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아이템

내 남자의 속옷

2016.03.17

by VOGUE

    내 남자의 속옷

    그의 셔츠, 그의 외투, 그의 신발, 그리고 그의 속옷.
    우리 여자들을 사로잡는 자연스럽고 부담 없이 편안한 남자 속옷의 은근하고 달콤한 매력.

    남자 속옷을 입었을 때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동시에 관능적인 느낌. 울 소재 배스 가운은 멜트, 멜란지 스웨트셔츠는 YMC(at 플랫폼 플레이스), 유니섹스 보이 브리프는 아메리칸 어패럴.

    “손을 좌우로 흔들고 높이 들어 봐. 손뼉을 짝짝짝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비욘세의 신곡 ‘7/11’ 뮤직비디오는 호텔 방에서 본인의 옷을 입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직접 촬영한 홈메이드 컨셉이다. 저예산 뮤직비디오를 위해 그녀가 백댄서와 함께 입을 촬영용 의상으로 선택한 건 남성용 브리프였다. 앞뒤좌우로 엉덩이를 흔드는 중에도 눈을 사로잡는 팬티 앞면의 Y 프런트 앞트임(흰색 테두리로 유난히 강조된)은 의심의 여지 없이 오리지널 남자 팬티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당대 팝 디바가 입은 남자 팬티는 대체 뭘 의미할까? 첫째, 평범한 여자들 가운데 남자 속옷을 입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 둘째, 여태껏 입지 않던 여자들도 곧 아무렇지 않은 듯 입게 될 거라는 징조!

    언젠가 어느 슈즈 디자이너는 느슨한 ‘핏’을 연출하기 위해 평범한 흰 티셔츠 대신 ‘트라이’의 남성용 속옷 반팔 러닝 셔츠를 입는다고 했다. 뜨거운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콧노래를 부르며 모닝 커피를 끓이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여주인공의 유니폼은 늘 남자 친구의 줄무늬 트렁크 사각팬티와 화이트 셔츠다. 여름이면 집에서 ‘갭’의 남성용 트렁크를 입고 돌아다닌다는 어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으로 남자 속옷에 대한 호기심 혹은 욕망을 품게 된 건 <섹스앤더시티> 때문이었어. 캐리가 빅의 하얀 팬티를 입고 화장실 거울 앞에 나란히 서서 양치질하던 장면 기억 나?” <섹스앤더시티>가 지미 추와 마놀로 블라닉을 삽시간에 패션의 정점에 올려놨던 것을 돌이켜 보면, 남성용 속옷이 이제서야 유행하는 게 때 늦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집에서 편하게 입으려고 남성용 박서를 찾는 여자 손님들이 가끔 있습니다. 겨울에 스커트 안에 입기 위해 타이트한 박서 브리프를 구입하기도 하죠.”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 상품기획팀의 홍경민은 아직까지 비키니 팬티와 힙스터(비키니보다 길고 보이 브리프보다 짧은 길이)의 구매율이 높지만, 가끔 남성용 속옷을 찾는 여자 고객들이 있다고 전했다. “수요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모달 소재의 나이트 드레스도 남성용 티셔츠를 입은 여자의 오버사이즈 핏에서 영감을 얻은 거죠. 반응이 좋은 아이템 중 하나입니다.”

    남성용 속옷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게으르게 느껴질 정도의 편안함이다. 실크와 레이스로 만든, 그러니까 엉덩이의 반을 겨우 가리는 예민한 란제리의 때론 아슬아슬하고 때론 찝찝한 기분과 비교할 수 없다. 수년간 남성용 속옷을 입어 온 어느 패션 저널리스트는 잠을 자거나 집에서 돌아다닐 때, 그리고 사실 어디를 가든 남성용 속옷을 입는다고 전한다. 또 다른 남성 속옷 애호가 역시 최고의 잠옷으로 남성용 속옷을 꼽으며, 심지어 그것이 양성평등의 상징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렇지만 신체 구조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솔직히 핏은 별로야”라고 친구는 소감을 드러냈다. “남자 옷이라 여자가 입으면 앞판에 주름이 많이 지거든. 집에서는 반바지 대용으로 여자 팬티 위에 남자 트렁크를 입긴 하지만 외출할 땐 역시 무리야.”

    요즘 등장하는 유니섹스 속옷들은 남자 속옷의 장점과 착용감의 타협안을 동시에 유지한다. 대표적으로 아메리칸 어패럴(비욘세와 댄서들이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속옷으로 가장 유력시되는)은 원래 남성용이었던 ‘베이비 립 브리프’가 여자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자 남녀가 함께 입을 수 있게 사이즈를 다양화했다. 여성용 보이 브리프와 박서 브리프는 남성용 속옷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와 여자 몸에 맞게 변형한 것. 아크네 스튜디오는 ‘중성적인’ 컨셉의 언더웨어 라인을 선보이며 새로운 유행에 불을 지폈다. 실용적인 이유에서 여성용과 남성용을 구분했지만 부드러운 뉴트럴 톤과 아주 간결한 디자인은 서로 바꿔 입어도 사실상 눈치채지 못할 정도. 앤디 스페이드의 라운지웨어 브랜드 ‘슬리피 존스’ 역시 남성용 파자마 셔츠와 팬츠, 박서를 축소한 여성용 컬렉션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제 까칠한 G–스트링은 아웃! 대신 털털한 브리프가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최고의 스타일은 자신감과 편안함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듯 작고 간질간질한 란제리가 영 불편했다면 도톰한 면 소재의 남자 속옷이나 유니섹스 속옷이 훨씬 편할 것이다. 속옷을 한 벌로 맞춰 입지 못하는 게 불만이신가?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레이스 브라와 스트라이프 트렁크의 조화가 얼마나 멋진지 직접 체험해 보시길.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송보라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모델
      김나래
      스탭
      헤어 / 오종오 메이크업 / 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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