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갈리아노가 말하는 이번 컬렉션

존 갈리아노가 마르지엘라 하우스의 수장으로 런웨이에 복귀했다.
그가 말하는 이번 컬렉션의 영감, 새로 얻은 맑은 정신, 그리고 행복에 대해.

“집에 돌아왔어요!”라고 존 갈리아노는 지난 1월 런던에서 열린 메종 마르지엘라를 위한 자신의 첫 아티저널(Artisanal) 컬렉션 전날 웃으며 말했다. “이곳엔 넘치는 사랑과 지지해주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는 고향에서 데뷔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저는 한 발짝씩 자신감을 되찾을 필요가 있어요.” 다음 날 기대에 가득 차 첫 모델이 등장하길 기다리고 있을 때, 분위기는 더 이상 장난스럽지 않았고 숭배하는 기운이 감돌았다. 한스 짐머의 고요한‘Flying Drone’이 흘러나왔고, 관객들은 전체적으로 “갈리아노의 남은 패션 인생의 첫날을 위해 숨을 죽였다”고 <뉴욕타임스>는 썼다.

갈리아노는 멋진 퇴폐적인 공간을 연출하는 대신, 아주 작고 모던하고 하얀 공간을 원했다. 그리고 버킹엄 궁 근처 새 사무실 건물에 마련된 우주선 같은 장소는 수십 년간 강렬한 볼거리를 제공한 후 과감히 구강 청결제로 입을 헹구어낸 듯한 변화를 암시했다. 발밑에 알루미늄 타일이 깔린 하얀 터널 안에 마련된 긴 런웨이 양쪽에는 하얀 무도회 의자 150개가 민주적으로 일렬종대로 배열됐다. “각각의 드레스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라고 렌초 로소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의 회사 온리 더 브레이브(Only the Brave)는 메종 마르지엘라를 소유하고 있고, 작년에 그는 대담하게도 논란의 주인공 갈리아노를 이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그에게 새로운 출발이자 마르지엘라 하우스의 새로운 출발이기도 합니다.”

알버 엘바즈는 자신의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파리에서 왔고, 크리스토퍼 베일리도 참석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의 첫 패션쇼 관람입니다.” 그러나 주요 언론과 바이어들을 제외하고 관객들의 면면은 그의 일대기를 말해주는 듯했다. 먼저 갈리아노가 졸업한 세인트 마틴 교수들, 80년대 콜라보레이터들, 그리고 함께 클럽을 전전하던 친구들이 있다. 여기에는 혁신적인 보석 디자이너 주디 블레임, 사진작가 닉 나이트와 파올로 로베르시가 포함됐다. 또 사교계 뮤즈인 아나벨 닐슨, 트리시 시모논, 그리고 갈리아노의 전설적인 쇼 세트를 디자인한 마이클 하웰스도 참석했다. 마놀로 블라닉은 라일락 컬러의 트위드를 입고 왔고, 런던 중앙 유대교 회당의 랍비 배리 마커스도 참석했다. 그 랍비는 갈리아노의 치솟던 주가가 파리 마레 지구의 연기 자욱한 카페에서 불명예스럽게 추락한 후(2011년 카페의 어느 손님들에게 반유대적인 욕을 하는 모습이 휴대폰에 녹화된 사건), 그의 재활의 방편으로 유대교 교리를 지도했다. 갈리아노는 이 사건으로 디올에서 정직당했고 그 후 해고됐다. 그리고 그의 표현대로 ‘왕따’가 됐다.

패션쇼 관객들은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이날 쇼는 달랐다. 정해진 시간에 두 자리만 빼고 모두 찼다. 10분 후 조명이 어두워진 순간 제이미 힌스 부부가 나타났다. 빈티지 검정 새틴 갈리아노 슬립 위에 낡은 검정 바이커 재킷을 걸친 케이트 모스는 낄낄거리며 “존은 저를 죽일 거예요. 아이들 하교시키는 엄마들 차 때문에 꼼짝 못했어요!”라고 변명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짐머의 음악이 ‘Big Spender’의 폭발적인 트럼펫 소리로 이어졌다. “너무 장난스럽지 않나요? 정말 무례해요! 약간 유머러스하기도 하고요”라고 갈리아노는 선곡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쇼가 시작됐다.

컬렉션 역시 자전적이었다. 84년 그의 세인트 마틴 졸업 컬렉션 때 처음 선보인, 프랑스혁명 시대의 화려한 댄디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앵크루아야블(Incroyables, 프랑스혁명 후 총재 정부 시대(1795~99)에 나타났던 색다른 남성 멋쟁이) 코트를 비롯, 사교계 인사 슐룸버거의 버려져 있던 매혹적인 파리 타운하우스에서 선보인 컬렉션에 포함됐던 바이어스 컷 테일러링, 그리고 디올 스커트의 해체 버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울에서 시폰으로 교묘히 이어지는 대담한 진홍색 코트만큼이나 매끄럽게 마르지엘라이즘과 결합됐다. 오프닝은 마르지엘라의 아이콘적 스톡맨(Stockman, 양복점 마네킹 제작 회사) 재킷을 살짝 변형한 갈리아노 버전이었다. 이 새로운 버전에서 보디스는 충전재 일부가 밖으로 삐져나와 낡고 때가 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련되고 공들인 자수 테크닉을 이용해 이런 효과를 냈다. 엄격하게 편집된 24벌로 이뤄진 컬렉션은 기발하고 신중하고 독창적이었고, 갈리아노의 원대하고 꽉 찬 상상력을 마르지엘라의 막강한 유산과 결합시킨 것이었다.

개성 강한 벨기에 디자이너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88년 설립한 이 패션하우스의 본사는 최근 파리 11구에 위치한 사방으로 뻗은 고딕식 건물로 옮겼다. 18세기에 수녀원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1920년대에 남학생들을 위한 산업디자인 학교로 용도가 변경됐다. 고색창연함에서 아름다움을 봤던 마르지엘라 정신을 이어받아 이곳의 외관은 처음 발견됐을 때 그대로다. 마르지엘라의 시그니처인 화이트워시 코팅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 하얀 표면은 점차 흠이 났고, 갓 없는 알전구와 긴 형광등의 무자비한 불빛 속에 드러난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12월 초 컬렉션을 준비 중인 존 갈리아노의 널찍한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2층 방에는 이 건물의 무자비한 조명 대신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촛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물론 갈리아노 역시 마르지엘라처럼 고색창연함에서 아름다움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낭만적인 미스 하비샴(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 나오는 인물)류의 아름다움이다. 사람들을 열광시킨 세인트 마틴 졸업 컬렉션을 비롯해 자신의 하우스와 그 후 지방시와 디올에 이르기까지, 그는 30년 동안 끝없는 창작열을 불태웠다. 자신의 세계가 붕괴된 후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악마들과 싸웠고, 유대교 커뮤니티에 도움을 청했으며, 유대인 차별 반대 단체의 아브라함 H. 폭스맨으로부터 지원과 찬사를 받았다. 2013년 오스카 드 라 렌타는 컬렉션 협업을 위해 갈리아노를 자신의 스튜디오로 초대했다. 그리고 2014년 10월 그는 마르지엘라의 새 사무실로 창작의 둥지를 옮겼다.

오늘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경이로움을 느낀다. “다시 산다는 건 멋진 일이에요. 모든 경험이 새롭습니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속삭였다. “이렇게 정신이 말짱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거야. 사실 그건 멋진 일이야, 존’이라고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그는 책상에 앉아 본차이나에 일본 차를 대접했다. 머리는 깔끔하게 포니테일로 묶었고, 포멀한 수트에 셔츠와 타이 차림이었으며(그는 자신의 쇼에서 입을 앤더슨앤쉐퍼드의 회색 플란넬 핀스트라이프 수트가 도착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 위에 전형적인 마르지엘라 유니폼인 하얀 면 코트를 입고 있었다. 이 코트는 마르지엘라 하우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외과 의사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갈리아노는 그것을 ‘흰 블라우스’라고 부른다. 파리의 꾸뛰르 작업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입는 의상이기도 한 그 옷은 옷을 만드는 기술에 대한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열정을 상기시킨다. 스톡맨의 양복점 마네킹을 맵시 있는 흉갑 보디스로 사용하고, 종이 패턴처럼 재단된 천들과 심지어 레이블을 의상에 부착할 때 재봉사의 시침질을 사용하는데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열정 말이다. 마르지엘라는 아주 미묘한 브랜드이다. 갈리아노는 “그의 팬이자 고객이었다”고 말하면서 ‘혁신’에 끌렸다고 덧붙였다. “저는 늘 제가 어떤 감정에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모든 부품이 합쳐지고 수정되는 방식을 볼 수 있으니까요.”

갈리아노는 전형적인 오뜨 꾸뛰르 하우스들처럼 마르지엘라를 ‘피라미드’ 방식으로 구조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아티저널 컬렉션을 오‘ 드 트왈렛에 영향을 미치고 영감을 불어넣는 마르지엘라 하우스의 퍼퓸’이라고 묘사했다. “이번 컬렉션을 통해 제가 하고 싶은 건 제 의도를 확고히 구축하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날 마르지엘라를 입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보여주고 싶어요.” 초자연적일 정도로 차분해 보이긴 했지만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책임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컬렉션은 아주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해요. 제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잘 절제하고 있으면서 여전히 존 갈리아노의 마법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줘야 하죠. 어떻게 될지 봅시다. 하지만 저는 그 과정을 즐기고 있어요.”

정신없이 복잡한 일과 10억 달러에 달하는 럭셔리 브랜드 사이에서 곡예를 하며 보냈기 때문인지 갈리아노는 지난 몇 년 동안 그랬던 것보다 더 적극적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에 흥미를 갖게 된 게 아닐까요?”라고 그는 수사학적으로 물었다. 그는 자그마한 브뤼셀 그리펀종인 애완견 집시가 발 주변에서 종종거리는 동안 내게 하우스 내부를 안내하며 새로운 동료들을 소개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의 콜라보레이터들로 여기엔 스튜디오 디렉터인 날씬한 금발 미녀 바네사 벨렌저도 포함돼 있다. 그녀는 드로잉과 사진이 담긴 정교한 앨범 속 의상이 스케치에서 피팅까지 어떤 미세한 변화를 겪는지 체크한다. 갈리아노에게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는 다른 색으로 칠했다. “그들은 그걸 그냥 컴퓨터로 합니다”라고 그는 살짝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속삭였다. “저는 시대 변화를 수용하고 있어요!” 벨렌저는 이번 컬렉션에서 완벽한 빨강을 찾아내 그것에 어울리는 패브릭을 선택하는 임무를 맡았다.

갈리아노가 숙련된 새로운 팀을 모아놓은 아틀리에는 활력이 넘쳤다. 그곳에는 고전적인 남성 팬츠(이번 컬렉션에서 스커트로 변형된)에 사용되는 정교한 천과 안감이 드레스가 되고 겉감은 트레인이 되도록 안팎을 뒤집은 오버 코트(갈리아노의 신부가 된)가 있었다. “스탠드에 입힌 무언가를 보고 그것을 가위로 공격하는 것… 저는 이런 것에서 너무 멀어졌어요.” 그러나 그는 현재 많은 일에 관여하고 있지만 뒤로 물러날 때가 언제인지도 배웠다. “혼돈스러워 보일 때도 정말 솜씨가 뛰어난 사람들이 그것을 책임지고 있다는 걸 압니다. 저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요. 그리고 물러나서 심호흡을 합니다. 서두르지 않는다는 건 제게 사용할 에너지가 더 많다는 걸 의미하죠.”

갈리아노의 스튜디오에는 마레 지구의 18세기 타운하우스 안에 위치한 그의 아파트 분위기가 배어 있다. 그는 15년 동안 사귄 스타일리스트 알렉시스 로시와 함께 마레 지구에 살고 있다. 스튜디오와 집 안은 그의 아이디어 보드만큼 촘촘하게 장식돼 있다. 벽에는 살롱 스타일로 현대 사진과 역사적인 작품이 걸려 있고, 보이는 곳 어디에나 책과 오브제와 시적으로 별난 꽃꽂이가 가득하다. 예를 들어 부드러운 담자색 핑크 달리아꽃과 야자잎에 곁들인 옅은 오렌지색 카네이션 같은 것 말이다. 갈리아노가 사랑하는 벼룩시장뿐 아니라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의 앤티크 매장에서 발견한 보물도 있다. 두 사람은 오베르뉴에 돌로 지은 농가를 갖고 있다(정신없이 바쁘던 디올 시절에는 거의 방치돼 있던 그곳이 최근 감동적인 피난처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재활용이라고 해서 좀이 슨 낡은 드레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주장했다. “그건 조개 껍데기처럼 근사한 것일 수도 있어요.” 실제로 이곳에는 일종의 ‘해산물 모둠’이 멋지게 배열돼 있다. 갈리아노는 조개를 찾기 위해 노르망디 해변을 샅샅이 뒤졌고, 남태평양 작은 섬에서 조개를 찾아냈으며, 심지어 그의 어시스턴트들 중 한 명의 어머니에게 그녀가 요리한 홍합찜에서 껍데기를 건져서 모아두게 했다. 조개껍데기는 이태리 르네상스 시대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그린 채소 얼굴들을 연상시키는 아주 멋진 초현실적인 얼굴 모양으로 배열돼 있다. 언젠가 이것은 의상의 잠금장치로도 사용될 것이다. 갈리아노는 크롬, 래커, 반짝이는 자동차 페인트 마감으로 그것을 현대적으로 탈바꿈시켰다.

한편 그는 마르지엘라 아카이브를 철저히 조사했다. 특히 마르지엘라가 재직한 20년에 집중했다(마르지엘라는 2009년 그곳을 떠나 현재는 예술 프로젝트에 전념하면서 칩거하고 있다). 갈리아노가 임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지엘라는 그와 만나 차를 마셨고, 몇 시간 동안 머물며 이야기를 나눴다. 갈리아노는 그 만남이 기뻤다. 하지만 신분을 숨기고 사는 것으로 유명한 마르지엘라와 함께 있으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공손하게 함구했다(마르지엘라는 언론과 직접 인터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2001년 <보그>는 독립 디자이너들을 사진에 담기 위해 애니 레보비츠를 파견했다. 아주 영리하고 개념적인 마르지엘라의 포트레이트에는 옛날 고등학교 단체 사진처럼 하얀 코트를 입은 공범자 45명이 담겼고, 맨 앞줄엔 마르지엘라를 대신하는 빈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갈리아노는 그 만남에 대해 “뜻밖의 선물이었어요. 정말 멋지고 흥미로웠습니다”라고 자진해서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만남은 ‘마르지엘라의 코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고, 두 사람은 기대하지 않은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했다. “그것을 당신의 것으로 만드세요”라고 하우스 설립자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메종 마르지엘라에 대해 갈리아노에게 말했다.

갈리아노는 자신의 새 디자인이 ‘낯설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자신의 낭만적인 비전에 마르지엘라 하우스의 언어를 결합시킬 수 있길 바란다. 갈리아노가 자신의 라인과 영향력을 구축하던 상상력 풍부한 80년대 컬렉션과 디올에서 배운 고도의 예술적 기교를 떠올리게 하는 의상으로 시작된 이번 컬렉션은 그가 ‘제동’이라고 묘사한 것으로 전개됐고, 이 하우스를 설립한 천재의 환원주의적 미학에 더 가깝게 조정됐다. “그것은 제가 발전하고 있고 정제되었다는 뜻입니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이 하우스의 DNA를 강조하면서도 그것에 갇히지 않기 위해 이번 컬렉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예전엔 저 자신을 코너로 몰아넣었어요. 저는 갈리아노에서 바이어스 컷 드레스만 만들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유명해졌죠. 디올에서도 바 재킷만 만들진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 컬렉션은 좀더 폭넓었으면 해요. 대립적이고, 그로테스크하고, 강렬하고, 모던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봅시다. 사람들은 개념을 입고 싶어 하진 않아요”라고 그는 단호하게 덧붙였다. “그들은 멋진 드레스를 입고 싶어 하죠.”

물론 이곳에서 작업할 때도 장난기가 발동했다. 예를 들어 정교한 술 장식에 사용된 실핀과 멀리서 보면 궁색한 벌레스크 댄서의 깃털 목도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크리놀린 리본 위에서 싸우고 있는 래커칠한 장난감 병정들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가장자리 장식 같은 것 말이다. 옛날에 벼룩시장을 자주 찾을 때 갈리아노는 빈티지 커스텀 주얼리 딜러와 친해졌다.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그녀는 제 주소를 알아냈죠”라고 갈리아노는 회상한다. 그녀는 매일 격려의 메시지를 썼고 그녀의 편지는 애리조나에 있는 재활원으로 배달됐다. “제가 그곳에서 나왔을 때 우리는 그녀와 연락을 취했어요. 그리고 그녀와는 친구가 됐습니다.” 그녀에게 자폐증에 걸린 세 살 된 아들 율리시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때였다. 갈리아노는 종종 그를 돌본다. “그 아이는 정말 사랑스러워요. 우리는 집시와 함께 그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갑니다. 아이가 의사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갈리아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리 부모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 율리시스는 벼룩시장 마니아가 됐다. “저는 디킨스 소설에 나오는 인물 같아요. 그는 제 아들 중 한 명입니다”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벼룩시장에 가서 제가 한눈을 팔면 아이의 주머니가 통카 장난감 자동차로 불룩할 겁니다. 아이를 돌보는 건 힘든 일이에요”라고 그는 냉정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그건 저의 잘못이기도 해요. 그냥 공원에 가서 앉아 있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그 아이를 그곳에 데려간 거니까요.”

갈리아노는 사랑을 전파하는 데 열정적인 것 같다. 세인트 마틴의 우아한 셰리단 바넷은 갈리아노의 디자인 지도 교수였다. “그는 제게 많은 영감을 주었죠”라고 갈리아노는 기억한다. “그는 제게 도서관을 소개했고,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가르쳐준 분입니다. 패션 삽화와 모딜리아니와 라티그도요. 사람들에겐 무언가에 관심을 갖도록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의상과 액세서리는 모두 메종 마르지엘라 아티저널 컬렉션.

의상과 액세서리는 모두 메종 마르지엘라 아티저널 컬렉션. 

 

 

2013년 갈리아노는 파슨스의 패션 전공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마스터 클래스에 초빙됐다. 그러나 뉴욕의 유대인 학생 연합이 청원서를 냈고 그 수업을 성공적으로 봉쇄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곳 학생 네 명이 독자적으로 학장을 찾아가 자신들은 갈리아노와 일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서 이태리인 알레산드로, 네덜란드인 스테판, 일본인 와테로, 영국인 올리버가 파리로 왔고, 친구들의 소파(어떤 경우엔 부엌 바닥)에서 신세를 지며 갈리아노의 디자인 접근 방식을 흡수했다. 그는 그들에게 프로젝트를 내주었고, 역사적인 보물을 공부할 수 있도록 그들을 패션 박물관에 데려갔고, 영감을 줄 수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 파리의 벼룩시장을 찾았다. 그 프로젝트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다음 해 24명의 학생들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다. 갈리아노는 또 다른 네 명을 선정했고, 그중 세 사람이 마르지엘라에서 일하게 됐다. “그들은 아주 흥분했어요”라고 갈리아노는 설명했다. “몇 명은 패턴을 만들고 있는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반 직원들처럼 위층까지 걸어가지 않습니다. 뜁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퇴근하죠”라고 그는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그는 과거에도 늘 학생 인턴들을 고용해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금은 그들과 더 가깝게 지냅니다. 과거에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어요. 지리적으로도요. 그들은 다른 층에 있었어요. 하지만 이곳에선 훨씬 더 많이 교류하고 있습니다.” 갈리아노는 학생들과 일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걱정하고 생각하는 걸 멈췄다”고 말한다. “그것이 제가 현실 세계로 나왔을 때 그것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나누는 것이 기뻤고, 그들과 모딜리아니와 라티그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보면 머리가 맑아집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죠. 우리는 서로에게서 아주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결국 그는 ‘텀블러와 핀터레스트 세대’와 타협하고 있는 셈이다. “지속적인 정보가 중요합니다. 저는 다시 현실 세계와 그 모든 아름다움과 연결되고 있어요. 이런 재연결은 현재, 이 순간을 살고, 과거엔 간과했을 그 조개의 아름다움, 혹은 장난감 병정의 매력을 발견하고, 거기에 두 번째 생명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슬란드의 행위 예술가인 라그나르 캬르탄손이 이번 기사를 위해 갈리아노를 그리기로 결정됐다. 그래서 상당히 초현실적이게도 내가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나서 며칠 후에 로시, 갈리아노,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은 레이캬비크의 공항 주차장에 있었다. 우리는 자동차로 가서 문을 열기 위해 매서운 북극풍에 맞서 걸었다. “포즈!”라고 외치며 갈리아노는 모델 설 것을 예상하면서 아스팔트 위에서 과장되게 바람 맞는 포즈들을 취했다. “나는 신고전주의 포즈를 연구했어요”라고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 보여주는 거예요! 심지어 작은 무화과 나뭇잎(전통적으로 회화나 조각에서 나신의 국부를 가리는 데 쓰임)을 구입하기도 했다니까요.” 캬르탄손의 스튜디오는 눈 덮인 장난감 같은 이 도시 해안에 있는 어부의 창고를 개조한 곳이었다. 스튜디오 벽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엄청난 파도를 견딜 만큼 튼튼했고, 그는 지나치게 쾌활하고 명랑했다. 그는 이번 초상화의 컨셉을 설명하면서 맛있는 아이슬란드 케이크를 대접했다. “저는 당신의 아우라를 보게 될 거예요. 그 후에 배경을 칠할 겁니다. 그런 다음 당신을 그릴 거예요.” 갈리아노는 플라잉 부리토 브라더스의 69년 컨트리 록 앨범 이 반복해서 돌아가는 동안 명상 상태에 빠질 것이다. 캬르탄손은 구식 소파로 무대 세트를 만들었고, 거기에 갈리아노를 앉혔다. 그리고 그가 입은 마르지엘라 아틀리에 코트의 타이 벨트가 꼬리처럼 밑으로 떨어지게 했다. “지금 저의 아우라를 올리고 있어요”라고 갈리아노는 웃으며 말했다. “그것을 계속 흐릿하게 유지했지만 지금은 당신을 위해 그것을 올리고 있어요!” 점심 식사를 위해 잠시 쉬는 동안 나는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었다. 갈리아노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몇 시간 동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그러자 그가 그러더군요. ‘긴장 풀어도 돼요, 존. 지금 난 당신 발을 그리고 있다고요!’”

초상화의 완성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는 캬르탄손의 여자 친구와 아이슬란드 수도에서 유명한 레스토랑 딜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는 정말 뮤즈 같았어요”라고 캬르탄손은 청어 아이스크림과 말린 바다쇠오리를 먹으며 말했다. “많은 걸 떠올리게 했지요. 계략, 우울증, 그리고 어리석음.”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캬르탄손은 신이 나서 밤하늘의 기묘한 녹색 불빛을 가리켰다. 구름 위의 북극광이었다. 우리는 차를 몰아 도심의 인공조명 공해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18세기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불꽃놀이만큼 잘짠 30분에 걸친 쇼를 감상했다. “팻 맥그래스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정확히 저런 반짝이는 컬러를 원한다고 말해야겠어!” 갈리아노는 로시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그런 다음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저건 바로 <오즈의 마법사>의 그 녹색이야.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황홀해.”

그로부터 한 달 후에 열린 쇼로 돌아 가보자. 갈리아노의 마르지엘라 신부가 입장했다. 그녀의 구부정한 진홍색 의상은 몽클레르 재킷의 안쪽 스트랩 속에 손을 찔러 넣고 있는 로시의 ‘벨라스케스 포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신부의 얼굴에는 이태리 지하 묘지의 보석으로 치장한 성인들처럼 장식된 시폰이 씌워져 있었다. 2008년 20주년 컬렉션에서 마르지엘라는 피날레에 직원들이 입는 시그니처 화이트 코트를 입은 모델들을 내보냈다. 그것에 대한 오마주로 갈리아노는 각자가 입은 의상에 사용된 천을 걸친 모델들을 두 번째로 내보냈다. “마치 누군가 천과 드로잉과 재단사에게 보내는 저의 포스트잇 메시지들을 통해 창작 과정을 알아내려 하고, 결국엔 몇 가지를 폭로하는 것 같은 장면입니다.” 위대한 디자이너의 사색 과정과 기교가 드러난 장면! 디자이너는 해체로 유명한 이 최고의 하우스에서 다시 기운을 차리고 있다. “저는 최선을 다해왔어요. 이미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에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창작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기쁨입니다.” 그는 조용히 덧붙였다. “정말 기뻐요. 그것은 제 마음을 활짝 열어 주지요. 제가 해야 했던 일이에요. 자신을 드러내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