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LACMA)에서 ‘2013 아트+필름 갈라’가 열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에바 차우가 주최하고, 구찌가 후원하는 그 화려한 사교 모임에 〈보그〉가 초대받았다.



꿈의 도시 할리우드엔 불가능이란 게 없다. 하룻밤 사이에 텅 빈 뜰에 유리 궁전이 세워지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처럼 그 문을 열고 나와 바로 내 눈앞에서 미소를 짓는다 해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건 모두 실제 상황이다. 지난 11월 2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LACMA)에서는 영화와 미술의 발전을 위한 ‘2013 아트+필름 갈라’가 열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에바 차우가 공동 주최하고, 구찌가 후원하는 이 행사는 올해로 3회째를 맞는다.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공로를 기리는 특별 전시회와 영화 상영회도 열었다. 그리고 지금껏 한 번도 언론에 공개된 적 없는 그 화려한 사교 모임에 <보그>가 단독으로 초대됐다.

비벌리힐스를 가로지르는 월셔가 중심에 현대식 성전처럼 자리한 LACMA는 이른 아침부터 가로등 불빛을 밝힌 채 전 세계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했다. 설치미술 작가 크리스 버든이 LA를 돌아다니며 모은 202개 앤티크 가로등을 주철로 주조해 만든 ‘Urban Light(2008)’는 뮤지엄의 상징이자 이 지역의 랜드마크다. 마이클 고반이 관장으로 취임한 2006년부터 확실히 LACMA는 활기가 넘쳤다. 이런 멋진 행사를 기획한 것만 봐도 그렇다. 뮤지엄 곳곳에선 이번 행사와 관련한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꼈다. 아직 갈라 디너까진 하루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몇 개월 전부터 파티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낸 에바 차우는 미리 <보그>와 만나 이번 행사에 대해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열여덟 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을 거둔 이 열정적인 한국 여성은 세계적인 레스토랑 사업가 마이클 차우를 만나 결혼한 후, ‘미스터 차우’의 공동경영인이자 주얼리 디자이너, 패션 사업가로 활약하며 미국 상류사회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이 행사에 참여시킨 것도 그녀였다.

“마이클 고반과는 그가 뉴욕 구겐하임 부관장으로 있을 때부터 잘 알던 사이였어요. LACMA의 이사로 합류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2011년부터 ‘아트+필름 갈라’를 진행하게 됐죠. 여긴 할리우드니까요.” 65년부터 현대미술을 비롯해 예술의 전 장르를 다뤄온 LACMA는 할리우드라는 지역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당시 필름 사업 분야의 재정적 지원이 취약한 상태였다. 어린 시절, 한국화가 이당 김은호, 소정 변관식 선생으로부터 그림을 배우기도 했던 에바는 흔쾌히 마이클의 요청에 응했고, 기금 마련을 위해 특별한 자선 파티를 기획했다. 파티라면 에바의 전문 분야였다. 차우 가족의 비벌리힐스 저택에서는 구찌 패션쇼가 열리기도 했다. 프리다 지아니니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첫해였다. “톰 행크스의 아내 리타 윌슨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내 케이트 캡쇼는 매년 ‘칠드런스 액션 네트워크’라는 자선 행사를 같이해오고 있는데, 패션 디자이너를 초청해 패션쇼를 여는 컨셉이었죠. 파티 준비와 호스트 역할을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고, 그래서 우리 집을 빌려줬어요. 프리다 지아니니의 미국 첫 패션쇼였던 셈이죠.”

에바는 자신과 함께 행사를 주최할 파트너로 제일 먼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떠올렸다.“물론 우린 여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냥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아 오는 게 아니니까요.” 친구로서 오랜 시간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에바는 이 최고의 스타가 영화뿐 아니라 예술에도 조예가 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올 초엔 자신의 이름을 딴 환경재단까지 설립했을 만큼 그는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 인사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레오는 에바의 뜻을 존중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아트+필름 갈라’를 위해 미술계와 영화계 발전에 크게 공헌한 인물들을 매년 선정해왔다. 지난해 에드 루샤와 스탠리 큐브릭에 이어, 올해의 주인공은 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와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Winter Timber(2009)’를 그리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30여 년간 캘리포니아에 머물며 작업한 그의 그림 속에는 이곳의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LACMA에서는 ‘아트+필름’ 갈라를 기념해 디지털 영상 작품 ‘Seven YorkshireLandscape Videos(2011)’가 내년 1월 20일까지 전시된다.

60년대 영국 팝아트 운동을 이끈 데이비드 호크니를 유명하게 만든 건 로스앤젤레스 특유의 색채를 담은 페이팅 작업이다. 화창한 하늘과 야자나무, 수영장이 딸린 미니멀한 스타일의 주택, 1년 365일 푸른 정원과 스프링클러, 그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수영을 하거나 여유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30여 년간을 LA에서 생활한 이 영국 작가에게 LA는 제2의 고향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제 남편의 초상화예요. 아무래도 제겐 특별하죠. 예전엔 집에도 걸어뒀는데,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지금은 다른 그림이 그 자리를 대신했죠.

80년대에 장 미셸 바스키아가 그린 마이클 차우의 초상화와 줄리안 슈나벨이 그려준 저와 제 딸 초상화예요.” 데이비드 호크니를 위해 마련된 LACMA 전시장에선 그의 최근 작업인 멀티스크린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요크셔의 풍경을 18개 스크린에 담은 그 작품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9월부터 전시하고 있는, 폭 12m가 넘는 멀티 캔버스 회화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의 영상 버전처럼 보였다. 마틴 스콜세지와 LACMA의 인연은 그가 LA에 살았던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0년대에 LACMA에서 열린 ‘20세기 폭스’ 회고전을 보면서 처음으로 필름 복원 작업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전설적인 영화 역사가이자 LACMA의 필름 프로그램 디렉터였던 론 헤이버가 기획한 프로그램이었죠. 그때부터 진지하게 구체적인 계획을 고민해왔죠.” 마틴 스콜세지는 마침내 그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90년 그가 설립한 필름 파운데이션에서는 지금까지 560편에 달하는 뛰어난 고전 영화들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LACMA 역시 다음 세대를 위해 영화를 보존하려는 그의 뜻에 동참해 첫 번째 프로젝트로 마틴 스콜세지가 존경하는 프랑스 영화 제작자 아그네스 바르다의 실험적인 영화 네 편의 복원을 돕고 있다.

작업이 완료되고 나면 그 영화들은 LACMA의 영구 컬렉션으로 남겨질 예정이다. 에바는 마틴 스콜세지의 엄청난 팬이다.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성난 황소>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예요. 집에서도 가끔 그 영화를 틀어놓고 온 가족이 모여 같이 보곤 하죠. 대사도 외울 정도예요.” 에바는 내일 밤 파티에서 입을 드레스 피팅을 위해 일단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2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다. 피로감을 감추기 위해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에바와 함께 바바라 크루거의 움직이는 개념 미술 작품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올 때, 누군가가 그녀에게 파티 준비 상황에 대해 물었다. “분명 멋진 파티가 될 거예요. 그럼요. 그래야만 하죠!” 에바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곤 바쁘게 사라졌다.

그날 저녁, 뮤지엄 내 영화관 ‘Bing’에서는 특별한 영화 상영회가 열렸다. 영원한 청춘의 상징 제임스 딘의 대표작 <이유 없는 반항>이었다. 마틴 스콜세지의 필름 파운데이션은 구찌와 워너 브로스의 후원을 받아 이 영화를 4K 디지털 영상으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 행사 기간에 맞춰 그 결과물을 최초 공개했다. 일종의 전야제인 셈이다. 한때 모든 여성들의 ‘로미오’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무대에 올라 지난 세기의 청춘스타를 소개했다. 사실 이 자리엔 마틴 스콜세지가 자리해야 했지만,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후반 작업으로 인해 파티 당일에나 LA에 도착할 수 있는 마틴 스콜세지를 대신해 그가 관객 앞에 나선 것이다. “마틴은 최고의 감독이자 제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 같은 훌륭한 작품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배우로서 큰 행운이었습니다.” 내년 초 개봉하는 그 영화까지 포함하면 레오나르도는 무려 네 편의 마틴 스콜세지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된다. 그는 마틴이 보내온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제가 열세 살이었을 때, 처음 이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당시 우리 10대들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었죠. 복원된 영화를 봤을때, 전 갑자기 1955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그 아름답던 시절로 말입니다.”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탄 채 세상을 떠나기 전, 아름답던 제임스 딘의 얼굴이 스크린 가득 펼쳐졌다. 영화의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난 후, 상기된 표정의 관객들은 제임스 딘의 붉은색 점퍼와 그 매력적인 미소, 그리고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한참 동안 향수에 젖었다.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 보존을 위해 만든 비영리단체 ‘필름 파운데이션’과 LACMA는 프랑스 영화 제작자 아그네스 바르다가 만든 네 편의 영화    를 복원하고 전시회를 연다.

다음 날, LACMA 앞엔 긴 줄이 늘어섰다. 턱시도와 드레스 차림의 사람들 사이로 레드 카펫이 깔렸고, 안쪽 뜰엔 어제까지만 해도 눈에 띄지 않던 유리 궁전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이 웅장한 이동식 텐트를 완성하고 파티장으로 변신시키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일주일. 그 얘기를 듣고 놀라워하자 3년째 행사를 진행해온 구찌 본사 홍보 담당자 멜리사가 말했다. “여긴 할리우드니까요.” 이 유리 궁전 안에 입장할 수 있는 건 오직 소수의 초대받은 사람들과 최소 5,000달러부터 시작되는 갈라 디너 티켓을 구입한 후원자들뿐! 할리우드답게 파티에 참석한 셀러브리티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톰 행크스는 LA의 마당발 존 C. 라일리와 함께 샴페인 잔을 기울였고, 제임스 프랑코는 케이트 허드슨과 함께 카메라를 향해 멋지게 포즈를 취했다. 롱 드레스를 입은 셀마 헤이엑은 그녀의 남편이자 구찌의 모회사 ‘케어링’의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과 함께 우아하게 등장했다. 제이크 질렌할, 드류 베리모어, 에이미 아담스, 케이트 버킨세일, 제인 폰다 등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에 흔적을 남긴 전설적인 스타들 중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죄다 이곳으로 몰려온 듯했다. 우리의 스타 이병헌과 싸이도 에바의 초대를 받았다. 지난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LA 시사회도 에바의 추천으로 바로 이곳에서 열린 바 있다. “드라마 <아이리스>를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그래서 LA에서 영화 <지.아이.조>를 촬영할 때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봤죠. 그는 정말 뛰어난 배우예요. <뉴욕 타임스>의 영화 평론가이기도 한 LACMA의 필름 큐레이터 엘비스 미첼 역시 이병헌 씨 팬이죠.” 반짝이는 구찌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에바는 두 팔을 벌려 한국에서 온 반가운 손님들을 환영했다.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를 비롯한 자신의 지인들에게 두 사람을 소개했다. 구찌의 CEO 파트리지오 디마르코도 싸이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우리 딸이 당신의 엄청난 팬이에요. 같이 사진 찍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아트+필름 갈라’의 첫 번째 주인공이었던 미술가 존 발데사리를 비롯해 미술계 사람들도 꽤 눈에 띄었다. 프렌치 뉴웨이브의 창시자 아그네스 바르다도 그중 한 명이다. LACMA는 마틴 스콜세지와 함께 그녀의 영화들을 복원하면서 이번 행사를 기념해 따로 전시회도 열었다. 60년대에 그녀가 LA에서 촬영한 필름들을 한데 모아 오두막 같은 설치 작품을 만든 것이다. 데이비드 호크니도 며칠 전 샌프란시스코의 드영 뮤지엄에서 시작된 개인전 오프닝을 마치고 LA로 날아왔다. 여든 살을 훌쩍 넘긴 그는 최근엔 아이패드로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늘 아이패드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기 위해 맞춤 양복까지 특별 제작했을 만큼 여전히 도전 정신이 넘친다.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동그란 검정 테 안경을 쓰고 에바와 함께 뜨겁게 손님들을 맞이하는 마이클 차우 역시 그동안 그린 그림을 모아 내년 1월 홍콩의 펄램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다. 이곳에선 모두가 예술가다.

“유명한 독일 화가 한스 리히터가 카메라맨 가브리엘 피구에로아와 함께 스탠리 큐브릭의 회고전을 열었던 것처럼, 우린 박물관에서 영화를 기반으로 하는 전시를 하며 영화와 예술을 통합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무대 앞에 나온 마이클 고반이 진심을 다해 인사말을 전했다. 갈라 디너의 호스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데이비드 호크니와 마틴 스콜세지를 소개했다.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재구성한 유머러스한 영상이 화면 가득 펼쳐지는 동안, 테이블 위엔 염소 치즈를 곁들인 샐러드와 스테이크, 송로버섯 소시지가 차례로 올라왔다. 600여 명에 가까운 유명 인사들이 모인 행사였지만, 진행을 방해하는 소동은 없었다. 파파라치들의 플래시 세례는커녕, 눈치 없는 아이폰 셔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술잔엔 샴페인과 와인이 끊임없이 채워졌지만, 술에 취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없었다. 평화로운 저녁 식사였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쯤, 에바 차우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파리와 런던, 뉴욕, 서울. 먼 곳에서부터 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밤, 410만 달러가 넘는 기금이 모였습니다!” 에바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기금은 모두 LACMA에서 진행하고 있는 영화 보존 및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그리고 파티의 하이라이트, 스팅이 등장했다. “멋진 행사에 초대해줘서 감사합니다. 특히 이 구찌 수트, 고마워요.” 능청스러운 스팅은 얌전히 디저트를 즐기던 사람들을 모두 웃게 만들더니 달콤한 목소리로 그들을 전부 일으켜 세웠다. 세계적인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잉글리시맨 인 뉴욕’을 떼창하는 모습이란! 물론 이 영국 팝 스타가 공연을 펼치고 있는 무대는 뉴욕이 아니라 할리우드였다. 아름다운 별들의 고향, 예술과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꿈의 도시. 자정이 돼서야 파티는 끝났다. 유리 궁전의 불이 꺼졌다. 오직 별들만이 빛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