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uth of Power

온통 매끄러움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토머스 하우즈아고는 여전히 거친 조각과 원초적 그림에 몰두한다. 그에게 스튜디오는 자아와 관계, 정치와 철학, 이 모든 에너지가 응축된 유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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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은 ‘매끄러움’이다. 물건의 표면은 매끄럽고, 인간관계도 매끄러워야 하고, 일 처리도 매끄러운 것이 노련한 것이며, 예술 작품도 매끄러운 것이 인기를 얻는다. ‘매끄럽다’는 것에 담긴 건 부정성과 낯섦을 제거하겠다는 욕망이기 때문에 ‘거칠다’는 건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역시 책 <아름다움의 구원>에 썼다. “매끄러운 조형물 앞에 서면 만지고 싶다는 ‘촉각 강박’이 생겨나고, 심지어 핥고 싶은 욕망까지 일어난다. (중략) 오로지 매끄러움의 긍정성만이 촉각 강제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관찰자를 거리 없애기로, 터치로 이끈다. 그러나 미적 판단은 관조적인 거리를 필요로 한다. 매끄러움의 예술은 이 거리를 없앤다.”

조각가이자 화가 토머스 하우즈아고(Thomas Houseago)의 작품을 보면서, 스튜디오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야말로 21세기를 지배한 매끄러움에 도전하는 예술가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가 만든 조각 작품은 매우 거칠고, 본능적이며, 원초적인 느낌이 압도적이다. 스튜디오에 꽉꽉 들어찬 작품은 저마다의 에너지를 내뿜으며 매우 기묘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조각은 땅에서 꿈틀거리며 자라나서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지붕을 덮어버릴 것 같다. 이 조각은 전혀 그럴 만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운 느낌을 자아낸다. 게다가 그의 조각은 몸을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중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매우 익숙한 동시에 낯선. 그의 예술은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게 하는 부정성을 전제함으로써, 요즘의 ‘매끄러운’ 예술이 갖추지 못한 진실에 한발 더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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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조각이라는 미술 장르에는 그런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잘 아는 토머스 하우즈아고는 매거진 <가고시안>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조각은 무서운 동시에 안정감을 주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느끼고 꿈꾸는 것, 두려워하는 것이 형태를 주고 공간을 내주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말도 안 되고, 맞지도 않고, 이상한 것에 형태를 주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트럼프적인 면이 있다”는 흥미로운 표현을 썼다.

토머스 하우즈아고는 조각이라는 매체의 특성과 자신의 신념을 매우 절묘하게 연결시킬 줄 아는 예술가다. <보그>와의 인터뷰 초반, 그는 트럼프가 집권한 미국의 상황이 예술가인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했다. “저는 미국인들의 ‘힘’에 대한 개념, 이를 나타내는 보디랭귀지에 흥미를 갖고 있어요. 미식축구 선수들의 우람한 모습이 남성성과 힘을 상징하는 동시에 성적 에너지의 취약함을 은유하기도 하거든요. 제 조각은 그런 개념을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어요. 저는 그런 ‘트럼프맨’들이 학교, 사회에서 자라나는 걸 경험했어요. 그리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고, 미국 사회를 장악하려 하죠. 전 이런 걸 표현하지 않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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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조각에는 정치성이나 메시지가 거세되어 있다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토머스 하우즈아고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 실제 그는 음악도 많이 듣고, 예술도 많이 보고, 뉴스도 늘 즐기며, 조사도 많이 한다. 비록 스튜디오에서 흙을 만들고 있을지언정 그의 안테나는 세상을 향해 있다. 그는 “우리가 오히려 조심해야 할 때는 아트가 안정적이고 쉬울 때”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예술가다. 이로써 그의 조각은 (본래의 그처럼)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반영한다. 언젠가 그는 ‘I am Here’라는 제목의 전시를 연 적이 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현존성은 조각이 이끌어내는 가장 명쾌한 감정이며, 내가 개인적으로 조각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상당히 힘든 시절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조각은 ‘I am Here’를 ‘We are Here’로 바꾸어놓으며,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자신과 관객을 동시에 들여놓는다.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순간, 그 거친 충돌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는 조각의 클래식한 요소를 재해석하여 동시대적인 것으로 만들어낸다. 관객들이 직접 조각 안으로 들어가거나, 앞과 뒤를 보거나, 철근이 들어나거나, 점토가 삐져나온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진정한 예술 작품은 비밀을 내포하고 있다지만, 토머스 하우즈아고는 은폐된 것을 스스로 내보인다. 이 모든 과정을 끌어안는 스튜디오는 고전적인 아틀리에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세상과 작가, 작가와 관객, 작가와 가족 등의 관계가 긴밀하게 형성되는 진일보한 곳이다. 그는 스튜디오에서 일어나는 모든 에너지를 작품에 응집시킨다. 베를린과 마이애미 등에서 예정된 몇 개의 전시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그는 놀라울 정도로 에너제틱하고 낙천적인 남자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나를 가장 반갑게, 호들갑스럽게, 다정하게 맞아준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스튜디오 이름은 바로 ‘Ow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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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가장 ‘미국적’인 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트럼프의 당선이 미국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크게 바꾼 것 같아요.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미국인이라는 것이 어떤 건가에 대한 개념이 있었는데 이번 이벤트 때문에 산산조각 났죠. 개인적으로 미국이 인상적인 이유가 캘리포니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꾸준히 나오기 때문이에요. 매우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어서인지, 유럽이나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어디서도 누릴 수 없는 자유 같은 거 말이죠. 원한다면 미국에서는 아주 창의적인 공간을 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배우, 작가, 뮤지션, 영화 제작자 등 여러 사람이 결합체를 만들어요. 이런 많은 것이 모여 무언가를 창조하는 장소가 바로 LA예요. 요즘처럼 트럼프가 대통령일 때, 이 사실을 상기시키고 재해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요.

첫 번째 질문으로 택한 이유는, 원초적인 조각을 만드는 당신이 정치에 관심이 매우 많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기 때문이에요. 이런 태도와 시각이 어쩌면 하루 종일 스튜디오에서 흙을 만지고 있어야 하는 예술가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요?
정치에 너무 가까이 가면 예술가로 활동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회의를 가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저는 반대로 생각하기도 해요. 창조적인 시각으로 그런 주제를 다루고 인도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그렇게 아티스트로 사는 것에 대해 말이죠. 그래서 그런 면에서는 미국이 아직 색다른 사유의 기회를 허용하고 있다고 봐요. 유럽에선 어려웠을 수도 있죠.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런던 출신이에요. 그래서 차이점이 크게 다가오는 것이기도 하겠죠?
맞아요, 유럽은 제게 너무 엄격한 사회예요. 저는 환경에서 에너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LA에서는 혼자 있고 싶든 어울리고 싶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요. 뉴욕에서는 현관문만 열어도 혼잡한 세상이 나를 덮치지만, LA에서는 도시 자체에 집중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요즘 상태를 더욱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후퇴하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그냥 화내지만 말고, 인간이란 무엇인지, 창의력이 무엇인지 사유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것이 요즘 저의 예술가로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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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긍정적인 당신도 LA의 싫은 점이 보이나요?
이를테면 LA의 흑인들은 한정적인 공간에 살고 있고, 멕시코인과 남미인도 소외되고 있어요. 도시 자체가 창의적인 동시에 보수적이라,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해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고, 타인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하고, 직접 나서야 하죠. 이를테면 누군가 미술관을 만들어주길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이 지하에 미술관을 만들지만, 이것이 유지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이런 무책임한 성향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기기도 하죠. 혹자는 이런 현상이 ‘진짜’를 가릴 거라 불안해해요. 너무 공격적이고 빠르게 모든 게 변하니까. 사실 LA이라는 도시 자체가 하루 만에 해변, 산, 사막에 갈 수 있는, 지형적으로도 좀 이상한 곳이잖아요.

그럼에도 이 스튜디오를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이 스튜디오 공간도 더욱 견고하게 자리 잡았으니까요. 물론 뉴욕에도 집과 스튜디오가 있긴 하지만, 뉴욕과 LA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겐 매우 중요해요. 나는 LA에 고립되어 지내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떠났다가, 또 돌아오죠. 이런 삶의 형태가 예술가로서의 나 자신을 너무 조직화하지 않기 위해 필요해요. 저에게 LA란 스튜디오, 집, 들판 그리고 햇살을 의미해요. 스튜디오를 보세요, 나만의 세상 같지 않나요? 스스로 지속 가능한 우주를 만들어야 해요. 그런 점이 좋아요. 남을 위해 사는 게 아니잖아요.

“내 조각은 트럼프 같은 데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당신의 작품은 매우 벌키한 동시에 매우 연약해 보인다는 면에서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였는데, 무슨 뜻이었나요?
좋은 질문이에요. 전 유럽에서 온 백인이에요. 어떻게 보면 앵글로색슨 남자들은 수백 년 동안 그 파괴적인 힘으로 다른 이들을 박해해왔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특히 조각을 만들 때 책임져야 하는 건, 인간에 대한 나의 경험 그리고 그에 대한 진실을 불어넣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 면에서 나의 조각은 힘, 테러, 파괴를 상징하기도 하죠. 사람들은 내 조각이 내가 소망을 이루기 위해 만드는 거라고 오해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저는 조각 작품이 이를 칭송하는 게 아니라 경고하는 거라 여겨왔어요. 저 자신 혹은 타인을 위한, 조금 이상한 보호 표지판 같기도 해요.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땐, 말씀대로 제 작품이 트럼프를 예견하는 것 같다는 평론이 나오기도 했죠. 심지어 당시엔 저도 그 의견에 동의했어요. 백인 남성들의 기저에 있는 끔찍한 폭력과 놀라울 정도로 과하게 이 세상을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이죠. 이를테면 “내가 해결할 거야!” “내가 지배할 거야!” 같은 자세. 그런 종류의 에너지를 저의 조각들이 받아요.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줘요. 그리고 섹슈얼 에너지, 폭력적 에너지, 취약함의 에너지 그리고 힘이 서로 가지는 이상한 관계들의 무거운 혼합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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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트럼프맨’ 같은 성향 말고 혹시 다른 특징이 당신 조각 작품에 숨어 있기도 하나요?
전 아주 로맨틱한 곳에서 왔어요. 제가 태어나고 자란 요크셔는 매우 자연 친화적인 곳이에요. 조이 디비전, 스미스, 비틀스 같은 자연적인 밴드와 음악이 탄생한 곳이죠. 그래서 전 그걸 외면하려고 노력해요. 순박한 게 아니라 더 세련되고 팝한 작품을 만들고 싶지만, 힘들어요. 제가 그런 환경과 실제로 관계 맺으면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죠.

당신을 매료시키는 예술이란 어떤 건가요?
단순한 현실을 상기시켜주는 예술에 끌려요. 가상현실이 판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그게 힘들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제가 단순한 물질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인간과 예술의 진보와는 상관없는 일임을 문득문득 깨닫곤 해요. 하지만 예술이 ‘나아진다’고 하진 않잖아요? 바뀐다고 하지. 우리가 그리스 시대나 미켈란젤로 때의 예술보다 ‘나은’ 예술을 향유하고 있다고 할 수 없어요. 핵심은 우리 몸, 그리고 진정으로 ‘본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에요. 본다는 것에 대한 제 경험은 매우 물리적이에요. 예술이 우리 몸의 모습, 진짜 모습을 상기시켜주어 좋아요. 물질을 단순히 경험할 때 그것이 주는 에너지에 진실 혹은 정치가 있는 것 같아요. 제 작품은 저를 둘러싼 물질적인 관계, 진짜 세상과의 관계, 탄생의 고통과 솔직한 모습 등을 보여줘요. 어떤 예술은 기적적으로 쉽게 탄생하지만, 전 예술을 힘들게 만드는 시련의 과정이 좋아요. 더 만들고 싶게 해주거든요.

흥미롭군요. 당신의 조각은 거칠고 매끄럽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거든요. 동시에 대부분의 고매한 조각과는 달리 직접 만지거나,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식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작품의 영역을 확장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모든 것은 이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어요. 스튜디오에 놀러 온 사람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의 작품과 접촉하고 교감하고 상호작용하는 걸 봤거든요. 전엔 좀 외로웠어요. 지금 제 여자 친구를 만나면서 제 아이들을 스튜디오에 데려오기 시작했죠. 처음엔 작품 사이를 막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기가 조마조마했는데, 점점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공간과 연결되는지가 보이더군요. 스튜디오에 있다는 게 혼자서 만들고 고독하게 세상과의 관계를 해석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과 친구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스튜디오가 무언가가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장이 되었어요. 아이들이 저와 함께 조각 작업을 하고, 공간에 대한 지속적인 꿈을 꾸는 곳 말이죠. 이제 제게 스튜디오는 관계가 형성되는 곳이에요.

당시 개인적인 심리 혹은 심정의 변화도 여기에 한몫했을 것 같군요.
네, 그즈음 저는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고, 누군가 제 작품을 구입하는 식의 틀에 박힌 논리에 지쳐 있었어요.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불안했죠. 그래서 ‘Moun Room’을 만들 때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스튜디오에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스튜디오에 놀러 온 사람들이 제 작품 안으로 들어가고 만지는 걸 보면서, 제가 늘 염원하던 사회적, 유토피아적 요소를 순간적으로 깨달았어요. 이제 저는 경험할 수 있는 사회적인 작품을 만들어요. 사람들이 작품을 어떻게 활용하고 작품과 소통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요. 그 위를 걷거나, 위에 앉거나, 아예 눕거나 할 수 있는지 말이죠. 이런 과정이 정말 즐거워요.

Untitled (drawing painting - stained glass), 2016, Pastel, crayon, colored pencil, oil and acrylic on canvas, 213.4×182.9×5.1cm Photo by Fredrik Nilsen

Untitled (drawing painting – stained glass), 2016, Pastel, crayon, colored pencil, oil and acrylic on canvas, 213.4×182.9×5.1cm
Photo by Fredrik Nilsen

전시장의 ‘Do Not Touch’ 표지판은 예술을 대하는 감각 중 촉감을 거세했죠. 그 촉감을 되찾아주는 것이 예술가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작품을 만지고, 손으로 비비는 행위는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것이고, 우리가 세상에 어떻게 진입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사회적인 행동이에요. 전 처음부터 요셉 보이스를 좋아해왔는데, 그가 말했어요. “생각이 곧 형식이다(Thinking is form).” “예술은 사회적 실험이다(Art is a social experiment).” 이런 사상이 제 작업에 자연스럽게 들어왔어요. 제 작품 자체가 작은 사회 공간이 된다는 것이 신기해요. 그리고 제게는 스튜디오가 사회적 공간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어요. 제 작품이 이 사회적 공간에서 어떻게 그 내용을 담게 되는지도 역시 중요하죠. 세상으로 들어가고, 세상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도 말이죠. 이제 더 이상 혼자서, 소외된 공간에 작품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세상으로 내보내져야 해요. 더 많은 쇼, 더 많은 관객… 쉽지만은 않겠죠. 계속해서 싸워가야죠. 마치 발굴 작업 같았던 내 스튜디오의 외로운 에너지가 사회적인 면을 띠며 더욱 재미있어진 그 순간처럼. 스튜디오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좋아요.

스튜디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요?
이 방이요. 친구들과 놀고, 노래 듣고, 차 마시고, 책 읽는 공간이죠. 여기서 많은 아이디어를 구상해요. 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함께 살아가고, 제가 좋아하는 작품, 절 움직이는 작품을 봐요. 어떻게 보면 스튜디오의 중심이에요. 페인팅 스튜디오에서는 주로 저녁에 일을 해요. 이 방 밖에는 도자기실이 있는데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느낌을 줘요. 저희가 가장 처음 만난, 작품이 전시되어 있던 방은 일종의 회상을 하는 곳이에요. 저는 자기 작품을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른 작품과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도 말이죠. 성공적인 작품은 팔려서 이 스튜디오를 떠나고, 성공적이지 않은 작품은 둘 공간이 부족해서 또 나가요. 그래서 딱 한 공간만 고르기 힘들어요. 무드, 작업, 상황에 따라 바뀌거든요. 밤에는 밖에 있는 작품을 사랑해요. 여전히 태양의 따스함이 느껴지고, 조각이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아요.

조각을 만들 때와 그림을 그릴 때, 어떤 다른 생각을 하나요?
저는 아직도 스튜디오 안에서 하는 다양한 작품 활동에 대해 배워가는 중이에요. 아주 큰 찰흙 작업부터 건축 디자인까지. 화가로 시작했다가 행위 예술가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원래 새로운 걸 하다가도 저절로 돌아오면서 순환하게 되는데, 조각을 그리면서 더욱더 감각적으로 예민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제가 페인팅하면서 나온 습관이 반영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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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팅이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중력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죠. 그림을 그리면 나 자신을 탐구하게 돼요. 여덟 살짜리 아이가 된 기분도 들죠. 조각할 때는 아무래도 중력, 재료의 한계, 한계를 어떻게 해결할 건지 생각할 것이 더 많거든요. 그래서 때때로 페인팅이 이런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느낌을 받기도 해요. 조각을 할 땐 현실적인 면에 몰두하는 반면 그림을 그릴 땐 그 안에서 생각의 끈을 아예 놓칠 때도 있어서 가끔 무섭기도 하죠. 사실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이 바뀌어요. 한꺼번에 만들고 있는 작품이라도 내 안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심리적 공간에서 나와요. 나이가 들면서 다른 감정을 위해 다른 심리적 공간을 만드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어릴 땐 항상 불안하고 절실함으로 꽉 차 있었거든요. 어쩌면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만들고자 열망하는 예술가의 입에서 “나는 손재주가 없다”는 고백이 나왔을 땐 위악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조각가 혹은 예술가란 어떤 사람인가요?
전 어떠한 재능도 없는 것 같아요. 색을 보는 재능, 진짜처럼 그리는 재능, 손재주… 어릴 때부터 예술을 좋아했지만 잘한 적도, 칭찬 한번 들은 적도 없어요. 재능이 있다면 빨리 달리는 거? 지금 저는 제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법, 그걸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전 자신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게 아직 힘들지만, 그래도 생각을 물질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아주 강했어요. 제 작품이 누군가를 화나게 하고, 슬프게 한다면, 제 상태를 반영하고 전달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예술 작품이 누군가를 꼭 즐겁게 하거나 유혹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전 사람들이 진실을 그대로 보길 바랍니다. 저에게 매료되어 저란 예술가가 멋지다고 생각하게 하기 싫어요. 제 삶에 대해 허상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아요. 삶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똑똑한 사람이 전혀 아니에요. 단지 제가 느끼고 겪은 걸 작품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피카소를 만나는 꿈을 꾸고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요. 꿈 이야기를 해주겠어요?
열네 살 때였나, <제7의 봉인> 같은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안개 낀 날 바다 옆의 부두에 제가 있었죠. 기다란 바이킹 배의 뒤편에 회색 담요를 덮어쓴 피카소가 타고 있었어요. 재미있는 에너지로 가득 찬 할아버지 같았죠. 피카소는 제게 넌 이미 아티스트라고, 가난한 형편에 신경 쓰지 말고 도전하라고, 재미있을 거라고. 아직도 그의 수염이 생생히 기억나요. 꿈에서 깨어난 후 제 자신에게 말했죠. “그냥 해보자!” 그 순간 덕분에, 그가 진짜 저를 찾아왔건 아니건, 그 경험이 진짜였던 것처럼 살 수 있었어요. 그 꿈은 제게 신화 같은 이야기이고, 제 DNA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제가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힌트를 모조리 무효화시켰거든요. 브랑쿠시가 로댕을 만난 것, 라우센버그가 쿠닝의 그림을 지운 것, 그만큼이나 결정적인 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