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온 마르셀로 불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DJ, 스타일리스트 등 전방위로 활약 중인 마르셀로 불론이 서울에 왔다. 자신의 브랜드처럼 모든 가능성에 긍정적이고 두려움이 없는 그를 〈보그〉가 만났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DJ, 스타일리스트 등 전방위로 활약 중인 마르셀로 불론이 서울에 왔다. 자신의 브랜드처럼 모든 가능성에 긍정적이고 두려움이 없는 그를 〈보그〉가 만났다.

마르셀로 불론(Marcelo Burlon)의 옷을 처음 본 건 2013년 뉴욕에서였다. 미트패킹의 어느 편집매장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친구가 어깨에 뱀을 여러 마리 얹고 나타난 게 아닌가. “요즘 우리 학교 애들이 이 디자이너의 옷을 많이 입어.” 친구의 말을 들은 뒤 편집매장에 들어서자 한쪽에 뱀, 날개, 사자는 물론 만화경을 형상화한 그래픽 티셔츠가 걸려 있었다. 당시 전 세계 패션 거리는 과감한 그래픽 티셔츠 열풍이었다(한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린 지방시 로트와일러, 트로피컬 패턴을 떠올려보시라). 리카르도 티시의 오랜 친구였던 불론이 지방시 그래픽 작업을 도운 것도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한몫 거들었다. 시류에 편승해 반짝할 줄 알았던 그의 브랜드는 토털 컬렉션, 아동복, 홈 컬렉션 등 계속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이 모든 게 가능한 이유는 그가 패션계에 발을 들인 이후 모든 장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멀티태스커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21세기 멀티태스커 마르셀로 불론을 <보그>가 만났다.

VOGUE KOREA(이하 VK) 티셔츠 몇 종류로 시작한 브랜드가 지금은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MARCELO BURLON(이하 MB) 그래픽 티셔츠를 제작한 건 스페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그저 티셔츠에 나의 배경과 뿌리를 그래픽으로 표현했을 뿐인데, 관심을 그렇게 많이 가질 줄 몰랐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을 통해 인기를 얻으니 바이어들이 좀더 다양한 그래픽을 원했고 또 티셔츠 말고 다른 옷도 요구했다. 그렇게 브랜드가 성장했다. 지금은 마르셀로 불론 키즈 레이블도 진행 중이다. 곧 강아지 옷도 만들려고 한다. 하하, 농담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

VK 당신 레이블은 ‘Marcelo Burlon County of Milan’이다. ‘지역성’이 당신의 정체성과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주나?
MB 마르셀로 불론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나의 ‘뿌리’다. 가족의 고향 레바논, 파타고니아의 자연, 현재 내가 활동하는 밀라노의 문화 등 다양함을 디자인에 적용한다.

VK 2016 F/W 컬렉션에 영감을 준 대상은 뭔가?
MB 히피와 남아메리카 유목민 가우초. 나의 뿌리는 아르헨티나의 히피 마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60년대 이 지역에 살던 히피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 지역의 유목민을 돕기 시작했다. 히피와 가우초라는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는 것에서 착안해 컬렉션을 풀어나갔다.

VK 마르셀로 불론 디자인 중에는 날개, 깃털, 뱀, 기하학 패턴 등 브랜드 심벌이 있다.
MB 브랜드를 대표하는 심벌을 계속 사용하는 건 사람들이 마르셀로 불론다운 디자인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주제라도 색깔과 재료를 바꿔 선보인다. 3년 전 세상에 나온 디자인이지만, 아직도 동시대적이라고 생각한다.

VK 당신은 장르를 불문하고 협업을 즐긴다. 최근에는 지안마르코 폴라키(Gianmarco Pollacchi)라는 서퍼와 협업했다.
MB 지안마르코 폴라키가 마르셀로 불론 서핑복을 입고 파도 타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었다. 따로 계획 중인 협업 대상도 많다. 뉴욕 바니스, 영국 해롯 백화점, 모터사이클계의 페라리로 불리는 MV 아구스타 등등. 뮤지션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래퍼인 스페라 에바스타(Sfera Ebbasta)의 스타일 디렉팅, 뉴욕 삭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과 래퍼 타이가(Tyga)가 함께하는 캡슐 컬렉션이 그것이다.

VK 당신은 옷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 같다.
MB ‘Love Is Love’라는 자선 프로젝트를 한 적 있다. 티셔츠 수익금은 LGBT 난민 청소년과 그 가족에게 전달됐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많이 했다. 독일의 IWISHUSUN이라는 단체와 방글라데시 아이들의 눈 수술 기금을 위해 한정판 티셔츠를 400벌 제작한 적도 있다. 이태리 <보그>와는 구순구개열을 가진 아이들에게 수술비를 마련해주는 프로젝트 ‘소리소(Sorriso)’를 진행했다. 이탈리아어로 소리소는 ‘미소’를 뜻한다.

VK 그렇다면 분더샵 캡슐 컬렉션 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MB 서울에 마르셀로 불론 팬이 많기에 우리에게 서울은 아주 중요한 도시다. 그래서 더 마르셀로 불론 스타일 디자인을 시도했다. 스트라이프를 가죽으로 표현해 고품질을 유지했고, 파란색의 사이키델릭 패턴을 구현했다. 옷과 더불어 슬립온과 하이톱도 제작해 더없이 완벽한 캡슐 컬렉션이었다.

VK 분더샵에선 디제잉도 선보였다. 당신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MB 밀라노의 클럽에서 문지기로 일할 만큼 ‘클럽 키드’였다. 지금도 클럽을 좋아하지만, 브랜드와 음악을 연결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지난 11월에 나온 DJ 다비데 스퀼라체(Davide Squillace)와 ‘Gualicho’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싱글 음원 발표와 비디오 작업, 제품 출시 등으로 엮은 종합 프로젝트였다.

VK 당신은 컬렉션 음악을 직접 만든다.
MB 마르셀로 불론의 음악뿐 아니라 이탈리아 브랜드 N°21 쇼 음악을 5년 동안 만들었다. 디자이너와 컬렉션 주제를 떠올리며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일종의 교환 같아서 즐겁다.

VK 최근 영감을 준 여행지는 어딘가?
MB 남자 친구의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다녀왔다. 광활한 평원이 몇 마일이나 펼쳐진 곳이다. 시골의 어느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19세기 카우보이들이 입던 판초, 모자, 당시에 쓰던 마구 등 예전 생활용품을 구경하는 게 흥미로웠다. 그런 뒤 내 고향 파타고니아로 떠났다. 머리 위로 커다란 새가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그걸 감상하는 건 정말이지 끝내주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