타고 다양한 울트라 마린 색조로 칠한 벽을 통하면 손님들을 위한 프라이빗한 실외 공간인 스튜디오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다이닝 룸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돌과 타일을 손수 잘라 붙인 바닥이다.
에인이 디자인한 파티오의 부서진 부분을 길로 재활용했다. 사다리를 타고 울트라 마린 색조로 칠한 벽을 통하면 비밀스러운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폴 카라니카스(Paul Caranicas)의 휘어진 그림이 드레스 룸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앤티크 수납장 위에 놓인 오래된 대나무 장식장에 가족 기념품을 놓았고, 재봉용 마네킹은 러츠의 주얼리 컬렉션과 개인 소장품으로 꾸며져 있다. 바닥에 있는 수공예 모카신과 종이 신발은 너무 섬세해서 감상용으로만 전시해둔다. 손으로 자른 슬라이드 필름 토템을 담고 있는 툭 튀어나온 라이트 박스는 윌 스퀴브(Will Squibb)의 ‘43번 작업(Work #43)’이다. “이곳은 원래 그레고리 에인의 정부였다가 후에 아내가 된 루스 마치(Ruth March)를 위해 지은 집이었어요. 에인의 사무실도 오랫동안 이 부지에 같이 있었죠. 이곳은 로럴캐니언 지역에 처음 들어서기 시작한 집 중 하나였고, 상당히 저렴한 비용으로 지었죠. 그래서 수리가 필요했어요. 저는 이 집을 건축학적 작품으로서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딱히 하지는 않았어요. 기존 틀은 유지했지만, 전 주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실내 공간은 제가 원하는 대로 바꿨죠.” 구체적으로 말하면 원래 있던 차고는 이제 손님방이 되었고, 분리된 작은 주방과 식사 공간은 하나로 합쳐 응접실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거실 바닥에는 기존 장모 카펫 대신 수공으로 잘라 붙인 타일과 석재가 깔려 있는데, 연분홍색과 차분한 회색 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예상 밖의 색깔로 된 직사각형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벽화 속 두루미도 벽을 떠났고 이제 러츠의 조소 작품 ‘최초의 재벌과 그의 일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폴 카라니카스의 그림을 드레스 룸 입구에 걸었다. 오래된 대나무 장식장에 가족들이 사 모은 기념품을 놓았으며, 재봉용 마네킹에 러츠의 주얼리 컬렉션을 걸어두었다.

극좌적 정치 성향을 지녔다고 알려진 에인은 아인 랜드(Ayn Rand)의 소설 <파운틴헤드(The Fountainhead)>에 할리우드 대본이 섞인 것 같은 삶을 살았다. 매카시 시대가 정점을 찍던 시기, 그는 공산당과의 연루 가능성 때문에 이곳에서 수년간 FBI의 밀착 감시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의혹은 사실로 입증되지 않았다. 진실은 에인이 현대적 디자인 요소를 중저예산급 프로젝트에 적용시킨 휴머니스트 건축가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단독주택은 로스앤젤레스 미드 센추리 모던 건축의 중요한 예다. 러츠는 이 집을 작품으로 온전히 지키진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집에 담긴 정신을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캘리포니아 대형 산불로 소실된 건축 역작에는 미국 최초의 모더니스트 주택 개발 중 하나로 에인이 설계한 앨터디너의 공원 계획 주택(1946~1948)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 것(Don’t Make Wild Promises That You Can’t Keep)”이라고 적힌 아티스트 데이비드 슈리글리(David Shrigley)의 이불 커버 위에 엣시(Etsy)에서 발견한 버락 오바마 인형이 놓여 있다. 벽을 장식한 아프리카 종이 장식품은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지만 이제 문을 닫은 뉴욕의 수입 상점 크래프트 카라반(Craft Caravan)에서 구입한 것이다. 도사(Dosa)의 디자이너 크리스티나 킴(Christina Kim)이 선물로 준 섬세한 종이꽃 장식이 손님방 인테리어를 완성한다.

아티스트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문구가 적힌 이불 위에 엣시에서 발견한 버락 오바마 인형을 놓았다. 벽을 장식한 아프리카 종이 장식품은 뉴욕의 크래프트 카라반에서 구입했다. 그곳은 이제 문을 닫아 새로운 빈티지 가게를 찾는 중이다.

심플한 메탈 세면대에는 빈티지 정원용 수도꼭지와 부엉이 수전이 달려 있다. 모두 멕시코에서 구해온 것들이다. 오른쪽에는 세상을 떠난 러츠의 친구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의 멋진 사진이 “왜 그런지 알잖아요(You know why)”라고 쓴 그의 친필 메모와 함께 액자에 담겨 있다.

산불은 요즘 대부분의 로스앤젤레스 주민이 신경 쓰는 문제다. 러츠는 여러 주민들과 위급 상황에 대비하는 훈련을 했으며, 만약을 위해 비상 연락망인 ‘전화 연락망’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마다 주민들을 위해 사진 찍는 날(캐니언 카운티 상점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도로를 봉쇄하는 인기 있는 행사다)을 개최하는 동네이니만큼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러 면에서 로럴캐니언은 대도시의 작은 마을이다. 실제로 내가 이 기사에 실을 집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한 동네 주민이 러츠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남자가 당신 집 마당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고 일러주었다. 이곳은 확실히 보는 눈도 많지만 신경 써주는 마음도 넉넉한 동네인 듯하다. VL

김나랑

김나랑

피처 디렉터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매번 배웁니다. 집에 가면 요가를 수련하고 책을 읽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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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Ngoc Minh 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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