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원짜리 신발이 여름 코디 고민을 해결했다

이 직업의 고충 중 하나가 신발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는 데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을 쏟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어느새 신발 전문가가 되어버렸지만요. 그래서 몇 주 전 베네치아 여행을 앞두고 완벽한 여행용 신발을 갖췄다고 자신만만했는지도 모릅니다. 마놀로 블라닉의 슬링백, 굽이 있는 플립플롭, 돌바닥에서도 든든할 키튼 힐까지 말이죠. 날씨가 딴생각을 품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요.
햇살 아래 스프리츠를 홀짝이며 보낼 거라 그린 나흘이, 몬순급 폭우와 천둥 번개로 뒤덮였습니다. 마놀로 블라닉의 슬링백, 캐롤린(Carolyne)을 신고 베네치아를 누비겠다는 원대한 꿈은 꿀렁이는 물속에서 수인성 질환을 얻고 말겠다는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졌죠. 구원은 캐리어에 별생각 없이 던져 넣은 30파운드짜리 막스앤스펜서(M&S) 뮬에서 왔습니다. 그 후 나흘 내내 발에서 떼지 못한 이 소박한 슬립온은 당연히 올 시즌 최고의 슈즈가 됐죠.

최근 패션계는 ‘올 시즌 슈즈’가 무엇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입니다. 개인화된 시대에 단 한 켤레의 슈즈를 꼽는다는 게 어불성설처럼 느껴지지만요. 발뒤꿈치 벗겨지게 만들었던 향수 어린 젤리 슈즈가 재등장한 것을 보면, 올해도 ‘잘못됐지만 멋진’ 신발이 대세로 보입니다. 침실에서 나온 듯 하늘하늘한 실크 반바지에 스틸레토 힐이나 섬세한 스트랩으로 연결된 샌들을 매치하면, 동네 편의점에 잠시 들른 것처럼 보이거나 캐리 브래드쇼를 흉내 낸 듯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죠. 저 역시 열렬한 지지자인데요, 플립플롭의 부활도 빼놓을 수 없죠. 샌들 착용이 가능한 상태로 발을 늘 유지하는 데 공이 꽤 든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깔끔한 페디큐어는 고사하고 외부에 자주 노출된 발이 회복되기까지 꽤 오래 걸리니까요. 발가락은 그냥 숨겨두는 게 나을 때도 있죠. 그러니까 모든 게 조금 버거울 때, 소박하고 편한 슬립온 뮬은 반가운 숨구멍이 됩니다.


올 초 <보그>의 데이지 존스 에디터는 슬립온 뮬과 사촌 격인 클로그만 겨울에 신을 만한 신발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완벽하게 동의할 순 없지만, 이유는 꽤 합리적입니다. “운동화에서 벗어나 좀 더 세련된 대안으로 이동하는 요즘, 보헤미안 클로그의 부활, 더 로우 특유의 매끈하면서도 심플한 디자인이 가져온 필연적인 파급 효과가 클로그를 대세 신발로 만들었다”는 거죠. ‘세련된 미니멀리즘’에는 저 또한 끌리니까요. 조 크라비츠가 셀린느의 드레스에 제시카 맥코맥의 주얼리를 한 뒤 더 로우의 ‘캐널(Canal)’ 레더 슬립온을 신고 해변을 걷는 모습을 본 뒤 더 그랬습니다. 해리 스타일스와 함께 있는 사진을 봐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요.

청바지에 탱크 톱부터 시원한 여름 원피스, 편안한 스커트까지, 어떤 옷에나 잘 어울리는 심플한 슬립온은 그야말로 간편하게 신고 나가면 되는 신발이죠. 레오파드 프린트 슈즈를 꺼내거나, 빈티지 푸치, Y2K 감성이 짙게 풍기는 아이템을 마음껏 즐기는 계절이 되었지만, 저는 심플하면서도 멋스러운 슬립온으로 여름을 만끽하렵니다. 유명 셀럽이야 여름 필수 아이템으로 더 로우를 찾지만, 슬립온 뮬 한 켤레에 기백만 원을 쓸 마음이 없는 이들에게는 다행히 막스앤스펜서가 있습니다.


@hoskel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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