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로 쇼핑하러 가는 시대

소식만 전하는 잡지 시대는 갔다. 미디어가 매장이 되고, 매장이 미디어로 변신하는 새 세상이 펼쳐졌다. 바야흐로 잡지로 쇼핑하러 가는 시대.

블록 장식의 숄더백과 유색 보석 장식 샌들은 펜디(Fendi), 붉은색 체인 백은 생 로랑(Saint Laurent), 은색 백은 로저 비비에(Roger Vivier), 금색 메리 제인은 미우미우(Miu Miu)

블록 장식의 숄더백과 유색 보석 장식 샌들은 펜디(Fendi), 붉은색 체인 백은 생 로랑(Saint Laurent), 은색 백은 로저 비비에(Roger Vivier), 금색 메리 제인은 미우미우(Miu Miu)

<보그> <GQ> <베니티 페어> <글래머> 등을 거느린 매거진 왕국 콘데 나스트. 전 세계 29개국에 140여 개 매체와120개 웹사이트를 운영 중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규모가 짐작이 갈 것이다. 이토록 거대한 미디어 그룹인 만큼 각 나라 소식을 전하는 직원용 인트라 사이트도 존재한다. 각국의 주목할 만한 표지와 기사가 주로 소개 되는 사이트에 지난 4월 27일 특별한 소식이 공개됐다. “콘데 나스트가 스타일닷컴을 세계적인 이커머스 포털로 변신시킨다.” 2000년 처음 문을 연 뒤 16년간 맨 먼저 빠르고 정확한 패션 소식을 전했던 스타일닷컴이 패션 미디어에서 쇼핑 사이트로 혁신한다는 뉴스였다(기존 패션쇼 이미지와 리뷰는 ‘보그닷컴’의 ‘보그런웨이’ 카테고리로 흡수됐다).

“전 세계에 우리 잡지와 웹사이트 독자는 3억 명이 넘는다. 이미 적극적 관계를 유지하는 대형 후원 기반을 가진 셈이다.” 패션 사업으로 뛰어든 콘데 나스트 인터내셔널 회장 조나단 뉴하우스의 설명이다. “전 세계 성인 인구의 상위 5%라 추정된다. 우리의 잠재적 고객층은 어떤 패션 이커머스 비즈니스보다 훨씬 많다. 이는 스타일닷컴에 엄청난 이점을 줄 것이다.” 이제 내년 가을쯤 스타일닷컴에 접속하면, 200여 개 브랜드의 최신 상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보그>를 비롯한 콘데 나스트 잡지에 실린 패션과 리빙 아이템, 여행 상품 등 여러 카테고리 제품도 모두 만날 수 있다. 다시 말해 네타포르테, 매치스패션, 마이테레사, 숍봅 등 하이패션 쇼핑몰과 본격적으로 경쟁하게 된다는 얘기다.

최신 소식을 전하고 주목할 만한 인물을 소개하던 매거진이 ‘숍’ 역할을 겸한 경우는 또 있다. 지난 7월 영국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 매거진 <월페이퍼>가 ‘WallpaperStore’라는 숍을 개장한 것. “우리는 지난 18년간 전 세계 디자인에서 최고만 선보여왔다.” 편집장 토니 챔버스는 새로운 도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제 우리 독자에게 그 최고를 구입할 기회를 제공하게 됐다.” 라프 시몬스가 디자인한 ‘Kvadrat’ 쿠션, 마시모 비넬리가 디자인한 유리 제품 등 주목할 만한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을 만날 수 있는 게 특징이다(곧 가구 카테고리도 추가될 예정). 오프라인 매장도 열 계획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중요하다. 소파가 얼마나 큰지, 소재는 어떤 느낌인지, 얼마나 편한지 모두 느낄 수 있어야 하니까.” 그 공간이 완성되면 살아 있는 매거진 속으로 들어간 느낌일 듯.

물론 이전에도 매거진이 오픈한 숍은 존재했다. <모노클>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 몇몇 일본 브랜드의 셔츠는 물론 꼼데가르쏭과 협업한 향수도 판매했다(런던, 뉴욕, 도쿄 등에 있는 모노클 카페 역시 세련된 매거진의 취향을 공유한다). 그런가 하면 호주 출신의 음식 잡지 <도나 헤이> 역시 지면에 소개한 식기와 음식 재료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 스토어를 운영하며, 프랑스의 <홀리데이>는 로고를 이용한 데님 재킷, 스웨트 셔츠 등을 판매 중이다. 여행지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역시 다양한 여행 상품을 판매했다(브랜드와 함께 만든 제품이나 협력사에 매거진의 브랜드 이름만 대여하는 식).

그러나 스타일닷컴과 <월페이퍼>의 변신은 그들과 다르다. 패션 뉴스를 전하던 매체가 온라인 백화점으로 변신하고, 디자인을 다루던 잡지가 그 제품을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으니까. 다시 말해 매체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네타포르테의 창립자 나탈리 마스넷(‘Yoox.com’ 합병 이후 지난여름 네타포르테를 떠났다)은 패션 매거진 <Porter>를 창간하며 이렇게 예측한 적 있다. “이제 미디어는 스토어가 될 것이고, 스토어는 미디어가 될 것이다.” 실제로 브랜드나 백화점에서 발간하는 잡지 수준이 높아진 것도 같은 흐름이다. <Porter>에 실린 거의 모든 상품을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네타포르테를 통해 구입 가능하다는 사실.

이런 변화에 대해 매거진이 언론 역할을 포기하는 게 아니냐며 지적할지 모른다. 하지만 매거진은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매체 이상의 역할을 해왔다. 아름다운 이미지와 통찰력 있는 기사를 통해 삶을 환기시키는 도구인 것. “매거진은 영감을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스타일닷컴을 이끌 총책임자 프랭크 자얀(Franck Zayan)은 매거진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매거진은 상점이 되어선 안 된다. 매거진은 매거진이어야 한다. 거기서 얻은 영감을 구입할 수 있도록 경험을 제공할 순 있다. 그렇게 되면 궁극의 쇼핑 목적지가 될 것이다.” 패션 바이블 <보그>가 패션 스페이스 <보그>로 변신할 날도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