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화장품 냉장고가 정말 필요할까?

2021.11.23

by 송가혜

    화장품 냉장고가 정말 필요할까?

    틱톡 833만 뷰의 주인공! 화장품 냉장고, 럭셔리의 산물이 되다.

    학창 시절의 아침은 사회인이 된 오늘의 아침보다 분주했다. 냉장고에 놔둔 은수저를 꺼내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눈꺼풀과 눈 아래를 차가운 숟가락으로 꾹꾹 누르는 걸 반복해야 두꺼운 지방에 파묻힌 얇은 속쌍꺼풀이 자취를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대학생이 되어도 냉장고를 향한 애정은 계속됐다. “이것들 꼭 여기에 두어야 하니?” 엄마의 잔소리가 날아왔다. 달걀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어야 하는 냉장고 한쪽 공간을 나의 세럼, 알로에 젤, 수분 크림, 시트 마스크 등이 차지한 까닭은 그 시절에 정독한 <보그> 뷰티 칼럼의 영향이었을 거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혈기 왕성하던 때처럼 땡땡 부은 눈꺼풀은 좀처럼 마주하기 힘들지만 아침이면 여전히 냉장고를 향한다. 물병 대신 차가운 아이 크림을 꺼내 들자 이번엔 남편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그게 왜 여기서 나와?”

    ‘눈팅’이나 해볼까 하고 설치한 틱톡 앱에서 재미있는 해시태그를 발견했다. ‘#Shelfie’를 검색하면 조그만 냉장고 속 화장품을 자랑하듯 올린 수만 개의 영상이 나타난다. Shelf(선반)와 Selfie(셀카)의 합성어인 #Shelfie에 대한 해시태그는 무려 833만 개를 기록했다. 우리 한국 여자들에겐 그다지 새롭지 않은 ‘화장품 냉장고’의 존재가 이제야 전 지구적 열풍을 일으킨 것이 조금 의아했다.

    와인 셀러도 김치냉장고도 아닌 화장품을 위한 냉장고가 과연 필요할까? 화장품 냉장고는 단순히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 자랑하는 것 그 이상의 목적성을 가진다. 영국 런던의 클리닉비(Clinicbe) 창업자이자 피부 전문의 바바라 쿠비카(Barbara Kubicka)가 먼저 답을 내놓았다. “도움이 되기는 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연 성분의 화장품이나 보존제를 거의 함유하지 않은 제품에 해당되죠. 차가운 온도가 제품 자체의 유통기한을 늘려줄 뿐 아니라 유효 성분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그 효과를 연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애초에 레티놀, 벤조일 페록사이드, 비타민 C와 같은 빛이나 열에 닿으면 쉽게 손상되기 쉬운 성분을 차갑게 해서 안전하게 보관하고자 개발된 것이 화장품 냉장고이니 말이다. 만약 새로 구입한 유기농 천연 화장품 겉면에 ‘반드시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보관하라’고 적혀 있다면, 화장품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만으로 두 가지 조건이 가뿐히 충족되는 것이다.

    “스킨케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시다시피 차가운 것은 부기를 빼고 피부 탄력을 올리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니 마스크 팩이나 아이 크림, 세럼, 괄사나 페이스 롤러, 쿨링 스틱 같은 아이템을 차갑게 해놓고 쓰는 것은 이유 있는 뷰티 루틴이죠. 저는 주로 아침 기상 직후 사용하거나, 하루를 마무리할 때 혹은 외출 직전에 사용하면서 피부 컨디션을 높여주곤 한답니다. 화장품 냉장고의 열렬한 팬이에요.” 네타포르테의 글로벌 뷰티 디렉터 뉴비 핸즈(Newby Hands)는 화장품 성분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 대신 스킨케어 제품과 기구를 단순히 차갑게 보관하는 전용 공간으로 화장품 냉장고를 사용한다. 피부를 매우 차가운 온도에 노출시켜 피부 탄력을 높이는 스킨 아이싱(Skin Icing)이나 급격한 냉각 요법으로 신진대사를 활성화시키는 크라이오테라피(Cryotherapy)와 비슷한 맥락인 셈. “부기뿐 아니라 얼굴에 울긋불긋 핀 홍조나 염증을 잠재우는 데 아주 만족스러운 효과를 봤어요.”

    작년쯤, 과학실에서나 보던 실험관 모양의 유리관에 새파란 액체가 든 페이셜 아이스 글로브가 인기를 끌었다. 냉장고에 넣어놨다 꺼내 쓰는 이 도구가 부기를 가라앉히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얼굴 윤곽이 다듬어진다는 간증이 넘쳐났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화장품 냉장고의 수요가 급증했다. 그러자 뷰티 브랜드는 물론 네타포르테 같은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에서도 간결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화장품 냉장고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뭇잎 스치는 소리보다 낮은 데시벨의 소음을 만들어내는 화장품 냉장고도 개발됐다(반면 국내 브랜드가 20년 전부터 화장품 냉장고를 출시한 것은 K-뷰티의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는 대목!). “화장품 냉장고를 소유한다는 것은 럭셔리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죠. 맥주나 음료수가 아닌 신상 화장품으로 냉장고를 가득 채워 넣으면 남들보다 세련되고 아주 앞서 나간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뉴비가 말을 이었다.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화장품을 위한 냉장고가 과연 필요할까? 단순히 화장품의 효능을 높이고자 한다면, 쓰고 있는 화장품 뒷면의 성분표를 살펴보길 권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화장품은 10~25℃ 정도의 상온에서 사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개발하기 때문에 화장품의 안전성을 위해 냉장실처럼 낮은 온도에 꼭 보관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만약 보존제나 인공 방부제가 전혀 없고, 파우더와 액체 형태로 유효 성분이 분리된 앰풀 타입을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유효 성분의 변성과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냉장 보관이 필수다. 다만 알로에 젤이나 수딩 미스트, 시트 마스크처럼 쿨링을 목적으로 하는 수분 베이스에 가벼운 제형의 제품은 냉장 보관할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철의 직사광선 아래에서만 보관을 피할 것이 아니라 현저히 낮은 온도에 노출되면 성분이 분리될 수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약 화장품 전용 냉장고가 아닌 일반 냉장고에 보관할 때는 화장품에 직접적인 냉기가 닿지 않도록 냉장고 문 가까운 쪽에 보관하고, 넣었다 꺼내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좋다. 빈번한 온도 변화도 화장품 성분 변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장대 위의 조그만 파라다이스. A4 용지만 한 사이즈의 콤팩트한 상자를 열면 차곡차곡 쌓인 시트 마스크과 쿨링 스틱, 시원한 알로에 젤, 아이 크림이 나를 반긴다. 다시 한번 질문, 그래서 화장품 냉장고가 필요할까? 부엌까지 걸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 그 누구의 잔소리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 무엇보다 어제 먹은 야식의 부기를 빼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으니 대답은 충분하지 않나. (VK)

    에디터
    송가혜
    우주연
    사진
    이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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