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값

프랑스에선 글 때문에 언론인 10여 명이 테러를 당했고, 국내에선 몇몇 기자가 글값을 치르느라 법원을 들락날락하는 중이다. 근데 지금 그 글은 그만큼의 대우를 받고 있나.

내가 한 달에 쓰는 글자 수는 2만 자 안팎이다. 다른 업무들도 있지만 대충 보이는 것들로만 계산하면 한 달 2만 자 분량의 글값이 나의 수입이다. 매달 마감이 끝나면 외부 필자들의 원고료를 정산한다. 단가는 업계 평균 200자 원고지 1매당 1만~2만원.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9년 전부터 오름세는 없다. 책은 팔리지도, 읽히지도 않고, 프리랜서 작가들은 외딴 산골 땅값만큼이나 오르지 않는 글값에 불만을 표하며, 블로거라 불리는 이들은 맛집에 가 VIP의 대우를 요구하며 기자 행세를 하려 한다. 근데 프랑스에선 만화 한번 잘못 그려 1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글 하나로 갑론을박하며 법정 싸움 중인 사람도 많다.

지난 1월 프랑스에선 풍자만화 잡지 <샤를리 에브도>의 기자 12명이 죽었다. 만화에서 묘사한 무함마드의 모습이 모욕적이라며 불만을 품은 이슬람 테러 세력이 잡지사 사무실에 쳐들어가 총을 휘두른 것이다. <샤를리 에브도>는 테러 직후 발표한 공식 성명에서 언론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잡지를 휴간하지 않겠다 발표했고, 평소 6만 부 발행하던 책의 부수를 100만 부로 늘렸다. 파리 시민들은 발행 전날부터 서점 앞에 줄을 섰다. 펜의 힘, 언론의 역할, 그리고 집회 대열이 들고 나온 한 손으로 굳세게 펜을 움켜진 그림. 이 얼마 만에 듣고 보는 언론의 이상인가.

물론 <샤를리 에브도> 사건이 단순히 펜의 권리만 지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언론의 역할을 제한하는 건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유럽에서는 유대인에 대해 비하하는 기사를 게재할 시 처벌을 받는다. 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 역시 처벌 대상이 된다. <샤를리 에브도>의 몇몇 칼럼은 수차례 유대인 비하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법으로 보장된 표현의 자유라 해도 이제 눈치를 살펴야 하는 거다. 역시나 글의 역할은 ‘기레기’,VIP 행세하는 블로거 필자, 단어 당 500원의 가격 그 이상이다.

국내에서도 <나는 꼼수다>의 멤버이자 각각 <시사인>의 기자인 주진우와 <딴지일보> 총수인 김어준은 지난 대선과 관련해 수많은 소송에 휩싸였다. 대부분 박근혜, 새누리당 쪽 인사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건들이고, 지난 1월 16일 무죄가 확정된 사건 역시 둘이 <나는 꼼수다> 방송에서 제기한 박근혜 대통령의 친인척 의혹에 대한 건이었다. 사법부는 “<나는 꼼수다>가 보도한 내용 중 일부가 사실이 아닌 듯 보이지만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의 역할을 제재할 순 없다”고 했다. 어쨌든 언론의 권리는 다시금 입증됐다.

하지만 여전히 글의 처지는 순탄치 못하다. 꽤 많은 보도 기사가 명예훼손 혐의로 법원 심판대를 오르내리고 있고,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 작가들의 앓는 소리도 여전하다. 심지어 주진우는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법정에서 싸워온 날들의 기록을 담아 최근 책을 냈다. 제목은 <주기자의 사법활극>. 표현의 자유를 대변하고 언론의 역할을 다하는 글이면 무엇하나. 어쩌면 지금 세상에서 의미를 갖는 건 법정에서의 무죄 판결보다 그 글이 돈으로 환원 가능하냐 아니냐의 여부인지 모르겠다.

밥벌이를 스스로 걱정해야 하는 글의 현실이다. 요즘 포털 사이트 다음에선 ‘뉴스펀딩’이란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기자가 글을 올리면 독자는 공감 여부에 따라 후원 버튼을 누르고, 그 반응은 바로 돈으로 환산된다. 주진우 기자와 방송인 김제동이 ‘애국소년단’이란 이름으로 올리는 글은 연재 3회 만에 벌써 1억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았다. 돈의 액수가 곧 글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면이다. 글의 역할은 크다. 영향력도 무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글을 둘러싼 환경은 언론의 자유를 외쳐대던 과거와 비교도 못할 만큼 변했다.

이제 누구나 글을 쓰며, 글의 파급 속도는 예전에 비해 수십 배 빨라졌고, 글 하나에 얽힌 이해관계도 복잡다단해졌다. 일상다반사를 고려해야 하는 언론의 역할, 하지만 중요한 표현의 자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라한 수준의 글값. <샤를리 에브도> 기자들의 죽음 앞에서, 혹독한 글쟁이들의 현실 한복판에서 글의 값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글은 과연 지금 제 값어치를 하고 있나. 그 값어치는 충분히 존중되고 있나. 그리고 글은 최소한의 밥벌이 수단이 되나.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글의 요즘 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